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숙: 중국 벌리현 교사 출신. 집안 심양 등지에서 사업체 운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수필, 시 수십 편 발표.
[서울=동북아신문]한가한 어느 여름날 주말 저녁, 나는 한강의 산책길을 나선다. 한낮을 뜨겁게 달구던 햇볕이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곧 저녁으로 잇닿더니 대지는 서서히 어둠속으로 들어간다. 부드러운 바람이 무더웠던 나의 하루도 어루만져준다. 여름밤의 바람결은 아무리 씌어도 싫지 않다.

어둠이 깃든 강변에는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름밤의 저강도 운동은 스트레스도 없애고 노화를 늦추는 효과 때문일 것이다.

강 건너 강남의 네온사인 불빛은 마치도 하늘의 별들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 하고 물위로 은하수가 쏟아질 듯 걸려 있다. 밤의 황홀한 매력이다.

나는 여름밤을 사랑한다. 어둠속에 독특한 치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 내려놓는 심정이다. 어둠속에서는 생각의 생로병사가 좀 더 확연히 드러난다. 어둠의 정화효과로 머리가 맑아진다. 빠른 속도로 한참을 걸으니 구슬땀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마음의 독소까지 다 배출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강둑에 멈춰 서서 다시 강물을 바라보았다. 검푸른 어둠속에서 별빛이 강물에 비쳐 황금빛으로 빛난다. 그 별들을 찾아 나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서 북극성이 반짝이고 있었다. 북극성은 어느 하늘아래에서 봐도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십 년 전, 어느 여름밤에, 고구려유적지인 길림성 집안(集安)시의 압록강 변에서 우리 호텔을 찾은 교수님일행들과 별을 헤아릴 때도 북극성은 저 자리에 있었다.

그날, 우리는 후레쉬를 교편대 삼아 하늘 흑판에 있는 별들을 하나씩 짚으며 별자리들을 찾아보았다.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고구려시대부터 왕은 하늘의 운동을 관측하여 백성들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 시기는 농경시대였기에 왕의 지시에 따라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열매를 거두었다. 또한 일식, 월식 그리고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움직임도 관측하여 이러한 행성들은 당시 국가와 왕의 미래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였다. 하여 천문학을 “제왕의 학”이라고들 하였다. 고구려 도읍지를 그 곳에 정한 것도 별자리를 보고 정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705년 동안이란 긴 세월을 지배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나의 생각)

우리는 장천1호 분묘 (집안 시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벽화)에도 그려져 있는 북두칠성부터 찾아보았다. 그리고 북극성을 중간에 두고 반대편에 있는 W자모양의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찾았다. 이어 큰 곰 자리, 작은 곰 자리, 그리고 궁수자리인 남두육성, 심방육성,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견우성과 직녀성…많은 별자리들을 찾아보았다. 욕심이 부른 카시오페이아 별자리, 신들의 왕에게 당하고 억울하게 곰이 된 큰 곰 자리와 곰이 엄마인줄도 모르고 화살을 당겼다가 작은 곰이 된 작은 곰 자리, 그리고 천황의 명을 어기고 신분이 낮은 목동과 결혼했다가 벌을 받아 일 년 에 한 번씩밖에 만날 수 없게 된 직녀성과 은하수 바깥쪽에 있는 견우성……각 별자리 신화는 우리들의 행동이나 동기의 반영을 보여 주며, 더욱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지혜를 만날 수 있게 한다.

그 때 집안시의 압록강 변에서 별이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을 보면서 문득 고구려로 시간여행을 간듯하였다. 하늘세계와의 만남으로 1500년이란 긴 세월만큼 멀게만 느껴졌던 고구려인과 친숙해 진 듯한 느낌이었다.

십년 후인 오늘에는 과거 백제,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의 한강변에서 고구려 도읍지의 추억을 더듬으며 별자리를 찾아본다. 세종대왕도 이순지 등을 시켜 ≪천체관측기구≫를 완성하는데 이른다. 만원짜리 지폐의 세종대왕이 나오시는 앞면을 보면 근정전 옥좌 뒤의 병풍그림 “일월오봉도”가 있다. 일월오봉도란 해와 달과 다섯 개의 산 봉오리를 그린 것이다. “일월화수목금토”를 의미한다. 즉 음양오행의 우주를 상징하는 것이다. 만 원짜리 지폐 뒷면에는 “혼천시계”와 조선시대 천문도“ 청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또 이런 시사가 전해지고 있다.

TV 연속극 “세종대왕”을 보면 조선 황후의 가마 속 에 이 “천문관측기구”를 숨겨가지고 가다 중국사신의 검문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 시기에도 중국사신이 오면 중국천자나 할 수 있는 일을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하고 있다며 시비를 걸어올까 그러한 기구들을 모두 분해해서 숨겼다고 한다.

별과 인간의 삶은 이렇게 옛적부터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그 토록 중요시했던 것이다. 별이 사는 세상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무수히 많은 저마다의 별자리가 있듯이 우리도 저마다의 삶이 있고, 그 삶은 저 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하늘의 별을 보면,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 보다는 하나의 스토리텔링의 관점을 갖고 자신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만일 자신을 제대로 어필하고 싶다면 결코 이 스토리텔링이라는 마법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세상에 자신이 살았다는 흔적 하나를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쯤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또 역사적으로 삼국시대 고구려 수도였던 평양의 대동강 변에서 그 어떤 사람들과 하늘의 별자리들을 헤아리면서 삼국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 때는 삼국시대의 고려인과 또 친숙해지겠지?! 거기에는 또 어떤 다른 역사와 신화가 전해올지 궁금하다.

흩어져 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오늘날, 우리시대의 경험과 삶의 이야기도 후손들의 경험과 해석을 덧붙여 미래에 그 어떤 별자리로 만들어 질 것이라는 생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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