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룡: 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 소장, 중국동포타운신문 주간. 칼럼집/소설집 다수 출간
[서울=동북아신문]‘고전을 읽으면 현재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나는 ‘역사문화를 알면 지혜가 생긴다.’고 말하고 싶다.

역사문화란 무엇인가?

세상만사 지식을 전부 섭렵하고 있는 똑똑하고 총명한 네이버 선생한테 물었다. 그런데 네이버 선생은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얼버무려 넘긴다.

“한국은 5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지닌 유구한 나라이다.”

뭐 이런 식이다.

역사문화란 무엇인지? 개념 내지 정의를 물었는데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것은 이 세상에 지금까지 역사문화에 대한 정확한 개념 혹은 정의가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 나름대로 역사문화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보았다.

역사문화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문화란 무엇인지부터 담론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문화에 대한 정의를 역시 가장 권위가 있는 네이버 선생에게 물었다.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잇따라 ‘문화라는 용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딱한 심정을 고백한다. 문화는 그것이 속한 담론의 맥락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다담론적 개념이란다. 예하면 서양에서 문화(culture)라는 말은 경작이나 재배 등을 뜻하는 라틴어(colo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중국역사를 살펴보고 문화의 정의를 내 나름대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문(文)은 본래 문(紋)이다.

문(紋)은 주름을 뜻하는 글자인데 본래 자연의 생김새(모양, 모습, 형상)를 의미하는데서 유래된 것이다.

중국의 경우 자연의 형상을 관찰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가장 기본적이고 만고불변의 법칙(룰)을 발견한다.

그 만고불변의 법칙이 바로 음양학이다.

음양학은 중국문화의 뿌리이자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문화로 자리매김해왔다.

음양학을 발견해서 뭘 하나?

자연의 음과 양의 법칙, 즉 문(紋)으로 인간사회를 깨우쳐(化) 왔던 것이다.

이것이 곧 문화이다.

자연의 음양의 법칙, 즉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 태양은 양이고 달은 음, 낮은 양이고 밤은 음, 산은 양이고, 골짜기는 음, 같은 하나의 몸에도 기는 양이고 혈은 음 등등의 모든 현상을 음과 양의 법칙으로 인간사회에 적용시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인류사회 진화에 기여해왔던 것이다.

문화와 역사문화, 이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역시 내 나름대로 터득한 지식을 역설해 보련다.

예하면 중국인은 물건을 일상생활에서 ‘物’라 부르지 않고 흔히 ‘뚱시(東西)’라고 말한다. ‘뚱시(東西)’는 말 그대로 방위론의 방향 동쪽과 서쪽을 합친 것이다.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물건을 왜 ‘남북(南北)이 아니고 하필 ‘뚱시(東西)’인가? 여기에는 그럴듯한 유래가 있다.

자아~ 물건을 ‘뚱시(東西)’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의 문화현상이라면 그 문화적인 유래를 밝히는 것이 바로 역사문화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설명하자면 문화는 현상이고 역사문화는 유래이다. 현상과 유래 관계를 물로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현상은 ‘流’이고 유래는 ‘源’이다. 문화는 ‘流’라면 역사문화는 ‘源’이다.

1992년 한중수교 이래 중국에 유학 간 유학파와 교한 교수 및 중국주재 기자 등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중국과 중국인 관련 글을 책으로 묶어 쏟아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책들은 절대다수가 ‘만만디’ ‘시끌벅적’ ‘무질서’ 등 중국인의 성격을 짚어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중국인이 왜 그러한 성격이 형성되었는지 그 유래를 밝히지 않았다. 밝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밝히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현재 중국인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성격이 문화(流)의 표현이라면 그러한 성격이 형성된 유래를 밝히는 것이 곧 역사문화(源)이다.

나는 지금까지 외국인이 지은 중국과 중국인 관련 글 중에 미국 선교사 아더 스미스(중국이름, 湯恩博)가 지은『중국인의 소질』이 최고라고 본다. 내가 이 책을 최고라고 선택한 이유는 중국인의 소질에 대해 일상생활에서 표현되는 기질(流, 문화현상)을 정확히 잘 짚어냈을 뿐만 아니라 그 유래(源)를 잘 밝혀냈기 때문이다.

아더 스미스의『중국인의 소질』이 1904년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아세아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번역 출간(일본어판 제목은『지나인의 기질』)했다. 한 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아더 스미스를 뛰어넘는 글을 나는 보지 못했다.

아더 스미스는 나의 글쓰기 본보기이다.

아더 스미스는 이 책에서 중국인이 시끌벅적하다는 민족기질을 짚어내고 그 유래를 잘 밝혔다.

아더 스미스의 말이다.

“중국인은 수천 년 동안 유일한 오락이 곧 희극(戱劇)이다. 희극은 남분여장(男扮女裝)하고 여자의 목소리를 내는데 관객으로 하여금 귀청이 따갑고 고막이 터질 지경으로 높이 깽깽 소리친다. 중국인은 수천 년 동안 희극에 빠져서 사람마다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을 희극 중의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소리를 높인다. 일상대화도 희극처럼 말하기 때문에 마치 싸우는 것과 같이 소리 높다. 상대가 소리 높이면 나도 따라서 더 높이고 결국 소리 높은 놈이 이긴다는 하나의 기이한 ‘문화’가 생겨나고 전해왔다.”

외국인이 중국인을 부르는 하나의 대명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만만디’이다.

중국인의 ‘만만디’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중국인의 발상지는 황하중하류 지역이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물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수질이 굉장히 나쁘다. 수질이 나쁜 물을 냉수 그대로 마시면 배탈이 나고 시간이 오래되면 토질병을 비롯해 각종 몹쓸 병에 걸린다. 그래서 물을 깨끗하게 마시려면 끓여서 먹는 습관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땔감을 주로 나무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중원지역은 산이 매우 적고 따라서 나무도 적다. 땔감이 부족한 상황에서 불을 지피고 물을 끓이는 작업이 어려웠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과정이 길고 복잡하지만 물을 끓여먹는 과정 속에서 인내심이 생겨 ‘만만디’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인이 ‘만만디’인 이유 또 한 가지 말하자면 중국은 땅이 크고 넓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발상지인 중원은 평야이기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환경이 사람의 마음을 트이게 만들고 따라서 ‘만만디’ 성격이 형성된다. 요즘은 기차속도가 빨라지고 비행기 이용률이 높아 괜찮지만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연길에서 광주에 가려면 보름씩 걸려야 했다. 한국 사람들이 어쩌다 연길에서 심양까지 하룻밤 기차 타고는 미칠 것 같았다고 말한다. 하룻밤 기차 타고 미친다면 중국인은 정상인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문화와 역사문화의 관계에 대해 한 가지 실례만 더 들어보자.

위에서 언급했듯이 중국인이 물건을 ‘物’이라고 하는 대신 보편적으로 ‘뚱시(東西)’라 부르는데 여기서 ‘뚱시(東西)’는 하나의 문화현상이고 왜 ‘뚱시(東西)’라 하는가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 바로 역사문화이다.

남송 때 유명한 학자 주희(朱熹)가 어느 하루 손에 대바구니 들고 장보러 길에 나섰는데 도중에 제자를 만난다.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어디로 가십니까?”

스승이 대답한다.

“음, 뚱시(東西) 사러 가네.”

제자가 의아해 물었다.

“스승님 왜 남북을 사지 않고 하필이면 뚱시(東西)를 사는가요?”

스승이 시무룩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자네 오행학설을 알지?”

제자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누구의 제자인데 당연히 알죠.”

스승이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그럼 답은 이미 나와 있다네.”

즉답을 듣지 못한 제자가 귀가하여 한참을 생각해보더니 무릎을 탁 쳤다. 답이 보였던 것이다.

오행학설에 의하면 동은 목(木), 남은 화(火), 서는 금(金), 북은 물(水), 중앙은 토(土)이다. 중원의 토는 황색이다. 중국황제의 곤룡포가 황색인 이유가 바로 여기서 유래되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대바구니에 만약 남인 불을 담으면 타버릴 것이고, 북인 물을 담으면 새버릴 것이 아닌가. 오직 동인 목과 서인 금을 담을 수 있으니 이를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이렇게 물건을 ‘뚱시(東西)’라 부른 장본인은 주희였고 그 후 중국 사람들은 이 어휘를 일상용어로 사용해왔던 것이다.

이탈리아 유명 철학자인 크로체는 “모든 현대사는 역사이다.”고 말했다. 뜻인즉 현재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은 우연히 아니라 역사의 관성 표현이라는 것이다.

예하면 2008년 북경올림픽 개막식 주제는 공자였다. 그런데 역사문화를 아는 자는 보자마자 이를 터득할 수 있지만 역사문화를 모르는 자는 도끼비가 기와장 펼치듯 그냥 화면이 멋있다든지, ‘중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웅장하게 하네.’라는 탄성을 지을 뿐이다.

중국역사에서 스케일이 큰 황제를 꼽으라면 한 무제와 수양제 및 영락제이다. 영락제는 앞 두 황제의 스케일을 능가하려고 자금성을 축조하였고, 남수북조 운하를 팠고, 만리장성을 보수하고, 정화를 세계 탐문에 나서게 하였던 것이다.

수양제의 스케일은 다른 것 다 제쳐놓고 매년 보름 때면 주변 사신을 불러들이고 횃불 든 자 1만8천명, 악사만 1만5천명 규모의 대형 파티를 개최하였던 것이다.

왜?

대국의 위엄을 주변국에 보여주기 위해서.

결론은 뭐냐?

2008년 북경올림픽 개막식 장대한 스키일이 이미 역사에 있었고 그러한 역사문화가 현대에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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