▲ 주청룡 칼럼니스트
[서울=동북아신문]며칠 전 연길에서 룡정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필자의 옆에 20대의 처녀가 앉았는데 버스가 떠나기 전부터 열심히 책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너무나 열심히 책을 보는지라 곁눈질하여 보니 교육학에 관한 책 같았다. 교원사업을 하다가 퇴직한 필자인지라 그가 교육학에 관한 책을 읽으니 그와 말을 건네 봤으면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가 그렇게도 열심히 책을 읽는데 지장이 될 것 같아서 말을 건네지 못하였다.

버스가 룡정에 거의 도착하였을 때 그녀는 열심히 보던 책을 덥는 것이었다. 이때라고 필자는 그와 어떻게 되여 교육학을 그렇게 열심히 읽는 가고 물었더니 자기는 지금 연변대학 사범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금년에 졸업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연변조선족자치주인력자원사회보장국의 금년도 사업단위공개초빙시험이 있는데 거기에 응시하려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어떤 직종을 선택 했는가, 고 물었더니 교사직을 선택하였단다. 그의 말에 필자는 응근히 공감을 가지면서 학생 내원의 감소로 학생 수가 줄어들고 많은 농촌학교가 폐교되는 상황 하에서도 교사 직종을 선택하였다는 것으로 하여 그 학생이 경의스러워 보였다. 하여 필자는 인민교사이란 이 직종은 영광스럽고 성스러운 사업이라고 그에게 고무 격려의 말을 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뒤에 앉아있던 40대의 남여가 우리말에 참견하면서 “그것은 전통 관념입니다. 교사사업을 하여 돈을 얼마 벌겠습니까? 한국에 나가면 한 달에 여기서 받는 월급의 몇 배를 버는데 여기에서 그렇게 낮은 월급을 받으면서 사업할 멋이 있습니까?”라고 찬물을 퍼 붓는 것이었다.

필자는 유감을 갖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동무들의 말대로 사범학원 졸업생들이 모두 외국이거나 중국의 타 지역에 나간다면 우리민족의 후대양성사업은 누가 하겠소? 이 학생이 우리민족의 후대양성사업을 위해 사업단위공개초빙시험을 치르려고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이 얼마나 존경스럽소?” 그런데 정류소에 버스가 멈춰서는 바람에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 학생한테 시험 준비 잘하라는 인사말만 하고 내렸다.
 
필자는 버스에서 내려서도 사색을 멈출 수 없었다. 그 학생이 연변대학 사범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대학시험을 칠 때부터 교육 사업을 사랑하고 교육 사업에 한생을 바치려는 념원을 안고 사범학원을 선택하였을 것이고 교육사업에 종사할 일념으로 졸업을 앞두고 사업단위공개초빙시험에 응하여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이름도 모를 낯모를 사람들이 그에게 그런 냉수를 퍼부었으니 그 학생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는가. 지금이라도 그 학생에게 더 좋은 말 많이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 학생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른 채 버스에서 너무 총망히 내리다니 그저 속으로 그 학생이 시험을 잘 쳐 그의 욕망이 실현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한편 그 이름도 모를 낯 모를 남녀의 말을 되새겨 보면서 정말 우리가 모두 그들의 말대로 자기의 고향을 버리고 외국에 가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들의 말이 전혀 틀리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가면 당분간은 돈을 많이 벌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일시적인 돈벌이지 전도가 유망한 모든 젊은이들의 유일무이한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만약 그것을 장기적인 치부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한 펑생 이국에서 타향살이를 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국에서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 가족, 정든 내 고향을 떠나 낯선 외국 땅에 가서 외로움을 달래며 대부분 사람들은 남의 밑에서 눈치보기를 하면서 일하고 있다. 일정한 문화지식을 갖고 외국에 가서 사무직에서 일한다 하여도 그것이 온전하고 장기적인 직업이라고 할 수 없다. 외국의 타향살이란  밑바닥에서 일하던 사무직에서 일하던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식, 내 가족을 떠난 외로운 이산가족 생활일 것이다. 그렇다면 돈을 좀 번다하여도 내 가족을 떠난 외로운 이산가족 생활이 그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돈을 좀 더 번다고 떠돌이 생활을 하기 보다는 잠시는 낮은 월급을 받더라도 온전한 직업을 갖고 한집에서 내 가족 사랑을 느끼면서 일한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족의 기쁨이고 내 가족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내 고향건설에 더욱 큰 힘을 이바지 한다고 볼 수 있다. 외국에 가서 일을 하더라도 장기적인 이산가족생활을 하지 말고 5,6년간 돈을 번 다음 고향에 돌아와서 그 돈을 밑천으로 새로운 창업을 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다. 지금 우리 주에서 귀향창업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는 것도 바로 내 고향을 더 잘 건설하고 우리 조선족사회를 더 번영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버스에서 만난 이러한 대학생들이 있음으로 하여 우리민족의 후대양성사업이 끊어지지 않고 더욱 잘 되어가고 우리 조선족사회가 더욱 찬란한 미래를 가져 오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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