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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시/전유재] 바람의 집 외 5수
유재전  |  15643325757@163.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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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8  15: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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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유재: 중국 소주 常熟理工学院 外国语学院 朝鲜语专业 교수/ 한국 숭실대학교 현대문학 박사졸업/ 재한동포문인협회 해외이사
바람의 집
 
방안에 바람이 살고 있습니다
 
가끔 이불 속 전기요에서 데워지면 전설처럼 떠다닙니다 움츠려서 바닥으로 주저앉을 때면 오래된 먼지가 문득 놀라 풀썩이지요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같기도 하고 워낙 티없이 맑아 빈병이나 어지럽게 널린 옷가지들을 그대로 투과시키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말을 거는 법도 없고 가끔 혼자 커텐에서 나붓기다가 이내 조용해집니다 옷장을 열면 오랫동안 갇혀있던 여름날의 곰팡이 냄새에 가득 절여진 채로 눈썹을 스쳐 지납니다
잘 잠겨지지 못한 수도꼭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곁에서 소리 없이 지켜보는 저 인내심, 아마 고독과 외로움을 헤아리고 있는 것이겠지요
불평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려는 것과 같이 조용하기만 할 수 없을 무렵이면 창문 밖에서 울음 터뜨린 동료를 지척에 두고 불안하게 서성입니다 그러다가 곧 되돌아와 방의 어느 한 구석에서 머뭇머뭇 흔들립니다
몸 하나 단단하게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는 해도 집을 떠날 수가 없다는, 오로지 한 줄기 잘 부서진 광막한 투명의 바람 바람 바람
 
방안에 바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 집입니다
 
2017.12.13
 
달 하나
 
하나를 가렸습니다
수천수만이 지워집니다
호수에서도 자정추위 매달린
풀잎의 이슬마다에서도
 
눈 한번 감았을뿐인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달도 달을 가린 구름도
창백한 나의 언어도
 
그러나 꺼지지 못하고
항상 일어나는 심연의 달에
언제라도 넓은 마당
넉넉히 놓아두어야겠습니다
 
2017.12.08
 
어떤 시간의 부두
 
노란잎 거의 떨어뜨린
은행나무
 
나는
 
어느 시인의 짧은
시 몇 줄
아까부터 붙들고
읽다가 졸다가 바깥 보다가
의미도 꿈도 풍경도
찾아오지 못한 채 점점
낯설어지는 12월 늦은 오후로
문득 추방되었다
 
2017.12.09
 
그대라는 풍경
 
그대는 아직도 흘러가지 못하고
여울목 물결에 휘감기는 단풍 하나
그대는 무명 거슬러 추억을
헤엄치는 은비늘 투명 물고기
그대는 그대 혼자만일 순 없어
폭설이 지난 앞마당에 한 줄로 찍힌
나의 발자국, 그 슬픔같은 겨울 햇살
그대가 그대 모습
들릴 듯 보일 듯 시간 속에 띄우면
어깨 기댄 속삭임 조용히 머물듯이
나 또한 그대 안
풍경으로 눈부시게 피어나리다
 
2017.12.11
 
 
찬바람을 덮고 자는 일에 익숙해지면 냉소와 가난이 스쳐지났던 유년의 기억도 한결 스스럼 없다
그것이 일용할 양식이었기에 거부와 수용의 문제일 수는 없지 않는가
아직까지도 추워야 할 이유를 끝내 찾지도 못한 채 나는 겨울마다 여전히 추워야만 했다
심장을 따뜻하게 덥힐 온도를 찾아 나서려니 어둠에서 잎을 잃은 나무만 앙상하게 버티고 서서 흔들리며 먼저 바라보고 있다 밖은 더 춥다
그래도 추위는 내가 견딜 수 있을 한도 내에서만 지금껏 나를 따라다녔지
그대의 미소와 가벼운 고개 끄덕임이 그대에게 다가갈 용기를 나에게 준 건 아니었을 그 시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따뜻하기에도 얼어서 정지하기에도 이르지 않은 깊은 균형 속에서 나는 오늘밤도 변증의 한 가운데를 창밖의 눈발처럼 흩날리고 있다
 

2017.12.12

 

단풍 아기
 
눈망울 심연 속으로
뚝뚝 떨어지는 참혹한 단풍 붉음
네 두 눈 가득 채운 순백의 구름
피어나고 흘러가는 덧없음에
잠겨 가득 잠겨
포대기 껴안고 숲의 입구에 멈춘
내 정수리 위
머언 높이에선 기러기 울음
환청인듯 꿈결인듯 갈수록 희미한데
작은 미소 하나 나를 들여다보며
까르르 캐득캐득 웃음 쏟아내면
아아 사람아 이 가을이 간다
아기 눈에서 곱게 피며 계절이 간다
 

201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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