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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박명선 단편소설]우동집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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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31  10: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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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선 소설가
[서울=동북아신문]우동집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먼저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栗良平)의 《우동 한 그릇》에서 나오는 북해정 우동집과 동정심이 많고 배려심이 깊은 점장을 연상할 것이다.

내가 일본에 유학하고 있을 때, 북해정 우동집과 반면대비를 이루는 한 우동집이 도꾜 시교의 U역에 있었는데, 귀국하여 오랜 세월 속에서 까맣게 잊고 지내왔던 그 우동집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며칠 전 어느 날이었다.

**대학 졸업2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나는 먼저 한국으로,한국에서 상준이와 함께 일본으로 가기로 했다.한국으로 떠나는 날,공항에서 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래간만이다.그 동안 잘 있었나?"

"네?누구신지요?"

"목소리 들으면 몰라?"

어디서 듣던 목소리 같기도 하고 반말까지 쓰는 걸 보아선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분명한데 도무지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는다.다시 누구인가고 물어보기도 그렇고 하여 혹시 잘못 거신 전화 아닌가고 되물었다.

"아니,잘못 걸지 않았어.네가 오늘 한국에 온다는 것도 알아."

그러고보니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아까 탑승수속을 마치자 핸드폰이 급작스레 울리기에 화면도 제대로 보지 않고 폴더를 열었던 것이다.내가 오늘 한국에 온다는 것도 아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누구일까?혹시 어느 공포영화에서 나오던 협박전화라도 아닐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당황해나기까지 했다. 

"당신 누구야?"

나의 입에서 퉁명스런 말이 튕겨나왔다.

"한국에 온다는데 서울에 있는 상준이는 잘 알겠지?"

"상준이야 잘 알지."

"그럼 일본에서 같이 알바를 했던 장춘사람 생각 안나?우동집은 생각 나겠지?좀 있다 만나자. "

대방에서 웃으며 전화를 끊는다.

아까 장춘사람이라고?그리고 우동집이라고?...

그제야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기억의 문이 자물쇠 풀리 듯 스르륵  열려졌다.              


1.

1997년1월 중순 어느 금요일 점심,아르바이트안내책자를 훑어보다가 한 광고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토,일 야근 일당 1만3천엔!
도꾜 시교에 있는 포리마데크라는 핸드폰부품을 제조하는 공장에서 발포한 광고였다.당시 도꾜의 시급이 800엔좌우였는데 일당 1만3천엔이면 수입이 짭짤한 알바라고 할 수 있었다.먼저 전화로 문의했더니 알바시간은 저녁 여덟시부터 이튿날 아침 여섯시까지 열시간이며 구체적인 내용은 면접하러 와서 확인하라고 한다.
면접시간에 맞춰 한국 유학생 상준이와 함께 그 공장을 찾아갔다.
야마구찌라고 자아소개를 하는 공장장이 직접 면접을 보았는데 내일저녁부터 나와달라고 부탁하면서 우리 공장에 이젠 외국인 유학생까지 있게 되었다며 환한 미소를 띠우더니 레이저실로 가보자는 것이었다.레이저실에 들어서니 파란 모자에 파란 노동복차림을 한 일본인들이 책상에 앉아 열심히 질량검사를 하고 있었다.그 중에는 60세가 되어보이는 여성도 두 명이나 있었다.차간 뒤켠에서는 고드로운 기계소리가 잔잔히 울리고 파란 레이저불빛이 작은 유리창문으로 들여다 보이는 하얀 기계 앞에서 크고 검은 안경을 건 사람이 용광로에서 불덩이를 꺼내 듯이 레이저에 찍힌 부품판을 꺼내는 것이다.차간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는 척도 하지 않고 열심히 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일본인들이 인상적이었다.공장장이 기계 앞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로 다가가 귀속말로 말하자 그 사람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우리한테로 오는 것이다.그 사이에 공장장이 대신 안경을 걸고 숙련된 솜씨로 기계를 조작한다.반장인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여러가지 주의사항들을 설명하고 갱의실까지 안내하며 내일부터 사용하게 될 롯카도 알려주는 것이었다.
공장장과 같이 사무실로 돌아와 등록을 마치고 대문을 나오는데 도수 높은 안경을 걸고 가느다란 체구의 웬 남자가 대문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30대초반,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였는데 대문으로 들어갈까 말까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얼핏 보기에도 외국사람 같았다.
"중국사람 같은데."
눈썰미가 빠른 상준이었다.나도 그런가 보다 하며 스쳐지났다가 혹시 저 남자도 일자리를 찾으러 온 중국유학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뒤돌아서서 '니호우!' 하고 인사말을 건넸더니 과연 그 남자도 웃으며 너도 중국사람인가며 반색한다.일본에 온지 얼마 안 되고 장춘에서 왔다며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건이라고 한다.그러면서 광고를 보고 이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 전화도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왔는데 일본어도 잘 모르고 긴장하다며 같이 들어가줄 수 있냐고 청을 드는 것이다.건이를 데리고 상준이와 같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같이 온 친구라고 소개하자 뜻밖으로 공장장이 뜸도 들이지 않고 연신 고맙다며 건이의 등록수속도 해주는 것이었다.
이튿날 저녁,갱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건이가 들가방을 들고 들어왔다.도꾜의 겨울은 춥지 않다.좀 두꺼운 바지 한 벌만으로 겨울을 지낼 수 있다.헌데 건이는 빨간 뜨개바지 밑에 회색 겨울내복 두 벌이나 입고 있었다.뜨개바지를 보니 저도 모르게 빨갛고 노랗고 파란 털실들을 한데 모아 뜨개로 뜬 바지를 입었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그 때는 눈무지에 오줌을 갈기거나 침을 뱉아도 인차 얼어붙는 혹독한 추위였기에 솜바지도 입고 털모자도 쓰고 장갑도 끼고 다녔다.상준이도 입을 하 벌리고 장춘이 몹시 추운가고 물어본다.건이가 추위에 약한 체질로 보이긴 했지만 한족들이 겨울철 몸단속을 잘 한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구나 싶었다.우리가 팬티바람에 노동복바지를 갈아입자 건이도 마지못해 뜨개바지와 겨울내복을 벗는 것이었다.
레이저실에 들어서니 반장이 우리들을 소개하고 자리를 배치한다.그리고는 질량검사를 가르치기 위해 나와 상준이에게 일본인 한 명을 붙여놓고는 건이한테로 다가갔다.이건 토시바요,저건 노키아요,그리고 북경이라는 경자가 찍혀 있는 건 쿄세라요 하며 열심히 부품품종을 설명하는 반장 앞에서 건이는 알아들었는지 그저 ‘하이!하이!’하며 어줍게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었다.상황파악을 잘 하지 못하는 건이인 줄 알아차리고 반장이 빙그레 웃더니 나더러 설명해주라고 한다.나의 옆구리를 가볍게 찌르며 건이는 귓속말로 반장이 하는 말이 영어인지 일본어인지 절반도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한다.
12시 식사시간이 되었다.
함께 일하는 일본인들은 슈퍼에서 사온 도시락들을 밥상에 올려놓고 나와 상준이는 오니기리(주먹밥)를 꺼내놓았다.건이는 들고왔던 가방에서 손수건에 싼 도시락을 꺼내는 것이다.알루미늄으로 만든 하얀 중국 도시락그릇이었다.손수건 매듭을 풀고 덮개를 여니 돼지고기에 감자를 볶은 먹음직한 요리와 새하얀 쌀밥이 그득 담겨 있었다.그만 군침이 꼴깍 넘어갔다.집에서 절로 해왔느냐,맛있어 보인다며 옆에서 다들 칭찬해준다.상준이가 도시락그릇을 건너다보자 돼지고기 한 점 집어달라는가고 나더러 물어보란다.상준이가 웃으며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자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줄테니 아침 퇴근길에 자기 집으로 같이 가자고 한다.너희들을 만나 반갑고 너희들 덕분에 일자리를 찾았으니 집으로 청하고 싶다는 것이다.
새벽 두시가 지나자 졸리고 눈이 자꾸 내려와 죽을 지경이다.하품을 짝짝 해대는 나를 보고 나이 지긋한 일본인이 반장이 언녕 퇴근했다며 엎드려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라고 한다.너무나도 고마웠다.고마웠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뒤돌아보니 건이는 질량검사를 하는 척 오른 손을 이마에 갖다대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이러면 안 되는데.
"어험,어험!"
상준이가 웃으며 헛기침을 깇자 건이는 불에 덴 듯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더니 세수를 하고 들어와서 우리를 보고 싱긋 웃는 것이다.
휴식시간에 우스운 얘기들을 많이 나누다나니 잠끼도 없어지고 일본인들과 사이도 가까와졌다.휴식을 마치고 다들 차간으로 다시 욱 쓸어들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복도에서 사람들의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교대시간이 되었나.시계를 보니 5시50분이다.
와!이제 10분이 지나면 열시간 밤일을 끝내고 퇴근이구나!
지루하고 피곤했지만 하룻밤에 어디 가서 1만3천엔을 벌 수 있는가?
교대를 마치고 갱의실에 들어서니 창밖은 이미 훤히 밝아 있었다.캄캄한 밤에 공장으로 들어올 때는 난생처음인 밤일을 열시간동안 하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지지나 않을까 두렵고 근심이 태산 같았는데 그래도 무사히 나가게 되는구나!
바닥에 주저앉아 엇저녁에 벗어두었던 뜨개바지와 겨울내복 두 벌을 다시 껴입는 건이를 나와 상준이는 웃으며 기다렸다.
아침공기는 꽤나 쌀쌀했으나 유쾌한 심정으로 시험장을 나서는 학생들처럼 우리는 공장대문을 나왔다.

2.

역전에 도착하자 마침 아침전차 시발시간에 닿았다.건이의 집은 두 정거장만 가면 된다고 한다.U역이라는 역에서 내렸다.프랫트홈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는데 계단 밑에 우동집이 보였다.
출구를 나와 집 부근 슈퍼에 들려 나는 맥주를,상준이는 안주감을 사들고 나왔다.
건이의 집은 목조로 된 2층 아파트였다.한 겹 창문이어서 바깥과 집안의 온도가 별반 차이가 없었다.집안에 웬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흔히 한족들이 사는 집에 들어가면 요리를 볶는 기름냄새가 코를 찌르던데 그런 냄새는 아니고 분명 김치냄새였다.주방을 들여다보니 창턱에 김치그릇이 놓여 있었다.
"요리 몇가지 인차 만들테니 좀 기다려."
배가 고팠던지 맥주를 빨리 마시고 싶었던지 상준이가 캔맥주 하나를 딱 소리나게 딴다.

"먼저 시원한 맥주나 한잔 씩 하자구."
상준이가 나와 건이에게 캔맥주를 하나 씩 건네준다.
"자,우리의 우정을 위하여 건배!"
건이가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작은 통졸임 몇 개와 김치그릇을 들고왔다.100엔짜리 애완동물먹이용 통졸임이었다.집안에 강아지나 고양이도 없는데 설마 값이 싸다고 반찬거리로 잘못 알고 산 게 아닐까?고양이를 키우냐는 상준이의 물음에 건이는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의아한 눈길로 이 통졸임이 무슨 통졸임인가고 소심하게 물어본다.나도 일본에 금방 와서 슈퍼에서 깜찍하고 값 싼 통졸임을 잘못 알고 하마트면 몇 개나 사려고 한 적이 있었다.고양이먹이용 통졸임이라고 하자 건이는 ‘이것도 맛있는데 뭘 그래.' 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것이다.옆에서 웃던 상준이가 김치그릇을 가리키며 한족들도 김치를 먹는가고 넌지시 물어보았다.고개를 끄덕이던 건이가 불시에 하하 웃어댔다.
"미안.나도 조선족.몰랐지?"
”뭐,뭐얏?”
건이가 조선족이란 말에 나와 상준이는 화들짝 놀랐다.상준이는 입 안에 넣었던 맥주까지 입 밖에 내뿜고 말았다.
"너 진짜 조선족 맞어?"
"응."
"근데 왜 우리말 하지 않았어?"
"잘 못해.상준이 웃을까봐."
상준이도 조금 우습게 발음하는 건이를 다시 쳐다본다.
"우리말 하는데 내가 왜 웃어?그럼 우리들이 한 말을 다 엿들었겠네?"
"뭘.욕도 않았는데.나 한국말 못해.한국말 바빠.한족말 절반 한국말 절반 할게."
분위기가 뜨거워지자 상준이가 다시 건배를 웨쳤다.
"장춘에도 조선족들이 많은데,그래 부모님들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 조선족이."
건이의 집은 장춘 시교의 어느 작은 진에 있고 부모님들은 어느 공장에서 퇴직했으며 어릴 때부터 동네애들과 중국어를 하다보니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대학 계산기학과를 졸업하고 결혼하여 지금 일곱살 난 딸도 있다.컴퓨터회사에 근무하다가 일본에서 박사공부를 하는 누님한테 신원보증인을 위탁하여 작년 10월에 도꾜의 일본어학교에 왔다는 것이다.두 살 이상인 누님은 평일에도 시간이 되면 먹을거리도 곧잘 사온다며 이 김치도 며칠 전에 가져온 것이란다.재작년에 누님은 한반에 다니는 한국유학생과 결혼했는데 매형의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난처할 때가 많더라며 머리를 긁적인다.계산기학과를 졸업했으면 앞으로 일본 IT회사에 취직하면 좋지 않느냐는 물음에 누님과 매형도 그런 의도를 밝혔지만 취직하려면 일본어도 잘 해야 하고 학위도 따야 하는데 일본에 좀 있어보다가 진로를 다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그러면서 이젠 공부 할 나이도 아니고 학교는 가고 싶지 않으니 그 공장에서 매일 일할 수 없겠는가 물어봐달란다.
"둘이 얘기 나눠.나 좀 자야겠다."
상준이가 캔맥주 하나를 비우고는 피곤한지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맛있는 요리 인차 할게.먹고 자요."
"아니야."
먹고 자요 라는 말투가 재미 있어서 상준이는 웃으며 침대에 가서 눕는다.
그 날 저녁,공장대문을 들어가는데 공장장 사무실 등불이 환히 밝아 있었다.마침 잘 되었다고 공장장을 찾았다.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는 저녁알바코스가 있는데 시급은 1,000엔이며 열시간 밤일을 할 수 있겠는가고 묻는 공장장의 물음에 건이는 너무나 기뻐서 입도 다물지 못하며 쾌히 승낙하는 것이다.밤일이지만 시급이 1,000엔이면 좋은 일자리가 아닌가?일자리가 사처에 널려 있다고 하지만 일자리를 찾기가 말이 그렇지 어디 쉬운 일이던가?
차간으로 들어가면서 건이는 어린애들처럼 좋아한다.이 공장에서 일하기 전까지 U역 우동집에서 시급 650엔을 받으며 아침 5시부터 오후 1시까지 우동면을 삶고 튀김을 하고 채소를 다듬는 일이며 설겆이들을 하는 주방보조알바를 해왔다는 것이다.그러면서 우동집 알바를 이젠 그만두어야겠는데 점장하고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일요일과 월요일은 알바를 쉬는 날이기에 내일 아침 퇴근길에 같이 가보자고 한다.
나를 믿고 한 말이라 생각하면서도 허물없이 자신을 터놓는 건이가 너무나도 정직하고 솔직해 보였다.비록 첫 눈에 조선족임을 알아볼 수 없었고 일본의 언어환경과 생활습관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일본유학 초년생인 건이였지만 지인이 얼마 없는 일본에서 같은 조선족과 같이 일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동갑내기인 건이가 더 없이 소중한 존재로 느껴진다.
오늘 저녁은 두사람이나 결근했다.야마구찌 공장장이 차간에 들어와 살펴보더니 따끈한 캔커피를 뽑아가지고 와서 한사람 씩 건네주고는 건이를 보고 웃으며 힘을 내라고 한다.
일을 하면서 건이는 혼자서 시무룩히 웃다가도 한참은 무슨 고민이 있는지 수심에 잠겨 있기도 했다.휴식시간에 우동집에서 세주일간의 노임을 지불해줄까 근심조로 묻기에 만약 노임을 주지 않으면 자기가 나서서 찾아주겠다고 상준이가 말해서야 시름이 놓이는 듯 얼굴에 평온함이 깃들어 보였다.
알바를 마치고 셋은 U역에서 함께 내렸다.우동집에서 풍겨오는 우동냄새에 군침이 스르르 돌았다.서너 명 손님들이 서서 우동을 먹고 있었다.건이가 상준이와 같이 우동집으로 걸어간다.어제 아침에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우동집을 스쳐지나기 무엇했던지 전차에서 내리자마자 건이는 우동집이 보이는 서쪽 계단으로 가지 않고 우리를 반대방향인 동쪽 계단으로 안내했다.
자-식.나는 씨익 웃으며 스적스적 뒤를 따랐다.

우동집 옆 프랫트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상준이와 건이가 낮다란 뒤문을 열고 나오더니 메모지에 적은 전화번호를 나에게 보여준다.우찌다라는 점장의 핸드폰 전화번호였다.점장이 아직 출근하지 않았고 노임은 점장한테 물어보라는 것이다.7시도 되지 않은 시간대에 전화를 하는 것이 실례인 것 같아 오전중으로 알아볼테니 점심시간에 전화해달라고 말하고 그 길로 나와 상준이는 다시 학교로 가는 전차에 올랐다.
전차에 올라서 나는 우동집을 뒤돌아보았다.건이가 알바를 하고 있는 U역 우동집.시급이 650엔밖에 되지 않는 저 가소로운 우동집.
건이가 여기서 알바를 그만두기를 잘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3.

"그럼 다음 주 일요일 아침 7시30분에 우동집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우찌다 점장과 전화통화를 마치고 얼마 안되어 건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감사하다.그럼 다음 주에 다시 만나."
"그래,몸 주의해.너무 무리하면 안돼."
그러던 그 다음 주 토요일 저녁이었다.한주일만에 건이를 다시 만나게 되고 내일 아침이면 우동집의 노임도 받아 건이에게 준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흥분되었다.헌데 출근하니 건이가 나오지 않았다.고된 밤일을 하고 잠에 곯아떨어져 자다가 제시간에 잠을 깨지 못한 모양이라 생각하고 좀 있으면 오겠지 했는데 아홉시가 넘어도 오지 않는다.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았나?반장한테 물어보았더니 이젠 나오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알바를 그만둘 건이가 아니고 하여 다시 물었더니 경찰에 잡혀갔다는 것이다.
경찰에 잡혀갈 리가 있는가?
반장한테 다시 물었더니 자기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상준이도 골똘히 생각하다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며 퇴근하여 공장장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라고 한다.이튿날 퇴근하자마자 공장장 사무실로 달려갔다.야마구찌 공장장은 이미 출근하여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건이의 일에 대해 물어보자 누가 신고했는지는 모르지만 목요일 오전에 경찰서에서 건이를 연행하여 공장에 와서 확인하고 갔다는 것이다.그러면서 앞으로는 일본어학교학생이 아닌 일본어를 잘 하는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을 소개하면 좋겠다고 덧붙히고는 일 보러 나가야 한다며 차간으로 가는 것이다.
아니,불법체류도 아니고 비자도 아직 남아있는데 경찰서라니?
불현둣 한주일 전에 우찌다 점장이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불시에 일자리를 그만두면 가게가 혼란에 빠지는데 적어도 며칠 전에 알려야 하지 않겠냐며 중국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상식을 모른다고 시까스르던 일이 생각났다.알바를 그만둘 경우 미리 상대방에 알리는 것이 상식이지만, 우찌다 점장의 말에 일리는 있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중국사람들이 상식을 모른다는 말에는 그만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렇지만 할 수 없이 건이를 대신해 사과한다고 말해서야 뒷말들을 나눌 수 있었다.다음 주 일요일에 노임을 지불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우찌다 점장이 경찰서에 신고한 것은 아닐까?
먼가 예사롭지 않은 예감이 뇌리를 스쳐온다.겉으로는 웃으며 그럴 듯이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본인들이 아닌가?
돌아가는 길에 건이의 집에 들려보자는 상준의 말에 나는 시계를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우찌다 점장과의 약속시간인 7시30분까지 시간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
U역에서 내려 일부러 우동집을 지나면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흰 코크모자를 쓴 뚱뚱한 중년남성이 한창 우동면을 삶고 있었다.어디서 본 얼굴 같았다.우찌다 점장이 틀림 없을 것이다.약속시간 전에 벌써 나와 있구나.이제 좀 있으면 다시 만나리라.
출구를 나오기 바쁘게 우리는 건이의 집으로 잰걸음을 놓았다.2층에 올라가 문을 두드리니 집안에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보증인인 누님도 알고 올 거라 생각하고 메모지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문틈에 끼워놓고 층계를 내려가는데 문을 빠금히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돌아다보니 건이였다.온밤 자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는지 건이의 두 눈은 벌겋게 피발이 어려 있었고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꺼칠한 몰골은 말이 아니였다.
"건이야!"
나와 상준이는 환성을 올리며 층계를 막 뛰어올라가 건이를 부둥켜 안았다.
"너희들한테 미안하구나."
우리는 잠깐 방에 들어가 건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목요일 오전,퇴근하여 집에 와서 아침도 먹지 않고 자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나 눈을 비비며 누님이 왔는가 하고 문을 열어본 순간, 그만 그 자리에서 혼절이라도 할 듯 휘청거렸다.두 경찰관이 서있는 것이었다.외국인등록증과 학생증을 보여달라며 지금 어디서 알바를 하는가 물어본다.우동집은 그만두었기에 지금 알바를 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사실대로 말하라 하기에 며칠 전부터 포리마데크에서 밤일을 한다고 고스란히 대답했다.한 명은 젊은 경찰관이었는데 중국어도 좀 할 줄 알기에 서투른 일본어에 중국어를 섞어서 대화를 했다.보증인의 연락처를 물어보기에 누님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고 알바하는 공장에 같이 가보아야 한다고 하여 옷을 챙겨입고 파토카에 앉아 공장까지 갔다.겨울방학이어서 주말에만 밤알바를 하는 중국유학생이라고 설명하는 공장장한테서 확인을 마치고 공장을 나와 집까지 오면서 앞으로 다시 신고가 들어오면 비자가 남아 있어도 입국관리국에 넘겨 처리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는 경찰관들에게 인사하고 파토카에서 내려 황망히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사이에 이런 일도 있었단 말인가?
일본정부에서 발급한 재류자격외활동허가서에는 하루에 네시간으로 알바가 규정되어 있다.학교에 다니지 않고 알바만 하다가 경찰에 잡혀 강제출국 당하는 유학생들도 있었다.
공장의 이익을 위한 일방적인 주장이긴 했지만 주말에 밤알바만 한다고 건이를 두둔해서 말해준 야마구찌 공장장이 고맙게 생각되었다.
"근데,공장알바 이젠 못하게 되잖니?"
건이의 목소리는 아직도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게 뭐 대수냐?사람이 무사하면 된거야."
상준의 말이 옳았다.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눈 앞에 앉아있는 건이를 보니 안도의 숨이 나왔다.
"그리고 이젠 학교에 다녀야 될 것 같다."
일본어학교에서 지금까지 출석율이 20%도 안 되는 건이에게 몇 번이나 통보하고 보증인한테도 사실을 알렸지만 건이는 여전히 학교에 가지 않고 있었다.그 날 경찰관들이 학교에 바로 전화하여 물어보면 어쩌랴 속이 두근두근했는데 다행히 그것은 물어보지 않더라며 누님한테서 늦지 않으니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학교에 다니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짧은 겨울방학도 지났으니 요즘 먼저 학교나 착실히 다녀라.일본어를 못하면 의사소통이 안 되어 알바하기도 힘들잖아."
상준의 말에 건이는 그리 하겠다고 대답한다.
잠시 후,우리는 집을 나와 약속시간 전에 역전에 도착하여 우동집과 좀 떨어진 프랫트홈에 있는 벤취에 앉아서 기다렸다.안개가 자욱한 프랫트홈에는 옷깃을 세운 사람들도 많았다.우동집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저 우동집에서 일하던 건이가 나 때문에 알바를 그만두게 되어 이런 봉변을 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갑작스레 몰려오면서 미안한 마음이 안개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옛날 일본군 군모 비슷한 누런 헝겁모자를 눌러쓴 늙은 청소부가 청소도구를 들고 땅바닥을 훑으며 우리 옆을 지나다가 멈춰서서 비가 내릴 것 같다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뜬금없이 말을 걸어오기에 비가 내릴 시기는 아니지 않는가고 건성으로 대꾸해버렸다.왠지 모르게 고운 말투가 나가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7시30분이 거의 된다.우찌다 점장이 일이 바빠서 나오지 못하는가 생각되어 우리는 일어나서 우동집으로 갔다.우동집 안에는 종업원 세 명이 분주히 돌아칠 뿐이다.아까 분명히 우동면을 삶고 있는 점장을 보았는데 그 사이에 화장실에라도 갔나?가방에서 점장의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찾아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발신음신호가 가는데 대방에서 받지 않는다.좀 있더니 음성전화로 연결된다.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약속시간을 까먹을 일본인들이 아닌데.
이때였다.
출구계단 쪽에서부터 전신무장을 한 경찰관 한 명이 손에 곤봉을 쥐고 목구두 발소리를 기세 당당히 울리며 어깨에 달린 무선전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이리로 오고 있었다.
경찰관이 우리 앞에 와서 우뚝 멈춰서더니 미안하지만 누구를 기다리는가 물어본다.그 서슬에 건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우동집 점장한테서 노임을 받으러 왔다고 단도직입으로 말했다.누구의 노임인가 물어보자 옆에 있는 건이를 가리켰다.건이를 흘끗 쳐다보던 경찰관이 외국인등록증을 보여달라고 손을 내밀었다.그러면서 나와 상준이에게 건이와 어떤 사이인가고 검문을 들이댄다.친구라고 하자 건이에게 외국인등록증을 돌려주며 별일 아니더라고 무선전에 대고 말하더니 자리를 뜨는 것이다.
우찌다,이 나쁜 놈!
네놈이 건이를 신고한 것이 맞구나!
건이한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
그리고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방금 전에 역전 경찰서에도 신고한 것이구나!
으깨지게 깨물었던 어금이에서 뿌드득 소리까지 났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우동집을 한참 노려보았다.

4.

건이가 자기 집으로 기어이 가자고 한다.역전에서 기분 나쁜 일도 있었고 다시 만난 건이와 얘기도 더 나눌 겸 우리는 서둘러 U역을 나와 다시 건이의 집으로 갔다.
엇저녁에 누님이 와서 끓였다는 장국을 덥혀서 건이가 밥상을 챙긴다.오랜만에 먹어보는 장국은 그야말로 구수하고 향기로왔다.맛있게 먹고 있는 우리의 기색을 살피며 점장한테 다시 전화해보면 어떻겠냐고 건이가 물어본다.아마 오늘은 점장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상준이의 말에 건이는 머리를 끄덕인다.지금 다시 전화해도 받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건이가 아침에 근심스레 물어보던 공장알바얘기가 얼핏 떠올라 나는 숟가락을 놓고 밖에 나와서 공장에 전화를 했다.사무실 당직직원이 잠시만 기다리라며 전화를 야마구찌 공장장에게 바꿔준다.사연을 듣고 어떤 결정이 나올지 불안했는데 나와 상준이가 연대보증인이 되면 건이를 다시 받아주겠다는 공장장의 말을 듣고 건이한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 것 같아 그만 코마루가 찡해났다.어쩌면 건이가 다시 일을 못한다고 하면 나도 이 공장알바를 때려치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마치고 집주위를 거닐면서 건이가 직접 점장한테 얘기했더라면 되였을 간단한 일을 나와 상준이가 끼어들어 괜히 점장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지 않았나,그래서 수상한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점장이 역전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았나 돌이켜보기도 했다.그런데 그에 앞서 건이의 집에 경찰이 들이닥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낮은 임금을 지불하며 장기간 고용하고 싶었던 건이가 불시에 알바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건이에 대한 보복심이 생긴 것이고 이참에 외국인들을 한 번 혼뜨검 내주려는 악한 마음을 품은 것이 틀림 없는 것이다.그렇지만 위엄 있는 일본경찰들이 우리한테서 범죄행위와 같은 혐의를 잡아내지 못할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다시 집에 들아와 건이에게 저녁에 같이 공장에 가보자고 했다.공장사람들을 보기 미안해서 요며칠 일하러도 나가지 않았다며 다른 알바를 찾겠다고 한다.옆에서 듣던 상준이가 눈치를 채고 동갑 셋이 함께 일하면 재미있지 않냐고 해서야 아까 공장에 전화를 했는가고 물어본다.
"며칠 전의 일도 있었고 세 분이 친구이기에 잠시 평일 밤알바는 하지 말고 토일 밤알바만 같이 하도록 합시다."
수완이 좋은 야마구찌 공장장이 연대보증인 말은 꺼내지도 않고 결단성이 있게 간단하게 말하고는 레이저실로 같이 들어가자고 한다.레이저실에 들어서니 모두들 건이를 에워싸고 다시 왔구나,이젠 괜찮냐며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근심 어린 어조로 위로해준다.누가 신고한 것이라고,나쁜 놈들도 많기에 앞으로 매사에 주의하라는 말들에 건이는 눈시울을 붉힌다.건이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는 공장장이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노라니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갈마드는 것이었다.
이튿날부터 건이는 학교에 다녔다.대학원과는 달리 일본어학교에서는 출석율이 80%이상이어야 비자를 연장할 수 있다.
며칠이 지났을까 건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우리에게 두 번 다시 페를 끼치기 미안해서 혼자 점장을 찾아갔는데 노임을 절반밖에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그러면서 도꾜 K역 서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동집이 하나 더 있는데 거기서 알바를 하면 나머지 노임을 지불해주겠다는 것이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놈이구나!
일본은 노임체불이란 존재하지 않는 나라로 알고 있었다.언제인가 상준이한테서 한국에서는 노임을 피일차일 미루거나 제대로 주지 않는 일도 있다고 들었지만 4년째 일본에 있으면서 이런 일은 듣다 처음이다.
그래 어떻게 대답했냐고 물었더니 이젠 개학이어서 학교에 매일 다녀야 하기에 잠시 알바를 못하겠다고 거절하자 중국사람들이 돈 벌려고 일본에 온 것이 아니냐고 꺼리낌 없이 빈정대더라는 것이다.
토요일 저녁에 다시 만나 얘기하자고 전화를 놓고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K역이라?역전 서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동집?
그럼 이전의 그 우동집이 아닌가?
나의 머릿속으로 지나간 일이 빠른 슬라이드로 지나간다.
꼭 2년 전인 어느 날 밤,나는 K역 서구를 나와 네온등 불빛이 눈부신 거리로 찾아갔다.상준이한테서 들은 말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러브호텔이며 AV비데오점이며 성인완구점이며 그리고 성감맛사지방이며 풍속점들로 빼곡히 들어앉은 골목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마침내 눈 앞에 보이는 우동집에서 멈춰섰다.출입문 손잡이 옆 유리창에 작은 간판이 버젓이 걸려 있었다.
-중국사람과 개는 들어오지 못한다!
과연 말 그대로구나.이 개 같은 놈들.아니,개보다 못한 짐승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흔이 넘어보이는 뚱뚱한 놈이 주방에서 하품질하고 있었고 옆에는 마누라인지 첩인지 모를 계집년이 몸을 비꼬아대며 아양을 떨고 있었다.
"기쯔네우동 한 그릇."
나는 뽑아쥔 우동표를 카운터에 탁 소리나게 올려놓았다.그리고는 온수기에서 더운 물이 아닌 찬물 한 컵을 받아 테이블에 가져다놓고 메뉴판을 살펴보았다.값은 여느 가게와 다를 바가 없다.

잠시 후 우동이 올라왔다.나는 젓가락도 대지 않고 반말로 쏘아주었다.
"이 가게 우동 비싸지 않은가?맛도 없으면서.그렇잖은가?"
"네?..."
놈은 의아한 눈길로 멍하니 나를 쳐다본다.옆의 계집년은 덴겁하여 놈의 옆에 딱 붙어선다.나는 보라는 듯이 우동 위에 찬물 한 컵을 그대로 철철 넘치게 쏟아놓았다.땅바닥에 굴러떨어진 우동 면발들을 발로 짓밟아 뭉개놓고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아리가도고자이마시다."
가늘게 떨리는 두 년놈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전차에 오른 나는 <중국사람과 개는 들어오지 못한다!>라는 간판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피가 꺼꾸로 솟구쳐 오른다.그 놈에게 귀뺨이라도 한 대 갈겨주고 나왔던 걸 하고 후회했다.
며칠이 지난 후 상준이한테서 그 우동집을 지나면서 간판이 보이지 않더라는 말을 들었다.그 무렵, 도꾜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 날 새벽에 중국유학생들이 뛰쳐나와 부근의 사람들과 개들을 살려주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라 했는데 이제 보니 2년 전의 그 놈이 맞구나.일이 참 묘하게 번져가는구나!
그럼 그 놈도 나를 알아볼 것이다.
그런데 그 놈이 아직도 나쁜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건이를 얕잡아보고 기껏 부려먹지 못해 안달이 났구나.중국사람들을 업신 여겨도 분수가 있는거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남의 나라에 와서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이미 전과가 있는 건이한테 더 이상 피해를 주면 안 된다.
나는 가방에서 우찌다점장의 전화번호를 적었던 메모지를 꺼내 한참 보다가 다시 가방 안에 넣었다.
이튿날 아침, U역으로 가는 전차를 탔다.전차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7시30분이 거의 된다.오늘도 프랫트홈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사람들이 정연하게 줄을 서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다.
우동집에서 우찌다가 일하고 있었다.주문한 우동을 한 젓가락 먹다 말고 옆의 손님이 나가자 인츰 카운터 안으로 우동그릇을 들이밀며 말했다.
"우동을 먹지 않았으니 절반 값은 받아야겠소."
그리고는 가방에서 메모지를 꺼내 우찌다에게 흔들어 보이고 그대로 우동그릇 안에 던져넣었다.
"손님...저..."
나를 알아본 것인지 우찌다가 뒷말을 잇지 못한다.옆의 종업원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서 있는다.
"절반 값을 받으러 또 올거요."
나는 우동집을 나와 전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걸어갔다.

5.

졸업론문 때문에 도서실에서 참고서적들을 뒤적이느라 바삐 보냈던 금요일 오후,음력설도 다가오고 오늘이 작은 설(小年)인데 저녁이나 같이 먹자며 상준이와 같이 일찍 집으로 와달라는 건이의 전화를 받았다.건이의 목소리는 조금 격앙되어 있었다.
U역에서 내려 우동집을 지나며 보니 한가한 시간대인지 종업원 둘 만 있고 가게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출구를 나와 고반(交番.역전 경찰서)앞을 지나는데 전번에 만났던 경찰관이 서아세아에서 온 듯한 외국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마주오는 우리를 알아보고 머리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너희들을 나쁜 사람으로 잘못 알았다는 듯한 눈빛이 흘러왔다.우리도 그냥 알은 체 하며 옆을 스쳐지났다.평시에는 저렇듯 상냥하고 친절한 경찰관이 일단 신고가 들어오면 위엄 있게 나서는구나 싶었다.
건이의 집은 전번보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바지며 내복이며 양말짝들이 방안 이리저리에 널려 있어 엉덩이를 붙일 자리조차 찾기 힘들었는데 오늘은 마치 깨끗한 일본인 교수님 집에 초대라도 받은 기분이다.
날자에 빨간 동그라미를 표시한 달력를 가리키며 건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세주일간의 노임 7만8천엔에서 먼저 4만엔을 받았으니 나머지 노임은 3만8천엔이라고 한다.3만8천엔.일본에서는 그닥 눈에 차지 않는 돈이지만 당시의 환율로 따져보면 중국에서는 나또래 출근족들의 반년월급을 훨씬 초과하는 액수였다.오후 수업이 끝나서 건이는 우동집에 다시 들려보았다.며칠이나 보이지 않던 우찌다가 오늘은 면바로 나와 있었다.종업원들이 들을까봐 두려웠는지 우찌다가 건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서 노임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나머지 노임을 인차 지불하겠다고 한다.그러면서 지금 하는 알바를 그만두고 K역 우동집에서 일하면 시급을 800엔으로 인상해주겠다는 것이다.이번엔 건이도 강하게 맞섰다.며칠 전에 학교에서 옆의 여학생에게 이런 말들은 일본어로 어떻게 말하는가고 물어보았다.내가 일한 만큼 받는데 무슨 잘못이 있는가,나도 일본의 노동법을 잘 알고 있다,노임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경찰서에 신고하겠다는 건이의 말에 우찌다는 흠칫 놀라더니 겉웃음을 지으며 오늘 가져온 돈이 얼마 되지 않기에 내일 오전에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잘 했다.학교에 다니더니 이젠 일본어를 잘 하는구나.”
상준이가 웃으며 칭찬해주자 건이도 기분이 좋아 따라 웃는다.
우찌다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닐까?
간만에 흡족해하는 건이의 얼굴을 보니 이젠 정말 시름 놓아도 좋을 것 같았다.
건이가 가족사진을 보여준다.
누님과 매형이 중국에 와서 결혼식을 올릴 때 찍은 사진이었다.누님과 매형이 괜스레 근심할까봐 아직 말하지 않았다며 이제 월급을 다 받으면 두 분한테도 알리고 부모님과 애엄마한테도 얼마간 송금하겠다고 한다.그러면서 딸애한테 고운 옷을 사주겠다고 약속해놓고 왔는데 엇저녁에는 딸애가 무척 보고 싶어 잠도 이루지 못했다며 안경을 춰올리고 눈굽을 찍는 것이었다.
나도 그만 가슴이 뜨끔해났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일본에서 노동의 대가로 받는 첫 노임인데 운도 나쁘게 악덕업주를 만나 이런 고초까지 껶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우찌다가 더욱 괘씸하고 가증스럽기 그지 없다.
“자,이젠 맛있는 요리를 할게.”
건이가 다시 웃으며 팔을 걷어올리고 주방으로 간다.
사실 지금까지 많은 곳에서 알바를 해왔지만 우찌다와 같은 점장은 진짜 처음 본다.중국 유학생도 일본인 학생과 동등한 시급이라며 차별하지 않고 알바를 그만둘 때에도 아무 때나 다시 찾아와도 좋다던 여러 가게 점장들의 선량한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우찌다,어쩌면 네놈만은 마음씨 착하고 외국인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많은 일본인들과 이다지도 다르단 말이냐?
똑똑똑!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쨍그랑!
주방에서도 먼가 떨어지는 소리가 뒷따라 들려왔다.
주방에 들어가보니 작은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깨져 있었다.
“뭘 그렇게 또 깜짝 놀래?”
상준이가 웃으며 문께로 간다.상준의 말에 나도 그만 웃음이 나왔다. 
“아니야.내가 열게.”
텔레파시라도 통했는지 건이가 젖은 손을 바지에 쓱 닦고 문을 열자 건이의 누님과 매형이 들어섰다.
“안녕하세요.아니,선배님께서 어떻게...”
건이의 매형을 보던 상준이가 꾸벅 허리를 굽히며 선배님이 아니신가며 인사한다.건이의 매형은 상준의 한국 **대학 3년선배였던 것이다.상준의 말을 듣고 그제야 알아본 듯 건이의 매형도 상준의 손을 덥썩 잡아준다.세상이 작다는 게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던가.건이의 누님도 우리를 보고 너무 반갑고 고맙다며 일일이 악수를 나눈다.
저녁을 먹고 내일이면 건이가 나머지 노임을 다 받는다고 기뻐하며 나와 상준이는 역전으로 향했다.아홉시가 거의 되어서인지 우동집은 이미 문을 닫아걸고 있었다.
이튿날 저녁,건이가 갱의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웃으며 반겨줄 거라 생각했는데 건이의 낯빛은 밝은 전등불빛 속에서도 그늘이 진 듯 어두워 보였다.오늘 오전 우동집에 몇 번 가보았지만 우찌다가 나오지 않았고 전화도 몇 번이나 했지만 받지 않더라는 것이다.
일이 끝난 줄로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였구나.
U역 우동집을 다시 찾아갈까?아니면 K역 앞에 있는 그 우동집을 찾아갈까?
아니다.이번엔 건이의 말대로 우리가 경찰서에 신고해보자.
옳아.직접 U역 경찰서로 찾아가자!
그 이튿날 아침,셋은 다시 U역에서 함께 내렸다.먼 발치에서 보니 우찌다가 있었다.우리는 서쪽 계단으로 가지 않고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 출구를 나와 고반(交番.역전 경찰서)을 찾아갔다.작은 경찰서 안에는 경찰관 두 명이 있었다.
“안녕하세요.무슨 일이 있어요?”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중년 경찰관이 기립자세로 일어서며 물어본다.
“나쁜 놈을 신고하러 왔습니다.”
건이가 선뜻 대답한다.
교대하러 금방 들어왔는지 돌아서서 복장을 갈아입던 다른 경찰관이 우리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그 경찰관이었다.
“당신들이네.무슨 일로 찾아왔어요?”
이번엔 상준이가 나섰다.
상준이가 진술하는 사연과 우찌다의 전화번호를 서류에 기록하고나서 그 경찰관이 곧바로 우찌다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다.
“하이!하이!”
전화기에서 우찌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를 마치고 그 경찰관이 양측이 여기서 대면하기로 했기에 우리를 밖에 나가서 좀 기다리라고 한다.
따끈한 캔커피라도 사려고 나는 택시정류소 건너에 보이는 세븐이레븐(24시간영업슈퍼) 밖에 설치된 자판기로 갔다.캔커피 세 개를 뽑아가지고 다시 경찰서로 가려는데 경찰서 앞에 있던 건이와 상준이가 보이지 않는다.우찌다가 호출령을 받고 헐레벌떡 벌써 찾아들어간 모양,경찰서에 들어서니 우찌다가 허리를 굽히고 연신 사죄하고 있었다.책상에는 노임봉투가 놓여 있었다.마지막으로 그 경찰관이 서류에 사인하라고 하기에 건이가 먼저 사인하고 우찌다도 뒤이어 사인한다.
허리를 굽힌 채로 질질 뒷걸음질치며 경찰서를 나가려던 우찌다가 문 옆에 서 있는 나와 그만 부딪치고 말았다.
뒤늦게야 나를 알아본 우찌다는 억-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꽁무니를 빼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두 경찰관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다.
밖에 나오니 오늘 따라 겨울의 아침햇살이 유난히 눈부시고 따스해 보였다.

6.

한주일이 지난 금요일은 음력설이었다.
일본에서 보내는 명절날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친다.일본인들은 음력설을 쇠지 않지만 일본에 있는 유학생들은 설날에 한데 모여 친구들과 회포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즐겁게 설명절을 보낸다.
엇저녁에 다른 알바가 있어 누님집에서 설을 쇠자는 건이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와 상준이는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건이와 같이 차이나타운으로 갔다.
요꼬하마 차이나타운(横浜中華街).
이 곳에 거주하는 중국사람들은 몇 천명으로서  몇 백개나 되는 점포를 가지고 있다.향을 꽂은 큰 항아리며 불상들을 높이 모신 레스토랑과 차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에 대만요리,홍콩요리,광동요리,복건요리,상해요리,북경오리,천진물만두 그리고 짜장면이며 샤브샤브 등 음식가게들이 사이 좋게 이웃을 하고 있다.하얀 젖통 같은 커다란 만두며 구운 밤이며 각종 중국식 떡들을 밖에서 파는 가게들도 많다.음식종류가 다양하고 가격도 합리하여 외국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다.
처음 바다를 보는 사람처럼 건이는 차이나타운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선물가게에서 건이는 빨간 리봉과 교묘하게 수를 놓아 만든 손수건을 고르며 며칠 전에 산 옷과 함께 딸애한테 보내겠다고 한다.딸애한테 보낼 색다른 선물을 사들고 즐거워하는 건이의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요즘 매일 학교에 다니며 열심히 일본어를 배우더니 이젠 우리하고도 일본어로 대화를 하는 건이였다.
구경을 마치고 상준이가 음식점으로 안내했다.요리를 몇 젓가락 집다말고 학교에 가야 한다며 먼저 역전으로 뛰어가는 건이의 뒷모습을 나와 상준이는 흐뭇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느덧 졸업도 막바지에 이르러 포리마데크 알바를 그만두게 되었다.
마지막 밤알바를 마친 일요일 아침, 우리는 건이의 집에 가서 조촐한 파티를 열기로 했다.U역에 도착하여 우동집을 지나면서 건이가 여종업원들을 보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우찌다는 보이지 않았고 가게에는 아직 손님이 없었다.
“노임 다 받았어요?”
건이의 노임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그 중의 한 중년 아주머니가 낮은 소리로 건이에게 물어본다.건이가 웃으며 다 받았다고 대답하자 모두들 박수를 보내는 것이었다.
건이의 집에 들어와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 처럼 잔을 높이 추켜들었다.
"우리의 우정을 위하여!"
묵묵히 앉아 있던 건이가 불시에 화장실로 간다.방금전에 역전 화장실에 들렸던 건이였다.수도물을 틀어놓고 한참이나 있더니 방으로 들어와 짐짓 세수를 한 척 보였으나 빨개진 두눈은 감출 수가 없었다.
비록 한달 남짓한 짧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오랜 친구처럼 함께 곤난을 이겨내며 지내왔다.정작 이별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아쉽고 마음 한구석이 텅 비여버린 듯 서운함을 이루다 형언할 수 없다.아까 오면서 생각해놓았던 그 많고 많던 말들은 어디로 다 도망을 가버렸는지 한마디도 할 수 없다.그저 건이가 낯 설고 물 설은 일본땅에서 인색하고 비렬한 우찌다 그 놈과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자신을 더욱 굳세게 다져가길 속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점심에 학교모임이 있기에 좀 지나서 나와 상준이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역전까지 바래다주겠다는 건이를 만류하고 큰길까지 나왔다가 뒤돌아보니 건이는 안경을 벗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나는 건이에게 오래도록 손을 저어 보이고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그 후부터 나는 건이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인천공항에 마중 나온 건이와 나는 서로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꼭 20년만이었다.
옆에 있던 상준이가 자초지종을 설명해준다.
한주일 전에 건이의 매형을 어느 모임에서 우연하게 다시 만났는데 오사까 모 회사 해외부 부장직을 맡고 있는 건이가 요즘 한국에 출장을 나온다는 것이었다.어젯밤, 건이를 만나 나도 내일 한국에 온다고 알려주었더니 나를 깜짝 놀라게 할 요량으로 아까 공항으로 마중 나오기 전에 호텔 커피솦에서 건이가 그런 전화를 했던 것이다.
“너 많이 변했구나.”
나는 건이의 어깨를 가볍게 쥐여박았다.
“너희들 덕분에 석사과정을 마치고 IT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그 동안 너희들과 연락이 안 되더니 오늘 마침 잘 만났구나.저녁은 내가 한턱 낼게”
건이와 헤어진 후 얼마 안 되어 나와 상준이는 졸업하고 각자 귀국하였다.
건이는 매형이 한국에 가있는 사이에 누님 집에 있으면서 슈퍼 알바와 포리마데크 토일 밤알바를 겸해 하다가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다.
서울로 달리는 차안에서 건이가 정색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정말.그 우동집 어떻게 되였을까?우찌다 그 놈은 지금도 계속 나쁜 짓을 하고 있을까?”
건이는 아직도 U역 우동집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에 도착한 날 밤,도꾜 시교에 주숙한 호텔에서 불야성을 이룬 밤거리를 내다보다가 이번 일본행에는 먼저 U역에 들려보고 행사에 참가하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나는 오랜만에 U역 앞에 서 있다.
증권회사,은행,우체국이며 빠찐꼬,마크도날드,살롱 그리고 세븐이레븐과 역전 경찰서며 세월이 흘렀어도 어렵잖게 알아볼 수 있는 역전광장 모습들이다.
다시 역사에 올라가 전차를 기다리는 홈층계를 내려선 나는 그만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계단 밑에 있던 우동집은 어느새 모르게 깔끔한 케익점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있다.마치 어디론가 증발이라도 해버린 듯 우동냄새는 말끔히 사라져버리고 가게에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예쁜 케익들이 오밀조밀하게 진렬되어 있다.

전차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우동을 먹던 사람들이 바삐 젓가락을 놓고 출근행렬 속에 나란히 줄지어 서던 예전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가게를 둘러보거나 가게 안을 기웃거리는 사람들로 주위는 북적거린다.

그 일이 있은 뒤,우찌다가 이 케익점을 새로 오픈한 것일까 아니면 이 곳에서 낯판대기를 쳐들고 다닐 수 없어 다른 곳으로 전이한 것일까?
-곧 2번선에 전차가 들어섭니다.위험하므로 노란 선 밖에서 기다려 주십시요.
귀에 익은 안내방송을 이어 파란색 전차가 홈에 들어선다.
"뭘해.빨리 타지 않고..."
먼저 전차에 오른 상준이가 웃으며 나를 부른다.
발차시간이 거의 되어서야 나는 전차에 뛰어올랐다.그리고는 사람들로 빼곡한 전차 안에서 다시 한 번 옛 우동집을 뒤돌아보았다.
우동집.요꼬하마에서 도꾜 도심을 가로질러 사이다마현으로 향하는 게이힌도혹꾸센(京浜東北線 ) U역 프랫트홈에 있던 우동집.
20년이 훌쩍 지나간 지금,우찌다는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어느 나라에든 나쁜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으리라.
전차가 요꼬하마로 달리는 도중에도 나의 머릿속에는 그젯날의 일들이 그냥 맴돌이치며 잊혀지지 않는다.

 (연변문학 2017년12월호)

저자 약력:

1964년 길림성 용정시 출생.연변대학 일본어학부 졸업.요꼬하마국립대학 교육학석사과정 졸업.수필 10여편 발표.한국 "문학의 강"제15회 단편소설부문 신인문학상 수상.현재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번역컨설팅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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