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며칠 전에 교회에 다니시는 70대의 할머니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세계에는 서방왕(西方王)과 동방왕(東方王)이 존재하는데 지금까지는 서방왕이 세계를 지배해 왔지만 앞으로 머지않아 동방왕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그 동방왕은 바로 중국을 가리킨다는 것이였다. 그러면서 옛날, 조선의 왕을 정할 때도 청나라에 가서 허락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여느때와는 달리 하느님을 숭배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불현듯 몇 년 동안 까마득이 잊어버리고 있었던 비석이 떠 올랐다.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지인이 중국인 직원 2명과 나를 데리고 구경시켜준다며 가락시장과 석촌호수를 돌다가 우연히 보게 된 비석이다. 우리가 갔을 때 그 곳으로 옮겨진 지가 두달 밖에 안되어서 아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다고 하였다.

 병자호란에 승리한 청나라 태종이 조선에 요구하여 1639년에 세운 전승비로 치욕적인 역사를 상징하는 비(碑)라고 하였다. 비 碑의 이름은 삼전도비(三田渡碑)이다.

남한산성에서 패전한 인조(조선의 제16대 임금)는 청태종에 땅바닥에 머리를 아홉 번 쪼은 굴욕적인 항복의식을 치루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고 하였다. 내용은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한 이유, 조선이 항복한 사실, 청태종이 피해를 끼치지 않고 회군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었다고 한다.

눂이 5.7m로 거북 받침 돌위에 대리석으로 세운 비석의 앞면에는 민주어, 몽골어로, 뒷 면에는 한자로 글자를 새겨놓았다.

 원래 한강나루터 ( 지금은 석촌 동호수에 있는 松湖亭 자리) 인조가 항복했던 장소에 세워졌던 것을 치욕의 역사물이라는 이유로 1895년 청일전쟁이후 고종이 강물에 수장시켰었는데 일제 강점기(1913년)에 일본인들이 조선은 이렇게 항복한 나라라는 의미를 더욱 심어주기 위해서 다시 세웠다가 1956년에 또 다시 묻어버렸다. 1963년 홍수로 모습이 드러나면서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여러 장소로 옯겨다니다가 송파대로 확장시 석촌동 주택가 공원에 세워졌었는데 현재는 원래 위치를 고증하여 문화재 경관 심의를 거쳐 잠실동 석촌호수 동쪽편으로 2010년 4월에 이전했다고 한다.

 

 생각난 김에 나는 홀로 문화탐방을 나섰다.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를 끼고 있는 석촌호수를 걷다 보면서 호수 동쪽 편에 있는 비문을 볼 수 있다. 거북 받침 돌은 두 개인데 하나만 귀부가 있고, 하나는 귀부가 없다. 빈 귀부에는 청나라에서 만든 비석이 오기로 했으나 오지 못하고 거북 받침 돌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 영광스럽지 못한 비(碑)여서 인지 다녀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나처럼 호기심을 가진 외국인 한 명이 책을 읽다가 비석을 쳐다보고 , 또다시 책을 보다가 비석을 쳐다보기를 반복한다. 앞면과 뒷면의 글자들은 거의 없어지고 앞면 꼭대기에 만주어만 한줄 보이고, 뒷면에는 한자로 된 "대청황제공덕비" 만 보인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오랫동안 사색에 잠기게 되었다. 마치 그 장면을 목격하는 듯 마음이 슬펐다.

 아픈 역사는 다시 돌이켜서 떠올리기도 싫은 것이다.  하지만 아픈 역사일 수록 기억해야 하는 것은 역사는 현대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아픈 역사는 기억해야 반복되지 않는다. 과거의 치욕을 부끄럽게만 생각하고 덮어버리고 만다면 후일 자손들은 같은 치욕을 곱절의 고통과 함께 겪게 될지도 모른다. 역사는 비록 과거의 기록이지만 현재를 위한 지침이며, 미래의 발판이다.

무능과 권력욕은 나라와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적어도 민생을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삼전도비는 말해주는듯 하였다. 그리고 현시대의 령도자들에게도 울려주는 경종같기도 하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삼전도비(三田渡碑)를 한바퀴 돌고 있는데 몇몇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모여오더니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들은 진정 이 역사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할까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다가가는데 희희닥거리며 다른 장소로 옮겨 갔다.

 

나는 서글픈 마음을 안고 석촌호수 산책길에 올랐다. 단풍이 든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호수가의 유람선을 바라보며, 롯데월드에서 들려오는 함성소리를 들으며 벤치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빠른 걸음으로 걷기 운동을 하는 아줌마 아저씨들, 한가로이 호수가를 산책하는 사람들,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봄에는 벚꽃이 만발해 꽃비를 맞을 수 있고, 여름에는 숲같은 호수에서 부는 바람으로 시원하게 땀을 식힐 수 있는 곳, 가을에 물드는 단풍이 호수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해주는 이 곳의 아픈 역사를 그들은 기억하고 있을 까?

나는 혼자서 슬픔에 젖어 호숫가를 걸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이기때문에. 마음속으로 같은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여러 모로 수모를 겪었던 삼전도비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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