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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으로 시작하여 은행 차장으로KEB하나은행 구로동지점 김순연 차장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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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1  19: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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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B하나은행 구로동지점 김순연 차장
[서울=동북아신문]"저는 지난 13년 동안 일에 미쳐 친구도 없어요.”
KEB하나은행 구로동지점 김순연 차장의 고백이다.

김순연 차장은 중국 하얼빈 출신 조선족이다. 목단강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생활 하다가 2000년 동포2세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김 차장의 한국생활은 경제 관련 신문사 기자로 출발했고 박람회 중국담당 매니저로 활동했다. 경제에 관심 있어 금융 인터넷 구인광고를 살펴보고 은행직원 채용에 도전하여 2004년 하나은행 구로동지점 계약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비록 계약직이지만 조선족출신으로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은행직원이 되었다. ‘만약 내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조선족출신들의 은행진출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어 심리적인 부담이 컸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하기로 결심했다.

2004년 당시는 한국에 온 조선족 다수가 불법체류신분이어서 음지에 숨어 살면서 양지에 모습을 나타내기 어려웠다. 은행 같은 공공기관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을 매우 꺼려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가물에 콩 나듯 가끔씩 은행을 찾는 조선족이 있었다. 한국 올 때 진 빚을 갚아야 하고 중국에 있는 자녀 공부뒷바라지와 가족의 생활비를 송금하기 위해 은행을 찾는 것이었다. 김 차장은 은행에 찾아온 조선족을 커피도 타 드리고 다가가서 친구처럼 대화도 나누고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하였다. 김 차장의 이와 같은 진심된 행위가 믿음으로 작용하였고 하나 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조선족고객이 늘기 시작하였다.

김 차장의 첫 은행생활 과정에 가슴 아픈 에피소드도 많았다. 당시 재한조선족 다수가 불법체류신분이라 번 돈을 은행에 적금하지 않고 집에 숨겨두기 일쑤였다. 장판 밑에 숨겨두었던 돈은 곰팡이 껴 썩은 냄새가 풀풀 났다. 그러나 김 차장은 이들을 나의 가족의 일처럼 진심으로 대하고 처리해주었다. 어떤 조선족 고객은 은행에 오는 길에 단속에 걸릴 것을 우려해 신발 깔창 밑에 돈을 숨기는 경우도 있었다. 고약한 발 냄새가 진동했지만 그 돈은 피땀으로 번 돈이고 그 돈으로 빚을 갚고 그 돈에 고향 가족들의 생계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김 차장은 전혀 내색 내지 않고 반갑게 대해주니 고객이 감동되어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중국인과 조선족이지만 한국어 구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은행 업무를 볼 때 언어소통이 안 되어 답답하고 불안해하였다.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저는 조선족 직원이고 중국말이 통하기 때문에 시름 놓으라.”고 안심부터 시키고 업무 처리했다.

대한민국 은행에서 처음 조선족 직원을 보는 조선족고객들은 김 차장을 같은 조선족신분이라 마치 형제자매처럼 반가워하면서도 일면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또 마치 유명 연예인 만나듯 신기해하기도 했고 유명 스타를 대하듯 흠모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더욱 머리를 숙였다. 순수하고 소박하고 진심된 사람들을 대하는 비결은 역시 순수하고 소박하고 진심어린 태도로 손님을 맞는 것이다. 이것이 김 차장의 사업 철칙이다. 이런 사업 철칙이 고객에게 믿음을 주었다. 은행에서 새로운 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고객들에게 알리면 모두 거절하는 법이 없이 잘 따라준다. 요즘 같이 인심이 각박한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믿음을 받는 삶이 가슴 뿌듯하다고 김 차장은 감개무량해 한다.  

2000년대 초중반 그때 한국에 온 조선족 다수는 시골출신이고 연령도 높아 영어에 까막눈이었다. 김 차장은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일일이 차근차근 접수하고 일처리 완벽하게 마무리해주었다.

인간 사회는 진심만큼 큰 효과는 없는 법이다. 김 차장이 접대한 조선족고객은 진심에 감동 먹고 은행 고객 늘리기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처음에는 가리봉 및 근처 고객이 찾아왔는데 점차 서울 지역은 물론이고 멀리 충청도 심지어 부산에서, 강릉에서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찾아왔다. 어느 한 번은 멀리 충남에서 송금하러 온 순님이 며칠 후 또 창구 앞에 앉아 있어 혹시 손님이 지난 번 중국송금을 했는데 못 받았나? 해서 “전번 송금이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 혹은 또 송금하러 오신 것입니까?” 물었더니 “아니요. 지난 번 송금한 사람은 저의 쌍둥이 동생이예요. 너무 잘해주셔서 동생이 꼭 여기 와서 송금하라 해서 왔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어떤 친구와 함께 동행 한 고객은 “가리봉에 이렇게 좋은 은행이 있어서 너무 부럽다. 나도 여기 이사 와야겠어.”라고 말하는 것을 보는 순간 가슴이 짠해났다.   

김 차장이 처음 은행에 발을 들여놓은 한 달 동안 손님이 없어 커피 타고 상담해주었는데 한두 달이 지나자 이렇게 인연이 맺어진 조선족고객 한분 한분이 ‘전도사’였고 ‘매니저’였고 ‘홍보대사’였다. 두 번째 달부터 손님이 늘더니 세 번째 달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중국인 담당 창구 직원이 혼자여서 점심 교대도 없어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배는 고파도 손님이 많아 기뻤다. 정신없이 일했다.

2005년과 2006년 법무부는 <동포자진귀국프로그램>을 연속 실시하여 수만 명에 이르는 불법체류 동포들이 구제 받아 합법이 되었고 2007년 법무부는 무연고 동포가 한국에 올 수 있는 방문취업비자(H-2)를 실시하여 재한조선족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은행도 엄청 업무량이 증가되어 2008년부터 일요근무를 시행해왔다. 남들이 모두 쉬는 일요일에 근무하다 보니 일이 바쁜 것은 그나마 견딜 수 있었지만 가족에게 미안했다. 휴일 날 가족 같이 나들이도 못하고 특히 젊은 부부가 영화구경 한 번 못했다. 동창들이 보자고 전화와도 거절해야 했고 조선족들이 일요일에 결혼, 아이돌, 환갑, 칠순 등 잔치를 거행하는데 참석 한번 하지 못했다.

김 차장의 사업태도와 성과가 인정되어 2012년 계약직을 벗고 과장으로 승진했다. 은행에서 과장자리가 쉽지 않지만 하도 성실하고 열심히 사업한 덕에 어려운 자리에도 올라갈 수 있었다. 더 큰 경사가 있다. 2017년 1월에는 책임자 자리인 차장이 되었다. 

2013년까지 저녁 7:30 전에 퇴근해보지 못했다. 일요일에도 근무하니 남편과 딸애한테 미안하다. 아내자격, 엄마자격을 말하는 것이 김 차장에게는 사치였다. 후회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한 가지 일만은 지금도 딸애에게 미안함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즉 아이돌잔치를 일요근무 때문에 저녁 무렵에야 거행했던 것이다. 많이 낳는 세월도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딸애돌잔치를 사업 때문에 제시간에 챙기지 못한 사연은 듣는 기자의 가슴을 아프게 후벼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13년 동안 하루 같이 사업에 열심일 수 있는가? 이에 대해 김 차장은 “하나은행이 나에게 월급 주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나에게 월급 준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대하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맘이 편하고 기쁘다. 고생한 보람으로 중국동포창구 규모도 늘어났고 조선족후배직원들이 채용되어 지금은 너무 뿌듯하다. 연수나 정규적인 직업교육 없이 생소한 업무와 한국과의 약간의 문화차이가 있었지만 손님을 늘 가족처럼 생각하고 진심으로 감동시켜 신뢰를 얻어 늘 좋은 실적을 이뤄왔다.”고 지나간 일들을 술회한다. 김 차장의 사업실적은 여러 가지 상에서 나타나고 있다. 2004년부터 ‘빛나는 하나인상’, ‘환전송금증대 우수 직원’, ‘리테일판매왕’, ‘신용카드 최우수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13년 넘게 일하면서 동포사회와 희로애락을 같이 해왔다. 건설현장에서 쓰러지고 제조회사에서 기계에 손을 잘리고 간병일 하다가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고, 여러 사정으로 가족을 잃은 안타까움도 수없이 목격하였고 번번이 나의 가족 일처럼 가슴이 아팠다. 한편 열심히 돈을 많이 벌어 건물도 사고 사업도 잘 늘여 부자 되는 조선족도 보았다. 그러나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100세 시대에 노후 삶의 설계를 잘했으면 좋겠다. 우리 동포 여러분들이 너무 열심히 일만 하지 말고 건강을 챙기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여유 있게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동포사회에 대한 김 차장의 바람이다. 

김순연 차장은 우리 재한조선족사회 자랑이다. 이와 같은 훌륭한 은행공무원이 있기에 재한조선족사회 이미지 제고에 큰 기여가 되고 있다.

김정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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