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숙 약력: 중국 벌리현 교사 출신. 집안 심양 등지에서 사업체 운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수필, 시 수십 편 발표.
[서울=동북아신문]얼마 전에 북경에 있는 공예품 소장가인 지인에게서 19세기 청(淸)의 광서제(光緖帝) 때에 만든 계영배(戒盈杯)를 본떠서 20세기에 만든 것을 선물 받았다. 참으로 신기한 술잔이었다. 술잔을 7할까지 채울 때에는 괜찮지만 그 이상을 채우면 사이펀 효과로 인해 술이 밑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장치를 가진 술잔이었다.

계영배는 보통 잔과 비슷해 보이지만, 중심에 기둥이 하나 서 있다. 중심 기둥은 잔 다리와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으며, 기둥뿌리와 잔 다리 바닥에는 구멍이 하나씩 있다.  기둥뿌리의 구멍은 위로 기둥 꼭대기 내부의 공간으로 연결되고, 이 공간은 다시 아래로 다리 바닥의 구멍에 연결된다. 잔을 채우면 채워진 액체가 기둥뿌리의 구멍으로 들어가 파스칼의 원리를 통해 중앙기둥 꼭대기 내부의 공간도 채우게 된다.  그 것은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신기한 그 술잔을 보노라니 입가장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마음 속에 넘쳐나는 자신의 과욕(過慾)을 엿본 느낌이다.  사실 삶의 원동력은 욕망이다. 하지만 욕망의 동기가 무엇이고 얼마만큼 추구하고 어떻게 추구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나의 욕망은 결핍 욕망인가 아니면 성장 욕망인가를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내 과욕이 7할을 넘지 않았냐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마음에 걸리는 욕망이 바로 떠오른다. 쇼핑, 바로 그런 것이다. 예전에는 쇼핑이 하나의 취미라고만 생각했다. 쇼핑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만 생각했던 것이다. 분수를 모르고 두 주에 한 번씩은 꼭 쇼핑을 했던 것 같다. 마음의 목마름을 계속 물질로 채우려고 하다 보니 정서적인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주말마다 갔던 적도 있고, 어떤 때에는 한 주에 두세 번 씩 갔던 적도 있다. 그냥 구경이나 하자고 갔다가 매장 직원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 충동구매를 할 때도 많았다. 2년 전, 가게를 하면서 어려움이 닥치지 않았다면 나는 그 욕망을 계속 버리지 못했을 지 모른다. 출구통제를 못하면 번뇌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욕망소비의 쓴 맛을 단단히 보게 되었다. 옷장의 옷은 쌓였어도 장사의 돈은 제대로 돌지 못했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했다. 어려움 속에서 나는 돈의 분수를 찾게 되었다. 돈의 출구를 엄격히 분석해보게 되었다. 돈을 쓴 흔적 속 에서 욕망소비자인 나를 찾아냈다. 통제 안 되던 욕망소비자는 출구 관리자 앞에서 머리를 수그리게 되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면서 새해의 계획과 목표를 세우 군 한다. 나는 새해의 첫 번째 목표를 욕망소비 없애기로 정했다. 목표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실천이다. 습관을 고치기란 어쩌면 상처를 소독해내는 것을 참아내야 하는 것과도 같은 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 서점에 갔다 오던 길에 백화점을 지나게 되었다. 구경이나 하자하고 들렀는데 말이 구경이지 보면 사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이 옷 저 옷 영업원이 추천해주는 옷을 입어 보니 그 중에 나한테 어울리는 옷이 있었다. 세일기간이라며 20~30% 할인한다고 한다. 옷과 영업원이 엇갈아가며 나를 유혹한다. 예전 같으면 온 김에 봤던 김에 샀을 것이다. 문뜩 나는 새해 결심과 옷장 안에 있는 내 옷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 마음속의 내가 나를 나무랐다. “ 또 욕망소비 하려고? 있는 옷도 충분한데. 돈을 쓰는 흔적 속에 너의 인생이 담겨져 있다.” 나는 욕망을 겨우 억누르며 더 돌아보겠다는 핑계를 대고 그 가게를 나왔다. 한 바퀴 대충 돌다 백화점에서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 그래, 오늘은 잘 했어, 하마터면 새해 첫 번째 목표를 어기고 충동구매를 할 번했잖아! ’ 아무리 결심을 해도 실험을 하지 않으면 삶은 변하지 않는다.  어느 덧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다가온다. 봄이 오면 옛 덤불에서 새 풀이 돋아나고 고목에도 꽃이 피어난다. 땅속에서도 땅위에서도 새 생명을 만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 마음속에서도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예전처럼 쇼핑을 자주 못해도 나는 센티멘털하지 않았다. 오히려 늦게나마 성숙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심 속에 옮겨진 백합보다 야생화 나리꽃이 더 예쁘게 느껴지고 화려한 밥상보다 소박하고 건강에 이로운 시골밥상을, 신비로움을 추구하기 보다는 자연스러움을 대견하게 여기게 되었다.  두주만 쇼핑을 안 하면 미칠 것만 같았던 나의 지나간 날들은 이제는 독서와 운동으로 취미가 바뀐다. 새해에 나의 결심을 실천에 옮길 것 같다. 그리고 과욕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한결 더 성숙되어 갈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머지않아 나에게 새로운 땅이 주어질 것이며 내 인생의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내 마음속에 항상 계영배(戒盈杯)가 함께 하고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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