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태일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수필, 시 수십 편 발표. 수상 다수
[서울=동북아신문]가을의 싸늘한 바람이 김 씨 아줌마의 검은 얼굴을 스치며 희끗희끗한 산발머리를 마구 뒤흔든다. 그녀는 아들의 시험지를 보고 나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허무하고 암담한 기운이 온몸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들! 한번이라도 꼴찌는 말고 마지막 두 번째는 할 수 없느냐?”

그녀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아들에게 말하였다. 그녀는 아들과 그 옆에 멍하니 자기만 바라보는 김 씨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면서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김 씨는 마누라의 칼날 같은 눈길을 피해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가물에 콩 나듯이 자란 수염을 하나씩 뽑으며 메기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엄마, 나는 교과서만 보면 엄마가 아빠를 집에서 쫓아내는 것처럼, 머리에서 글자를 자꾸 쫓아네” 아들은 울먹이며 말하였다.

“애비가 공부할 때 늘 꼴찌를 했으니까, 아들도 그 모양이지 흥!”

비록 아빠 흉을 보았지만 자기도 가슴이 찔리는 곳이 있었다. 사실 자기도 어린 시절 공부할 때 한 번도 제일 마지막으로 5위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녀는 부모들의 유전자가 아들에게 붕어빵처럼 그대로 찍혔다는 것을 번연히 알지만 어쩐지 가슴속에는 말 못할 분노가 치솟았다. 이때, 옆에 태여 날 때부터 한쪽 눈 밖에 없는 검은 강아지가 그녀를 원망하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강아지를 힘껏 차버리자 강아지는 죽는다고 소리치며 달아 나버렸다.

푸른 가을하늘에서 황금빛 햇살이 기분 좋게 쏟아지는 어느 일요일 아침, 김 씨 아줌마는 금방 일어나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는 김 씨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콧구멍은 그만 후비고 눈곱이나 닦아요, 오늘, 나는 친정에 다녀와야겠어요. 당신은 마트 옆에 사는 김기석 아들 결혼 집에 다녀와요.”

오늘 어디 가서 술 한 잔 할까 고민 중이던 김 씨의 얼굴에서는 꽃구름이 피어올랐다. 김 씨의 이름은 김 사장이고,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을 하고 있다. 김 사장은 큰 키에 사팔 눈이고 얼굴색은 숯가마처럼 검고, 메기입은 항상 벌어져 있었다. 그는 사팔눈을 옆으로 희번덕이며 새 옷을 갈아 입혀 주는 자기보다 머리 하나 작은 마누라를 내려다보았다. 마누라는 여느 때와 같이 오늘도 결혼 집 가서 술을 적게 먹고 아무 여자들을 함부로 끌어안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는 대답은 하였지만 무엇 때문에 대답을 하였는지는 자기도 모른다.

김 사장은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고 총각 때는 뿌리가 없는 부초 같이 떠돌아다니다가 하늘이 고맙게 그에게 지금 이 마누라를 선사하였다. 김 사장은 비록 마누라는 두 살 위이고 다리가 짧고 얼굴은 검지만, 그래도 이런 마누라가 아들도 낳아주고 밥, 빨래를 해주니 정말 감사할 뿐이다. 때로는 마누라가 남자 못지않게 검은 털이 자란 짧은 팔을 휘두르고, 소나무껍질 같이 거친 손으로 자기의 귀를 사정없이 잡아 당겨도,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외톨이 장씨, 정씨 보다는 훨씬 행복 하다고 늘 생각했다.

마누라가 입혀준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 마누라가 알려 준 웨딩홀에 찾아 갔다. 옛날에는 마누라 꽁무니만 따라다니면서 웨딩홀을 찾을 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오늘만은 혼자서 찾아가는데 엄청 신경을 썼다. 3층에 올라가니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한 개 층에서도 여러 곳으로 나누어 결혼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결혼하는 간판명단에 1호실은 “부친: 김 기식” 3호실은 “부친: 김 기석” 라고 써놓았다. 그는 갑자기 마누라가 알려 준 이름을 기억할 수 없어 두뇌가 하얗게 되었다. 이때, 한 사람이 자기를 툭 치며 높은 소리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니, 김 사장 아니야, 참 고마워, 우리 조카 결혼식에 참가하려 와서…”

소리 나는 쪽으로 초점이 분명치 못한 사팔 눈으로 내려다보니 늘 같이 일용직 다니던 난쟁이 황 씨이었다. 그는 카운트에서 돈 봉투를 접수하고 있는 이쁜 아가씨를 넋 없이 바라보다가 봉투에 이름도 쓰지 않고 아가씨에게 넘겨주고 식권을 받아 쥐었다. 그는 난쟁이 황 씨와 함께 결혼식을 진행하는 홀 안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음악소리가 울리고 꽃잎을 뿌리며 신부가 김 사장 옆을 지날 때, 신부를 바라보는 순간 술 취한 것처럼 눈이 아찔하였다. 연정이 넘치는 눈길, 맑은 피부, 앵두 같은 붉은 입술은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그는 갑자기 자기 마누라의 검은 얼굴, 굵고 짧은 두 팔에 검은 털이 장마철에 잔디 풀 같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떠올랐다. 그는 마누라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자 연신 고개를 흔드는 모습은 마치 얼굴에 붙은 파리를 쫓는 것 같았다.

김 사장은 오늘 왠지 가슴이 뛰고 몹시 흥분 상태이었다. 결혼식을 끝내고 식당에 왔을 때 같이 앉은 테이블에는 난쟁이 황 씨 이외에는 모두 젊은 여성들이었다. 젊은 여성들이 “김 사장”이라 호칭하며 술을 권하였다. 그는 부어주는 술을 사양도 하지 않고 마구 들어 삼키자 금방 술기운이 올랐다. 이때, 그 아름다운 신부가 다가와서 곱게 인사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술 한 잔씩 권하였다. 김 사장은 신부가 공손히 술잔에 술을 부을 때 가슴이 뛰고 긴장하여 술잔 잡은 손이 풍 맞은 사람 같이 떨리었다.

의지로 육체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 되겠는가, 김 사장은 젊고 이뿐 여인들 앞에서 술을 적게 마시라는 마누라의 부탁은 구름 밖으로 날려 보내 버리고, 큰 술잔에 철철 넘치는 술을 연신 굽을 내였다. 건배를 한 그의 사팔 눈에 검은 눈자위가 핑~하니 풀렸다가 한참 주저더니 원상복귀 하였다. 그는 점차 하늘이 도는지 아니면 자기 머리가 도는지 분간도할 수없이 어지러워졌다.

김 사장은 이제 마누라의 부탁하는 말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또 난쟁이 황 씨를 따라 노래방으로 갔다. 노래방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노래 부르고 춤추고 있었다. 그는 늙은 아줌마들이나 젊은 새 각시들이나 상관 하지 않고, 그가 좋아하던 싫어하던 끌어않고 블루스를 추었다. 그는 자기가 마치 활짝 핀 꽃밭에서 왕 나비가 되어 춤추는 것 같았고 그 꽃들은 그에게 끝없는 기쁨과 환희를 선사하는 것 같았다. 여러 사람들이 김 사장 보고 노래 한 곡을 부르라고 하자 그는 마이크를 입에 바싹 대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노래를 불렀다. 음치인 그의 노래는 듣기가 너무 거북 하였다.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뒤를 돌아보니 같이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청각장애가 있는 아줌마 한 사람만 남았다. 그러나 주흥이 가시지 않아 자기 혼자 술잔에 술을 가득 부어 한꺼번에 들이키자 그의 사팔 눈은 또 초점을 잃고 검은 눈자위가 핑~하니 풀렸다가 5분 후에 원상복귀 하였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은 완전히 필름이 끊이고 말았다.

김 씨 아줌마가 마당 문에 들어섰을 때는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저녁노을이 빨갛게 불타고 있었다. 술에 취한 김 사장은 석양이 비치는 뜰 안에서 대(大)자로 반듯이 누어 얼굴을 노을이 비긴 가을하늘 향하여 코를 구는데 그 소리는 천둥소리를 방불케 하였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김 씨 아줌마는 머리에 뚜껑이 열렸다. 그는 갈퀴 같은 손으로 그의 귀를 잡아당기려 하다가 손을 멈추고 뚫어지게 신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비록 무식하고 둔하기는 해도 마치 돈 찍는 작은 기계마냥 건설현장에서 돈을 열심히 벌어 꼬박꼬박 자기에게 바치니 한 방면으로 고맙기는 하지만, 밖에 나가서 자기 몰래 동네 아줌마들과 술을 마시고, 길을 걸어 가다가 옆에 지나가는 젊고 예쁜 여성들의 엉덩이나 앞가슴을 몰래 훔쳐보는 것이 질색이었다. 그러나 김 씨 아줌마는 모든 것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욕심을 버리고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도 행복이라 생각하였다.

가을은 차츰 황홀한 꽃의 장막과 신선한 녹음을 거두고, 울긋불긋한 풍경화를 산과 들에는 물론, 도시에까지 펼치고 있었다. 또 일요일이 돌아 왔다. 아침에 김 사장 둘 부부는 시장 골목에 사는 체제네 집에 동서 생일을 축하하러 떠났다. 김 사장은 마누라를 앞에 새우고 마치 참새 뒤에 황새가 따라 가는 것처럼 두리번거리며 바싹 따르고 있었다. 가로수에서 떨어진 빨간 나무 잎이 김 사장 머리와 김 씨 아줌마의 머리위에 사뿐사뿐 떨어지고 있었다. 이때, 몸집이 뚱뚱한 50대 초반 되는 아줌마가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김 사장 댁, 전번 주일에 우리아들 결혼 한다고 청첩장까지 일부러 보냈는데 왜 참석 안했어? 나는 꼭 올 줄 알았는데…”

뚱뚱한 아줌마는 원망하는 어조로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뭐요! 참석 하지 않았다구요? 분명 우리 집 애기 아빠가 참석하러 갔는데 무슨 얘기에요?”

“뭐? 참석 했다고 웃기고 있네, 거짓말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거야,”

뚱뚱한 아줌마는 어떤 물체를 덮치려고 몸을 가누고 있는 표범 같은 인상이었다.

김 씨 마누라는 엉거주춤 옆에 서있는 김 씨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정말이에요? 당신 얘기 쫌 해보아요, 정말 참석 했지요?”

 

이때, 사팔 눈을 희번덕거리며 두 아줌마를 번갈아 보던 김 씨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속을 훑어 낸 박처럼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날 결혼식에 김 기석, 김 기식, 혹시 내가 부조금을 잘 못 주었나?’

“아, 그, 그, 그것 말이야, 혹시 잘못 줄 수도 있어……”

이때, 옆에 있던 뚱뚱한 아줌마는 펄펄 뛰며 마구 소리를 쳤다.

“신랑 단속 잘하라구! 옛날처럼 부조금으로 남 여자들과 술 마신 것 아니야?”

듣고 있던 김 씨 마누라의 입에서 허연 침이 밥솥에 뿜어 나오는 거품 같이 사방으로 튕겨 나왔다.

“아이구, 이 인간아. 어떤 년들하고 부조금으로 술 퍼 먹었는지, 빨리 말해봐, 오늘 내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녀는 한쪽 손으로 김 사장의 어깨를 꼭 쥐고 마치 높은 나무에 달린 과일을 따듯이 풀쩍 뛰어 올라 코끼리 같은 큰 귀를 잡고 힘껏 잡아당기었다. 김 사장은 아파 죽는다고 고함치지만 귀에서는 이미 붉은 피가 시커먼 목덜미를 타고 흘러 내렸다.

“이 인간아, 어느 년들하고 부조금으로 술 마셨는지 빨리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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