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선회장 “조선족 권익 보호와 삶의 질 향상이 우선 목표”

[서울=동북아신문]한국에 거주하며 확실한 정치 목표의식을 갖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제일 먼저 ‘중국동포의 권익보화와 삶의 질 향상에 우선 목표’를 세우고 달리는 중국조선족 출신 동포를 뽑으라면 단연 CK여성위원회 박옥선(50세, 전회장) 위원장이다.

한국에 건너와서 ‘돈을 벌어서 우리 가족이 입을 걱정 먹을 걱정 없이 풍족하게 사는 것’을 유일 목표로 삼고 있던 중국동포들의 단순한 의식구조를 깨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식을 갖고 투표 권리를 행사하며 소신을 갖고 당당하게 발언하고 참여를 하며, 동포 스스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어진 자기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상을 심어주기 위해 박옥선 위원장은 누구보다 먼저 한국 정치에 입문하였다.

이에 지난해 7월4일 연합뉴스는 <중국동포 성공시대(시리즈 보도3)>에서 “여의도가 주목하는 박옥선 씨”라는 제목의 글을 실어 동포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31번을 배정 받았던 것. 비록 결과적으로 금배지는 달지 못했지만 ‘조선족 출신 첫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는 단지 개인 영예만이 아니다. 중국동포 유권자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지속적으로 유권자운동을 전개해 나가는데 불씨를 던져 주고 힘을 실어준 것이었다.

그는 그럼 왜 정치에 입문했을까? 그 배경을 살펴보자.

흑룡강성 벌리(勃利)현에서 태어난 그는 자무쓰(佳木斯)에서 성장했고, 1998년 흑룡강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자무쓰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원래 신문사 특파원이 꿈이었던 그는 교사생활을 하면서 흑룡강신문사 객원기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신문에 실화를 바탕으로 기고한 연재소설이 문제가 돼 고향을 떠났다. 당시 실제 사건의 인물들이 나타나 협박하며 부모님들과 싸움을 하고 동네를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들이 생겨서 결국 흑룡강신문 특파원기자 박일, 유문환 기자들이 마을로 찾아와 법적으로 해결을 했기에 박옥선은 사회적으로 스타가 되고 원고료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고향사람들에겐 고향에 돌아와서 한다는 것이 고작 고향을 망신주는 것이냐고 비난을 받았고, 그런 환경들이 불편해서 결국 요녕성 대련시로 떠나게 됐다.

당시 대련시 합작기업에서는 관리자를 모집하는 시기여서 그는 곧 한중 합작기업에 취직하였고, 교사와 신문사 경력을 인정받아 차간 주임으로 임명돼 200여 명의 직원을 관리하였다. 그러나 사장이 밀수 건으로 조사를 받게 되자 회사가 부도 직전에 직면해 떠나게 됐다.

1992년 11월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부산 사상구에 있는 가죽염색회사를 시작으로 그는 비닐제조 회사, 무역회사 등에서 일하였고, 2∼3년이 멀다 하고 회사를 옮겨 다닌 적도 있었다.

1999년, 그는 친구모임에서 우연히 서울 가리봉에서 열린 동포모임에 참가했다가 깜작 놀랐다. 가게 하나 건너마다 중국어 간판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고향에 대한 향수가 물씬 솟구쳐 났던 것이다. 내가 살 곳은 부산이 아니라 여기 가리봉 지역이라는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공장에서 단순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닌 옛날의 인정풍토를 기반으로 좀 더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된다.

서울에서 그는 고무 실리콘을 제조해 판매하는 회사에 취직하여 능력을 인정받아 월급 외 수당도 많이 받았지만, 언젠가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평소 꼭 하고 싶었던 자기 사업을 개척하기 위해 뛰었다.

2001년 초에 그는 ‘한중식품’이란 간판을 내걸고 중국식품 도매업을 하면서 오토바이를 배워서 타고 가리봉, 구로, 대림동 일대 중국식당을 직접 찾아다니며 판매를 하였다. 누구도 그의 물건을 사려고 하지 않자 그는 남들과 차별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1박스에 1만2천원 하는 컵술을 40박스씩 구매하기보다는 1천 박스를 한 번에 구매해 납품가를 떨어뜨리면 이익이 많이 날 것으로 판단하여 소매상들의 마음을 잡으려고 매일 3만원 어치씩 과일과 야채를 사서 돌렸다. 전략은 먹혀 들었다. 6개월 만에 투자한 돈을 전부 회수한 것은 물론 1년 만에 강남의 아파트 한 채를 살 정도의 돈을 벌었다. 그 사이 거래처를 빼앗긴 도매상들이 구청과 경찰서에 신고해 여러 차례 불려가 곤욕을 치르고 안 좋은 일을 겪었지만, 그는 도매시장을 꽉 잡을 수 있었다.

 
2004년 출입국관리법이 강화돼 동포들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면서 식품유통업도 내리막길을 탔다. 권리금을 받고 사업체를 넘긴 그는 2002년 여행업에 눈길을 돌렸다.

가족들의 국적신청을 하러 갔다가 우연히 중국동포들이 서류작성을 할 줄 몰라 쩔쩔 매는 것을 보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생각한 것. 그래서 ‘한나여행사’를 차렸고, 동포들을 상대로 ‘한중(韓中)관’이란 식당도 차렸다. 여행사와 식당은 매일 손님들이 차고 넘쳐 두 곳 하루 매상고가 3천만 원 이상 올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계속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중국어학원도 열었고, 중국과 한국에 ‘케이팝’ 열풍이 부는 것을 보고 매니지먼트사인 ‘케이팝 서울학원’도 오픈을 하였다. 중국에서 학생들을 모집하여 케이팝 체험을 하게 하고, 오디션을 통해 아이돌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전국구’와 ‘삼순이’는 그가 키워낸 엔터테이너이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벌어도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했다. 중국인은 물론 동포들이 무시당하고 임금체불을 당하면서도 한국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을 보고 “무엇보다 조선족 동포사회의 부정적 인식부터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녀는 곧 ‘한나협회’를 창립하고 보람된 일에 돈을 투자하기 시작하였다. 남성 청년 동포들에게는 축구단을 만들어 줬고, 여성청년들에게는 구로구청이 운영하는 장애인센터에서 매월 2차례 음식을 만들어 나눠주고 청소하는 봉사단을 꾸려주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사회봉사에 올인 했다. 조선족으로는 처음 국제라이온스협회 354-D 지구(210개 클럽)에도 가입을 하고, 회장으로도 활동(2012년 7월 2일∼2013년 6월 30일)을 하였다. 또 조선족 CEO 여성 100여 명이 중심이 된 ‘CK여성위원회’을 창립하여 매월 봉사활동을 통해 조선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는 일들을 해 왔다.

그래서 사회적 직책도 많아졌다. 서울특별시 서남권 글로벌센터 명예센터장, 사단법인 서울 구로구 소상공인회 이사, 재한동포유권자연맹 여성위원장, 제19대 대선에서는 귀한동포권익신장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 열심히 뛰었다.

이에 한국 정치권에서도 그에게 앞 다투어 러브콜을 보냈다. 새누리당에서 먼저 영입을 하였고, 후에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더불어민주당’에 스카우트 됐다.

그는 자기가 정치를 하는 목적은 별 다른 뜻이 없다고 말한다. 정치를 통해 100만 명에 이르는 중국인 포함 중국동포사회에 대한 한국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동포들의 권익을 보호하며 그들의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 이러자면 중국인 포함 중국동포 관련 출입국 관련법은 물론, 중국동포지원특별법 등을 제정하여 중국동포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이미지를 적극 개선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는 선뜻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2018년에는 서울시 의원에 출마를 하고, 2년 뒤에는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할 생각이다. 권리가 있어야 발언권이 있고, 자기가 생각했던 것들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 중국동포단체가 연합해 지난 4월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전병헌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전략본부장 및 황희 의원 등 선대위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 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 지지선언대회를 가졌다. 사진은 박옥선 회장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는 장면이다.
올해 3월부터 그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자로서, 중앙당 대의원의 한명으로 제19대 대통령선거에 올인했다.

2016년에 창립한 학술인 단체인 ‘한중커뮤니티리더스포럼’에서 ‘대선에 대한 대책방안’등 포럼을 열며 모두 합심하여 동포유권자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뛰었다.

그는 평소 팬클럽 만들기에 관심을 가졌다. 지난 총선 때부터 그를 응원하는 팬들이 카톡, 위챗, 이메일로 연락이 오면서 최근에는 펜클럽 사람이 많아진 것. 현재는 팬클럽들의 활동에 열정적이 되어 모임과 야외단합대회도 자주 갖는다. 1차적으로 여러 사람을 동원해서 주2회 모여 토론하고 왜 투표를 해야 되는지 교육도 했다. ARS투표 방법, 이웃, 지인들에게 홍보하는 방법 등 교육도 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당경선 ARS전화가 단번에 되지 않고 또는 본인명의가 아닌 타인명의로 안 되는 상황도 많았다. 일부사람들은 당 경선을 이해 못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당원에 가입해야 하는 이유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아직 중국인, 중국 조선족 관련 정책개선을 갈망하는 회원들, 애절한 목소리로 정치참여를 호소를 하는 어르신들이나 젊을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기에 첫모임을 50여명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두 번째, 세 번 째 모임을 가져 현재는 카톡방 수백 명, 위챗방 수백 명으로 회원구성이 확장되었다.

사실 동포 대부분은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상식이 아주 박약하다. 단지 동포정책 개선을 바라고 기댈 뿐이다. 예를 들면 노무현 대통령 때 중국동포들은 다양한 체류비자에 대한 요구, 자유왕래 등에 대한 요구가 거셌다. 지금은 체류비자가 많이 좋아졌기에 여기에 대한 요구는 그렇게 강하지 않은 반면, 체류 중에 발생하는 어려운 점을 보살펴주는 정책이나 제도를 내오는 것이 급선무가 됐다. 그런데 정치를 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아직도 이런 사정을 모르거나 전혀 관심이 없는 점들이 안타깝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정치를 하게 되는지 모른다.

대한민국 국민들도 그러겠지만 중국인, 중국동포들은 진보요 보수요 좌익이요 우익이요 하는 데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저 변화를 바라고 안정된 삶을 바랄 뿐이다. 이번 대선에서 한국 국민 다수가 문재인 대통령을 뽑은 것도 ‘변화’를 바라서이다. 그런 ‘변화’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동포들은 대부분 외국인근로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기에 이곳의 생활이 참으로 고달프고 서글픕니다. 평소 늘 조선족, 중국사람, 외국인이란 지칭으로 대우받고 편견적인 시선을 던지지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지혜일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 동포유권자들이 국민으로서 국가에 해야 할 의무이기도 합니다. 귀화자 10만 이상을 찾아내고 대선 투표에 동참하도록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올해 4월 17일, 그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대표로부터 ‘귀환중국동포권익증진특별위원회’ 위원장 임명장을 받았다. 이날은 1천여 개의 특별위원회가 임명되었지만, 동포 관련 특별위원회는 위와 ‘동포•이민청설립추진특별위원회’ 2개뿐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조직도를 구성하고 각 지역 위원장, 부위원장을 임명하면서 회원들을 확장해 나갔다. 문재인 대통령후보 지지선언도 릴레이로 지역위원장 중심으로 하면서 대선의 열기를 올렸다.

그러는 그를 보고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였다. “박옥선위원장님, 문재인 후보님이 대통령이 된다면 우린 중국동포들에게 어떤 혜택이 있지요?”

그래서 그는 문재인 후보의 정책공약을 쭉 설명하였다. “1.국민 한분 한분에게 경제성장의 온기가 먼저 흐르도록 살피겠습니다. 2.쓸 만한 일자리, 안전한 일자리를 국가가 책임지고 늘리겠습니다.……6.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입니다. 7.안심하고 아이를 키울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8.어르신이 세운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보답하겠습니다. 9.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통해 튼튼한 노후 보장을 구축하겠습니다.…13.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그는, 노무현 정권과 정책적으로 차별점이 있겠지만 우리 중국동포 유권자들도 비슷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났다. 대선활동을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후보가 내놓은 공약이 곧 ‘서민을 위한 정치’라는 생각에 동포유권자들 속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다양한 지지선언과 거리유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 박옥선 회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전당대회에서
2017년 5월 9일, 드디어 역사적인 날이 밝았다.

이날 귀환중국동포권익증진특별위원회 지역위원장, 부위원장들이 함께 대통령당선 축하 파티를 준비하고 음식점 예약을 하는 등 아주 열정적으로 준비를 하였다. 저녁시간, 모두 모여 긴장 속에서 개표를 지켜볼 때,마침내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확정됐다고아나운서가 발표하는 순간 이들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촛불시위로부터 대선까지 드디어 해낸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우리 동포, 우리 중국인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정책의 변화가 중요한 것이지요. 더구나 사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사업가 및 시민들에게는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지요”라면서 그는 눈물을 훔쳤다.

그는 이번 대선 선거활동을 통해 재한동포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고 성공한 기업인, 사업인, 학술인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사람들과 힘을 키우며 함께 할 수 있다면 도전하는 내일의 세상은 더 아름다워 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2017년 6월 9일, 국회도서관 지하회의실에서 ‘제19대 대통령선거 활동 평사보고회’를 진행했다. 귀환중국동포권익증진특별위원회(위원장 박옥선)와 동포•이민청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 김성우)가 주최를 하고 한국이주동포정책개발연구원(원장곽재석)이 주관한 행사였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회의원 등이 영상 축하 인사를 보내왔고, 더불어민주당 황의 의원이 직접 참석을 해서 축사를 해주었다.

그는 대회 참석자들 앞에서 ‘활동보고’ 주제 발언을 하였다.

대한민국 인구 절벽의 시대에 ‘동포 이민자의 급속한 증대는 선택이 아닌 현실’이라며, 동포이민자 시대에 필요한 것을 피력했다. 즉 “동포•이민 및 주한외국인의 대국민 갈등 해소 정책 및 홍보 캠페인 필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인권 및 복지 등의 보편타당한 권리부여와 차별해소를 위한 각종 지원제도 필요, 대한민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동포•이민자 국내 정착지원의 장•단기 전문 정책 및 제도 조기 시행 필요, 국사교육•국어교육 등의 기초 소양교육 강화 및 출신국가 학습 보수, 직업훈련 등의 고등교육 지원 정책의 통합운영 필요, 양질의 동포•이민자 확보를 위한 국내외 타깃 대상 지원정책 홍보캠페인 실행 및 전문적 이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결론적으로 사회통합 권익증진 정착지원 교육훈련 정책홍보 등 정책 마련 및 시행을 위한 전문 행정조직 동포•이민청 설치가 필요하다”는데 방점을 찍었다. 또 이를 위해서 앞으로 “전국 3백 명 조직체와 1만 명 당원을 바탕으로 조직 외연확대, 정치참여 활성화, 입법 활동 전개 등 지속 가능한 정치 주류화 활동을 통해 위의 목표를 실현하겠다”고 발언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 재한동포, 중국인 단체가 많은데 설립 취지와 목표가 다르고 운영방식도 다르지만, 다른 것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단체장들의 봉사정신과 희생이 우리 동포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늘 관심과 지지와 성원을 해주었으면 감사하겠다는 인사를 남겼다. 특히 “변화를 이끌어내는 우리의 정치 활동에 함께 참여를 해주었으면 너무 고맙겠다”고 간곡히 당부하였다.

어쩌면 재한동포사회는 박옥선 회장과 같이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열심히 뛰는 선두자들이 많아질수록 그런 ‘변화’가 빨리 도래할 것이다. 꼭 그럴 것이다. 그래서 희망은 항상 사람의 가슴을 부풀게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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