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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中國新聞月刊
량진숭(梁锦松)의 “홍콩에 대한 사랑과 걱정”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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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3  11: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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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문 한국어판=동북아신문]적게 하면 적게 실수하고 하지 않으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으면 안됩니다. 저는 지금의 시민들이 20년을 경과한 다음 여러가지 사건을 경험하면서 어떤 정부가 좋은 정부인지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새로 출범한 홍콩특별행정부가 홍콩 사람들을 잘 단결시켜 장기적인 방향을 제시해 국가의 지지를 적극 활용하고 특히 현재 제기되고 있는 걸프지역(粤港澳大湾区: 광동/홍콩/마카오 The Bay Area)라는 개념을 활용해 젊은이들을 인도하여 시야를 넓힐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랍니다.
- 본지기자 민제(闵杰),쉬팡칭(徐方清)

량진숭은 홍콩정부 재정사를 지낸, 중국 대륙에서 지명도가 가장 높은 몇 안 되는 인사 중 한명이다. 그에게는 두 개의 유명한 연관 검색어가 따라 다니는데 그 중 하나는 홍콩특별행정구의 ‘재력신’ 즉 재정사 사장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2000년 당시 가장 유명한 다이빙 스타였던 푸밍샤(伏明霞)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두 개의 연관 검색어 이외에도 량진숭은 홍콩 금융계의 걸출한 인재이다. 그는 시티 은행에서 23년 근무했으며 현재 홍콩 은행계에서 일하는 화인들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그는 또 JP모건 아시아 지역 사장을 지냈고 나중에 프랜차이즈 블랙스톤의 중화지역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2001년 5월 초대 홍콩행정장관 둥지옌화(董建华)의 초청으로 량진숭은 2,000만 홍콩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연봉을 포기하고 연봉 240만 홍콩 달러에 불과한 홍콩 재정사 사장을 역임했다.
2003년 7월 그는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사직서를 냈다. 재임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재정사 사장으로 있는 동안 그는 홍콩 재정 예산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했으며 ‘재정예산안’을 발표해 소득세, 급여세, 자동차 첫 등록세, 출국 세금, 복권 세금 등 여러 세금 항목을 대폭 늘려 700억 홍콩달러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해결하였다.
그는 재임 중 홍콩특별행정구 둥지옌화 행정장관을 지원해 홍콩과 중국의 경제 협력을 적극 추진했으며, 홍콩 정부와 중앙 정부 사이에 CEPA(대륙과 홍콩 사이의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 중국과 홍콩 사이의 FTA라고도 할 수 있음)를 맺는데 역할을 하였다. 이 협정은 홍콩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는 협약이다.
홍콩 반환 20주년을 맞아 난펑(南丰)그룹 회장 겸 사장인 량진숭은 홍콩에서 <중국신문주간>과 인터뷰를 갖고 홍콩에 대한 사랑과 걱정을 토로했다.

“겸손함을 배웠어요”
중국신문주간: 2년여 동안 홍콩 재정사 사장을 지내는 동안 그 경력이 개인에게 있어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량진숭: 예전엔 저는 한 번도 정치를 할거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운이 좋게 행정사 사장을 지내면서 오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론에서도 제가 많은 일을 해냈다는 과분한 칭찬을 해줬습니다. 제 개인에게는 큰 영향을 주었죠.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제 정책의 최종 효과는 성공적이었고 언론도 올바른 정책이었다고 평가를 해줬지만 ‘정치가 정확하지 않았을 뿐(政治不正确)’입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 보면 옳은 일을 했다는 것이 제 자신에 대한 가장 좋은 평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를 정확하지 않게 했다는 평가도 제가 공무원과 상업계에 종사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배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상업계에 있을 때 저는 합법적으로 일하고 좋은 결과만 얻으면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공무원들은 하고 있는 일마다 각자의 생활과 연관되어 있고 옳은 일을 하고 있어도 급하게 결과를 얻으려고 하면 최종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어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많은 의견을 들어야 하기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세금을 부과하려면 공무원의 임금을 깎아야 하기에 대부분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누군가 정부마다 재정적자가 있는데 왜 당신만 이렇게 변화를 주려고 하는지 물어본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업무를 넘겨받았을 때 재정 적자가 GDP의 6%에 달했습니다. 제 바로 앞에 계셨던 재정사 사장이 세금을 낮추고 복지를 늘리고 공무원 임금인상 등의 정책을 펼쳐 구조적인 재정적자가 컸기 때문입니다. 재정적자가 컸던 두 번째 이유는 당시 재정적자를 모두 달러로 환산했고 달러의 환율이 계속 불안정한 상황이었지만 홍콩은 고정 환율제여서 세금을 더 추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계에 재정적자를 줄이는 여러 방안을 내자 모두가 반대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은 옳은 것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저는 재계에 있는 23년 동안 줄곧 순조로운 편이었습니다. 30세에 시티은행 동아시아지역 사장이 됐으니 말입니다. 제가 잘 나갈 때는 사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많이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공직을 맡으면서 상업계 종사자와 공무원의 다른 점을 알게 됐으며 너무 자신만 내세우지 말아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무래도 실보다 득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시야가 좁은 것이 홍콩 젊은이들의 치명적인 상처입니다"
중국신문주간: 정부 공직을 맡았고 장기적으로는 은행 총재를 지냈습니다. 두 다른 시각에서 홍콩의 문제를 봤을 때 어떤 다른 점이 있습니까?
량진숭: 많이 다르죠. 재정사 사장을 지낸 뒤 문제를 논의할 때 저는 일방적으로 정부의 잘못만을 비판할 수가 없게 됐죠. 중국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 살림을 꾸려봐야만 쌀과 땔감이 얼마나 비싼지 알 수 있다고. 당시 제가 실행했던 적자를 줄이는 정책을 예로들 수 있는데 심플하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죠.
그리고 교육 문제도 그렇습니다. 제가 둥지옌화 행정장관을 지지했기 때문에 행정장관이 된 후에 저를 행정회의 비관수(非官守, 비정부) 회원으로 임명했던 것입니다.
당시 대학교육지원위원회라는 중요한 위원회가 있었는데 대륙의 고급교육위원회와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 행정 위원회에 들어간 것은 제가 지금껏 은행을 다니면서 금융을 비교해 왔던 이유도 있었지만 교육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교육개혁은 제가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홍콩의 교육을 크게 개혁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외국에서는 당시 홍콩의 교육 개혁이 10여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금 홍콩은 또 상황이 크게 바뀌었습니다만 교육은 별로 큰 변화를 겪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 각 영역에서 홍콩 교육의 주된 불만 사항에 대해 지나친 입시교육이 문제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많은 교사들이 학생이었을 때 이런 입시 교육을 받은 경우가 많은데, 갑자기 교사가 다른 방식으로 수업을 할 것을 요구한다면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비판은 쉬운 일이지만 유효한 제안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가 정부를 떠난지 10여년이 되었지만 정부의 공적을 평가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최근 2, 3년 전부터 교육 관련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 저와 친구 몇 명이 함께 ‘교육2.1’이라는 팀을 만들어 현재 교육에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 건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 그룹은 17명이 모여 있으며 대부분 교육계의 엘리트, 재계의 리더, 전문직 종사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희들이 제기한 건의가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중국신문주간: 적잖은 홍콩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희망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량진숭: 3년 전에 저는 홍콩 정부가 세 가지 부분에서 잘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젊은이들의 발전을 중시하지 않는 것이 특히 이 세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출세의 계단 오르기(上楼)’를 하고, ‘상류(上流)’에서는 희망이 없고, ‘상위(上位)’에서는 기회가 없는 부분입니다.
홍콩의 땅값은 비싼데 집값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비쌉니다. 아마도 18년간 안 먹고 안 입어야 47평방미터 정도 되는 중간 정도의 집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대료가 비싸고 홍콩의 취업 기회가 줄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융업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홍콩 400만 명의 취업 인구 중 금융 관련 직종 종사자가 25만 명에 불과한 반면 금융 종사자가 아닌 사람은 아예 취업하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어떻게 서른살에 지역을 책임진 사장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까닭은 제 앞에 있던 분들 중에 충분한 교육을 받은 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육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홍콩의 젊은이들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시야가 좁은 것이 홍콩 젊은이들의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내륙 시장이 크고 원가가 낮으므로 젊은이들의 분투 정신도 우리보다 강합니다. 저는 홍콩 젊은이들이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20년이 지난 뒤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앞 세대들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중국신문주간: CEPA를 체결 할당시 홍콩에 존재했던 문제점과 현재 홍콩이 직면한 문제점이 다릅니까?
량진숭: 다르죠. 당시 홍콩 관리들은 비교적 반대를 하는 편이었습니다. 또 대륙에서 홍콩까지 가는 것이 자유롭지 못해 비즈니스 목적의 방문만 가능했고, 그것도 1년에 연인원 20만 명 정도로 제한돼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서 여행객들이 늘면서 ‘전문대리구매업자’가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로 구매대행을 하는 사람들은 홍콩 사람들이지 내륙사람들이 아닙니다. 많은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정부가 사전 대책을 미리 강구하지 못했던 데서 비롯됩니다. 예를 들어 당시 우리는 시쥬룽(西九龙) 지역을 문화 중심지로 탈바꿈시키자고 제안했지만 현재 십여 년이 지나도록 그 곳에 빈 공터를 그대로 두어 자원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홍콩 사람들은 지금처럼 이렇게 느릿느릿 걷다보면 결국은 누가 피해를 보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중국신문주간:CEPA를 통해 두 지역이 더욱 긴밀한 협력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했고, 또 지금의 걸프지역은 서로 전례 없던 협력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구별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량진숭: 저는 점진적으로만 나아갈 수 없으므로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해야만 비약적인 합작을 이루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전문가들이 연구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두 지역의 장점을 활용해 합작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생물과학 기술은 IT에 이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영역으로 홍콩의 지적 재산권 보호체제를 활용해야 합니다. 홍콩에 있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과학자, 의학자들을 잘 활용하여 내지시장을 잘 개척해야 합니다. 생물과학 기술 방면에서는 임상시험이 중요합니다. 홍콩은 7,000만 명의 인구가 있어 환자도 많은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지는 더 많은 환자가 있어 홍콩의 과학기술을 활용하면 내륙지역에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시장도 개발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주로 인구, 물류, 서비스 흐름, 정보 스트림, 자금 흐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다섯 개 방면에서 혁신적인 상호보완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금 면에서도 홍콩은 더 나은 금융과 자본시장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알리바바가 홍콩에 상장할 수 없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IT업체 중 6곳은 미국 회사이고 4곳은 중국 회사지만 9곳이 미국에서 상장됐으며 한 곳만 홍콩에서 상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곳이 텐센트(腾讯)입니다. 이런 시스템은 좋은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공짜로 넘겨주는 격인데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시스템에 부족함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적자원의 유동 면에서 보면 항구를 통과해 선전까지 가는데 몇 시간씩 걸려 매우 불편합니다. 자주 내륙지역을 오가는 홍콩 주민들이 본토에 머무는 시간이 183일을 넘길 경우 내륙지역에 45%의 세금을 내야 하며 이를 어기지 않을 경우에는 홍콩에 15%의 세금을 내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두 곳은 인적자원의 유동 면에서 불편함이 있습니다. 올해 리커창총리께서 걸프지역에 대해 언급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돼 기쁩니다.

중국신문주간:강주아오 대교가 곧 개통되는데 이 곳은 세 지역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공사가더디게 진척되었는데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량진숭: 당시 2002년부터 저희들은 다리를 만들 계획을 했습니다. 하지만 16년이 지나도록 완성이 안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제도의 문제이고, 둘째는 민심의 문제도 반영돼 있다고 봅니다. 20년이 지나 홍콩은 대체로 성공했는데 이는 중앙 정부가 ‘일국양제(一国两制)’를 잘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홍콩 반환은 세 방면의 반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정치적인 반환인데 이는 비교적 성공적인 부분입니다. 둘째는 경제적인 반환인데 CEPA체결을 통해 이 부분도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민심의 반환은 아직 목표를 이루지 못하였다고 봅니다.
이는 저희가 인정해야 할 부분입니다. 10여 년 간 우리는 홍콩 시민들 특히 젊은이들의 요구를 잘 들어주지 못했는데 이들은 특구정부의 시정 잘못을 중앙에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중국신문주간: 정부 관료들을 포함해 많은 내륙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홍콩과 내륙사이의 합작에서 홍콩이 적극적이지 않거나 홍콩의 의사 결정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량진숭: 저도 동의합니다.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로 제도적인 문제이고 둘째로 홍콩의 사정과 형편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고, 셋째로 홍콩의 일부 관리들이 적극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적극적인 정부관리일 경우 비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도 소수지만 그것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욕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니까요. 아예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관리를 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길게 봤을 때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임기 내에는 뭐라고 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적게 하면 적게 실수하고 하지 않으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으면 안됩니다. 저는 지금의 시민들이 20년을 경과한 다음 여러가지 사건을 경험하면서 어떤 정부가 좋은 정부인지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홍콩은 지금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나타나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대로 가면 희망이 없습니다”
중국신문주간:지난 20년간 홍콩은 ‘변하지 않기’를 너무 강조하면서 내륙과의 융합을 홀시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량진숭: 홍콩이 성공한 것은 개방적인 지리적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 든 홍콩 사람들은 대부분 내지에서 이주해 왔습니다. 저희들은 본토라는 개념을 찬성하지 않습니다.
물론 본토라는 말에는 문화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들은 광둥어를 중시하지만 교육적인 의미에서 광둥어가 다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인중국 내지의 13억 인구가 광동어가 아닌 표준어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표준말로 가르친다고 해도 광둥어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장 간단한 예로 광저우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현지 문화는 지키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그것만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 나가야 합니다. 홍콩이 반환된지 20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홍콩 시민들이 어떤 정부가 좋은 정부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투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정부가 가져야 할 가장 건강한 사고방식입니다. 이 면에서 미국은 그러한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부가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며 민주주의는 장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의 의미가 1인 1투표의 선거권이 실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법치가 결여되어 있으면 폭력적인 정치가 되기 쉽습니다.

중국신문주간 :새로 출범한 정부 행정장관에게 건의할 것이 있습니까?
량진숭: 저는 행정장관이 홍콩사람들을 잘 단결시켜 장기적이고 정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국가의 도움, 특히 지금 제기되고 있는 걸프지역이라는 개념을 잘 활용하여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시야를 넓히고 함께 홍콩을 건설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많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저는 더 이상 시간을 늦추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이대로 나가면 희망이 없습니다. 지난해 홍콩의 GDP는 2.7% 미만의 성장을 이루었는데 이 수치로 추산해보면 마이너스 성장을 이루지 않더라도 2047년에 가서는 중국 GDP의 1%에도 못미칠 것이 뻔합니다.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글로벌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사실 홍콩은 가장 좋은 플랫폼입니다. 그래서 시야가 좁으면 안됩니다.

중국신문주간: 홍콩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량진숭: 요새 저는 앞으로 아이들을 어디에서 교육을 받게 하고 일하게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큰 애가 14살이고 둘째가 12살, 셋째가 9살이거든요. 매년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중국의 내지에도 자주 갑니다. 저의 느낌은 홍콩에는 미국과 같은 자유와 혁신적인 환경이 없고 중국 내지처럼 경제적으로 용감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전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앞으로 중국은 15년 사이에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앞으로도 미국은 혁신과 리더십을 갖춘 경제대국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홍콩에서는 두 곳의 분위기를 모두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이 글 작성에 인턴 제팅팅(解婷婷)이 도움을 주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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