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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김재남 수필]사라진 손 지문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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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08  07: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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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생.  현재 청도 한성회사에 근무.
 [서울=동북아신문]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예쁜 꽃들이 너도나도 시기하는 봄이다. 따뜻한 햇살에 봄바람까지 솔솔 불어오면 사람들 마음도 설레 임으로 가득 찬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철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봄맞이 대청소로 기분전환을 한다

올해 5월은 우리도 새집 이사 행렬에 가담하여 이것저것 사고들일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 삶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가든 중 자동문 교체 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던 엄마가 요즘 점점 심한 건망증으로 집 열쇠를 하루에 몇 번 씩 잃어버리는 사고로 여간만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 말씀에 갑자기 엄마부터 미리 해드리지 못한 내가 참 옹졸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내가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집 살림을 15년째 맡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꾸는 김에 친정 것도 해드린다고 했더니 내가 대학 입학통지서를 받은 날처럼 가무잡잡한 얼굴에 입고리가 휘일 정도로 환하게 웃던 모습을 나는 그때 두 번째로 보았다.
 
이튿날 걸어서 십분 거리인 친정집 자동문 바꾸는 날이라 나는 일군들을 아침 일찍 데리고 갔다. 예전에 때 자국이 가득 묻힌 우리들의 추억이 잔뜩 발린 문을 뜯고 반짝반짝 빛나는 고급 문으로 교체한 후 아버지부터 지문 인식을 하고나서 엄마의 지문을 인식할 차례였다. 그런데 엄마의 손을 아무리 가져다 대여 보아도 입력이 되질 않았다. 애간장이 난 엄마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돋았고 손에도 땀이 가득하였다. 곁에서 지켜보든 내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엄마의 손을 들여다보던 나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어지고 터실터실하다 못해 손바닥은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았다. 손가락의 지문은 오간데 없이 사라져 반들반들 닳아 있었다. 순간 엄마가 젊은 시절 고생하시던 모습이 영화 필름마냥 머릿속에서 돌았다. 나의 눈에서는 하얀 별똥 같은 이슬이 엄마의 손에 흥건히 고였다. 엄마의 인생은 우리 두 자매들을 위해 다스려졌고, 사라지는 지문과 함께 사라져 가는 삶을 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자 너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어서 집을 뛰쳐나와 버렸다.
 
초등하교시절에 부모님은 일찍이 우리 자매교육을 위해 시골에서 현성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때 우리는 집이 없어 세집 살 이를 하다 보니 일 년에 이사를 한번은 기본이고 많을 때는 세 번도 다녀서 유년기부터 집 없는 서러움을 겪어야 했다. 생활비와 학비 마련을 위해 엄마는 돈만 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신경통으로 시름시름 앓든 아버지마저도 뇌수술을 한 이후에는 힘든 일은 전혀 못했다. 가족의 무거운 짐이 백오십 미터도 안 되는 엄마의 어깨에 눌러 숨쉬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힘든 풍파 속에서도 엄마는 항상 밝은 모습이었고 씩씩한 모습으로 힘든 삶에 임했다. 엄마의 손은 마술사와 같았다. 새 옷 사기 힘든 그 시절에 항상 사촌들의 옷을 입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엄마의 손을 거치면 예쁜 옷으로 변신해 우리 두 자매가 기뻐하며 입고 다녔다. 엄마 손을 거치면 무엇이든 엄청 맛있는 요리로 변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쯤이었다. 잣씨 공장에서 채용한다는 광고를 보고 엄마는 두말없이 면접을 보고 취직을 했다. 며칠째 늦게 귀가 하는 엄마의 입술은 갈러 터져 껍질이 갈기갈기 찢어지다 못해 군데군데 피 자국이 딱지로 붙어있었다. 겨울 방학이라 이런저런 책을 보다 창밖을 보니 찬바람이 발톱을 세우며 윙윙 불어대고 싸락눈까지 초상난 집에 부채질 하듯 흩날리고 있었다. 갑자기 엄마가 이 시간에 점심이나 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집에 있는 감자를 볶고 따뜻한 국물을 끓여서 도시락을 들고 집을 나섰다. 며칠 전 엄마가 알려준 공장으로 가는 길에 나는 엄마가 기뻐할 모습만 생각하니 기분은 날아가듯이 좋았다. 하지만 어둡고 침침한 공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창고 같은 외진구석에서 왜소한 엄마가 부지런지 기계를 누르면서 잣 씨를 까는 모습이 보였다.
 
심한 관절염으로 잠자리에서 늘 무릎에 손을 얹고 아픔을 달리든 엄마의 무릎에 마대가 얹어져 있는걸 보아 그걸로 나마 추위를 막으려고 했나보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엄마의 어깨를 꼭 껴안고 "엄마나 지금까지 한 공부만으로 만족하니 더 이상 엄마 이렇게 고생하는 모습 볼 수 없다고요. , 흑 나 이제 학업 그만두고 엄마 도울 거야"라고 하자 열심히 일하시든 엄마가 당황하시더니 일손을 멈추시고 돌아서서 나를 꽉 안으시며 "엄마가 바라는 건 너희들이 배울 수 있을 때 맘껏 배우고 어렵고 힘든 사람도 도우면서 사는 게 유일한 희망이야, 엄마는 너희들 바라보면 밤을 새여도 밥을 먹지 않아도 힘이 솟아난다. 무슨 일이든 몸으로 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하시며 나를 꼭 안아 주시면서 검고 거칠고 여윈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셨다.
 
엄마의 포기 할 줄 모르는 정신력과 시련가운데서도 우뚝 서서 묵묵히 가정을 위해 우리 두 자매를 위해서라면 가시덤불을 헤치며 걸어가시는 엄마의 뒤 모습은 내 삶에 큰 힘이 되였고 모델이 되었다. 현재 나는 청도에서 십칠 년간 회사에서 한 자리를 지키며 사업이나 사회에서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다. 어릴 적 꿈이 있었다면 엄마를 꼭 호강시키는 것인데 지금까지 엄마는 우리 뒷바라지만 하시느라 힘드시다. 매일아침 일찍 출근하고 늦게 귀가하는 나를 위해 가정 살림을 도맡아 하시느라 하루도 늦잠 주무신 적도 없으시다. 이제는 우리도 누릴 만큼 누리니 엄마도 좀 쉬여도 된다고 해도 엄마는 막무가내이었다. 내가 이락으로 사는데 왜 내 취미생활을 못하게 하냐고 하는 반문에 우리는 울지도 웃지도 못한다.
 
자동문 교체로 인해 엄마의 사라진 손 지문을 발견할 수 있었고 다시 한 번 엄마의 노후 생활을 더 이상 자식 집 가사일로 시간을 보내게 해드릴 수 없다는 생각이 번쩍 들게 했다. 그래도 감사 한 것은 엄마가 아직 건강하게 계셔서 효도를 나름대로 해드린다고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엄마가 가장 하고 싶었든 꿈을 이뤄 드리는 게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오늘도 엄마는 컴퓨터 수업하는 날이라 기분이 방방 떠서 아침부터 콧노래가 온 방안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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