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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곽미란 수상작]내가 금융을 하는 이유한화생명 영업본부 공모 '내가 금융을 하는 이유' 우수상 수상작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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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9  13: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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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미란 수필가/한화생명 보험설계사
[서울=동북아신문] 한화생명 본사에서 주최한 <한화생명 가족 사랑 편지 쓰기 공모전>에서 재한동포문인협회 수필분과장이며 한화생명 보험설계사인 곽미란 선생의 작품이 우수상에 선정됐다. 이번 공모에는 한화생명 전국의 FP(보험설계사)들이 작품을 냈다. 전국 한화생명 영업사원이 2만 명이 넘다고 하는데, 그중 중국동포 곽미란 수필가가 유일하게 내국인과의 경쟁에서 수상을 했다는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편집자 주

사랑하는 할머니께:

할머니, 잘 계시죠? 이 곳은 추운 겨울입니다. 그곳에도 사계절이 있나요? 이 세상에서 절 가장 사랑해주시던 할머니, 제가 무슨 일을 하든 늘 저를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시던 할머니!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드디어 가슴 뛰는 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한화생명에서  FP로 일하고 있습니다. FP가 뭔지 간단하게 말씀 드리자면 보험설계사, 재무설계사 등으로 번역이 되는데요, 고객의 생활환경, 재무상황 및 장래계획을 파악하여 고객의 생애주기에 적합한 금융 및 자산설계를 지원하고 보험상품을 권유하는 직업입니다. 정말 멋진 직업이죠?

“그래? 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니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이 할미는 무조건 찬성이다.” 아마 할머니는 지금쯤 실눈을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할머니도 아시다시피 저는 어려서부터 숫자에 별로 민감하지 못했어요. 저는 전화번호나 친구들의 차 번호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죠. 당연히 가계부를 적거나 고지서를 정리하는 일도 남편이 도맡아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저도 불혹의 나이가 되고 보니 제가 전혀 관심없었다고 담을 쌓고 살았던 이 분야의 일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필요성을 느낀 거죠.

기억나세요? 십 여 년 전 아버지가 백혈병에 걸리셨을 때 보험에 가입이 돼있지 않아서 저와 동생들은 월급을 타면 손에 쥐어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병원에 꼬박꼬박 갖다 바쳤죠. 다행히도 아버지는 초기라 재발하지 않았고 지금은 건강하십니다. 그리고 장기간 B형간염으로 앓던 엄마는 수많은 돈을 들여 치료를 했지만 결국은 3년 전, 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돈도 잃고 엄마도 잃었습니다. 그때 보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제가 보험회사에 가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몇 년 전에 책을 한 권 냈고 자유기고인으로 일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삐 보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고, 기사를 쓰고 여행기를 쓰고 시를 쓰고 번역을 하고 교정을 보고……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자와 씨름을 하느라 눈이 너무 아파서 매일 안약을 넣어야 했고 목디스크가 심하게 와서 낮에는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저녁엔 글을 계속 썼지요. 그런데 할머니, 글쟁이는 가난합니다. 제가 쏟아부은 시간과 정력에 비해 보수는 너무 보잘것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저의 일을 사랑했기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언니가저에게 점심을 사주시겠다면서 나와서 바람을 좀 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오목교지점으로 오게 되었지요. 와서 보니 언니는 보험회사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언니가 보험얘기를 꺼내기에 저는 이미 다 가입했다고 딱 거절을 했지요. 그랬는데 언니가 저에게 보험공부를 해보지 않겠냐는 겁니다. 공부라? 워낙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하는 저인지라 호기심이 동했습니다. 또한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고 너무 재테크와는 담을 쌓고 살다 보니 이제라도 공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이 참에 보험공부 한 번 제대로 해서 내가 가입한 보험 제대로 되어있나 보자 하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만 덜컥 보험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FP가 되고자 한 이유는 세가지입니다.
첫 번째로는, 이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모범생이었잖아요. 늘 반급 1등을 놓치지 않았고요. 어차피 시작한 일이니 이 분야에서 빠삭하게 전문가가 되자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처음에 자격시험 공부를 할 때부터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자격시험에 합격되어 처음으로 정장을 차려입고 강남본부에 교육 받으러 가던 날, 남편과 딸아이는 엄지를 척 내밀며 멋지다고 응원해주더라구요. 워킹우먼의 모습이 남편과 딸아이에겐“심히 보기가 좋았던” 모양입니다.

육성센터에서 교육받는 기간에도 너무 신났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처럼 실적순에 따라 점수가 매일 반영되는 것이 저에겐 큰 동력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능력만큼 버는 것, 이것보다 공평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물며 제가 하는 일은 고객들의 인생을 설계해주는 좋은 일이 아닙니까?

이 일을 시작하고나서 저의 생활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출퇴근 길에 전철 안에서 (저는 집이 멀어서 전철을 한 시간 넘게 타고 다닙니다) 저는 경제뉴스를 검색하고 고객들에게 안부문자를 보냅니다. 코스피지수가 어쩌고, 부동산가격이 어떻고, 세금이 어떻게 변하고, 전에는 저와 하등 상관없었던, 아니 제가 몇 십년을 무시하며 살아왔던 그런 일들이 이제는 저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서툴지만 팀장님과 육성센터의 팀장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가입설계서를 뽑고, 보장분석을 할 때면 정말로 뿌듯해났습니다. 고객님의 자산을 내 자산처럼, 고객님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생각하며 진정 고객을 위해 일하는 FP가 되기 위해 저는 전문성으로 저 자신을 무장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이 일은 나 자신을 낮추고 배려심과 이해심을 키우는 좋은 직업입니다. 저도 첨에는 FP는 말을 잘 해야 하고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고객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고객님의 니즈를 알아내는 것, 그것이 성공하는 FP의 자세입니다. 전에 늘 사람들에게 도도한 모습이었던 제가 자신을 낮추고 참을성있게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저는 수련하는 마음가짐으로 잘 해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심리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기억납니다. 어느 날 한밤중에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서 자살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심리학자는 그 여성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두 시간이나 그녀와 통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여성이 심리학자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선생님, 전 사실 선생님이 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누군가가 두 시간 동안이나 저의 이야기를 들어줬다는 것에 이 세상은 아직 살 맛이 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요, 할머니, 요즘에는 누구나 외롭습니다. 모두들 바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없습니다. 저는 고객님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훌륭한 경청자가 되겠습니다.

4차산업혁명이 도래한다고 하지만 저는 아직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하는 일이 가장 효율성이 높은 일이라는 말을 굳게 믿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 경청하는 일을 저는 게을리 하지 않을 겁니다.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을 잠시 잊고 열심히 들어주다 보면 고객은 저를 믿고 저에게 고마워하고 있더라구요.
세 번째로는 열정입니다. 열정이 없다면 이 일을 어떻게 계속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이 일이 “부의 창조”를 가능케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열정으로 버텨왔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겨우 용기를 내러 제가 생각하고 있던 가망고객에게 전화를 해서 어렵사리 약속을 잡았는데 바람 맞았던 일, 고객을 만나러 가야겠는데 만날 사람이 없어서 혼자 롯데리아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멍 때리던 일, 매일 아침 저는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며 혼잣말로 자신을 위로합니다. “그래, 결코 쉬운 일 아니야. 첨부터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시작했잖아.”

이 일에 대한 선입견과 주위의 시선도 굉장히 저를 부담스럽게 했습니다. 친구들은 저에게 “니가 뭘 부족해서 그 일을 하냐?”고 했고 동생들은 저에게 “언니, 자존심 다 내려놓고 할 수 있어?” 하고 걱정했고 지인들은 저에게 “보험이라고? 너무 늦었어. 가입할 사람들은 다 했는데, 하려면 십 년 전에 했어야지”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보험 일을 시작했다는 걸 알자 어떤 친구들은 부담스러운지 만나자고 해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거절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의 창업기 동영상을 보며 다짐합니다. “오늘 또 한 사람에게 거절당했지. 그래, 나는 성공과 또 한 발자국 가까워진 거야.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니라고 해도 괜찮아. 나는 이 길을 선택했고 옳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흔들림없이 가는 거야.”

이러고 나면 처음의 열정이 슬며시 마음 속에 장작불을 지펴줍니다. 오늘도, 내일도 매일을 저는 열정을 불사르며 일을 할 것입니다.

할머니, 저는 이제 입사한 지 7개월밖에 되지 않는 햇내기에요. FP라는 이 직업은 저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게 합니다. “꿈은 크게 가져라. 깨져도 조각은 크다” 저는 한화생명에서 제가 이루고 싶은 꿈을 모두 이루려고 합니다.

여행을 즐기는 저의 꿈은 이미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여름에는 지점에서 조직한 제주도여행을 다녀왔고 지난 11월에는 리크루팅 업적 시상으로 단장님과 함께 베트남 다낭에서 꿈 같은 3박 5일을 보내고 왔습니다. 내년 봄의 체코, 오스트리아 여행이 또 절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의 소중한 경험을 나누고 가슴 벅찬 이 일을 함께 할 사람을 찾으면 되는 겁니다. 할머니, 응원해주세요. 저 꼭 할 수 있겠죠? 할머니는 늘 저에게 남을 도와주는 것을 덕이라고 가르쳐주셨잖아요.

이제 2, 3년이 지나면 저는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님들과 수많은 FP들을 위한 자기계발서를 한 권 내려고 합니다. 이 일을 시작한 후에 저도 성공한 FP들이 쓴 책을 여러 권 사보았습니다. “부자언니 부자특강”, “부자언니 부자연습”, “FP가 꼭 읽어야 할 스토리 & 화법”등입니다. 저도 저만의 비법을 이 세상에 공개하렵니다. 좋은 건 공유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고액 계약을 하게 되면 단장님이 전체 FP들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저도 언제면 저기에 이름이 오를까 하고 간절히 바랐는데 이번 달 초에 저는 드디어 고액 계약을 한 건 체결하여 저의 소박한 첫 소망을 이루었습니다. 그때 문자와 전화로 축하해주신 동기들, 팀원들, 팀장님, 지점장님의 응원에 눈물이 났습니다. 앞으로 어떤 멋진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오늘도 기대해봅니다.

할머니, 제가 쓴 에세이 “서른아홉, 다시 봄”이라는 책 제목처럼 한화생명에서 저는 인생의 봄날을 맞이했습니다. 오랫동안 이렇게 가슴 뛰는 일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오늘도 저는 초심으로 돌아가 행복한 마음으로 고객을 만나러 갑니다.

한화생명 목천지점
곽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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