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남선 프로필: 수필가, 길림재무학원 국제금융전공, 현재중국공상은행서울지점 인사총무부부장,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동포문학 5호 수필부문 대상 수상
 [서울=동북아신문]나는 가죽을 좋아하여 다이어리는 대부분 가죽으로 된 케이스를 사용한다.지금으로 부터 20년전의 어느 여름날, 티비에서 양가죽을 가공하는 장면을 보다가 순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커다란 호기심이 생겼고 고민 끝에 한 장 가공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종래로 가보지 못했던 시교의 도살장으로 찾아갔는데 피비린내와 도처에 널려있는 소가죽과 양가죽을 보니 너무나 소름 끼쳤다.

정작 사려고 보니 소가죽은 너무 커서 엄두도 못 냈고 그냥 금방 잡아 벗긴 양가죽을 사오게 되였다. 둘둘 말아놓은 양가죽에서는 비린내와 지린내가 그때까지도 식지 않은 양온기를 타고 뜨뜻한 냄새를 풍겼다. 양털에 말라붙은 양똥과 핏물 그리고 양털 사이에 가득 끼여있는 나무 가지와 나뭇잎들을 보니 괜히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후회도 들었지만 그래도 생각한대로 해보고 싶었다.

혹시라도 면목을 아는 사람들한테 들키면 체면이 떨어질까가봐 으슥한  강변 가에 자리를 잡고 웃옷을 벗어 던지고 양가죽을 씻기 시작하였다. 강물에 쭉 펴서 담근 후 얼마간 지난 후 큼직한 빗으로 양털을 조심스레 좌우로 빗으면서 나뭇잎과 가지, 양똥을 훑어냈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땀을 흘리면서 둬 시간이나 열심히 씻었더니 어느덧 오물은 없어졌고 누런 색깔의 양털이 모습을 드러냈다. 집에 가져가서 계속 가공을 할 수 있는 첫 단계 클리닝은 끝난 셈이다. 물을 털어낸 후 큼직한 비닐주머니에 넣어 차에 싣고 빨리 만들고 싶은 조급한 심정에 집에 도착해서 본격적으로 티비에서 본 그대로 두 번째 단계인 양가죽 가공을 시작하였다.

먼저 화장실에 있는 큰 물통에 따스한 물을 넣고 소금과 세탁제 그리고 백반이란는 화학제를 비례대로 넣은 후 휘젓고 융해시켜 양가죽을 그 안에 담그는 것이다. 그렇게 10여일이 지나면 양가죽에 스며있던 기름이 완전히 빠져나가고 누런 양털도 깨끗이 때를 벗고 하얗게 된다. 이런 흐뭇한 생각에 잠겨 좋은 기분으로 양가죽을 담은 물통뚜껑을 여는 순간 양 노린내가 확 풍겨와서 하마터면 웩 하고 토할뻔했다. 눈물이 찔끔 났고 저도 몰래 얼굴을 찡그렸다. 양기름 냄새와 털에 배인 그 오줌냄새가 여전히 그대로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시작한 일이니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해야만 했다.

물통 두껑을 꼭 닫아놓으니 일은 두 번째 단계도  끝난 것이다. 계획대로 열흘만 기다리면 된다. 궁금증으로 찬 나는 퇴근하여서도 매일 마스크를 끼고 물통 안의 양 가죽을 빨래하듯 저어놓아 재료들이 물통 밑에 가라앉지 않게끔 애를 썼다. 하지만 매 번마다 물통 뚜껑을 열 때면 그 속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는 집안까지 풍겨 들어가 부모님한테 얼마나 꾸지람을 당했는지 모른다. 심지어 아버지는 내가 출근하는 사이에 버리려고도 하셨다고 한다.

이렇게 긴장하고 조마조마하게 10여일을 보내니 남은 일은 그 양 가죽을 꺼내서 씻고 말리는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양 가죽을 꺼내서 목욕통에 넣고 샤워시키듯  맑은 물로 한참이나 깨끗이 씻으니 놀랍게도 하얀 양털이 눈에 들어왔고 비린내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아, 이렇게 만들구나. 그때의 심정은 뭐라고 형용하기 어렵게 즐거웠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내가 그 빨래통 안의 물을 버릴 때에 그 지독한 냄새 때문에 끝내는 구토를 하였던 것이다.

그 다음 이미 준비해놓은 널판자 위에 양털을 밑으로 향하게 반듯하게  펴놓고 양 가죽의 한 끝을 압정 못으로 고정하고 그 반대편의 양 가죽 끝을 빳빳이 당기면서 다시 압정 못으로 고정하는데 약 5센치 간격으로 반복하면 커다란 양 가죽이 지도처럼 펼쳐진다. 그런 후 창문에 세워놓고 햇빛을 쪼이면 일주일만 지나면 건조된다. 그러나 마르기 전에 반드시 빨래망치로 가죽 전체 부위를 고루고루 뚜드리어 꽛꽛한 부분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만 나면 해야 하니 뚝딱거리는 소리에 부모님들한테 또 여러 번 꾸지람을 당했다. 아무튼 밑부분의 하얀 양털을 보지 못하였으니깐 부모님들의 뇌리에는 비린내 나는 가죽만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열정과 인내심이 없으면 이런 일을 누가 하겠는가?

완성품이 나오는 날, 나는 압정못을 뽑고 파손된 양가죽 끝을 베어버린 후 두 손으로 가죽을 꽉꽉 거머쥐고 주무르면서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향수도 살짝 뿌린 후 거실의 침대 위에 펴놓았다. 이제 남은 일은 바로 엄마 아버지에게 20여일간의 노동의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얀 양털가죽을 이리저리 만지시던 어머니는  "너무나 부드럽다"하시면서 언제 그 지린내 나는 양가죽이었느냐는 듯 양털을 얼굴에 문지르기도 하시였다. 그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은 아마도 이 아들의 솜씨를 칭찬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집에서 가죽을 가공하는 특허를 받았고 여러 가지 가죽공예품들을 만들었다.

한국에 와서 8년간 생활하면서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가죽공예를 다시 하게 된 것은 얼마 전에 동대문에서 열린 글로벌기업취업박람회에 갔다가 근처에 있는 가죽점포를 보고 다시 손을 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멋진 다이어리 케이스를 만들어 직원들한테 나누어주자. 이미 가공을 다 해놓은 가죽이라 사다가 다이어리를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색상으로 된 가죽을 거실에 쭉 펴놓고 이리저리 선을 그어 갖가지 다이어리를 설계해냈다. 칼로 조심스럽게 베어낸 후 가위로 모서리를 다듬고 다이어리 재료를 고정시키면 완성품이 나온다. 오래간만에 하는 일이라 나는 그사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만들었다.

회사직원들한테는 여러 가지 다이어리를 만들어 선사했지만 나에게는 같은 색상으로 크고 작은 다이어리를 한 세트로 만들어 책상 위에 놓고 사용하고 있다. 눈에 잘 띄고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직원들이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가죽은 쓰면 쓸수록 그 가치를 풍긴다. 통가죽은 사기(邪氣)를 피한다고 들은적이 있는지라 8년전에 이미 거실에 통 소가죽을 펴놓고 매일 딛고 다니며 소처럼 힘있게 앞으로 꿋꿋이 걸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소의 기가 하늘을 찌른다(牛气冲天) 고 내가 그 기운을 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기운을 탄 소의 가죽으로 손수 다이어리를 만들어 주위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기도 하겠지만 기실은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오만, 나만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착각,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배타적 자세.....놓기보다 움켜쥐려는 욕심이 우리들을 기로로 몰고 가고 있지 않는가? 가지려 할수록 잃을 것이고 내려놓을수록 얻는 것이니 내가 손수 가죽다이어리를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내려놓은 만큼 얻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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