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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김정룡의 역사문화칼럼] '주나라의 우환의식'을 논하며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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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3  13: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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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룡: 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 소장, 중국동포타운신문 주간. 칼럼집/소설집 다수 출간

[서울=동북아신문]사서오경에 속하는『역경』을 주역(역경과 역전으로 이뤄졌음)이라고도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괘는 복희가 발명하였다고 하니『역경』은 주나라 훨씬 이전부터 지어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주역』은 상나라와 주나라 교체기에 지어졌다는 이유에서 그 명칭이 유래된 것이고 저자는 당시 주문왕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문왕의 독자적인 작품이 아니라 주공을 비롯한 여러 현자의 공동작품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주역』은 64괘로 끝나는데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제63괘가 ‘기제(旣濟)’이고 맨 끝인 제64괘를 ‘미제(未濟)’로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濟’는 성공을 뜻하며 ‘기제’는 이미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미제’는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제64괘가 ‘기제’로 끝나는 것이 도리인데 ‘미제’로 남겨놓다니?

뭐가 끝이 아닌가? 비록 성공을 거뒀으나 성공이 끝이 아니고 앞으로 닥쳐올 재앙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성공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제’ 뒤에 또 ‘미제’를 남겨놓은 것은 우환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눈앞의 승리에 도취되지 말고 시시때때로 걱정하고 경각심을 높여 실패를 맞지 않게 만반으로 대비하기 위한 책략이었다.

주나라 초기 우환의식이란 무엇이었을까? 주나라가 이미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였는데 무엇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정권 수립 초기부터 실패를 걱정하다니? 당시 우환의식의 주인공은 주공이었다. 주공의 이와 같은 걱정은 기우가 아닌가? 절대 아니다. 주공에게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지으면서 걱정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주나라인은 상나라를 너무 쉽게 무너뜨렸다. 이것이 곧바로 주공의 걱정이었다. 아주 작은 대가로 너무 큰 것을 얻었으니 불안하다는 것이다.

강대했던 상나라가 쉽게 무너진 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순장제도와 인간제물 때문에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아 민심을 크게 잃었다. 민심은 곧 천심, 자고로 민심을 잃은 정권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둘째, 과도한 제사의식과 광기 나체무도회 같은 ‘호화파티’ 때문에 국고가 거덜 나고 재정이 파탄 났다. 셋째, 상나라를 지켜야할 장병들이 총부리를 적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왕(紂王)에게 돌렸다. 덕분에 주나라 군대는 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쉽게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주무왕(周武王)을 비롯해 주나라 전체가 승리에 취해 있었는데 주공은 잠을 설쳐가면서 걱정하고 있었다. 정권이 빼앗긴 것에 불복하는 상나라 관리들이 저항할 것인데 그들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완민(頑民:주나라에 저항하는 상나라 유민들)을 어떻게 보듬을 것인가? 주나라 왕실과 왕족들에게 어떻게 전리품인 재부를 분배할 것인가? 주나라 전공자(戰功者)들에게 어떻게 논공행상을 치를 것인가? 상나라를 무너뜨리는데 있어서 주나라에 협력한 주변 여러 방국들에게 어떻게 재부를 골고루 나눠줄 것인가? 등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 해 있었다.

앞 정권을 전복하고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는 입국초기에 흔히 두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실시한다. 힘으로 죽이고 탄압하고 몰아내고 빼앗고 하는 강압책이요, 다른 하나는 미운 놈 떡 하나라도 더 주는 민심을 달래는 회유책이다. 주공이 선택한 것은 강압책이 아닌 회유책이었다. 봉토건국으로 정치제도를 확립하였고, 정전제로 경제제도를 마련했으며, 종법제도로 사회제도를 구축하였고, 예악으로 문화를 자리매김 시켰다. 일련의 제도 시행 과정에 상나라 출신들을 배제하지 않았다. 기타 방국들도 차별하지 않고 똑 같이 혜택을 주었다. 이 네 가지 제도로 주공의 정치는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주공의 성공은 우환의식 덕분이었다.

3천년 이후 모택동에게도 우환의식이 강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시 지은 중국국가는 마치 싸움터에 나아가는 전투적인 행진곡인데 그 이유를 이런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 정권이 무너진 이유를 살펴보면 상나라의 멸망과 닮은데 많다. 첫째 민심을 잃은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민심을 잃은 것이 사실이지만 박 정권이 밀리기 시작한 것은 세월호사건인데 일국의 대통령이 수백 명의 피 끓는 청춘들의 목숨을 방치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국가의 존재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가 곧 백성을 지키기 위함인데 대통령으로서 세월호사건은 직무유기라는 것이다.
둘째 나랏돈을 쌈짓돈처럼 잔치를 벌인 것이요. 셋째 박은 주왕(紂王)처럼 백성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자기만의 독립왕국에서 놀았기 때문에 실패했던 것이다.
넷째 박의 탄핵에 있어서 당시 여당 의원들이 큰 역할을 했는데 상나라 장병들이 주왕에게 총부리를 겨눈 사건과 닮았다.

문재인 정부는 박의 정권이 민심을 잃고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무너진 덕분에 생각지 않게 조기에 앞당겨 정권을 잡았는데 주나라인이 천하를 쉽게 얻은 것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런데 주나라 초기 주공이라는 인물이 크게 걱정한 덕분에 주나라는 안정을 찾았고 중국문화 토대를 마련하는데 지대한 기여를 했으며 그의 아이디어는 청나라 말기까지 유효했다. 후세 사람들은 주공을 성인으로 받들어왔다.

9년여 만에 정권을 다시 잡은 진보를 대변하는 문재인 정부는 눈앞의 성과를 위해 액셀을 너무 힘껏 밟다보면 사고 나기 쉽다는 것을 명심하고 마땅히 주공처럼 걱정하는 우환의식 브레이크를 동반해야 굵고 짧은 정권이 아닌 가늘고 긴 장기적인 정권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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