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지 (연변과학기술대학 교수/ 정치학박사)

▲ 초복절기념아치

[서울=동북아신문]7월 들어 중국 국토의 3분의 1 가량의 넓은 지역이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한민족의 전통적인 여름철 무더위 극복을 위한 초복(初伏) 축제 행사가 초복 당일인 12일 흑룡강성 북부에 위치한 흑하시(黑河市) 북안시(北安市) 주성조선족향(主星朝鮮族鄕/ 향장 백동철)에서 주민과 출향인 등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됐다.

15년 전 유사한 행사가 개최된데 이어 2번째로 열린 이번 행사는 북안시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 하에 주성조선족향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 개최한 축제의 장이었다. 특히 고향을 떠나 중국 내 각지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한국 등 해외에 나간 사람들까지 대거 참여함으로써 이날 행사는 그야말로 고향에 남아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과 출향한 후 자나 깨나 고향생각에 젖어 있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만든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주성조선족향이 초복에 즈음해 이와 같은 행사를 개최한 것은 중국의 산업화 및 도시화로 인해 농촌지역의 조선족 촌(村)은 물론 향(鄕) 조차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주목된다. 이농현상으로 조선족 농촌마을이 공동화 되고 있는 현실에서 농촌지역에서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타지로 나간 출향인들 간의 합심 단결을 통해 조선족촌 혹은 조선족향을 되살릴 수 있는 본보기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성조선족향은 전통적으로 힘든 농번기가 끝나고 무더위가 찾아오는 시기인 초복에 즈음해 닭과 개를 잡아 보양식을 만들어 잔치를 하던 풍속을 재현하여 ‘초복절(初伏節)’로 명명하고 흑하시에 무형문화재로 등록했다. 초복은 하나의 풍속에 지나지 않지만 이를 명절로 승화시키고 무형문화재로까지 등재한 것이다. 주성조선족향은 장차 초복절을 흑룡강성 무형문화재로 등록하는 등 민족풍속으로서의 위상을 보다 강화해 나갈 계획을 추진 중이다. 

▲ 초복절에 모인 사람들

▲ 향민들의 신나는 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이번 행사가 주성조선족향에 남아 있는 사람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출향한 사람들을 포함한 주성조선족향과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축제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번 행사에는 주성조선족향을 구성하는 2개의 조선족촌(주성향, 홍성향)을 포함한 모든 향민들과 북안시 등 인근 지역 관계자들, 그리고 고향을 떠나 먼 곳에서 고향을 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했다. 부인과 아들 딸을 데리고 고향을 찾은 명수(明洙)씨는 청도에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아버지 고향의 면면을 보여주려고 함께 왔다고 말했다. 또 고향을 찾은 대부분의 출향인들은 일가친척은 물론 동창생들과 선후배들을 만나 오랜만에 정을 나누며 고향 땅 곳곳에 스며있는 추억을 곱씹었다. 이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고향에 남아 고향 발전에 애쓰고 있는 동창생과 선후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초복절 행사는 1부 기념공연과 2부 체육대회로 나누어 개최됐다. 1부 기념공연에 앞서 주성조선족향 노인협회 리용근 회장의 주도로 올해 농사의 풍년과 향민들의 행운을 기원하는 초복 축원문 낭독과 기원제가 열렸다. 이어 노인협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무대 앞에 마련된 장소에서 남녀노소가 한데 어우러져 우리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으로 기념공연이 시작됐다. 처음엔 겸연쩍어 주저주저 하던 사람들도 이내 서로 눈짓으로 격려하며 모두 하나가 되어 흥을 돋구었다. 이어진 무대는 할빈 조선족예술관에서 초청된 80여 명에 이르는 예술단원들이 익숙한 몸놀림으로 우리 민족의 가락과 춤사위를 포함해 중국 소수민족의 다양한 노래와 춤을 선보이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젊은 예술단원들의 강렬한 비트와 폭발적인 가창력은 농촌지역에서 별다른 문화공연을 접하지 못하던 향민들에게는 특별한 감흥을 주는 구경거리였던 듯했다.

1부 행사를 마친 후 참가자들은 모두 함께 노인협회 앞마당 등에 채양을 치고 만든 간이 식당에서 향민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복날 음식으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다. 푸짐하게 장만한 음식들 중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초복의 보양식인 개장국이었다. 경상도출신이 주를 이루고 있는 주성조선족향의 특성을 반영하듯 이날 나온 개장국은 시래기를 넣고 된장을 풀어 만든 것으로서 한국에서 먹던 개장국 맛 그대로였다.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돌리고 이야기 꽃이 피는 가운데 점심시간은 금새 지나갔다. 그리고 배구, 줄다리기, 물동이 이고 달리기 등 다채로운 친선 체육경기 중심으로 이루어진 2부 행사가 진행됐다. 초복의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운동에 임했다. 왜 그랬을까? 남아있는 사람은 남아있는 사람대로, 떠나간 사람은 떠나간 사람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고향 주성조선족향의 발전을 위해 이 보다 더 한 구슬땀도 흘리겠다는 다짐을 위한 의식(?)이었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 주성의 들녘

 중국 동북지역 곳곳에는 조선족이 살고 있는데 이들이 살고 있는 기층 행정조직이 조선족향이다. 흑룡강성에만 현재 19개의 조선족향(진)이 있으며 주성조선족향은 그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북위 48도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지만 드넓은 벌판이 펼쳐진 평야지대 일뿐 아니라 향 남쪽으로 통긍하(通肯河)가 흘러 수량이 풍부하다. 이로 인해 벼농사(水田)를 주로 하는 조선인들은 1920년대부터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3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184호의 조선인이 모여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주성이 조선족향으로 성립된 것은 중국이 문화대혁명 이후 개혁개방을 실시하고 행정 개편을 단행한 1984년에 들어서이다. 향에 조선족이 많을 때는 2천2백여 명에 이르렀고 당연히 조선족 소학교는 물론 중학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족의 수가 크게 줄고 학생자원도 감소되어 모두 폐교되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인근 통북진(通北鎭)의 한족학교에 다니고 있다. 현재 주성조선족향에는 200여 명의 조선족이 남아 향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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