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희 수필가, 전동포모니터링단장, 재한동포문인협회 전회장, 수필/수기 백여편 발표. 수상 다수
[서울=동북아신문]수다쟁이 아줌마는 못 말려 저녁시간에 미국에서 온 한 젊은 기자와의 인터뷰가 잡혔다. 30분이면 충분하다고 한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2시간이나 지났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마웠다는 메시지까지 받았지만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곰곰이 되새겨 보았더니 카메라로 찍은 영상은 얼마 되지 않는데 기자가 묻지도 않고 궁금해 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내가 흥분해서 본론보다 더 많이 이야기 한 것 때문이었다. 또다시 수다쟁이가 돼버린 것이다.

이처럼 누구를 만나기만 하면 아예 입을 널어놓고 있는 나 자신을 처음으로 감각한 것은 40대 후반이었나 아니면 그보다 더 전이였을 수도 있다. 다음에 누구를 만나든 조심해야지 하고 다짐을 하건만 정작 만만한 상대를 만나면 입 지퍼가 스윽 저절로 열린다. 오, 못 말리는 수다쟁이 아줌마여 백과사전을 보았더니 수다쟁이란 말이 너무 많아 시끄러울 정도의 행위를 말한다고 적혀있었다. 이런 캐릭터는 말 칸(캐릭터의 대사가 들어가는 테두리 있는 칸)만 가지고 배경처리를 할 정도까지 떠들어댄다는 것이다.

수다쟁이의 성별은 가끔은 남자도 있겠지만 대부분 여자이다. 여자는 천성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깨여 있는 한 언제나 수다를 떤다. 혹시 잠을 자면 조용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잠꼬대로 수다를 떤다. 자칭 과묵이지만 가볍고 경박한 성격의 까불이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자존심이 센 캐릭터들에게는 대차게 미움 받는 것과 동시에 품격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신나게 까이는 경우가 항상 있다. 수다쟁이의 연령대로 보면 젊은 층보다 40~50대가 위주인 것 같다. 나로 예로 들면 친구와 기본상 40분 이상 통화를 해야 직성이 풀리고 때로는 한 시간 이상 통화할 때도 있다. 만약 수다를 하지 않는다면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 하고 참지 못해서 통화를 하고 나면 몇 년간 체했던 것이 뻥 뚫리는 듯싶다.

수다쟁이는 안전성이 제로이다. 수다쟁이의 사전에 '침묵', '비밀'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밀을 말하면 그 비밀은 불과 30분 만에 주위에 퍼지게 된다. 그래서 비밀을 엄수해야 할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기피된다. 게다가 이야기가 퍼지면서 과장이 덧붙기 때문에 결말이 나쁘다. 한번은 오래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밤을 새워 수다를 떨었는데 그 내용을 비밀로 해달라는 친구의 부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방송에 나와야 할 내빈이 갑자기 이유 없이 펑크를 내버렸다. 급한 김에 나는 노래 하나를 띄우는 사이에 하나의 주제를 내놓고 화제토론을 벌리게 했다. 나는 친구가 나한테 한 이야기를 주제로 방송내용을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방송을 들은 친구의 남편이 밖에 나가서 시집 흉을 봤다고 쥐 잡듯 친구를 잡는 바람에 하마터면 나까지 그 집에 불려갈 뻔 했다. 수다를 넘어서 친구의 비밀을 지켜주지 못한 나는 지금까지도 그 친구한테 전화를 먼저 하지 못한다. 수다쟁이의 성능은 아주 특별해서 아마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나이가 들면 기력이 떨어져 수다가 줄어들 것도 하련만 점점 수다는 늘어나는 것 같다. 특히 행사가 있거나 모임이 있으면 그 일주일 전부터 전화통은 열이 오른다. 문자를 주고받을 수도 있는데 굳이 전화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문자를 하면 갑갑하고 더디고 교감이 쉽게 빨리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동창만회를 준비 중에 있는데 만나기 전에 수다로 이미 50%의 정보는 확보를 하고 있다. 자녀문제 남편문제 부모문제 형제문제 건강문제 등을 이미 전화통화로 알고 있지만 정작 만나서도 술 먹는 시간보다 신원을 캐는 시간이 한사람에 거의 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30여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니 보통 사람도 아닌 수다쟁이가 할 말은 더 많을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싶다. 수다쟁이들을 보면서 한심해 하고 답답해하는 주위의 분들도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수다를 떠는 것은 단순히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갱년기여성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며 우울증치료와 예방에도 한 몫하고 있으며 그 어떠한 화려한 외출보다 더 유혹적이고 효과적인 여성들의 건강관리비결임이 틀림없다. 술과 담배도 하지 않고 일전 한 푼 쓰지도 않으면서 내 입을 놀려서 하는 수다 그것을 통해서 여성들이 기분이 좋아진다면 가족들의 밥상이 풍성해지고 살림이 윤기날 것이며 부드럽고 매너 있는 여성으로 되돌아 갈수 있으니 이것은 일거양득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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