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일 여행기(2)

▲ 마오리들의 마을 회관
[서울=동북아신문]마오리족은 사람고기를 정말 좋아했을까?
지난 4월, 뉴질랜드 탐방기 1부를 기고한 후로 많은 사람들이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풍경보다 마오리족 ‘식인’에 대해 더 많은 흥미를 보이면서 다양한 질문을 했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식인 족인가?’ ‘지금도 식인 하는가?’ ‘어떻게 식인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풍경을 더 이상 스케치할 수 없었다. 그 후 휴일이 되면 아들과 함께 뉴질랜드 로토루아 도서관에 가서 마오리족의 ‘식인’ 역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들의 식인 역사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
마오리족은 유럽의 문명을 받아들이기 전에 식인을 했던 것은 사실이고 마오리족 자신들도 ‘식인’ 역사를 승인하고 있다. 마오리족이 무엇 때문에 식인을 하고 어떻게 식인을 했는가를 알려면 먼저 ‘마나(mana)’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마나’는 멜라네시아 일대의 원시 종교에서 인간, 영혼, 무생물 등을 창조했다는 초자연적인 힘을 말한다. 마오리족의 식인은 두 가지로 나뉘어지는데 하나는 ‘족내(族内) 식인’ 행위이다. 즉, 족 내에 족장이나 상위 계급 인원이 사망한 후 그의 인육을 먹음으로써 죽은 자의 영혼을 계승하려는 의식적 의미가 있으며, 그들의 ‘마나’를 계승하여 자기들의 힘을 더 강하게 키우려는 의도도 포함 되어 있다. 그리고 ‘족외(族外) 식인’ 행위는 적들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섞인 보복적 행위를 말하고, 적의 힘을 자기에게 충전시키는 동시에 적의 인육을 먹음으로써 ‘마나’를 가장 많이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643년 여름철이다. 네덜란드의 아벨타스만(Abel Tasman) 선장이 이끄는 탐험대가 뉴질랜드 지금의 오클랜드로 상륙을 하였다.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육지에는 끝도 보이지 않는 울창한 원시수림이 펼쳐져 있었고 바다 바람이 한 번씩 나뭇잎을 ‘쏴쏴’ 스칠 때면 거대한 괴물이나 요정이 나무 위에서 숨어 있다가 곧 선원들에게 덮쳐 들을 것 같은 공포감을 주었다. 탐험대 대원들이 상륙했을 때 천적이 없이 자라던 야생 토끼나 사슴, 노루들은 두 눈만 슴벅이며 경계도 없이 선원들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사람들이 얼마나 위협적이고 잔인한 종족인지 모르는 거대한 조류 ‘모아’(조류 중에서 역사상 가장 크고 온순한 뉴질랜드의 특성적인 날지 못한 새, 이미 멸종하였음)가 선원들의 포획물이 되고 또 굶주린 선원들의 주식이 되어버렸다.

오래 전부터 출렁이는 끝도 없는 바다에서 권태감을 느낄 대로 느낀 아벨타스만을 포함한 선원들은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고 앞으로 이 비옥한 땅이 말뚝 하나씩만 박으면 자기의 소유로 된다는 희열에 도취 되어 밤이 새도록 술 파티를 벌렸다. 이튿날 아침, 아벨타스만 선장이 잠에서 깨었을 때 바람이 세차게 불고 집채 같은 파도가 암벽을 때리는 소리는 귀를 먹먹하게 하였다. 인원을 점검 해보니 45명 선원 중에서 12명이 행방불명이었다. 12명은 모두 체구가 크고 비만인 선원들이었다. 아벨타스만 선장은 이 신비의 대륙에 괴물이 살지 않으면 야만인이 살고 있다고 짐작하고, 대원들을 시켜 실종 된 선원들을 찾아보게 하였다. 점심때쯤 해변 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사는 부락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 왔다. 선장과 선원 몇 명만 선박에 남기고 기타 선원들은 전신무장을 하여 그 곳으로 찾으러 떠났다.

▲ 마오리들의 마을 회관 앞에서. 족장화레 누랑아(왼쪽)과 저자

그들이 사람이 사는 부락에 도착했을 때 요새화가 된 높은 망루와 나무 말뚝을 일렬로 죽 세운 목책이 보이고 그 목책 안에는 지붕이 나지막한 집들이 올망졸망 앉아 있었다. 요새로 들어가는 입구에 나무를 깎아서 사람 모양으로 만들고, 거기에 ‘마오리’라는 글자가 새겨 있었다. 즉 이곳의 원주민은 마오리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새 안에 고목나무 몇 그루가 서있고 제일 높은 고목 밑에는 얼굴을 섬뜩하게 문신(얼굴의 문신은 마오리족의 등급과 직위를 상징 한다.)을 한 족장이 그늘 밑에서 앉아 있고, 나머지 젊은 남정들과 여인들이 솥에 물을 끓이고 군데군데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오늘 그들은 축제나 모임이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되자 족장의 명령에 따라 건강한 마오리 남자 20여 명이 집결하여 마오리족의 ‘하카(haka)’ 전투 춤을 추었다. ‘하카’춤은 일정한 대오를 갖추고 손으로 무릎을 치며 눈을 부릅뜨고 혀를 내밀며 박력 있게 추는 전투 춤이다. 그들은 살기에 찬 ‘하카’를 한바탕 추고 난 후 포승으로 결박한 한 무리의 젊은 남자들을 끌고 나왔다.

자세히 보니 바로 어제 실종된 선원 12명이었다. 마오리들은 12명의 선원 옷을 홀랑 벗기고 밧줄을 나무 가지에 걸은 후 그 밧줄을 잡아당기자 목이 걸린 선원들은 어떻게 하지 못하고 밧줄을 따라 허공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이때 손에 칼을 든 마오리들이 조금도 주저 하지 않고 날카로운 칼로 발버둥 치는 선원의 발목과 손목을 베어 버리자 붉은 피가 발끝을 따라 소낙비 같이 후드득 떨어 졌다. 잠시 후 발과 손이 잘린 선원들의 시신이 긴 혀를 내밀고 나무토막처럼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입에 칼을 물고 있던 마오리 털보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칼을 들고 선원의 아래 배부터 명치까지 배 가죽을 일자로 가르자 서로 엉킨 내장이 삽시간에 배에서 흘러 내려 땅에 굴러 떨어졌고, 비록 여름이지만 내장에서 더운 김이 피어올랐다. 더운 김을 내뿜는 내장이 땅위에 떨어지자 독수리가 무리를 지어 덮쳐 들고 굶주린 개들도 사납게 덮쳐들어 날카로운 이발로 선원들의 내장을 갈기 찢어 삼켜 버렸다. 마오리들이 머리와 손발 내장을 잘라 낸 시신 다섯 구는 물에 삶아서 여성들과 아이들이 뜯어 먹고, 나머지 일곱 구는 족장들과 여러 남자들이 굵은 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에 구워 인육을 한 점씩 뜯어 술안주를 하였다. 이윽고 술에 취한 남정들은 또 ‘하카’를 추며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보아 ‘마나’의 힘을 키워 달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이런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던 선원들은 가슴이 떨리고 오금이 저려 설 수도 없었고, 인육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에 노릿노릿하게 구어지면서 풍기는 특유한 냄새가 축축한 밤공기 속에 뒤섞여 마치 접착제처럼 대원들의 얼굴과 온 몸에 묻어 자신들의 몸도 모닥불에 타는 듯한 환각을 느꼈다. 어제만 해도 황홀한 미래를 꿈꾸던 친구들이 저렇게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젊고 싱싱한 몸체는 야만인의 날카로운 이빨에 씹히어 술안주가 되는 공포스러운 장면을 넋 없이 바라보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며 모두 철수하고 말았다. 아벨타스만 선장은 자기의 아끼던 대원이 마오리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얘기를 듣고 목이 메어 말을 못하였다. 그래도 마오리들이 먹다 남은 대원들의 뼈라도 건사하여 가자고 하였다. 이튿날 그곳에 갔을 때는 이미 온 들판에 전사들의 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개가 뜯어 먹다가 남긴, 귀와 코가 없는 몰골이 흉측한 전사들의 머리가 썩은 호박 덩어리 같이 굴러다니었다. 독수리가 나무 가지에서 뜯어 먹다가 남긴 창자는 마치 거미줄 같이 걸려 있었고 나무 밑에는 내장에서 흘러나온 음식물과 굳어버린 피 덩어리에는 파리가 우글거리고 악취 때문에 숨 쉬기조차 힘들었다. 아벨선장은 잔혹하게 살해당한 전사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그만 질려 버렸는지 두말도 하지 않고 공포의 섬에서 떠나 버렸다. 그 식인 사건이 발생한 후, 마오리족은 한동안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고 하였다.

▲ 뉴지랜드의 수도 웰링턴
마오리족은 어떤 종족?
마오리족은 말 그대로 전투 종족이었다. 유럽의 백인들이 호주의 애보리진족을 모조리 학살하고 태즈매니아 원주민을 멸족시킨 것과 달리 유일하게 영국과 백인이 굴복 시키지 못한 종족이 뉴질랜드 마오리족이다. 마오리족도 자기의 독특한 사고방식이 있고 행동 양식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노자, 공자, 손자병법 등 지혜로운 지식을 배우며 역사를 유지 하였던 것은 아니다. ‘수렵, 채집, 단순 경제’의 생산방식과 전통적 관습을 유지하며 오랜 역사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소위 자기들이 신앙하는 ‘마나’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더없이 처참하고 무자비한 부족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마나’가 필요했고, 외래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도 역시 강한 ‘마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은 더 강한 ‘마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족내 식인’과 ‘족외 식인’이란 방식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부족전쟁과 외래의 침략이 없는 평화 시대인 만큼 ‘식인’으로 강한 ‘마나’를 키울 필요가 없고 마오리족에게 식인이 금지된 역사도 약 160년이 된다고 한다.

가정이 있는 마오리족들은 대체로 푸근하고 착하고 정이 많다. 부유하고 교육을 받은 마오리들은 의리도 잘 지키고 대화를 할 때도 매우 유머적이다. 그들의 셋방에 들면 마오리들은 자기 가족이라 생각하고 물세, 전기세 등 모두 본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오리들과 백인들은 서로 적지 않은 불만을 갖고 있다. 마오리의 주요 불만은 백인들에게 땅을 빼앗겼다는 점이고, 백인들의 불만은 무식하고 게으른 마오리족에게 지나친 복지와 우선권을 준다는 점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마오리들에게 넉넉한 생활 자금이 지원된다. 이런 마오리에게 복지와 지원금을 쏟아 붇는 목적은 음모론에 해당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외적으로 복지정책을 써서 서로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지원금으로 마오리들의 일할 이유를 박탈하여 그들을 사회 하층민으로 만드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 지적된다. 마오리들을 다방면으로 대우를 잘 해주어 조롱 속의 새와 배부른 노예가 되게 하는 것이 진짜 숨은 의도라고 하지만 아직 확인된 바는 없다고 하였다.

 

전통을 고집하다 보니 두뇌 회전이 늦어진 그들
뉴질랜드를 탐방 하기 전 가끔 아들과 통화를 하면 원주민 마오리족과 유민들이 무식하고 수학머리가 나쁘다는 말을 많이 듣곤 했다. 아들이 유학을 하면서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마오리들이 물건을 사러 오면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예를 들면 술과 담배를 동시에 살 경우, 술과 담배를 함께 계산하여 거스름돈을 돌려주면 두 눈을 부릅뜨고 항의하곤 했다. 마치 초등학생에게 대학수준의 수학문제를 풀라고 강박하는 것처럼 불공평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술을 먼저 계산하여 거스름돈을 돌려주고 다시 그 거스름돈으로 담배 값을 계산 해주어야만 한단다. 

아들 뒷집에 사는 마오리아저씨는 술을 즐기는 애주가다. 내가 뉴질랜드에 도착한 나흘째 되던 날 바로 목요일이었다.(마오리족은 20~30%만 일을 하고 많은 사람들은 정부의 지원금으로 생활 한다.) 전날 지원금을 받아서인지 마오리 아저씨와 그의 사촌동생이 아침부터 녹음기를 틀어놓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점심 무렵이 되자 술에 취한 두 형제가 아들을 찾아왔다. 이유는 이러했다.

▲ 루아페후 설산

▲ 루아페후 설산을 배경으로
두 형제가 술 파티를 하기 전에 형이 먼저 뉴질랜드 달러 52원으로 술과 안주를 샀는데 술이 부족해서 다시 22원으로 술을 샀다. 술을 다 마시고 절반씩 계산하려고 했는데 각자가 계산한 답이 서로 엇갈려 누구의 답이 정확한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답은 하나는 북극이고 하나는 남극이 됐다. 결국 형의 얼굴에 퍼렇게 멍이 들고 동생은 오른쪽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아들에게 계산에 얽힌 사연을 설명하는 형의 표정은 얼마나 심각한지 마치 우주의 천문학 비밀을 연구하다 난제에 부딪친 것처럼 매우 진지한 표정이었다. 이때 동생이 말참견을 하였다. 자기는 아침에 집에서 빵이 8개 남았는데 네 식구에게 한 사람당 두 개씩 정확하게 나누어 주었다고 자랑을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자화자찬하는 모습은 마치 국제수학올림픽 문제를 푼 것처럼 혼자서 최고의 기분을 만끽하는 것 같았다.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던 형은 위축이 되어 감탄한 기색으로 동생을 쳐다보았다. 결국 아들이 계산을 하고 또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형이 술과 안주를 구매한 총 금액은 74원인데 한 사람이 37원을 부담해야 하고 동생이 형에게 37원을 줘야 한다고 하자 그는 아들을 보고 너무 빨리 계산을 해서 신뢰가 안 간다고 말했다. 결국 아들은 집에서 콩알 74알을 가지고 와서 차곡차곡 설명을 해주었더니 그제야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아시아 사람들이 머리가 비상하다고 칭찬을 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들은 내가 왜 웃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오리족이 머리회전이 느린 것은 혹시 공기가 너무 청정하고 물이 너무 맑아서가 아닌가 싶었다. 너무 깨끗한 물에 고기가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왜 마오리족들이 머리가 영리하지 못하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아주 간단하다. 유럽 백인들이 뉴질랜드를 발견했을 때 마오리족들은 거의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었고 또 자기의 전통을 매우 고집하는 종족이기 때문에 문화발전이 매우 늦었던 것이다. 마오리족들이 보통 문화수준이 낮고 머리가 영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사업을 하거나 회사에서 CEO로 활약하는 마오리족은 아주 적었다. 때문에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관광지 운영과 같은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사업을 마오리족에게 우선권을 준다고 한다.

▲ 타우파 호수

서울을 통째로 담가도 남을 타우포 호수
2017년 5월 10일 우리가족들은 승용차를 몰고 뉴질랜드의 최고 관광지인 타우포 호수와 후카 폭포를 찾아 떠났다.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도 이미 유명한 관광지란 말을 들었던 터라 설렘이 앞섰다.
뉴질랜드 북섬 중앙에 위치한 타우포 호수는 크기가 싱가포르와 비슷하고 서울시를 그대로 옮겨 담가놓아도 남는다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호수다. 1800년 전, 불기둥이 1,000m 치솟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지구 표면에 거대한 구덩이가 형성되었다. 당시 화산이 폭발할 때 날리는 광물질 먼지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세계 각국의 구석구석에도 뿌려졌다고 한다. 그 거대한 구덩이에 47개의 강과 개울물이 흘러 들면서 타우포 호수가 되었는데 호수의 가장 깊은 수심은 186m이다. 이 호숫물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긴 강인 와이카토 강으로 흘러 들어 간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점심 무렵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타우포 호수를 바라보는 순간, 수려하고 광활하고 신비로운 풍경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타우포 호수 뒤에 아득히 보이는 통가리 공원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우뚝 솟은 루아페후 하얀 설산은 마치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가 거대한 거울을 비쳐 보는 것 같았다. 호숫가에서는 하얀 요트와 유람선, 수상 비행기가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5월 중순은 뉴질랜드 가을의 절정이다. 호숫가에는 70여 가지 색소에 젖은 단풍나무와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며 즐비하게 늘어섰고, 그 나뭇잎 사이로 황금가루 같은 햇살이 부셔지며 쏟아져 내리는 장면은 정말 눈과 영혼을 황홀케 할 정도이었다. 호숫물에 떨어진 낙엽들은 블랙스완(검은 야생 거위)이 헤엄을 치며 지나갈 때 생긴 잔잔한 파도에 마치 태풍에 뒤흔들리는 선박같이 세차게 요동을 치다가 고요한 호숫물에 다시 엎드려 주황색 보석처럼 빛을 발하였다.

뉴질랜드에는 원래 단풍나무가 없었고, 봄부터 겨울까지 줄곧 푸른색이 강렬하게 자기 색을 고집했다고 한다. 유럽인들이 사시사철 초록 일색이 너무 지루하다며 여러 가지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수입하여 심으면서 지금처럼 변한 것이다. 옛날에는 가을이 왔다 가는 지도 모르고 지났지만 지금은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낙엽이 떨어지고 나뭇가지가 앙상해지면서 사람들은 가을을 느끼고 있다. 특히 남자들은 가을낙엽을 보면서 잔잔한 애수를 느끼면서 시간의 촉박함을 느끼고 이로 인해 삶을 위한 노력을 더욱 기울이게 된다고 한다.
타우포 호수에는 유명한 낚시투어도 있다. 어종은 무지갯빛 송어와 갈색 송어, 자연산 연어가 있고, 낚은 고기는 규정된 사이즈보다 작은 것은 가지고 갈 수 없고 호수 물에 방생하여야 한다. 호수는 바다 같이 푸르고 넓어 물이 엄청 차가울 것 같은데 진작 손을 넣어 보니 의외로 부드럽고 따뜻했다. 야생 천둥오리들은 어미와 새끼들이 함께 옹기종기 기슭에 앉아서 일광욕을 하고 있고, 호숫가 푸른 잔디에는 현지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 온 음식과 와인을 음미하며 즐기고 있어, 여유 있는 모습들이 엄청 부러웠다.

▲ 타우파 호수

타우포 호수는 너무 어마하게 커서 바다랑 분간할 수 없고 섬 중간에 또 섬이 있어 끝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때 일망무제한 호수를 바라보던 아내가 “이 호수만큼 마음이 넓으면 번뇌가 없겠지요”라며 감탄을 했다. 아내의 감탄은 나를 겨냥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관용의 덕이 모자라고 대범하지 못해 항상 다른 사람보다 번뇌와 고뇌가 많았던 것 같다. 뜻밖에 배신을 당할 때면 당한 만큼 고스란히 돌려주려 하고 복수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이 넓은 호수처럼 대범하게 관용을 베풀었다면 삶의 질은 더 좋았을 터인데 말이다. 

우리 다섯 식구는 후카 폭포로 이동하기 전에 송어 낚시꾼에게 1.,8kg짜리 송어를 샀다. 호숫가 푸른 융단 같이 펼쳐진 잔디에 돗자리를 펴고 송어회에 와인을 한잔씩 즐겼다. 싱싱하고 쫄깃쫄깃한 회는 너무 맛있었고 뉴질랜드의 와인 향기 또한 독특했다. 우리의 이런 여유도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초당 22만 리터의 물이 쏟아지는 후카 폭포
점심 식사를 마친 우리는 차로 40여분 거리인 후카 폭포로 향했다. 후카 폭포는 마오리어로 ‘거품’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타우포 호수에서 시작되는 와이카토 강은 100m 폭으로 유유히 흐르다가 후카 폭포에 이르러 갑자기 15m의 좁은 협곡으로 접어든다. 이로 인해 초당 22만 리터의 물이 엄청난 속도로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오면서 장쾌함과 박력감을 색다른 느낌으로 선사하는 세계적인 폭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협곡으로 쏟아지는 수량은 단 11초에 올림픽 경기 수준의 수영장을 가득 채울 수 있다고 한다. 푸른색을 띤 강물이 폭포에 접어들면서 비취색으로 변했다가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하얀 포말과 비취색이 뒤섞여 옥색으로 변하고 15m 너비에 11m 낙차에서 요동치며 흐르는 물결이 바위에 부딪쳐 우유 빛 물보라를 만들면서 5~6m 높이까지 뛰어올라 안개같이 날아다닌다. 초당 22만 리터 쏟아지는 급류가 좁은 협곡의 암석에 부딪치면서 울려 나오는 우렁찬 소리는 우레소리 같이 터져 나와, 10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날아다니는 새들도 폭포에서 터져 나온 굉음에 감히 옆에 범접하지 못하고, 그 굉음에 옆 사람과 얘기를 해도 서로 들을 수 없다. 주의해야 할 것은 어린애들은 두 귀를 꼭 막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폭포가 흐르는 계곡 위에 작은 다리가 놓여 있는데 다리 위에는 하루 종일 세계 각국에서 몰려 온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 다리 위에서 폭포를 바라보면 산들이 비치는 푸른색과 포말의 비취색이 서로 어우러져 쏟아지는 모습이 마치 요동치는 옥색 물결이 살아 춤추는 것 같았다.

▲ 후카 폭포에서

계곡을 타고 계속 올라가면 지열로 인하여 수증기가 무럭무럭 피어 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고, 회색 진흙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광경도 관람할 수 있다. 방대한 지열발전소를 가까이 돌면서 마치 분수대같이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는 ‘간헐천’ 온천도 나타난다.

 

우리가 ‘간헐천’ 온천에서 나올 때는 이미 해가 서산 너머로 저물어가고 있었다. 뉴질랜드의 황혼은 색다른 감성을 보여 준다. 해가 서산에 닿을 순간, 칠색이 뒤섞인 붉은 색이 하얀 구름을 적셨다가, 해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는 칠색 구름은 어느 듯 주황색 비단 같이 잔잔한 파도를 일구며 저 멀리 흘러간다. 
3개월 동안 뉴질랜드에 머무르는 동안 이 나라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천혜 자연을 팔아먹고 산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 같이 느꼈다. 넓은 땅에 자원이 풍부하고 인구밀도가 적어 생존경쟁에 시달리지 않고, 복지시설이 잘되어 어렵고 없는 사람들이 고통 없이 살아 갈 수 있는 나라, 이 나라에서 살던 사람들은 다른 곳에 가서 살 수 없다고 한다. 넓은 호수처럼 넉넉한 마음, 세상에 바쁜 일이 없고 언제나 느긋한 생활자태, 자연이 아름답고, 인정이 넘치는 사람들, 정말 세상에 지상낙원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아들은 이미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했다. 공항에서 작별을 할 때 아들은 살기 좋은 이 나라를 쉽게 떠나진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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