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인프로필 본명 허창렬, 시인/평론가. 기자/편집 역임. 재한동포문인협회 평론분과장/부회장
쉬파리 

여기에 가도 저기에
가도 똑같다

팬티는 벗어
강변에 내다 말리우고

양말은 벗어 입을
살짝 틀어막고

축축한 땀 내음새 찾아
이 세상 구석구석을

하이에나 떼처럼
기웃거린다

이 세상 쉬파리들에게
전부 마스크를 씌워

전염병부터 막을 일이다
이 세상 모기들에게

수갑을 채워 전부 유치소에
감금시킬 일이다

만 이천 개의 렌즈로
신통하게 똥구덩이 찾아가서

쉬를 쓸며
시체의 해부로

심포지엄이 한창인
초라한 역설

백정보다 파리채가
두려운

부질없는 인생이여
덧없는 생명이여


갈대 2


슬퍼는 하되
상처 입지를 말고
즐거워는 하되
음탕으로
흐르지를 말자!

오늘도
진실의 눈꺼풀
뒤집어 보면
너와 나의 아름다운
속셈에서는
살기가 번뜩인다

생활은 얼마나
안일한
우리들의 自慰속에서
영위
되어 왔던가?

난 오늘도 뿌리 뽑히지 않은
한포기 작은 풀,
바람에 지친 몸 서걱이며
마디마디
울음으로 새 숲을
이루었다

난해의 장막에 길게
드리워 진
저기 저 낯설은 세월의
그림자가
절망이고 전생에
호수를 너무
사랑했던 죄일 뿐

하이에나의
슬픈 눈동자를
꼭 빼 닮은
저 밤하늘 별들의 우렁찬
맥박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산은 매일 왔던 길로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어둠은 내 갈비뼈가
뽑혀 나간 자리
혈흔의 진통 속에서
소금꽃이 하얗게
고독으로
피어올라 선의(善意)의
눈망울을
곱게 닦고 있다

아직도 뼈마디가
아프신가?
창문을 열면
하늘이 입 다물고
창가에
내려앉으려니

어리숙한
갈대는
슬퍼도 마디마디
진심으로
가을이 그리워
운다…


인연에 울며

오늘도
당신은 왜 그리
외로워
보이십니까?

진자리 마른자리
깔고 앉아
꽃밭에 어여쁘게 피어
오른 한 송이
생명꽃처럼ㅡ

오늘도
당신은 왜 그리
힘들어
보이십니까?

행복도 바이러스
슬픔도 바이러스
외로우면 외로운 데로
서러우면 
또 서러운 데로

텅 빈 가을하늘 우러러
누구나 한번쯤
허허 웃어 버리며
참고 살아가야
할 이 맑은 아침에

오늘도
당신은 왜 그리
고독해
보이십니까?

사랑은
받는 쪽보다
주는 쪽이
더욱 행복한 법

한 마리 벌레의
울음소리로
당신은
오늘도 왜 그리
울적해
보이십니까?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할
곳에서
눈물을 보이며

오늘도
당신은 인연에
울며 왜 그리
환하게
웃고 계십니까


바람의 언덕

너는 너의
속마음을 여직
아무에게도
드러낸 적이 없다!

속닥속닥
소곤소곤
알려고만 하면
우리들의
거리는 한자 두자씩 더욱 더
멀어져만 간다

어느 나른한 아침
밝은 햇살과 함께
모과나무 벚나무아래
목석처럼
앉아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또 내 어깨를
톡톡 친다
살풋이 눈 떠보면 얼굴색이
새하얀
하무늬 바람이다

손발이
간질간질하고
어깨에
파아란 여름이
누군가의 이름으로
내려앉는 언덕
두 번 다시
돌아오질 않을 사람처럼
바람은 언제나
먼 바다 내음새를
쟈스민(jasmine) 향기로
나에게 실어다 준다

이름이 슬픈
언덕에는
누군가의 인성이
한 마리의
짐승으로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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