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량영철 약력: 소설가.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68년 중국 화룡시 출생. 94년 “개짖는 밤의 고요”로 등단. 문학상 여러 차례 받음.현재 한국에서 생활체험중.
[서울=동북아신문]“이번엔 또 무슨 일로요.”

말말 간에 나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툭 불어 터지고 말았다. 그 소리가 컸던지 아들애가 내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전화다. 아버지와의 전화를 이딴 식으로 받으면 안된다는 도리는 누구나 다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언제 한번 아버지의 전화를 공손하게 받는 법이 없다. 이번 뿐이 아니다.

십년 전 녀동생이 교통사고로 죽고 자식이라곤 나 밖에 없으니 아버지로선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출이 너무 잦다. 별 일 같지도 않은 일 가지고도 아버지는 꼭 내가 올라와야만이 일이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굳이 내가 춤추지 않아도 될 일에도 아버지는 기어이 나를 길 우에 세워놓는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딱 한가지 상황에서다. 로친을 데려올 때.

20여년 전, 장장 18년을 누워있던 엄마가 앓던 력사를 정리하고 저세상으로 떠나자 아버지는 로친이 필요해졌다. 나하고 상론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집에 들어가 보니 웬 콩자루만한 로친네가 가마목에 턱 걸터앉아 있었다. 이발이 싹 빠진, 아버지보다 여섯살이나 이상인 그 로친네를 아버지는 새엄마라 부르라고 했다. 그 새엄마하고 17년 같이 살았다.

“아무래도 양로원에 가야 할 것 같다.”

“됐어요!”

“몇시 쯤 오겠니?”

늘 이런 식이다. 우리는 결코 긴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부자간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별로 이상하다거나 별다르게 느끼지 않았다.

“투도의 그 분도 동의하세요?”

뚜-뚜- 그러나 전화기는 이미 내려진 상태. 얼핏 손목을 들어 보니 시간은 9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지를 만나고 가기엔 약간 애매한 시간이였다.

투도의 그 분이란 아버지가 17년을 같이 산 계모 즉 새엄마가 죽고 나서 만난 새 로친네를 말한다. 이 로친네 먼저 또 한사람을 만났었다고 들었다만 나는 보지를 못해서 여기에 쓸 수가 없다. 1년 전 쯤의 어느날 아버지가 올라오라 해서 갔더니 이 로친네가 가마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였다. 아버지보다 열살 넘게 어린데다 몸도 건강한 로친네는 집이 투도에 있었는데 아들과 같이 산다고 하였다. 아버지한테는 일주일에 한번 올라오면 많이 올라오는 거라고 하였다. 그럴 거면 왜 같이 사는지 나는 그 때 정말 의문이였다. 하물며 아버지는 중풍이 두번이나 스치고 지나가서 다리가 영 온전치 못하지 않은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넌 어쩔래?”

“아빠 혼자 가세요. 난 집에서 TV랑 보면서 놀래요.”

“무섭지 않겠어?”

“처음도 아닌데… 괜찮아요.”

아들애의 시원스런 대답에 나는 갔다가 될수록 빨리 돌아와야지 했다. 돌아올 땐 애가 좋아하는 요구르트도 둬줄 들고 와야지…


성보호텔 뒤에 있는 락원커피숍에 들어서자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반짝 쳐들었다. 책을 보다가 나를 발견한 모양, 내가 다가가자 슬며시 뚜껑을 덮어버리는 것이였다. 내가 아는 책이였다. 류시화의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마리가 함께 붙어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아 이 시를 알아요?!”

그녀가 눈을 빛내더니 내 뒤를 계속해서 읊었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아름다운 시지.”

내가 말했고 그녀가 눈을 올롱하니 떴다.

“이게 아름답다고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쓴 건데 아름다워요? 한짝 눈이 없는 물고기보다도 못한 인간의 사랑이?”

그녀의 이름은 수지다. 그녀를 알게 된게 2년 전이니까 교제한 지도 2년이 된다는 말이 되겠다. 결혼 1년 만에 남편을 잃은 그녀는 15년 째 홀몸으로 살고 있었다. 도문에 있는 친정엄마한테 아이를 맡기고 내지로 떠돌다가 연길에 온지 2년 넘은 걸로 알고 있다. 그녀가 얼마나 사랑을 갈구하는지는 그동안 그녀가 나한테 보여준 행동을 통해서 얼마간 짐작하고 있다.

카푸치노가 왔다. 미리 주문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블랙.

나는 계피막대 너머로 그녀를 슬쩍 훔쳐보았다. 어제 밤에 제대로 못 잤는지 번뜩이는 안경알 속에서도 두 눈은 벌겋게 충혈돼있었다. 그녀가 버릇처럼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나를 보고 웃었다.

“어제 밤 한숨도 못 잤어요. 정작 떠난다고 생각하니 잠이 안 오더라구요. 부었죠, 눈이?”

“좀더 마셨을 걸 그랬나?”

“그러게요. 겨우 아홉시인데 벌써 돌아가라고. 눈치 없이…”

“내딴엔 배려라는 걸 좀 해본다는 게 그렇게 됐네. 먼길 떠나야 하니깐. 미안합니다. 다음부턴 안 그럴게요. 아, 다음번은 없겠네?”

“왜요? 일년에 한번씩은 올 건데.”

“삼년에 한번 와도 좋지.”

엊저녁, 저녁을 금방 먹었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르하통하 강변미식거리에서 야경을 안주로 한잔 꺾자는 것이다. 오씨집에서 보쌈을 먹은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집에서 가까웠으므로 나는 천천히 걸어서 나갔고 그녀는 이미 와있었다. 연길에서 산다지만 나는 강변미식거리가 처음이였다. 오히려 연길 정착 2년 차인 그녀가 나보다 연길에 대해 더 밝았다.

강물 우에 비스듬히 내려앉아 오색 불빛을 명멸하는 밤경치를 바라보며 우리는 꼬치집에 들어가 맥주 한병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딘가 모르게 알 수 없는 초조함 같은 것이 묻어있었다.

“강바람이 시원하군.”

내가 맥주병을 터뜨렸다. 두잔에 골고루 부으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맥주거품이 급하게 솟아올랐다가 천천히 가라앉는 게 보였다.

강변미식거리는 거의 젊은 층들이 리용하는 모양이였다. 자리잡고 앉은 사람이나 걸어다니는 사람 대부분이 젊은 남녀들이였다. 90% 이상 되는 녀자들이 핫팬츠를 입었고 젊은 두 다리를 밤의 혀바닥 우에 쫙 뻗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는 강변미식거리의 맨 동쪽 끝자락이였다.

“산다는 게 뭘가요?”

살면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다. 산다는 게 뭘가? 그걸 알면 내가 이 자리에 있겠는가. 산다는 게 뭔지는 고사하고 왜 사는지, 무엇때문에 사는지도 나는 모른다. 살면서 나는 한번도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다.

“행복이란 게 뭘가요? 어떤 게 행복일가요? 행복이란 게 정말 있기나 할가요?”

나는 그녀를 향해 맥주잔을 슬쩍 쳐들어 보였다. 한모금 마시자는 뜻이다. 따라서 그런 물음에는 대답하기 싫다는 간접적인 대답이기도 했다. 행복처럼 비현실적이면서 추상적인 단어가 어디 또 있겠는가. 느끼기 나름이고 설명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대답하기 싫으세요?”

“죽은 놈 자지 만지기지 뭐.”

그녀의 주량은 맥주 한병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흰술은 마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 역시 흰술은 좀 마시지만 맥주는 영 숙맥이여서 한병이면 갈 데까지 간다. 둘이서 한병.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의 주량을 맥주 한병으로 규정짓고 있었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맥주잔을 들어 베여무는 척해보이고는 그대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안경을 벗어 습관처럼 안경알을 닦았다. 왼쪽 눈이 120도, 오른쪽 눈이 125도다.

“저 래일 일본 가요.”

“…?”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을 미처 알아듣지 못했다. 이웃동네 이름을 말하듯 일본이란 이름을 너무 쉽고 담담하게 말해서 그랬을 것이다. 혹은 미리 언질을 주지 않고 오늘밤에 와서야 말하는 그 저의를 후닥닥 깨치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국제결혼으로 가요. 일본으로 갈 수 있는 길은 그 길 밖에 없더라구요.”

“음…”

속에서 올라오는 신음소리가 그녀에게 들릴가봐 나는 얼른 맥주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예상을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 예상이 정작 현실로 맞닥뜨리자 나는 저으기 당황하고 있었다.

“원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안 가면 또 살 수 없겠고… 여기 있어야 할 리유도 없고… 정말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번거롭고… 가면 인츰 리혼해야겠죠? 어디까지나 가짜결혼이니… 안착하고 싶은데…”

그녀는 두서없이 말을 게워내고 있었다. 이발 틈새에서 음식찌꺼기들을 뜯어내며 나는 그녀의 손가락이 귀밑머리를 매만지는 것을 보았다. 멀리 후지산이 둥실둥실 떠오고 있었다.

“오늘은 웬 일인지 자꾸만 행복이란 낱말이 떠올라요. 행복을 위해서라면 아들도 포기할 수 있는데…”

내 발바닥 밑에서 살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의 입술을 향해 일본 행을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던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것은 어제의 일이였고 기억나는 건 공항으로 가기 전에 잠간 만나자는 약속을 잡은 것 뿐이다.

“심양에서 떠나서 북경에서 환승한댔지, 아마?”

“네. 시간이 빠듯해요.”

“그렇겠군.”

“가면 돈지갑 하나 사서 보낼게요. 이번엔 잃어버리지 말고 잘 간수하세요. 그리고 신분증은 돈지갑에 넣지 말구요.”

그녀는 해마다 한번씩 잃어버리는 내 돈지갑의 운명을 두고 걱정을 하는 것이다. 잃어버릴 때마다 신분증을 다시 내고 카드를 재발급받느라 소란을 떨어댔던 내가 한심했다는 뜻일가. 나는 소리없이 웃었다.

“고마워. 잘 쓸게.”

“시계도 하나 보내드려요?”

“아니 됐어.”

“왜, 좋아하잖아요. 시계판 어떤 색상 좋아하는지 알려주시면…?”

“돈 벌러 가는 거잖아. 쓸데없는 데 신경쓰지 마. 지갑이면 됐어. 그리고…”

말하면서 나는 안호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가지고 간 봉투를 꺼냈다.

“많진 않지만 보태 써.”

“이건?”

“저번에 수지를 모델로 쓴 소설, 그 소설이 상 받았잖아. 접대하고 남은 상금이야.”

“아…”

“그 동안 든 정도 있고…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접대 세집값 갚을 때 도와준 것도 못 갚았는데…”

커피숍 안에서 꽈리가 자꾸 익어가고 있었다. 속을 파내고 불면 곧 울 참이였다.

그녀는 선뜻 봉투를 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오늘 따라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왠지 그녀에게서 이상한 느낌이 전해온다 했더니…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바람이 분다. 그녀의 볼근육이 잠간 흔들렸다. 새끼붕어 몇마리가 탁자 우로 튀여올랐다가 커피숍문을 열고 빠르게 도망치고 있다.

그녀와 나 사이의 자그마한 탁자 하나, 손만 뻗으면 이마를 만질 수 있는 거리다. 1초에 30만키로메터는 빛의 속도다.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가 약 1억 5천만키로메터 떨어져있으니까 빛의 속도로 계산하면 500초 가량 걸리겠지. 그러니까 우리는 약 8분 전의 태양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38만키로메터이니 1.3초 정도,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달은 1.3초 전 과거의 달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와 나 사이의 이 반메터도 안되는 애매한 거리는? 분명한 것은 나는 지금 0.00… 몇초 전의 그녀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있는 모든 것은 과거이고 우리는 결국 과거와 더불어 산다는 뜻인가. 불행히도 나 역시 0.00… 몇초 전의 과거가 되여 그녀에게 현실처럼 다가간다.

누구는 돌아서는 순간 과거라고 말하지만 아니다.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미 과거다.

조금 남은 카푸치노를 계피막대로 쭈욱 빨아들이고서 나는 나의 0.00… 몇초 전의 과거를 향하여 말했다.

“일어나볼가? 별로 이른 것 같지도 않구만.”

“그럴가요.”

헤여지면서 나는 그녀에게 일본에 가서 돈을 많이 벌라는 따위의 수식어는 집어쳤다. 아버지한테 가는 걸음에 공항까지 바래다줄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 나와 수지가 잤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그녀와 잔 적이 없다. 2년 간 교제하면서 그녀가 손금을 보라면서 내민 것을 잡은 게 전부다.

사부작사부작하는 그녀의 발걸음소리가 빛과 함께 내 오른쪽 귀 너머로 흘러가고 있었다.


늘 그랬듯 고향으로 가는 길은 항상 멀었다. 한시간이면 가닿을 수 있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늘 차게만 느껴졌다. 연길에서 룡정까지의 40리가 그랬고 룡정에서 투도까지의 40리도 그랬다. 투도에서도 십리 더 올라가야 아버지가 살고 있는 연풍이다. 가봤자 고향에는 날 반겨줄 이 하나 없다. 굳이 한사람을 꼽으라면 아버지가 유일한 그 한사람이 될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 아버지는 밖에 나와 퇴마루에 앉아있었다. 며칠 전에 봤을 때보다 키가 한뼘은 더 작아진 것 같다. 며칠 전에도 아버지는 퇴마루에 나와 이렇게 앉아있었다. 손가락으로 라이라크나무 우듬지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우습강스럽게도 그 우듬지 우에 시뻘건 달이 턱하니 올라앉아있었다.

“진짜로 가려구요? 양로원에?”

“웅.”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신발 끝을 향했던 얼굴을 외로 탈며 서쪽 지평선을 바라봤다. 같이 그 쪽을 바라보았으나 별 특별한 것이 있을 리 없었다.

“투도 그 분은 동의하세요?”

아버지가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더니 끙~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 지팽이는 내가 며칠 전에 사준 거였다. 지팽이를 짚고서도 아버지는 구부정하니 섰다.

“그래서 오라고 했다. 나한테 안 온 지 보름도 더 됐다. 아무래도 가봐야겠다. 거기서 살든지 양로원으로 가든지…”

“거기서, 산다, 구요?”

어째 내 귀에는 그 말이 양로원에 안 간다로 들렸다. 혹시나 하고 왔더니 역시나인가.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와서 별로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나는 속이 좋지 않았다.

사실 나는 거의 일년 전부터 아버지 보고 우리 집에 올 것을 권고해왔었다. 곁사람 고생시키지 말라는 뜻이였다. 성한 사람이 농사를 지으려 해도 힘든데 하물며 병든 아버지임에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내 손이 가야 한다. 빨래는 어찌할 것이며 음식은 또 어찌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이 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안되는 것들이다. 밭을 남한테 양도하고 우리 집에서 편안히 TV나 감상하며 여생을 보내면 좀 좋은가. 눈치 줄 며느리도 없고 이 얼마나 호재인가.

한데도 아버지는 한사코 거부해왔다. 구차하게 우리 집에 얹혀 살거면 차라리 양로원에 가겠다는 것이다.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부담이 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양로원에라도 가라고 하니 그건 또 아직 때가 안됐단다. 그러기를 여러차례 반복했고 며칠 전에는 양로원에 간다고 해서 올라왔는데 정작 데리러 올라오니 휘딱 뒤집어버렸다. 안 간다는 것이였다.

차에 시동도 걸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먼저 뒤좌석에 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자유를 구속당하기 싫었을 수도 있다.

“양로원에 갈 생각이 있기는 있으세요?”

사이드미러를 통해 내가 아버지를 보며 말했고 사이드미러 속의 아버지는 험상궂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갈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가지 않으리. 너한테 부담을 주지 않을 거니까 걱정 말아!”

부담, 그렇다. 부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한테 아버지가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부담임을 모르고 있다. 사람은 어차피 부담을 주고받는 동물이다. 어렸을 적의 내가 아버지에게 부담으로 작용하였다면 지금의 늙어 병든 아버지는 나에게 엄청난 부담인 것이다.

아버지의 부담을 덜기 위해 나는 초3을 중퇴했고 결혼 때도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장장 18년을 내처 앓은 내 엄마를 내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아버지에게 감사한다.

언젠가 한번 와본 적이 있으므로 나는 로친네의 집을 어렵지 않게 찾았다.

투도진 거리에서도 외곽이요, 산밑이다. 단층집이였는데 널판자로 울타리를 깊이 쳤다. 굴뚝이 있는 서쪽은 한전이였는데 찰옥수수를 심었던 모양, 수확하고 남은 그루터기들이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었다.

로친네는 집에 없었다. 널대문에 걸린 커다란 자물통이 주인이 집에 없습니다, 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시간은 열한시 반을 훨 지나 열두시께에 다가와있었다.

“어쩌겠어요? 기다리겠어요?”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다. 로친네한테 전화가 있는지 모르겠다.

“기다려보자. 멀리 가지 않았을 게다.”

“…”

아버지의 얼굴에도 초조함 같은 것이 발톱을 내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수시로 로친네가 올 길 동쪽을 바라보았다.

차 안에서 담배 한대 굴려내며 나는 아버지가 참 거북살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전처를 병으로 잃었으면 후처하고라도 잘살 게지 후처마저도 먼저 떠나보내다니… 그리고 이건 또 무슨 꼴인가.

로친네가 나타난 건 열두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로친네를 발견한 것도 역시 아버지가 먼저였다. 나는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아버지가 어느새 알아보고 마중가고  있었다.

“저기 온다.”

아버지를 본 로친네가 잠간 멈칫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둘이 뭐라 말을 주고받더니 아버지는 내버려두고 로친네만 쥉쥉 오는 것이였다. 나는 널대문에 붙어서서 아버지가 지팽이를 휘두르며 로친네를 따라붙느라 무등 애쓰는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꼭마치 자기를 떼여버린 엄마를 따라가겠노라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로친네는 나의 인사 같은 것은 받아주지도 않았다.

“왜 령감을 데리고 왔소. 도로 데려가오.”

“그게 아버지가…”

“우리 집엔 못 들어가오. 아들도 동의 안하겠지만 내가 원체 거두지 못하겠소. 내가 뭐 보모요, 풍 맞은 령감탱이나 거두게.”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령감탱이라니요. 누가 령감탱이예요?”

“아무리 생활비를 많이 준다고 해도 나는 저 령감을 못 거두겠소. 다른 로친을 구하든가 아니면 보모를 찾든가 하오.”

“그래두 일년이나 같이 산 정이 있는데…”

그 때 막 로친네의 꽁무니에 따라붙은 아버지가 우리의 말에 끼여들었다. 로친네가 확 얼굴을 돌려서 아버지를 봤다.

“일년이라니. 누기 령감과 일년을 살았음둥. 입은 비뚤어두 말은 바른대로 하깁소. 나는 그저 일주일에 한번, 열흘에 한번 령감네 집에 가서 청소나 해주구 빨래나 해줬을 뿐 같이 산 적은 없습꾸마예. 사람이 어째 말귀를 그리 알아먹지 못함둥. 내 요 먼저두 다시는 날 찾지 말라구 하지 않았슴둥? 이게 부득부득 우긴다구 될 일임둥. 돌아갑소!”

“난 그래두…”

“난 그래두란 게 없습꾸마. 우리 뭐 결혼등기라두 했슴둥. 어째 이램둥. 우린 엄연한 남남입꾸마. 우리 집에 한발작두 못 들어옵꾸마!”

로친네의 입에서는 찬바람이 쌩 돌았다. 동네집 개도 아버지처럼 이런 취급은 받지 않을 것이다.

자물쇠를 열려는 로친네 곁에 다가섰다가 아버지는 로친네가 콱 밀쳐놓는 바람에 하마트면 뒤로 락마를 할 번하였다. 다행히도 내가 덥석 받아안았으니 망정이지 크게 다칠 번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모질 수가 있소. 좋다 할 때는 언제구…”

“나란 년이 이런 년인 줄 이제 알았슴둥? 이 동네 와서 물어봅소, 다 압꾸마, 내 전령감이 어떻게 죽었는지.”

“됐어요!”

그제는 나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한테 지팽이를 쥐여주고 로친네를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나도 아주머니 같은 사람한텐 우리 아버지를 맡길 생각이 없습니다. 말을 길게 안하겠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잘 사십시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아버지를 부축하여 차에 올렸다. 그 때 나는 보았던가 말았던가, 아버지의 우멍한 눈굽 안에 맺힌 주먹만한 눈물을.

“그래, 잘 생각했소. 언녕 그래야지. 아버지를 잘 모시오.”

때아닌 가을바람이 발치에 걸려 물무지개처럼 퍼져나갔다.


“오빤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옛날 모습 그대로야.”

“뭐 그렇긴. 그동안 흐른 세월이 얼만데. 그러나 젊어보인다니 듣기는 좋다.”

아래집에 살던 애다. 나보다 세살 어린. 오빠하고 나하고 친구니까 친구 녀동생이라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인터넷이 좋긴 좋아. 이렇게 20여년 만에 웃집 오빠를 다 만나보고.”

“금이한테 감사를 드려야지. 걔 마당발이잖냐.”

얘 이름은 경이다. 한국에 시집 가서 강산이 두번 바뀌였고 딸은 어느새 커서 대학 다닌다고 했다.

“네 오빤 여름에 봤어. 15년 만에. 그것도 아버지가 간암말기여서 왔기에 만났지 안 그럼 언제 만날지 모르겠지.”

“아르헨띠나가 어디 좀 먼 곳이우? 아버지도 오빠를 15년 만에 보는 건데. 간암말기가 아니라면 아마 오빠는 이번에도 안 왔겠지.”

“그렇게 너도 마찬가지가 아냐?”

“하긴. 가까운 한국에 산다는 것도 몇년에 한번 올가말가이니…”

“앞으론 좀 자주 다녀.”

“알았어. 오빠를 보기 위해서라도 종종 올게.”

뀀점이다. 양꼬치 스무개 놓고 맥주 두병을 거의 비우는 중이다. 얘가 우리 아래집을 16살에 떠나 연길로 왔는데 그 때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아버지를 양로원(우리 집에는 죽어도 안 있겠다고 해서)에 안치해놓고 위친이 보내온 시를 읽고 있는데 얘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빠, 경이가 왔수.

나는 하마트면 경이와 위친을 헛갈릴 번했다. 목소리가 비슷한 건 물론 둘 다 한국에 살았기 때문이다. 위친은 가담가담 자기의 목소리도 들려주어서 나는 그 목소리를 알고 있다.


사춘기 소녀가 숨어서

련애소설 훔쳐보듯

콩닥콩닥 뛰는 가슴

그대를 가만히 읽는다

나만의 은밀한 공간에서

폰 속의 프로필 사진만 봐도

온 세상으로 내게 다가와

봄꽃으로 웃게 하는 이


아무런 욕심이나 바람도

없다면 새빨간 거짓말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꿈속에만 헤매는 두 손

허겁지겁 감추면서,

아니 감출 수 없으면

차라리 등뒤에 숨기련다


어디선가 분명히

목소리가 들릴 것 같은 아침

스스로 붉어지는 웃음

빨간 노을 속에 숨긴다

그이의 그림자 한폭

꽃피는 정원에 숨겨놓고

날마다 가만히 포옹해본다


                           -문디 가시나가


이 위친이 오래전에 나를 딱 한번 보았다는데 얼마 전 위챗그룹에서 나를 보자마자 알아보고 친추를 해왔다. 물론 나는 기억에 없다. 작가 J씨하고 내가 그녀의 다방으로 갔더란다. 그 다방녀자가 지금은 한국에서 시를 쓰고 있다. 저 <바보>라는 시도 그녀가 쓴 거다. 이니셜은 H.

“오빤 채팅을 많이 하나 봐?”

경이가 물었다.

“보통 안하는데 아는 사람과는 좀 하지. 왜?”

“아까부터 폰을 자꾸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아~ 내 동생되는 녀자애가 시를 쓰는데 시를 보내와서 잠간 보고 있었어.”

“어디 사는데? 나도 알아?”

“한국. 넌 몰라.”

“시집? 아니면 돈벌이? 애는?”

“몰라. 안 물어봤어.”

그 때였다. 수지에게서 문자가 왔다. 저예요, 수지. 지금 북경이예요. 일본으로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환승절차를 밟고 있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일본 도착하면 메일 드릴게요. 건강히 계세요!

“모르면서 동생이래.”

“그럴 수도 있지 뭐. 흐흐.”

내가 웃었다.

“언젠가는 만나야겠네?”

“그래야겠지.”

“오빤 날 데리구 산으로 나물 뜯으러 가던 일이 생각 나?”

“그런 일이 있었어?”

“있었지 그럼. 우리 오빠가 안 데리구 가서 내가 오빠한테 청들었었잖아. 산에서 오빠가 말발굽버섯도 알려줬었어, 나한테.”

“그런 일도 있었네. 말하니까 좀씩 생각날가 한다.”

“오빤 내 첫사랑이야. 나에게 남자를 알게 해준. 아, 짝사랑인가?”

“죄꼬만 게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나이 먹었다는 증거. 히히.”

“언제 돌아가는데?”

“랠 가야 돼요. 온 지 벌써 닷새 넘었어.”

“오, 그래.”

“오빠.”

“왜.”

“우리 발안마하러 갈래? 아까 들어오면서 보니 맞은켠이 ‘왕부족도’던데.”

“그건 또 어느새 봤냐. 가자.”

우리는 서둘러 계산하고 뀀점을 나왔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우리는 ‘왕부족도’로 들어갔다.

안마복으로 갈아입고 제각기 침대를 차지하고 눕자 경이가 말을 걸어왔다.

“오빠, 오빤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야?”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거기가 어딘데?”

“아프리카대륙의 최고봉. 탄자니아 북동부에 있는 성층화산으로서 만년설에 덮여있으며 장백산 천지처럼 칼데라호가 분화구에 존재하는데 최고 수심이 300메터야.”

“그런데 거긴 왜 가고 싶은데?”

“몰라. 그냥 가고 싶어. 가면 재밌을 것 같아.”

“알다가도 모르겠어. 어렸을 때도 오빤 늘 남보다 뭔가 다르더니…”


눈물로도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 있다면

욕설로도 삼켜지지 않는 아픔이 있다면

떠나자, 검은 대륙의 흰 산을 향해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뒤에 있다’는 것을

견디는 힘도 힘이라는 것을 믿게 해주는

높고 큰 산으로 가는 길


“넌 가보고 싶은데 없어?”

“없어. 오빠 따라 가보면 안될가?”

“좋지. 근데 네 남편이 동의하겠냐?”

“남편은 상관없어. 사랑으로 결혼한 것도 아니고 살기 위해서 만난 건데 뭐.”

“그래두 그렇지.”

“오빠 마누라는 오빠한테 잘해줘? 둘은 련애결혼한 거야?”

“그렇다고 봐야겠지. 지금 한국에 나가있어. 집도 차도 다 그 녀자가 벌어서 산 거야.”

“차도 있어?”

“그 차가 나한텐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지 몰라. 아버지한테 다녀와, 애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와, 앓는 큰처형한테도 가봐, 장모한테도… 내겐 그야말로 없어선 안될 존재야.”

“마누라 잘 만났네.”

“다들 그렇게 말하긴 하지. 나보다 열살 어려.”

“이제 보니 오빠 도둑놈이구나.”

두런두런 말하는 새에 안마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갈라져있으니까 그립지 않아?”

“그립지 않다면?”

“애인 만들었어?”

“만들어야 돼?”

“별로 오빠한텐 있을 것 같아서.”

안마가 끝나고서도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그냥 누워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방에 남아있는 게 나와 경이가 옳은가 하는, 웃집 오빠와 아래집 누이.

그러고 보니 우리가 여기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좀은 요상했다. 아무리 웃집 오빠, 아래집 누이 사이라지만 아무도 없는 빈 안마방에 남녀가 나란히 누워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나는 새삼 경이가 나를 여기 오자고 한 저의가 의심스러워났다. 왜 그랬을가? 나더러 자기를 어째달라고? 아니라고 하자니 적당히 갖다댈 거리가 없었다.

“아무튼 오빠 오늘 고마웠소.”

경이가 돌아앉아 옷을 갈아입고 있다.

순간 나는 정수리를 핥고 지나가는 어떤 아뜩한 회오리 한가닥을 느꼈다. 그것은 그대로 나를 경이에게 떠밀었고 다음 순간 나는 경이를 뒤로부터 힘껏 껴안고 있었다. 이러지 않으면 넌 나를 남자도 아니라고 하겠지! 내 손이 경이의 젖가슴을 헤집고 있었다.

“오빠 이러지 마. 우리 이러면 안돼. 우린 오빠동생이잖아.”

경이가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안되는 게 어딨어. 안되는 것도 되게 하는 게 지금 현실이야.”

“오빠한텐 내가 녀자로 보여? 우리 이러면 더 이상 오빠동생이 될 수 없잖아. 난 오빠를 잃고 싶지 않아.”

“그럼 왜 여기 오자고 했는데?”

“오빠가 편하니까.”

“그렇구나.”

나는 우악스레 움켜쥐였던 경이의 젖가슴에서 손을 슬며시 떼여냈다. 그리곤 뒤로 물러나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내가 널 오해했구나. 미안하다.”

“오빠 하고 싶었어? 오래동안 못했구나.”

“그만 갈가?”

나는 옷을 주어입었다. 경이가 내 옆에 와서 손을 잡아주었다.

“오빠 마음 너르게 가져. 오늘 일 없던 일로 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있던 일이 어떻게 없던 일이 돼. 너 지금 나를 엿 먹이는 거야. 보란 듯이 개좆 먹이고 있는 거라구. 이제 내가 너를 어떻게 보냐. 나는 동생 하나를 잃었다.

밖에 나와 경이를 택시에 실어보낼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서 빨리 이 자리를 모면하기만 바랐다.

택시에 오르면서 경이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 그냥 오빠동생 맞는 거지? 오빠 자꾸 생각하지 마.”

경이를 태운 택시가 내게서 멀어져갔다. 그 때서야 나는 비로소 얼굴을 반쯤 들고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오늘 참 많은 일들이 생겼다. 수지가 일본으로 갔고 아버지가 투도 로친네에게 쫓겨나 양로원에 갔으며 나는 20여년 만에 만난 아래집 누이를 젖을 주물렀다가 잃고 말았다. 그리고 위친한테서 시 두수를 받았었지.


화사한 해살과

부드러운 실바람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날

낯설은 그이를 만났어요


도톰한 입술 보일 때

두근거림의 설레임

무슨 말 전할가 궁금했어요

헤벌린 입술 뜨거워질 때

목마르는 조바심에

자꾸만 귀 기울여졌어요


바보스런 속셈 들켰나봐요

그이 웃음 하늘 찢더니

얼굴이 하얗게 타버리는군요

타버린 재 속에 수천수만마리

흰나비 날고…

뿌리 박힌 두 다리

휘청거릴 때

떨어지는 꽃잎마다 그이였어요


전 비로소 그일 보았어요

빈 가지 사이사이

오돌찬 깊은 침묵들이

먹먹함으로

울먹이게 만들었어요

푸른 꿈 잊지 말라며

연두색 엽서 전하며

내 등을 떠민 그이


그이의 화려한 몰락이

저에게 꽃길이 되다니

눈앞은 온통

그이의 살갗으로 흐드러져

난 그만 주저앉고 말았어요

펑펑 울고 말았어요


                                   -벗꽃 질 무렵


이 시를 보는 순간 나는 왜 그렇게 울고 싶어졌는지 모른다. 그것은 그토록 강렬했고 파도와도 같은 것이였다.

눈물바다 우로 킬리만자로산이 둥실둥실 떠오고 있었다. 해괴하면서도 아이러니한 것은 칼데라호 한뼘 되는 곳에 아버지 집 라이라크 우듬지에서 보았던 그 달이 벌겋게 떠있다는 것이다.


그 날 밤 한밤중에 나는 전화기를 거꾸로 잡고 이렇게 마누라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너 나를 사랑하기나 한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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