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동렬 본지 대표

▲ 김노: 소설가/ 재한동포문인협회 소설분과장, 작품집 '중국여자 한국남자' 출간. 수상 다수
[서울=동북아신문]2016년, 재한조선족사회에서 가장 ‘핫’한 소설집을 내놓은 소설가를 꼽으라면 단연 김노의 “중국여자 한국남자(신세림출판사, 2016.2.)”이다.

연합뉴스에서는 지난해 9월 5일 <중국동포성공시대> 계열보도(12번째)로 ‘밑바닥에서 외치는 희망 소설가 김노’라는 제하의 인물인터뷰를 실었고, 여러 한국 문학지들에서도 책 소개와 더불어 평론을 실었다. 김노의 본명은 김춘란이다. 중국 길림성 화전현 태생인 그녀는 약 25여 년 전에 어느 지인의 초청으로 한국에 들어와 지금까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30대중반의 젊은 나이에 한국에 입국하여 고국에 대한 사랑과 한민족이라는 동포애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현실은 김노(金奴)라는 필명으로 사용할 만큼 각박한 세상이었다.  그래서 ‘중국여자 한국남자’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의 제목을 보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듯 아픔이 느껴진다. ‘중국여자 한국남자’, ‘중국아내’, ‘밀항자’, ‘지하생활’, ‘개팔자 상팔자’, ‘불법체류자’, ‘길림댁은 등나무처럼 살고 싶다’, ‘꼭두각시’, ‘주인과 하녀’, ‘가자! 경마장으로’ 등 10편의 작품 모두 그러하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독자들의 마음은 어쨌든 불편하다. 여의도 벚꽃이나 한강의 불빛, 명동이나 광화문에 풍기는 시대의 숨소리나 향기 같은 것이 전혀 없고 어둡고 침침하고 갑갑하고, 그래서 슬그머니 화가 난다. 중국 조선족사회의 먹장 그늘이 비구름에 실려 가슴바닥에 칙칙하게 드리우는 듯하다. 밀항선, 경마장, 불법체류, 가정폭력, 도박……김노 소설의 모멘트는 한결같다. 바다건너 온 재한조선족의 불운한 운명을 가감 없이 핍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의 소설은 기법 상 픽션이나 논픽션을 떠나서 리얼리즘과 여성 특유의 섬세한 심리주의를 지향하는 듯싶다. 오로지 사실과 경험을 바탕에 둔 듯, 세밀히 보란 듯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한 인물들이 그녀라고 의심할 만큼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녀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고국이라고 찾아온 조선족사회에서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겪게 되는 실질적 아픔들인 것이다.  김노(金奴)의 필명을 보면 이름이 노예의, 노(奴)자다. 어쩌면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약자의 아픔과 상처를 그녀가 필명을 통해서라도 보여주려 함이 아닐까?…… 무엇보다 조선족들이 한국이라는 민주국가에서 인간으로서 가져할 최소한의 ‘인권(人權)’ 존중이 유린당한데 대한 분노의 발설이자 작가가 던진 메시지로 보인다. 디아스포라 삶을 살고 있는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삶의 조건이나 생활환경이 극도로 열악하고 불평등하다. 한국인과 조선족, 또는 사장과 직원, 고용주와 고용인이라는, 이미 설정된 기존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심한 멸시와 차별을 받고 폭언이나 폭력을 당하며 또 임금체불을 당한다. 그것은 조선족이란 다른 이름이 곧 이방인이고 약자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대개 더럽고(Dirty), 힘들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3D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조선족 여성들은 식당이나 봉제공장과 같은 제조업, 가정부 등 일을 하고 있고 남자들은 건설현장에 일용직으로 뛰거나, 불법체류자로 전락되어 한국인의 눈치를 보며 멸시를 당하고, 또 산재를 입어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대접을 못 받고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농경사회에서 생활하다가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모든 게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들며 적응하기 힘든 연고이다. 이런 어려운 문화적인 차이는 그들로 하여금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한국인과의 갈등을 빚게 만든다. 순진하고 단순한 마음들이 외면당하고, 우롱당하며, 심지어 인격 상 기시를 당하는 현실이다. 태어난 고장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른 환경에서는 이주민들이 먼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도리라고 해도 “이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너무 많은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더 고달픈 삶이 된다. 더구나 인터넷 뉴스기사 댓글에 “조선좆”이니 “장깨”이니 하는 낙서들이 심한걸 보면 언제부터 조선족이란 호칭이 부정적인 대명사로 전락이 됐다. 같은 범죄라도 조선족이 저지르면 언론이 대서특별을 하며 전반 조선족 사회를 먹칠한다.  
▲ 서울 어느 모퉁이, 가을 납엽을 밟으며 소설을 구상하다
 과연, 돈이란 무엇일까. 또 돈의 척도는 어떤 것일까?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 그 하나의 잣대로 인간의 무엇을 가늠할 수 있을까?…… 오로지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쉽게 많은 돈을 벌수 있다는 기대 하나로 모험을 감내하며 바다건너 한국에 온 조선족동포들! 그들은 서울 생활에 애써 적응하며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누구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지만 대한민국 현실은 냉정하기만 하였다.  중국에서 큰 빚을 내고 목숨을 담보로 밀항을 해서 어렵게 고국을 찾아 어두운 지하방을 전전하며 돈을 벌다가 빚도 다 갚지 못한 채 한국인들의 신고로 법무부로부터 강제송환당하는 동포들의 신세는 “범죄”를 저지른 대가치고는 너무나 무거운 형벌이다. 그렇게 송환된 교포들은 빚의 무게에 눌려 죽거나 아니면 또다시 죽음을 무릅쓰고 어디론가 떠나서 돈을 벌어야 한다. 어렵게 합법적으로 나왔다고 해도 비자기간이 만료되어 연장이 불가해서 불법체류자로 전락이 되고, 또 그것이 빌미가 되어 사장님들한테 노임 달라는 말도 못하고, 그렇게 체불임금을 당하며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우리 동포들의 현실이다.  그의 소설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흥미를 유발하려는 작업을 거부한다. 그래서 때로는 “재미” 없다는 말도 가끔 듣는다. 그러나 김노 작가는 오로지 그녀만의 아집으로 이런 작품을 통해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비판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점들이 김노 소설의 약점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서 또 김노만의 소설로 평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평론가 이시환은 이렇게 말했다. “김노 작가의 작품들은 사건의 발달, 전개, 절정, 결말 등의 어떤 긴장구조 속에서 이야기가 직조(織造)되기보다는 한 가지의 유사한 이야기가 끝없이 전개되는 가운데 진행형으로 끝이 나는 형식 곧 단선구조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끝이 공소하거나 시니컬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 공소함과 냉소적인 느낌은 오히려 완강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결과로서 리얼리즘 문학이 갖는 한 단면을 엿보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저 목소리를 크게 내지름으로써 독자의 눈과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보다는 현실의 특정 부위 상황을 확대하여 보여줌으로써 문제를 환기시켜 동시대인들의 진지한 반성과 고민을 이끌어내는 쪽에 서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설 창작에서 김노 작가는 소재를 선택하고 현장 사실 확인 작업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 밀항선을 타고 오다 집단 성폭행 당한 조선족 여성의 비극을 추적한 단편 ‘밀항자’란 소설 한편을 구상하기 위해 작가는 며칠 동안 누구라도 쉬쉬하는 어려운 취재를 당사자에게 집요하리만치 설득한 끝에 힘들게 얻어냈고 체험자의 시선으로 현장 분위기와 작품묘사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인천 바다로 가서 항구에 늘어서 있는 배에 올라가 어창 밑에 직접 들어가 앉아 보기도 하였다. 실제로 밀항선에서 벌어진 참상은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는 것이 그녀가 취재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현실이 소설보다 훨씬 비참해서 글로 차마 다 옮길 수 없었다고 한다.  ‘가자! 경마장으로’ 이 작품에서도 김노 작가는 평소 많은 교포들이 공사장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을 일확천금을 벌수 있다는 한탕주의, 허황된 꿈을 좆아 과천 경마장을 찾았다가 오히려 한순간 많은 돈을 날린다는 가슴 아픈 현실을 접하고 조선족사회에 경종을 던지고자 문제의식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녀가 추구하는 경마인의 심리상태를 아주 ‘리얼’하게 그리기 위해 김노 작가는 실제로 과천 경마장을 두 번 찾아가서 돈을 걸어 경마를 해보기도 하였다.  김노 작가는 이미 오래전, 고(故)박완서 소설가로부터 한국일보 응모작품을 심사 받기도 하였다. 최종 당선 심사평에서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교육을 받았음에도 우리 한글 말이 연변동포 답지 않게 전혀 어색함이 없고 자연스러워서 놀랐다……”라는 평을 받았다.  김노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에 살고 있고, 살고 싶어 하는 중국 동포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 독자 중에는 중국동포와 한국인이 골고루 있었으면 해요. 중국동포를 둘러싸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서로 알아야 하니까요. 다만 제 글을 읽고 어떤 점을 느낄지는 독자의 몫이겠죠. 중국동포를 향한 경계심이 생길 수도 있고, 반대로 이해심이 커질 수도 있다고 봐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이제는 중국동포들도 밑바닥에서 헤매지 말고 한국사회 시스템에 맞춰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했다. 이는 자신의 필명을 ‘노예’에서 따온 것도 “구속에 얽매였던 과거를 잊지 않고 스스로 자유를 지키겠다는 다짐이다”라고 한 말과 맥을 같이 한다. 자유와 인권, 행복을 지키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김노 작가는 1990년대 초부터 2006년까지 단편소설을 비롯해서 수필 수기 등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다.그동안 수상 이력이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한국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응모하여 당선된 작품들이 거의 우수작품이라는 사실에서 중국동포로서 자긍심을 가질만하다. 수필 '낯선 고향길'로 1995년에 ‘제1회 동부문학상’ 수상, 1995년 ‘나의 서울생활’로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부문 우수상 수상, 1998년 ‘어머니의 작은 소망 하나’로 농민신문사 ‘행복의 샘’ 창간 6주년 기념 ‘나의 어머니’ 수기 공모 당선작 수상, 2000년에 단편소설 ‘한심한 세상’으로 중국 장춘에 있는 문학지 ‘장백산’의 ‘모드모아문학상’을 수상하였고 그 부상으로 단편소설집 “한심한 세상”을 출간하였다. 같은 해 ‘길림댁은 등나무처럼 살고 싶다’로 동아일보 신동아 논픽션 응모작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6년에는 “중국여자 한국남자” 작품집으로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제36회 심사위원 선정 특별예술가상(문학부분)을 받았다. 김노 작가는 다산작가가 아니다. 1990년대 초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중단편소설 , 수필, 수기 등을 모두 합쳐 40여 편뿐이다. 작가의 말대로 거의 십여 년을 창작을 중단하고 절필하다 시피 공백기가 길었다. 긴 시간을 헤아려 보면 개인적으로 힘들었을 그의 한국생활을 짐작케 한다. 2016년 2월에 와서야 뒤늦게나마 단편 9편과 논픽션 1편을 추려 그동안 소망한 그의 한국에서의 첫 소설집 ‘중국여자 한국남자’를 펴냈다.  김노의 작가노트를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식물도 자리를 옮겨 심으면 뿌리를 내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중국 출신인 나는 온전한 씨앗으로 한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모종으로 한국 땅에 옮겨져 새로운 땅에 새 뿌리를 내리려니 당연하지만 몸살을 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땅에 들어와 살고 있는 모든 동포들의 밝은 모습보다 어둡고 그늘진 삶들에 먼저 시선이 갔고 그들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일련의 아픔들을 소설화하고 싶었다.  1940년대 일제치하 때 중국조선족 1세대는 배고픔과 강제 징집, 위안부 징집 등에 쫓기어, 또한 독립운동을 하고자 실로 다양한 이유로 고향을 등지고 낯설고 언어소통이 전혀 안 되는 중국 땅으로 건너가서 삶의 터전을 이루며 그곳의 주인이 됐고, 또 그곳에서 태어난 우리 2세~3세들을 키우며 온갖 고생을 다 하셨다. 하지만 지금 그 후세들은 역으로 배고픔보다 미래에 보다나은 행복한 삶을 약속받기 위해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고국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코리아드림을 꿈꾸며 이 땅에서 가족과 떨어져 현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을 모든 동포들을 위하여 조금이나마 소설을 써서 위로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김노 작가의 말대로 비록 고국이라지만 이 땅에서 삶의 어려움과 고초를 겪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우리 동포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새 작품의 탄생을 기대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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