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우리 집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 형님, 나 삼부자는 음양이 기울어진 긴긴 세월을 보냈다. 내가 귀국한 며칠 후 형님이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와서 집식구들에게 인사를 시키겠다고 했다. 형님이 아버지께 여자 친구가 조선족 유학생이라고 먼저 얘기 하였다. 아버지께서 반대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며 앞으로는 중국이 최대강국으로 될 것이라며 한 사람을 평가할 때 국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덕성과 포용력에 기준을 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하셨다.

시커먼 남자 셋만 있던 우리 집에는 그야말로 희소식이었다. 나는 형수 될 분이 어떤 사람인지 몹시 궁금해 하면서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과 예비 형수님이 나란히 집으로 왔다. 순간 음침하던 집안에 아늑하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공손히 목례를 하며 먼저 인사를 하였다.

“반갑습니다. 형수님.”

고개를 들고 형수님을 마주 보는 순간 “앗” 하는 신음소리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나오면서 심장이 얼어붙은 듯 하다가 세차게 요동을 쳤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김 소연이라 부릅니다.”

바로 그 감미로운 목소리, 싱싱하고 도톰한 입술, 고개를 약간 갸웃하며 매혹적인 웃음을 발사하는 두 눈…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이 현기증이 나고 금세라도 어디론가 튀어 나갈려다가 가까스로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방문 틈을 타고 형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학까지 갔다 온 녀석이 형수를 처음 보니 쑥스러운 모양이구먼.”

형님의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방에 들어 와서 두 손으로 책상을 집고 심호흡을 몇 번하고 하고 나서야 비로소 머릿속에 4년 전 생명 부지인 그녀와 1박 2일을 알몸으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역경을 헤치고 왔던 추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4년 전 여름의 일이었다. 중국 유학을 떠나기 며칠 전 친구들과 강원도의 시원한 계곡을 찾아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한참 재밌게 노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오고 천둥 번개와 함께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지면서 계곡 물이 점차 불어 올랐다. 쉴 사이 없이 퍼붓는 폭우에 홍수가 마치 사나운 히말라야의 눈보라 같이 포효하며 모든 것을 삼키려는 듯 밀려 왔다. 어쩔 사이도 없이 물건을 내동댕이친 채 뿔뿔이 산봉우리를 향해 뛰어 올라갔다. 산봉우리에 도착했을 때는 누런 흙탕물이 흰 파도를 높이 감아올리며 산 밑으로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도 같이 왔던 친구들은 건너편 산 봉오리에 올라있었다. 이때, 후미진 곳에 물위에 뜬 나무토막을 잡은 한 사람을 발견하였다. 나는 앞뒤를 가릴 겨를 없이 다짜고짜 물에 뛰어 들어 그 사람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기슭으로 끌어 올렸다. 그는 젊은 아가씨였다. 기묘하게 조각한 옥기둥 같은 두 다리 위에는 짧은 치마가 가려져 있었고 젖은 생머리는 뽀얀 얼굴 위에 헝클어져 있었다. 옷은 찢어지고 배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아 물을 많이 먹은 것 같았다. 그녀를 어깨에 메고 산기슭으로 올라 왔을 때는 기력이 탈진하여 혼미한 상태였다.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재빨리 그녀를 거꾸로 쳐들고 등허리를 두드리자 그녀는 마치 펌프에서 물을 내뿜듯이 입으로 물을 토하며 간신히 눈을 떴다.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 하늘에서는 차가운 비가 계속 내렸다. 옷이 다 찢어진 그는 저 체온으로 마치 찬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같이 온몸이 떨고 있었다. 나는 바지와 윗옷을 벗어 그녀를 감싸주고 비 피할 자리를 찾았다. 마침 두 사람이 들어 갈수 있는 동굴이 있었고 바닥도 건조하여 그녀를 안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내 품에 안긴 그녀는 컨디션이 많이 회복 되었고 두 눈에는 생기가 돌았다.

동굴은 침침하고 두 사람 눕기에는 좁았다. 희미하게 비친 그녀의 얼굴은 연꽃같이 청순하고 아리따웠다. 그 녀는 정면으로 얼굴을 맞대고 마주 보는 나에게 투명한 미소를 보냈고 하얀 두 팔로 내 목덜미를 껴안으며 나직이 신음 비슷하게 속삭이는데 붉은 입술은 꽃잎 같이 부드러웠다. 나는 으스러져라 그녀를 껴안을 때 마치 구름위로 걸어 다니는 것처럼 쾌감에 도취되었다. 그의 팔딱팔딱 뛰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봉긋하고 팽팽한 가슴을 타고 내게 전해왔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서로 격려의 뜻을 온몸을 통해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동굴 밖에서는 계곡으로 흘러가는 물소리만 들리고 그녀는 더욱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우리는 서로의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었고 어둠은 우리를 남김없이 모두 덮었다.

다음날 아침 어둠이 사라지고 아침 해가 솟아올랐다. 밝은 빛이 어두웠던 동굴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하룻밤을 같이 지낸 그녀는 기력이 회복되고 정신상태도 좋아졌다. 7월의 한 낮은 또 무덥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내 옷을 벗어 나에게 줄 때, 관능적인 몸 전체를 나의 눈앞에 드러냈다. 날씬하면서도 유연한 곡선, 신이 조각 해놓은 듯한 봉긋한 앞가슴, 매혹적인 까만 눈동자에서 발사하는 귀여운 웃음……. 그녀의 이름은 김소현, 조선족 아가씨였고 한국에 온지 1년 밖에 안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기업에서 통역 일을 하고 있었다. 어제 회사의 동료들과 강원도에 피서를 왔다 이런 일을 당했다고 했다. 멀지 않아 곧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나는 그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우리는 오래 전의 친구같이 서로 편안한 감을 느꼈다. 그때 그녀가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분명 나를 좋아 한다는 것도 눈치를 차리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들었지만 지금은 중국으로 가기 싫어 졌네요. 한국은 어느 방면에서도 서민들이 살기 편리하도록 해놓았어요. 특히 여자들이 살기 편리하게 설계 해놓았어요. 저는 오빠가 올 때까지 기달 릴 거에요.”

대화중에서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서 순결함과 진실성이 담겨 있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아주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자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다행이 조난당한 사람을 찾는 산악구조 헬기에 구조 되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그녀를 입원 시키고 나는 유학 떠날 준비로 이것저것 바삐 서둘러야 했다. 며칠 후 그녀를 한여름 밤의 아름다운 기억 속에 남겨둔 채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후 북경에서 가방과 그녀의 연락처까지 모두 분실하여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항상 마음속으로는 감회에 젖은 그날 밤의 추억과 순결하고 온유한 그녀를 잊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뜻밖에 나의 형수 자격으로 내 앞에 나타났으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당혹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사실 앞에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깊은 고뇌 속에 빠지며 막연하기만 했다. 더욱이 앞으로 그녀를 어떻게 대하여야할지 파도 같은 생각이 밀려오면서 온 밤을 뜬 눈으로 세웠다.

이튼 날 아침 그녀는 나를 보고“도련님, 도련님”하고 부르면서 별다른 기색 없이 아주 평온하게 다가왔다. 혹시 그때 탈진 상태에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을까? 혹시 기억 하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일까?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졌지만 그녀는 내 옆에 다가와서 시동생을 대하듯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도련님, 지방회사에 있는 여동생이 마침 이곳 회사에 출장을 왔다가 시간이 있어서, 새 형부와 도련님이랑 같이 점심식사를 하자고 하는군요.”

그녀는 그 일을 전혀 기억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와는 달리 나는 그녀를 본 후 기억이 더욱 선명하고 생생하게 떠올랐다. 조용히 다문 싱싱하고 도톰한 입술, 희고도 투명한 피부, 매혹적인 두 눈… 만약 그 기억이 한 장의 사진이었다면 당장 끄집어내서 불에 태워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기억을 머릿속에 두고 한집에서 형수로 모시며 같이 생활한다는 것은 나 자신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방법은 한 가지, 오직 북경으로 가는 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경 유학할 때, 지도 교수가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언제든지 자기를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 혼자 문밖의 담장 그늘 밑에서 머리를 숙이고 줄담배를 피우며,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내가 이집에서 떠나야만 제일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일이라도 당장 북경으로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때였다. 나의 앞에 그녀가 또 서있었다. 금방 집안에 있었는데 언제 내 앞에 왔을까? 무엇을 말하려고 나를 찾아 왔을까?

“저기요, 한 가지 물어 봅시다.”

정면으로 바라보던 그녀는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며 눈빛이 반짝였다.

“오빠!”

그녀는 다짜고짜 나의 품에 안기었다.

“아! 이러지 마세요, 안됩니다.”

순간 당황하여 그녀를 밀쳐냈다.

“오빠! 저를 모르시겠어요, 4년 전 강원도 홍수 때 있었던 일 말예요.”

가슴이 섬뜩했다. 생김새도 똑같은 아가씨가 마치 두 개 똑 같은 사과를 앞에 놓아둔 것 같이 또 나의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도련님, 아까, 제가 말했든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던 제 여동생예요. 우리는 쌍둥이 자매예요.”

형수님이 계단에서 내려오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며 소개를 하였다. 이때, 나의 품에 안겼던 아가씨가 언니를 바라보고 또 나를 바라보면서 무슨 영문인지 알게 된 것처럼 말하였다.

“나도 헷갈려서 오빠가 언니하고 사귀는지 알았네요. 그렇게 되면 나는 절대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이때, 형님도 4층에서 내려오며 이 광경을 보고 빙긋이 웃으며 말하였다.

“우리 쌍둥이 처제로구먼. 말은 많이 들었는데 처음 보니 구분이 쉽게 안 되네. 둘이 생김세가 너무 닮아서 앞으로 어떻게 구분하지. 여하튼 우리 집이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쌍둥이 호박이 넝쿨체로 굴러들어 왔네.”

“하하하”

네 사람의 행복에 겨운 웃음소리가 초가을의 높고 맑은 하늘에 오래오래 퍼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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