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심양 소가툰 출생. kbs방송국에 수필 다수 발표, 우수상과 장려상 여러 번 수상, 특집에도 당선.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서울=동북아신문]화사한 미소로 이 아침을 열어주고 하루 종일 생글대던 해님이 지쳤는지 서쪽 고층 아파트건물 뒤에서 서성거리다가 모습을 살짝 감추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실실 늘어진 수양버들 옆에 혼하강(渾河江)에서 유유히 흘러내리는 강변유보도로 들어오고 있었다. 날이 점점 저물어 감에 따라서 사람 수도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서로 간의 시간의 약속은 없어도 그 시간만 되면 친구들과 같이 걷는 사람도 있고 혼자서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며 인사를 나누었다. 매일 만나도 그렇게 반가워하는 모양이었다. 나의 앞에서 걷고 있는 아줌마는 일곱살 나는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4년 전에 남편이 한국으로 가고 1년 후에는 아들이 외국 유학을 갔다고 들었는데 웬 아이인가 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걸어가서 물어봤더니 자기 시동생의 아이라고 하였다. 시동생의 부부가 산동성에서 장사를 하다가 쫄딱 망해서 그의 내외가 한국으로 가면서 아이를 그 아줌마한테 맡기고 갔다. 그 애는 엄마처럼 졸졸 따르며 앞에서 깡충 재롱을 부리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한손에는 빨간 풍선을 들고 그 애의 손을 꼭 잡고 걷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자 같았다. 강변 유보도 오른쪽 옆의 광장에는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신나게 광장무도를 추는 음악소리도 울린다. 백양나무와 이름 모를 여러 꽃들을 줄지어 심어 놓은 옆쪽 길에서 가끔 자주 만나는 60대 아줌마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휠체어에 연로하신 시어머님을 보시고 이쪽 유보도로 오고 있다. 항상 신선한 공기가 너무 좋다면서 이 길로 나오곤 한다. 처음 만날 때는 시어머님을 친정어머니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오늘은 옆에 예쁜 아가씨도 같이 따라 나섰다.예쁘고 상량한 얼굴로 생글대는 그들의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딸인가고 물어봤더니 3년 전에 결혼한 며느리라고 하였다.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의 친손자 며느리였다. 할머니는 10년 전에 중풍에 걸려서 한쪽은 영영 감각을 잃었다고 하였다. 10년이란 세월속에 모진 고난 극복하면서 어르신을 이처럼 공경하면서 살고 있는 그였다.  시대 세월의 발전에 따라 늙은 사람들이 장기 병에만 걸리면 요양원부터 어디 있는가 알아보고 찾는 것이 지금 젊은 세대이다. 참말 찾아보기 쉽지 않는 효자들을 이 산책길에서 만나고 있다. “우에 물이 맑아야 아래 물도 맑다.” 끝까지 부모를 숭경하는 그 변치 않는 고상한 일거일동 윗사람으로서 아래의 사람한테 충분히 본보기를 보여줌을 느껴진다.그들의 얼굴로부터 알려지는 아름다운 행동이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기만 하다. 뒤에서 아는 척을 해서 돌아보니 우리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장씨아줌마였다. 아직 50대초반인 그는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휠체어에 앉혀 유보도로 나왔다. 5년 전에 뇌출혈에 걸려서 갖은 노력을 다해서 치료했지만 남편은 아직도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가정의 일을 몽땅 혼자서 해야 했고 남편의 모든 시중을 다 들고 사는 그가 몹시 힘들 테인 데도 매일 봐도 그의 얼굴은 환하다. 얼굴이 백지장보다 더 얇아 쩍하면 이혼하는 요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변치 않는 그 아줌마를 보니 잔잔한 감동의 파문이 일고 있다. 어쩐지 이 도시에 진입한 것이 참 좋아 보인다. 물이 맑고 공기가 청신하고 인품 좋은 곳에서 사는 것이 무척 행복스럽게 느껴진다. 문득 초저녁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온 하루 컴퓨터 앞에서 시련 했던 갑갑한 마음도 시원하게 해주었다.산책길에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낮에 힘들었던 일이 걷잡을 수 없어서 나왔는데 이 산책길에서 여유로움과 즐거움 그리고 평화로움을 찾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가고 싶다.  박화순2017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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