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렬/시인, 재한동포문인협회 상임부회장, 중국조선족 중견시인, 두만강문학상 등 수상 다수
암소의 꿈 

신이란 신은다 신어보고 싶다굽 높은 힐도 신고 싶다 네 개 발통에 힐 네 짝 끼고발통 하나에 색깔 하나씩 만들어서예쁘장하게 밭에 들어서면빨간색은 토마토 될 거고파란색은 오이 될 거고노란색은 감자가 될 거고흰색은 박꽃으로 피겠지 노을을 한 폭 잘라 치마 만들고긴 꼬리 숨기면 예쁜 여자가 될 터다나만의 울타리 둘러 친 다음끗발 좋은 뭇 사내들 몽땅 꼬셔서고삐를 그 손에 쥐여 주고나랑 밭이나 갈게 할 거다 밭고랑에 남긴 발자국에 빗물이 고이면내 발자국 제일 깜찍할 거다힐신에 파인 그 발자국에고인 물까지 남새 빛으로 비칠 거다   하나는 왼 팔이고하나는 바른 팔이다누군가 안아주고 싶어미리 구부리고 있었을 뿐 그래서 오목한 소뿔 누군가는안기러 온 것이 아니라덮치러 왔다고소는 그저 고개 저었을 뿐절대 뜬 적 없었다 자빠진 누군가는소가 떴다고개뿔이라 욕을 한다만소뿔은 언제나 소뿔 일 뿐  소꼬리 숨기고 싶어도숨길 수 없는 것이 꼬리이다어쩌다 흔들다 보면반원인지 동그라미인지모르고 흔들 때가 있다 이 쪽 저 쪽흔들리는 꼬리에는나의 것도 남의 것도 엉키여마구잡이 흔들리고 있다 너무 흔들면 요란스럽고가만 놔두면 흔들고 싶고싫어도 흔들어야 할 것이다남이 흔든다고따라 흔들다 보면신나서 자꾸 흔들어 대는 꼴 감추고속에서 흔들 수도 없는 고집우리 안에서 혼자 흔들면꼬리가 아닐 게다길든 짧든 흔들리고자 생겨났다  논개와 파도 치마꼬리에 감긴 파도는촉석루 기둥뿌리에서 출렁인 것이다 바위가 낮아도떨어지고 나면 벼랑이 된다옷고름이 짧아도잡아 맨 설음은 너무나 길구나 높이 솟는 남강 물줄기는서슬 푸르게 날 세우고 있었으니뛰어내린 혼이 몸서리 친 그 빛이밤낮으로 출렁거리며 끈질기다 촉석루 뒷 바위마다코신자국은 벌써 지워졌어도옷고름 흔적만은 아직도 선하다잠든 파도 속에 숨긴 그 혼물 밑 한 줄기 정기로 싱싱하다 촉석루에는 노을빛으로 무르익는다진붉은 치마폭이 감싸고 있어노을빛도 파도 빛으로 일렁거리는또 하나의 풍경이 눈부시다   그늘 넓히는 터전은 얌전하다그 속의 펑퍼짐한 자리는 외롭다 어디까지 뻗을까 헤매는데발이 열개라도 걸음걸이는 한 발작이다 거짓말로 지어놓은 둥지는바람이 먼저 와서 쉬고 가는 남의 집이다  지게  산이 떠서 간다두발만 옮겨지는 뒷모습산보다 더 큰 산이다 산의 해묵은 무게에지게는 산등성이 되였다노인님 허리도 산등성이다 산이 힘들어 쉴 때둔덕에 올라선 두발저 멀리 메고 갈 길 찾는다 산이 무너졌다지게목발처럼 꺾인 어르신감은 듯 뜬 듯지고 갈 무게에 눌리셨다 지게위에 울고 있는 산눈언저리에 틀고 앉았다산이 된 어르신무겁게 쉬고 계신다산에는 지게뿐인가지게는 무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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