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신문 한국어판=동북아신문]합창 본연이 하나의 메타포가 되었다. 당신은 자신으로 하여금 보잘것없이 작아지게 변하거나 침묵을 지키거나 혹은 남의 장단에 춤을 추듯이 합창의 거센 물결 속에 흘러 들게 된다. 그러나 당신은 화음을 깰 수도 있다. 이 자그마한 합창단은 모든 무리, 심지어 동류 집단의 축소판이다. 당신은 침묵을 지키고 싶은가 아니면 공모자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진실한 목소리를 내고 싶은가? (글 양스양 杨时旸)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거짓말에 빠져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 또한 갖가지 원인으로 하여 묵묵히 이 거짓말에 얽매여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조화롭고 아름답게 보일 때 당신은 어떠한 결단을 내릴 것인가? 그 거짓말 속에 참여하여 그것의 일부분이 될 것인가 아니면 대가를 따지지 않고 그것을 폭로할 것인가? 올해 오스카 최우수라이브단편상을 받은 “학교 합창단의 비밀”은 정교한 소품 같은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쏘피는 새로운 학교에 전학을 가서 노래하고 싶은 일념으로 합창단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선생님으로부터 이후에 그는 “립싱크”만 하면 된다는 것을 전해 듣게 되었다. 수준미달로 혹시라도 소리를 내면 전반적인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쏘피는 물론 즐겁지 않았지만 그래도 복종을 선택했다. 그녀의 한 학우가 이 비밀을 발견했다. 놀라운 것은 “립싱크”만 하기로 요구 받은 학생이 그녀 한 사람뿐만 아니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이 “비밀”은 너무나 가벼워 진정한 “비밀”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린 친구들이 대오 속에 서서 일치한 입 모양과 얼굴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어떠한 치욕인가? 노래 부르는 벙어리는 대오에서 추방당하거나 곡조에 맞지 않는 음으로 노래하는 것보다 더욱 굴욕을 느끼게 한다.

앳된 목소리와 음악으로 가득 찬 이 헝가리 영화는 많은 엄숙한 문제를 제기한다. 예를 들면 개인과 집단의 관계, 예를 들면 이익과 진실 사이의 선택, 예를 들면 대체 어떠한 무형의 장이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참여하여 이 거짓말을 유지하도록 하였으며 누가 죄책감을 느끼고 누가 감당하게 하는지 등에 대하여.
선생님이 쏘피에게 립싱크를 하라고 시켰을 때 어투는 상냥했고 보기에는 “내가 이렇게 하는 건 널 위해서야”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너도 다른 사람들이 네가 노래를 잘 못 부른다는 걸 알게 하고 싶지 않지? 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일은 미묘하게 변했다. 원래는 당신의 권리를 빼앗은 것인데 지금에 와선 교묘한 전환을 일으켜 자상하게 돌봐주는 격으로 변했다. 당신으로 하여금 면목도 서고 집단으로 하여금 당신으로 인해 점수를 잃지 않게 하였다. 착취자였던 선생님이 원래 심리적 압력과 정신적인 압력을 감당해야 했으나 돌연간 아이들에게로 넘어갔다. 그와 같이 부드럽고 확고부동한 눈빛의 주시 하에서 당신은 감사의 마음 외에 무엇을 더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비밀을 품고 치욕을 있는 데로 받으며 묵묵히 소화시켜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서서히 내면화되어 어쩌면 착취를 당한 자는 자책을 느끼며 자신의 문제로 인해 선생님이 온갖 염려를 다 하여 이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고한 자로 하여금 자신을 검토하게 하고 스스로 죄책감이 생기게 하는 이 시스템은 그야말로 무서운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선생님이 결코 개인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렇게 되자 일은 더욱 복잡해졌다. 선생님의 행위는 어디에 속하는 것인가? 집단의 영예를 위한 것인가? 이 영예와 성적이 어떤 정도의 기만에서 얻어진 거라면 또한 그 안의 합법성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익의 최적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하는가?

소합창과 같은 예술형식은 굉장히 재미있다. 그것은 하나의 단체 종목으로 어떤 “단결”과 “묵계”를 나타낸다. 이 종목 본연이 하나의 메타포가 되어 당신은 자신으로 하여금 보잘 것 없이 작아지게 변하거나 침묵을 지키거나 혹은 남의 장단에 춤을 추듯이 합창의 거센 물결 속에 흘러 들게 된다. 그러나 당신은 화음을 깰 수도 있다. 이 자그마한 합창단은 모든 무리, 심지어 동류 집단의 축소판이다. 당신은 침묵을 지키고 싶은가 아니면 공모자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진실한 목소리를 내고 싶은가?

아이들과 앳된 목소리는 이 이야기를 하나의 “동화”이야기로 연출했다. 밝고 순수하고 순결한 마음의 승리를 표현했다. “학교합창단의 비밀”은 일부러 대량의 기승전결을 생략하고 일부러 발생 가능한 뒷이야기와 결과를 보여주지 않고 선생님의 낭패로 마무리를 지었다. 아이들은 시합할 때 모든 사람이 일치단결하여 전부 “립싱크”를 했다. 불현듯 그들 앞에 서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지휘하는 선생님은 “거대한 침묵”에 황당하고 참을 수 없이 부각된다. 아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대체 누가 거짓말을 설계했는지를 선고한다. 이것은 하나의 진정한 단결이며 이것은 사전에 설정된, 짜여진 거짓 단결과 조화로움에 대응한다. 이 항의는 높은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구호보다 훨씬 더 우렁차다.

입학 첫날, 교장선생님은 웃으면서 말한다. “매 한 명의 학생을 모두 합창단에 가입시키는 것은 내가 줄곧 주장하는 이념입니다.” 이것은 연기성을 띤 평등이다. 현실의 이상주의를 이탈하면 기필코 허망과 거짓말이 자라게 된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이익과 허영이 불붙게 되었으니. 당신은 절대적으로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들을 인솔하여 그들이 능숙한 영역을 찾게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제일 나쁜 것의 하나인 허구의 표상을 배치하는 것을 선택했다.

선생님이 낭패상이 되어 퇴장할 때 아이들은 팔을 들어올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잡물질을 제거한 앳된 목소리는 전형적인 “동화식”결말이지만 생략과 여백 속에는 사실은 아직 더욱 무서운 물건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현실은 동화이야기가 아니다. 만일 이런 일이 현실에 발생한다면 꼭 뒤탈이 생길 것이다. 우리들이 꼭 그런 결과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또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열심히 입 모양을 맞추고 치욕스럽게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걸 제쳐놓고 항의할 것인가?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