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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中國新聞月刊
가난한 집안에서 칭화위엔(清华园)에 이르기까지교육은 매개인의 마음 속에 등불을 밝히기 위함이다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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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5  11: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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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국신문(한국어판)]2012년 8월18일, 베이징 칭화대(清华大)제2 교실에서 93학번 경영관리학과를 졸업한 주훙(오른쪽, 朱红)은 윈남위시(云南玉溪)1중에서 온 장애인인 이쇼우웬(矣晓沅)의 교우(校友) 멘토가 되었다. 그 날 칭화대의 ‘새로운 백년 자강계획’단에서는 교우교사단과 신입생들의 만남회를 주최하였다. 전국에서 온 31명의 빈곤신입생과 31명의 칭화대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선배들이자 멘토팀의 성원들이 일일이 만났다.  2015년 8월 19일, 칭화대 종합체육관의 신입생등록현장의 신입생환영행사에 참석한 칭화대 추이융(邱勇) 총장이 여러 명의 빈곤학생 대표들을 만나고 있다.

본지기자/푸이요(符遥)

한추우인(韩储银)은 아직도 그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2년 전 개학식에서 일어난 일이다. 2015년 8월 20일, 칭화대 2015학번 3,300여명의 학부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추이융 총장은 환영사를 하고 있었다. ‘행동력이 있는 이상주의자가 되자’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총장은 ‘오랜 선배’인 량스청(梁思成)을 일례로 들며 학생들에게 칭화인은 굳건하고 강한 정신과 기개를 가져야 하며 언어보다 행위가 앞서는 품격을 양성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한추인은 단상에서 자신의 이름이 전해오는 것을 들었다. “저는 어제 신입생등록현장에서 간수(甘肃)에서 온 한추인 학생을 만났습니다. 그는 농민의 가정에서 태어나 고되고 힘든 성장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초등학생 때 그는 매일 두 개의 산을 넘고 한 줄기의 도랑을 건너서 학교에 등교하였고, 중학교 때에는 겨울 밤에 스팀이 없는 기숙사에서는 춥고 얼어서 잠을 이루지 못해 운동장에 나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날, 그는 졸업생 영예란의 ‘칭화대학’이란 크고 빨간 글자에 매료되어 칭화대학에 가는 것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올해 그는 칭화대 ‘자강계획’에 입선되었고 아울러 대학입시에서 전 성(省)의 이과(理科) 3등이란 성적을 따냈습니다….”

“너무나 뜻밖이었죠. 아예 생각지도 못했어요.” 한추우인은 그 당시의 정경을 회상하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러나 미간에는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해 그는 칭화대 제4회 ‘자강계획’ 학생에 입선되어 50점의 가산점을 부여 받아 총점 724점의 성적으로 에너지동력공정전공에 입학하였다. 그날, 이 가난한 소년은 크고 넓은 종합체육관에서 인생에서 전례가 없었던 ‘가장 빛나는 시각’을 맞이하였다.

2011년에 칭화대학은 편벽하고 빈곤한 지역의 학생들에게 전문적인 ‘자강계획’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6년이래 이미 300여명의 한추우인 같이 농촌에서 온 훌륭한 학생들이 혜택을 받아 칭화대에 입학하였다. 국가와 대학의 보살핌 속에서 그들은 가난한 산간벽지를 벗어나 1선 도시로 오게 되었으며 중국 최첨단 최고학부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로부터 자신의 운명을 철저히 달리하는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출중함과 공평함

2011년은 칭화대 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칭화대는 이 해에 ‘새로운 백년 계획’이라는 자주학생모집의 ‘새로운 정책’을 가동하였다. 이 계획은 ‘리더계획’, ‘뛰어난 인재계획’, ‘자강계획’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상이한 유형의 우수인재들을 선발하는데 취지가 있다.

계획에 의하면 ‘리더 계획’의 인재선발의 목적은 원대한 이상이 있고 진취심이 강하며 인품과 유수한 학습성적을 겸비해야 하고 다방면의 소질을 갖춘 ‘다재 다능한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다. ‘뛰어난 인재’는 연구자가 되겠다는 이상이 있고 잠재력이 구비되어야 하며 어느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천재’, ‘전문인력’을 선발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은 ‘자강계획’이었다. 이는 농촌지역, 편벽한 빈곤지역 혹은 민족지역을 대상으로 자강분발하고 인품과 재능을 겸비한 그해 졸업하는 고등졸업생을 선발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1년 전인 2010년에 칭화대는 자주모집계획인 ‘B계획’을 내놓았는데 이는 ‘자강계획’의 전신이라 할수 있다. 칭화대학학생모집처 사무실 류전(刘震) 주임은 <중국신문주간>에 밝히기를, 2003년부터 전국대학교자주학생모집선발합격 작업을 시험적으로 정식 가동하면서부터 칭화대는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다원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뽑으며 인재에 맞게 모집을 실시하며 공정공평을 촉진한다”는 이념 하에 학교운영의 특색과 인재배양의 수요를 결합하여 점차적으로 인재선발목표와 인재특징의 선발방식을 확립하였다는 것이다.

2011년 칭화대에서는 처음으로 ‘A계획’과 ‘B계획’이라는 두 개의 특수한 선발 프로젝트를 시험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 A계획은 주로 어느 영역에 뛰어난 특수 재능을 갖고 있거나 혹은 종합표현력이 특별히 훌륭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뛰어나다’는 점에 중점을 두었다. B계획은 주로 경제사회발전수준이 발달하지 못한 지역의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공평’하게 교육기회를 준다는 데 취지에중점을두었다.

칭화대는 전국에서 첫 번째로 전문적으로 빈곤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주선발방안을 내놓은 대학으로서 솔선수범하여 신쟝(新疆), 간수, 광시(广西), 윈난, 산시(陕西) 등 성에서 B계획의 시행작업을 시험적으로 진행하였다. 2011년 전국의 빈곤지역에서 온 8명의 학생이 B계획에 통과되어 가산점을 부여 받음으로써 칭화대에 입학하였다.

2012년 ‘새로운 백년계획’의 실시에 따라 ‘자강계획’은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설립초기에 ‘자강계획’은 주요로 전국의 592개 국가빈민구제활동을 펼치는 중점현성과 빈민이 집중되어 있는 특수 빈곤현, 현성 이하의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인재를 선발하였다. 이 계획은 학교에서 추천하는 방식으로 신청을 받고 학생을 모집하는 초생처(招生办)에서 조직한 전문가들이 학생의 학업성적, 가정경제상황, 자강정신 등 방면에 대해 초보적인 심사를 하여 조건에 부합되는 학생들이 자주학생모집 필기시험을 볼 수 있는 것으로서 단독적인 필기시험의 점수선 통과만으로 확정되는 게 아니다. 필기시험 통과 자는 통일된 종합면접을 받는다. 최종 입선된 학생은 대학입시점수선 보다 30~60점이 낮아도 합격되는 우대정책을 받는다.

자주학생모집계획 중에서 제일 특수한 항목으로서의 ‘자강계획’은 신청한 학생들의 자질에 대해 대단히 엄격한 규정을 내놓았다. 신청한 학생, 그리고 학생의 부모 혹은 법정감호인(监护人)의 호적은 반드시 계획적으로 시행하는 지역의 농촌호적이어야 하며, 연속 3년 이상 호적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호적소재지의 고등학교에서 연속 3년을 다닌 학적이 있어야 하고, 실제적으로 공부를 했어야 한다. 일반적인 자주모집과 다른 점은 설립초기 ‘자강계획’은 일반적인 규정의 심사 외에 현지를 고찰하는 부분을 추가했다는 것이다.

제1회 ‘자강계획’에서부터 칭화대소포트단과대학의 전 당위부서기이자 충칭(重庆)학생모집소조의 성원인 펑링(彭凌)은 현지고찰에 참여하였다. 그녀는 <중국신문주간>에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가짜를 조작할까 봐 우리들은 살그머니 다녀옵니다. 학교나 선생님들도 다 모르죠.”
2012년 충칭완저우궁쟈완(重庆万州龚家湾村) 농촌에서 온 장화펑(张华峰)은 전국에서 ‘자강계획’을 신청한 1,500여명의 농촌학생 중에서 표현이 뛰어나서 60점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았다. 펑링과 충칭학생모집소조의 덩징캉(邓景康) 조장, 그리고 학교기율위원회 감찰조의 선생한 명, 이렇게 세 사람으로 재빨리 조직된전문가팀은 학생들의 고향에 대한 은밀한 조사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장화펑이 다녔던 초등하교, 중학교를 일일이 방문하면서 그의 성적표를 찾아본 후에 그의 집을 찾아갔다.

장화평이 살고있는 동네는 심심산골에 있었다. 당시에는 차가 통하지 않아 질척한 산길을 따라 40분을 걸어가야 했다. 그의 부친은 평범한 농민이었고 어머니는 다년간 병을 앓고 있었으며 남동생은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전문가팀과 동행한 중앙텔레비전방송국 기자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생스레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들은 눈앞의 광경에 마음이 아렸다. 네 식구는 거처할 집조차 없어 남의 집 나뭇간에서 지냈으며 흙으로 된 벽에는 창문으로 만들고자 남겨놓은 구멍이 뚫려있었는데 집안으로 휙휙 바람이 들어왔다. “돈이 없어 창문을 못하고 있어요. 비닐마저 없는데 유리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하나의 크고 두터운 나무덩이가 걸상이었고 긴 의자가 책상이었어요. 두 아이는 거기에서 공부했는데 가정이 정말로 대단히 가난했어요.”

2012년 교육부, 국가발전개혁위, 재정부, 인력자원과 사회보장부, 국무원빈민구제처에서는 연합하여 공지를 발표하였다. 대학교들에서 농촌지역의 정향(定向, 어떤 목적을 두고 인원을 내보내 배양하여 돌아오게 하는 것)학생모집 역량을 강화하고 국가의 ‘빈곤지역 정향학생모집 전문프로젝트계획’을 실시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일반 고등학교 학생모집계획에서는 전문적으로 적당한 비율의 학생모집 할당량을 배정하여 집중적이고 연이어 있는 특수빈곤지역의 신입생 공급을 만족시키고 정향학생모집을 실시하여 학생들이 졸업 후 빈곤지역에 가서 취업하고 창업하며 서비스할수 있도록 안내하고 격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국가빈곤전문프로젝트계획’의 실시와 함께 많은 지명도가 있는 대학교에서도 잇따라 농촌학생들을 전문적으로 대상으로 하는 자주학생모집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예를 들면 베이징대학의 ‘축몽(筑梦)계획’, 중국인민대학의 ‘원몽(圆梦)계획’ 등이다.

2014년 ‘자강계획’의 영향범위는 원래의 592개의 국가급 빈곤현으로부터 832개로 증가하였다.
2015년, 교육부에서 지방에 하달한 ‘시험을 통한 학생모집제도개혁의 심화에 대한 실행의견’이란 문건에 근거하면 각 자주학생등록시행대학교는 더는 고등학교에 추천할당량을 배정하지 않고 수험생전체가스스로 추천등록을 할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동시에 각 대학교의 자주학생모집심사는 통일적으로 대학입시가 끝난 후에 진행하였다. 이렇게 하자 학생모집선발작업의 시간 제한을 받아 칭화대는 단독으로 전문가팀을 파견하여 현지고찰을 하지 않았고 성, 시, 구 3개의 교육주관부문과 공안 등 부문에서 연합으로 협력하여 심사를 진행하여 수험생본인과 가족 정보의 진실성과 정확성을 확보하도록 하였다.

12분간의 면접

칭화대의 ‘자강계획’의 시험에 참가하고자 왕초우(王超)는 평생 처음으로 베이징에 오게 되었다.
왕초우는 후난(湖南)성의 한 가난한 현성에서 왔다. 가족은 부친이 임시로 고용되어 하는 날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부모의 문화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그는 학급에서 손꼽히는 ‘공부왕’이었다. 4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현성의 제일 좋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성적은 항상 1등이었다. 칭화대에 입학하는 것은 왕초우의 한결같은 목표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비록 자신의 성적이 우수하지만 자신이 소재한 학교와 창사(长沙) 등지에 있는 중점고등학교는 적지않은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솔직히 우리 학교의 실력은 별로 높지 않아요. 그러므로 성적만으로 칭화대에 입학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그도 여러 차례 성급과 국가 급의 학과경연에 참가했었다. 그러나 뛰어나지 않은 그의 성적은 가산점을 줄 수 없었다. “수학경연의 제2차 시험은 모두 5문제였는데 한 문제도 모르겠는 거예요. 모두 올림픽수학문제 수준이었어요.” 그는과외지도를 종래로 받은 적도 없고 경연과 관련된 훈련반에서 배운 적도 없었으며 일부 경연에서 출제한 정리나 개념은 들어보지도 못한 것들이었다.
왕초우 전에 2013학번 여선배가 ‘자강계획’의 가산점을 통해 칭화대에 입학하였다. 이는5년이래 칭화대에 입학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2014년, 학교에서는 농촌출신이고 가정형편이 가난하며 성적이 훌륭한 왕초우를 칭화대에 추천하였다.

요구에 의하면 ‘자강계획’은 본인이 인터넷으로 신청하여야 한다. 그러나 왕초우는 평소에 거의 인터넷을 접촉할 기회가 없었기에 선생님이 사무실의 컴퓨터로 그를 도와 여러 서류들을 제출하여 주었다. 필기시험 준비를 위하여 선생님은 인터넷에서 예전의 자주학생모집시제를 일부분 찾아주었다. 이것이 그의 전부의 복습자료였다. 그중에서도 대학교의 미적분과 선형 등 대수지식과 관련된 것들이 있었는데 선생님도 오래되어 잊어버려서 그는 스스로 독학을 통해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칭화대학학생모집처 류우전 주임의 소개에 따르면 ‘자강계획’의 필기시험내용은 일반자주학생모집의 필기시험과 같은데 주로 학생의 학습상황을 고찰한다는 것이었다. ‘다각도의 인재선발’은 주로 면접시험에서 체현되었다. ‘리더계획’과 ‘뛰어난 인재계획’의 면접은 중점적으로 수험생의 종합실력과 창조잠재력을 본다. ‘자강계획’의 면접의 중점은 수험생의 진실한 학습, 생활상황, 그리고 그들에게 자강정신과 발전잠재력이 구비되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매년, 학생모집처는 학교선생님, 교육전문가, 교우로 구성된 전문가팀에서 수시로 시험관을 뽑아내어 학생을 면접하고 감독하도록 한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 학생들은 제비를 뽑는 방식으로 분과와 시험장소를 결정하며 각 시험장소에는 3~4명의 시험감독이 있고, 학생은 무작위로 수험번호가 배정되어 시험장소에 들어간다.

면접은 보통 몇 갈래의 구조화된 시제로 구성되었다. 예를 들어 “칭화대의‘자강불식, 후덕재물(自强不息,厚德载物)’의 교훈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사회의 불공평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등의 문제들이다. 이런 제목들은 대다수가 표준답안이 없으며 학생의 사유와 분석능력, 표현능력을 검증하는 것이다.
왕초우에게 주어진 질문은 ‘춘운(春运, 음력설을 전후한 시기의 여객의 수송)’이었다. 시험관이 그에게 ‘황뉴우(黄牛, 암표상)’ 범람현상에 대한 견해를 말하라 하였다. 왕초우는 한번도 고향을 떠난 적도 없고 사회의 초점뉴스에 대해 알고 있지도 못했다. 그러나 “듣고보니 대체로 무슨 영문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스스로 짐작해서 분석하였죠.” 면접관들은 학생들의 자료정보에 근거하여 자유질문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학생의 가정형편을 묻거나 학생에게 자신의 ‘자강’능력을 체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라고 하기도 하였다.
왕초우도 이런 유사한 문제를 질문받았다. 면접시, 시험관이 그의 가정과 학교의 상황, 그리고 기숙사 침실에 에어컨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솔직히 우리는 선풍기조차 없어요. 여름에는 특별히 덥고 사창마저 없어서 전부 모기에 물렸어요.” 그는 웃으면서 <중국신문주간>기자에게 기억을 말했다.

한추인이 간수징닝(甘肃静宁)에서 온 것을 알고 한 시험관은 그더러 자신의 고향에 어떤 특산이 있는지를 소개하라고 하였다. 그는 고향에는 두 가지 특산이 있는데 하나는 교육이라 말했다. 현지인들은 교육을 특별히 중시하는데 자식들이 모두 공부를 잘하여 산을 떠나 자신의 운명을 개변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므로 현지는 비록 매우 가난하지만 학교운영은 매우 잘 되고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사과인데 현지의 기후와 지형의 적합성으로 사과의 품질도 좋고 생산량도 좋은데 아쉽게도 판로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면접선생님이 즉시로 물었다. “학생 생각에는 무슨 원인으로 사과의 판매량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까? 이것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이는 한추인이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문제였다. 평소에 축적된 지식에 근거하여 그는 대답하였다. 첫째 원인은 브랜드가 알려지지 않았고 지명도가 높지 못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사과에 대해 모른다는 것, 다른 하나는 외지 과일상들이 ‘징닝사과’의 이름을 사칭하여 팔기에 장기적인 판매량에 일정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자강계획이기에 ‘리더계획’의 문제처럼 ‘진기’하지 않아요. 대부분 자신과 관련된 문제들을 묻지요.” 한추인은<중국신문주간>에 말하기를 자신의 최대 장점은 심리상태가 좋고 많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우리들이 칭화에 한번 오기란 정말 쉽지 않지요. 칭화의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고요. 그들이 무엇을 물으면 잘 대답해드려야죠.”

그러나 모든 농촌아이들이 왕초우나 한추인처럼 자신을 잘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펑링은 여러 해 줄곧 종합면접의 면접관 선생이었다. 그녀는 매년 면접시 수험생들의 언어와 행동을 보면서 농촌아이들과 도시아이들사이의 커다란 간격에 늘 감개무량하였다. ‘리더계획’과 ‘뛰어난 인재계획’의 수험생을 면접할 때보면 학생 대부분은 대도시의 중점학교에서 왔다. 그들은 화려한 이력과 풍부한 사회활동경험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행동도 대범하였는바 자신이 외국과 있었던 교류와 여행의 경험을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자강계획’의 수험생들은 완전히 다른 모습들이었다. 어떤 학생들은 성적은 매우 높았지만 면접장소에 오면 한마디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선생님이 그들을 도와 자기소개를 준비시키면 그들은 그대로 말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 이후에 몇마디 더 물으면 말을 더듬거리면서 말을 못해요.”

펑링이 인상이 제일 깊었던 것은 한 수험생더러 자신이 알고 있는 국내외의 5대 전염병 발생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한 것이다. 그랬더니 그 학생은 대번에 망연해하면서 “선생님, 저는 우한대학(武汉大学)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요즘 무슨 중대한 뉴스가 있는지 아세요?” “모르겠어요. 우리 고등학교는 신문을 보지 않고 뉴스를 듣지 않으며 TV도 보지 않아요.”
빈곤지역 학생들의 실제상황을 고려하여 ‘자강계획’ 실시 몇 년 이래 점차적으로 시험내용에 대해 일정한 조정을 실시하였다. 예를 들면 면접 시 사람들이 주목을 끄는 뉴스문제와 관련된 시제들을 줄이고 ‘흔히 볼수 있는 일반문제’들을 많이 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훈련과 정보의 불균형 원인이 수험생 단체에 가져다주는 ‘불공평’을 피하고 각 수험생들이 자신의 말을 할수 있게 하도록 하였다. 면접시간은 보통 12분 전후로 각 수험생의 면접이 끝나면 각 시험관들은 독립적으로 점수를 매기고 최종 필기시험과 면접시험 두가지를 합해서 점수의 높고 낮음에 따라 순서를 매겼다.

그럼으로써 수험생이 입선되었는지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점수인지를 결정했다.
왕초우는 50점의 가산점을 부여 받았다. 2014년 대학입시에서 그는 점수선을 20점 넘는 성적으로 칭화대학 모 공과전공에 입학하였다.
왕초우보다 아래 반인 한추인도 동일하게 50점의 가산점을 받아 2015년, 다른 85명의 ‘자강학생’과 함께 칭화대의 교문에 들어섰다.

가난한 집안 출신학생의 고뇌

2013년, 칭화대의 교내간행물 <칭신시보(清新时报)>에서는 국가빈곤전문프로젝트계획과 ‘자강계획’의 혜택을 받아 빈곤지역에서 온 농촌학생들이 입학한 후의 이야기를 적은 글을 발표했다. 그들은 정상적인 점수선 보다 낮은 점수로 칭화대에 입학했으나 그 이후의 경력은 상상처럼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 교육수준이 발달하지 못한 지역에서 왔기에 기초가 박약하고 입학한 후에 여러 분야에서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학생은 아무리 노력해도 학습진도를 따라가지 못하자 소극적이고 학업을 싫어하기도 했고 어떤 학생은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고독을 느끼고 묘망해 했으며 입이 무겁고 과묵해졌다. 또 어떤 학생은 심지어 심한 스트레스로 강박증에 걸리기도 하였다. 이것이 바로 많은 빈곤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한 후의 진실 상황이다.

“막 왔을 때는 제가확실히 좀 열등감을 느꼈죠.” 대학입시 때 왕초우는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만약 ‘자강계획’의 가산점이 없다면 그는 합격점수선과 많은 차이가 있어 입학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그로 하여금 줄곧 스트레스를 받게 하였다. “그때 저는 늘 그렇게 생각했죠. 나는 점수가 많이 낮게 들어왔는데 다른 동학들은 꼭 특별히 잘하겠지라고요. 그리하여 평소에 공부를 다그쳐서 했죠. 그렇지 않고 만약 잘하라는 권고를 받게 되면 난처하죠.”

한추인도 입학해서 유사하게 몸부림치는 단계를 거쳤다. 예전에는 학습으로 인해 종래로 근심걱정을 해본적 없는 그는 입학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학습능력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데 어떻게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야 할지 몰랐고 수업시간에PPT로 발표를 해야 하는데 할줄 몰라서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찾아 독학해야만 했다. “자신이 한 것을 보면 매우 촌스러웠어요.” 또 어느 한번 그는 몇시간을 들여서도 선생님이 내준 선형대수문제를풀 수 없었다. 다른 학우들이 진작에 문제를 다 풀고나서 놀러 가는 것을 보면서 그는 책상에 앉아, 새벽 3-4시까지 밤을 새웠으나 여전히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칭화대에 와서 발견했어요. 출중한 사람이 너무나 많고 많다는 것을요. 학습도 그렇게 훌륭하고 활동조직도 잘 하고 강연구변도 엄청 뛰어나죠. 어쩌면 저렇게까지 훌륭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죠.” 대학에 입학한 초기에 한추인의 정서는 마냥 우울해있었다. 괴짜들의 ‘빛발’ 속에서 본인은 ‘공부 못하는 쓰레기’ 같았다.
학업의 어려움 외에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 진입한 후의 곤혹과 묘망함이다. 한추인은<중국신문주간>에 이렇게 말했다. “나처럼 이러한 학생들은 베이징에 오기 전에 많은 것들을 보지도 못했고 많은 일들을 접촉하지도 못했죠. 그래서 대학에 입학한 후에 많은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하죠. 대학 1학년 때에는 확실히 잡업들을 많이 했어요. 그러나 그 후에 보니 많은 일들은 시간낭비이고 별로 수확이 없는 거예요. 솔직히 이는 명확한 목표가 없기때문이죠. 그래서 비교적 아득한 느낌이 들었어요.”
칭화대학 학생학습발전지도센터는 공학물리학과에 대해 한차례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빈곤학생들의 학업적응상황이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이 직면한 주요한 몇 개의 곤란은 “특별한 재간이 없다”, “시야가 넓지 못하다”, “학습이 따라가지 못한다”, “모종 원인으로 열등감을 느낀다” 등이었다. 비록 이는 보통학생들에게도 흔히 존재하는 문제였으나 그들에 비해 비교적 눈에 띄었다. 거의 60%에 가까운 빈곤학생들이 “학습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비 빈곤 학생들은 약 30%가 그렇다고 하였다. 그리고 거의 50%에 가까운 빈곤학생들이 열등감을 느끼는데 반해 비 빈곤학생들은 그 비율이 20%에도 못미쳤다.

명문대는 빈곤 가정의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2015년, 칭화대학생모집처에서는 제1회 ‘자강계획’의 학생들에 대해 추적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17%의 학생들의 성적이 단과대학이나 학과에서 20% 상위권에 들었고, 56%의 학생들의 학습성적이 상위권50%안에 들었으며 24%의 학생들은 하위권 20%에 들었다.

칭화대학학생모집처인쟈(尹佳)부주임과 사무실의 양판(杨帆 현재 학생모집처 부주임)직원이 공동집필한 논문 “칭화대학교의 학부과정 인재선발목표와 선발방식의 탐구연구-‘새로운 백년계획’을 중심으로”에서는 이렇게 밝혔다. “2012년에 입학한 29명의 ‘자강계획’ 학생에 대한 학부생 지도원들이 그들에 대한 평가 피드백을 분석해보면 ‘학습을 열심히 하고 애쓴다’가 18명, ‘학급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석한다’가 19명, ‘성격이 쾌활하다’가 11명으로서 빈도수가 가장 높았다. 동시에 ‘자강계획’ 학생들은 비교적 적극적으로 학급행사에 참석하지만 기본적으로 참여자의 신분이며 리더역할을 못한다. 이로 보아 비록 ‘자강계획’ 학생들의 입학평균점수가 대학입시합격점수선보다 30점 전후 낮지만 그들이 입학 후의 전반적인 발전 상황은 괜찮은 편이다. 비록 기초교육단계에서 그들이 받은 교육이 비교적 박약하지만 전반 대학단계의 발전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그들은 양호한 적응능력을 나타냈다.”

이는 선생님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부분이기도 했다. 류진은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사이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많이는 선천적인 교육자원부족의 문제이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도시의 아이들과 똑같은 교육자원을 공유했을 때 보통사람보다 더 큰 잠재력을 나타낼수도 있죠.”

“이 학생들에게 제일 큰 스트레스는 솔직히 학업입니다. 그들은 예전에 아무 것도 없었고,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학습성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칭화대에 들어서면서 괴짜들이 너무 많으니 자랑할만한 성적도 없어졌다는 것이죠.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러한 심리가 문제를 더욱 쉽게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펑링은 여러 해 학생지도원을 담임해오면서 빈곤학생들의 입학이후 상황에 대해 줄곧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빈곤학생들의 시작단계는 보통학생들에 비해 차이가 매우 크기에 학교나 지도원선생들의 더욱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학업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시간의 흐름과 그 축적에 따라 그들도 재빨리 학교와 사회생활에 융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농촌에서 온 한 학생이 막 입학했을 때 컴퓨터 전원을 켜거나 끄는 것조차 몰랐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학생은 학우들로부터 ‘외계인’이라고 불렸지만 4년간의 학부수업과 3년간의 연구생공부를 통하여 발전을 이룩해냈다. “7년 후에는 하나도 뒤지지 않았는데 학생들의 지능지수가 증명하고 있는 거죠! 칭화에는 이러한 아이들이 많이있어요. 지식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변한거죠.” 그녀는 <중국신문주간>에 이렇게 말했다.
대학1학년부터 왕초우는 시간만 있으면 도서관에 붙어 살았다. 한학기가 끝난 후 그는 자신의 성적이 학년의 1/3안에 든 것을 발견하고 일시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자신이 비록 처음에는 학우들과 일정한 간격이 존재했지만 노력을 통해서 “이 간격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한추인은 입학 2년간 자신은 “자신감이 여지없이 깨지고 자신을 다시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겪었다”고 하였다. 학습성적의 상승과 동아리 활동의 추진으로 그는 점차 자신의 위치를 찾아나갔다. “천천히 발견했죠. 자신이 원래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뒤지지 않다는 것을요. 자신이 잘 할수 있는 것을 잘하면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과 여러 분야 모두 비길 필요는 없어요. 의미가 없지요.” 그는 <중국신문주간>에 “예전의 자신감이 학업성적에서만 왔다면 현재의 자신감은 더 견고한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베이징에 온지 3년이 된 왕초우는 여유시간을 이용해서 고궁, 북경박물관 등 베이징의 유명한 명승고적들을 모두 돌았다. 코미디 프로그램 ‘생활대폭발’을 보기 즐기고 ‘샤얼둬(谢耳朵, 미국인)’를 좋아하는 이 남학생에게 컴퓨터 프로그램 작성은 새로운 애호가 되었다. 학부과정의 수업 외에 그는 경제학 복수학위를 취득하였다. 대학의 생활보조금과 장학금은 그로 하여금 생활비 걱정이 없게 하였다. 그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미국 모 대학의 국비교류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신청하게 되어 바야흐로 다가오는 이번 여름방학에 미국대학의 교수와 함께 두달간의 과제연구를 할 예정이다. 앞으로 그는 자신이 계속하여 깊이있는 연구를 하여 과학연구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한추인은 항상 바빴다. 성장의 길에 가정형편이 가난한 그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는 그로 하여금 공익사업에 대한 대단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대학1학년 여름방학 때 그는 학급의 학우들을 거느리고 자신의 고향인 징닝에 다녀왔다. 거기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중학교의 배드민턴운동장을 수리하였으며 현성에 가서 ‘삼농조사연구’를 하였다…대학 2학년 때는 대학공익동아리 ‘연행칭화(雁行清华)’의 대표로 활약하면서 회원들을 조직하여 일련의 공익활동을 하였다. 올해의 5.1절에 그는 산시평요(山西平遥)의 일부 농촌의 식수에 비소(As)와 불소(fluorine)가 규정된 기준을 많이 초과한 것을 알고 친구들과 함께 거기에 가서 촌민들을 위해 정수장비를 설치하고 보건지식을 보급하였다…….

한추인은 베이징에 온지 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 도시에 대해 여전히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더욱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더 큰 세계를 동경하고 있었다. 다음 몇개월간 그는 전국대학생 대표로 일본, 홍콩, 마카오, 대만 등지를 다니며 교류하고 고찰을 진행할 것이다.
그는<중국신문주간>에 이야기했다. “제 생각에 칭화대의 입학은 제 인생의 절정이 아니어야겠죠. 칭화대는 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었고 나에게 ‘야심’도 주었죠. 옆사람들이 저렇게 훌륭한데 나도 그렇게 안될 이유가 없겠죠.”

“도시출신이고 부모가 공무원이나 교사이며 매년 부모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하고 심지어 고등학교 때 해외여행 경력을 갖고 있다.” 이는 칭화대학 사회학과 진쥔(晋军) 부교수가 여러해동안 자신의 수업과정에서 무작위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이다. 이는 또한 칭화 학부생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에 그는 “당신의 가정배경이 어떠한지에 따라 얼마만한 자원을 접촉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고 학습환경을 결정하며, 또한 당신이 다니는 초등학교, 중등학교, 고등학교를 결정하게 되며 나아가서 당신의 시야와 식견을 결정한다. 당신이 칭화대에 오게 된 것은 당신의 노력뿐만 아니라 상술한 이러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이 언론매체에 보도가 된 후, 청중들의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사람들은 가정조건이 좋은 아이들만이 베이징대나칭화대에 갈수 있는지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상생의 통로와 빈곤한 가정출신의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서 운명을 개변할 수 있는가? 진쥔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대학 1년후, 여러분들은 갈수록 닮아있을 것입니다. 출국하지 못한 학생들은 차차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류고등학교에서 동아리와 과외활동을 하지 않은 학생들도 보완이 될 것이니 교육은 개인의 성장에 대해 일정한 영향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강계획’의 목표이다. 더욱 많은 빈곤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몇 명의 ‘자강계획’ 학생들과 그들의 칭화대 생활을 이야기할 때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두 글자를 말했다. 행!운! 그들은 행운아들이지만 매우 많은 빈곤지역의 학생수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류전은<중국신문주간>에 이야기하기를, 2016년부터 칭화대는 전국으로 ‘iTsinghua학당’ 프로젝트를 내놓았다는 것이었다. 대학의 원사, 교수, 단과대학과 학부의 원장들을 조직하여 전국 각지의 중학교에 가서 강좌를 하고 학생들에게 학과의 발전상황, 과학기술지식을 전수하는 것이다. 그들은 현재 이미 160여 회의 강좌를 주최하였다. 그중 1/3은 현성이하의 고등학교에 가서 했다. “우리는 행동을 통하여 더욱 많은 학생들로 하여금 가까운 데서 칭화대의 명사들을 접촉하고 칭화대의 정신과 문화를 체험하기를 바라는 것이죠. 일부 학생들에게 이는 아마 일생 중 유일하게 칭화대 원사들의 강좌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에게 꿈의 씨앗을 뿌려줄수 있겠죠.”

“우리 나라의 사회경제가 오늘날까지 발전하였지만 도시와 농촌사이에는 여전히 커다란 경제발전의 차이가 존재하죠. 만약 대학이 이러한 책임을 이행하지 않으면 이러한 간극은 점점 커질 겁니다.” 류전은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자강계획의 의미는 그 자체에 있지 않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일부 빈곤학생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각 개인의 마음 속에 등불을 밝혀주는 것이죠.”
(인터뷰에 응한 학생의 요구에 따라 왕초우는 가명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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