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안나 시인
노을
 
고 안 나
 
이것은 마음이야
몸 빠져나온 생각이지
잠자리 들기 전
쓰는 그림일기
먼 벌판 서성이며
서녘 하늘 품었다 가지
보고 들은 모든 것 비우는 시간
잠시, 하늘은 무릉도원
복사꽃 만발하지
둥근 천정 속에 갇힌
내 사랑, 몇 발자국 더
내 곁 비껴 갈 때
몸 바꾸며
서산의 해 지네

시인의 해설
누구나 서산의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석류알같은 가슴앓이 한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땀 흘리며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 어디쯤에서 애달프도록 서러운 노을의 잔상을 물끄러미 쳐다본 자 만이 안다. 더러는 잊힌 옛사랑이 기억나기도 했을 것이며 살아온 시간을 되돌려 보며 남은 날들을 계수해 보기도 했을 것이다. 기억 속에 잠겨있는 노을빛의 추억이 새삼 그리워지는 시간, 잠시 휘청거리며 아름다운 여운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젊은 날의 내가 되어 보기도 했을 것이다. 생각 속에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순간들이 현실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으면 하는 착각도 해 봄직하다. 이렇듯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진대 하물며 우리의 삶은 오죽하랴? 새벽을 깨우며 땀 흘리는 동안 우리의 발은 서쪽을 향해 행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노을’을 바라보다 문득 태양의 몸을 빠져나온 생각이라고 느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쓰는 일기처럼 보고 들은 모든 것 비우는 행위 같았다.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보내는 절묘한 순간, 또 다른 이상향의 별천지가 궁금했다. 복사꽃 지듯이, 노을빛이 내 곁을 비껴가듯이 내 사랑도 영원하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서산의 노을이 지고 싶어질까?

 

용두산 공원

 
낯빛 쓸쓸한 마른 잎들
서으로 북으로 이리저리 구르다
훌쩍 떠나버린 바람의 뒷모습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가지 끝에 찔렸던 해마저
몸 추스르며 돌아간 시간
오갈 데 없는 사람들
구멍 난 떡갈나뭇잎처럼
서걱서걱 벤치에 포개 앉는다
마른 몸 비벼대는 그늘속의 잎맥들
무당벌레 울먹이며 엿듣다 가고
어느새, 떡갈나무 가지 끝에서
나직이 울고 있는 하현달
어둠은 소리 없이 다가와
왔던 길 돌아가라 재촉하지만
눈 뜨고 귀 세워도 숨어버린 길
산비둘기 몇 마리 대신 울어주는
용두산의 밤 깊어진다


시인의 해설
산세가 흡사 용 모양이어서 일본에서 건너오는 왜구들을 삼켜버릴 기상이라 하여 용두산 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숲이 많은 시민공원으로 가꾸어졌고 자유당 때는 우남공원이라 불렀다가 4.19혁명 후 다시 원래 이름인 용두산 공원으로 불렀다. 국제시장을 비롯하여 영도다리가 내려다보이는 용두산 공원 역시 우리 민족의 애환이 서려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부산항구의 물빛은 오늘도 푸르건만 잃어버린 세월은, 잊힌 사랑은 다시 찾을 길 없는데, 요란한 발자국 소리는 또 무엇을 찾아 저리도 분주한 것일까?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 짝 지어 앉았던 긴 나무 벤치에는 떨어져 쌓인 낙엽들이 수런거리고 있었다.

노랗게 물들었던 은행잎들이 떨어져 발길에 차이는 용두산 공원 산책로를 걷다 보면 바람의 방향 쪽으로 지조 없이 달려가는 낙엽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대 뛰는 심장 소리를 들은 것일까?

선택상황이 아니라 바람몰이 같은, 서서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조급하게 그러다 다시, 제자리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빌빌거리는 낙엽들의 모습이 흡사 우리와 다를 바가 없음을 본다.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듯, 분명 돌아가야 할 시간 가슴이 텅 비어있던 한 노인의 등짝이 유난히 슬펐다. 손 포개고 얼굴 포개고 싶지만 혼자 가는 먼 길에선 하현달처럼 나직이 울고 싶었을 것이다. 누구나의 가슴에 강물이 흐르듯 뜨거운 눈물 한 방울에 시야가 흐릿했던 밤 8시였었다.


고안나 약력
-시인. 시낭송가,한국오페라교육문화진흥원 추진위원.
-국제에이즈 연맹 한국 홍보이사, 부산시인협회 회원. 모닥불문학회 부회장.
-시전문지『작가와 문학』편집위원, 시전문지『청암문학』부산시 지부장
-미당문학회 이사. 미당시낭송회 회원, 한국낭송가협회전문시낭송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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