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유재: 중국 소주 常熟理工学院 外国语学院 朝鲜语专业 교수/ 한국 숭실대학교 현대문학 박사졸업/ 재한동포문인협회 해외이사
틈새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모든 틈새가 다 울었다
비가 한 줄기 강하게 뿌렸고
모든 틈새는 다 젖었다
내가 슬픈 건
그 틈새가 있다는 걸
몰랐었기 때문이다
내가 더 슬픈 건
그 틈새가 있는줄 이젠 알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지금 비가 오나요

2017.12.23

대숲의 幻影

바람이 스쳤을 뿐인데
대숲에는 왜 빗소리가 들리는 걸까요
빈 들판도 아니면서
언제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걸까요
젖은 의식의 끝자리에 이르러
나는 대숲을 보나요 환영을 보나요
가슴 푹푹 패인 골짜기 지나며
흔들리는 겨울, 검푸름 벗지 못하고
자꾸만 자꾸만 마음에서 잠겨갑니다

2017.12.24

너를 볼 때면

반은 남고 반은
스며들어
흘러가는 강물이고 싶다

다 흘러도 끝내
언제까지라도 지켜진
기슭이고 싶다

그 기슭에서 흩날릴
민들레 홑씨일 수도 있다

너에게로 스며든 반을
바라보면서
지금 너의 앞에 서있다

2017.12.25

어느 겨울날의 작별인사

찬 손을 내밀어 작별인사 청하던
창백한 얼굴의 친구여
그대가 건넨 악수는
어느 겨울날 정거장에서의 것이었지

유리창문처럼 성에가 낀
먼지투성이의 얼굴에서 나는
한 줄기 투과하는 황금빛 보았다고
그래도 믿으련다

두꺼운 두 겹 유리창 사이에 둔 채
우린 서로 상대를 향해 손을 흔들었지
잘 가라고 잘 있으라고

겨울이 추운건
봄에게 건네줄 열을 아끼려는
몸짓때문이다, 라는 글귀 하나
눈꽃으로 내리던 12월에
따뜻함을 건네줄 주어만은
끝내 생각해내지 못한 채 친구여

그대도 나도 또 한해의 마감에
각자 주저앉아
자기의 몫만큼 추워지는구나
얼룩진 창문 한사코 비집고
끝까지 더워지지 못할 방안에서
밀려드는 햇빛에 들뜬 은빛 먼지처럼

그대와 나는 한해의 마감에서
추운 악수의 작별, 하지 말았어야 했다

2017.12.27

늦은 화해

먼저 혹은 늦게,
움텄거나 그러지 못했거나

이젠 용서할 때

온 힘 다해 흙 위를
헤쳐오른 씨앗
바깥을 보았느냐, 꽃 하나 지워
열매로 갈음하겠느냐

맺힘이 언젠가는 낙하하여
흙으로 돌아가리다
돌아가 또 다시 움터서

죽음과 삶의 경계 건너
닿아야 할 운명인

꽃은, 네 몫까지
가득 피워올린 늦은 화해

2017.12.27

선율의 맥박

어둠이여
그속에서 터지는 울림이여
팽팽히 떨리는 금속선의 차가움이여
파란 물결 가늘게 타오르는
불꽃의 환영이여
뜨거운 입김으로 녹인 미지의 갈망이여
목마른 갈증에 쏟아붓는 가혹한 희망이여
눈 감아도 꺼질줄 모르는 상상의 심지여
어딘지도 알 수 없이 빠져드는 방황이여
한 번도 조우한적 없이 버림받은 비참함이여
꿈결과 냉정 사이의 불모지에서
끊임없이 불어가는 방향 잃은 바람이여
이름을 알지 못해 불러갈 수 없어도
미안하지 말라고 외치는 그대 숨결이여
어둠이여 불꽃의 환영이여

밤을 부딪쳐
검붉게 태우는 선율의 맥박이여

2017.12.28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