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예금 약력: 중국 (흑룡강 오상) 방송국 1급 아나운서, 흑룡강신문, 흑룡강방송 특약기자. 2015년부터 수필 창작 시작, 흑룡강신문, 요녕신문, 송화강, 청년생활 다수 발표. 수차 KBS 한민족 방송 우수상 획득.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시낭송협회 분과장.  
[서울=동북아신문]햇빛이 좋다. 정말로 좋다.

가끔 스치는 찬바람에 온 몸이 오싹해지지만, 쏟아지는 강한 햇빛에 눈이 부시지만 나는 그 빛이 너무 좋아 해를 맞받아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이 햇빛을 단숨에 몸속에 빨아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에서 1년 넘게 산업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는 햇빛에 기갈이 들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8-9시부터 저녁 8-9시까지 실내에서 일을 하는 나에게 있어서 햇볕을 쬔다는 것은 큰 사치였다. 오전, 오후 십 분씩 쉴 때마다, 점심 휴식시간 때마다 나는 밖에 나가 볕 쪼임을 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짧아 전혀 성에 차지 않았다. 햇볕을 못 쬐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겠지만, 나는 다는 모르고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안다. 햇볕을 못 쬐면 체내에서 비타민D가 생성되지 않고 비타민D가 모자라면 칼슘이 잘 흡수되지 않으며 칼슘 부족은 골다공증을 초래한다. 그래서 난 칼슘과 비타민D 종합영양제를 사서 보충했다. 자연에서 그저 얻을 수 있는 것을 돈을 주고 인위적으로 얻어야 하는 현실에 마음이 씁쓸해졌다.

햇빛, 공기, 물, 이것들은 우리가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들에 대해 별로 특별한 감정 없이 살고 있다. 이것을 얻지 못하면 어떨까? 이것을 잃으면 어떨까 하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아마도 대부분일 것이다. 햇빛은 만물을 소생케 하고 만물에 왕성한 생명력을 부여해 준다. 그래서 햇빛, 공기, 물, 이것들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베푼 일반적 은총이라고 했다. 일반적인 것이어서 우리는 그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 같다. 그 소중함을 모른다. 그러니 감사함은 더 운운할 수 없다. 반면에 조물주로부터 “특별 은총”을 받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이 일반적 은총을 감사함으로 누리고 소중히 여길 때 “특별 은총”도 찾아오는 것이다. 이 이치를 깨닫기까지 나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2015년 3월 말의 어느 날, 한국에 있는 나에게 중국으로부터 반갑지 않은 소식이 날아왔다. 곧 직장에 복귀하라고 한다.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인가? 2003년 11월 현지 정부의 창업 부양정책에 힘입어 나는 창업한다는 명목으로 직장을 나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전제는 창업기간 월급을 한 푼도 까지 않고 지급받는 반면에 정부에서 언제든 호출하면 직장에 복귀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나 직장복귀를 맞은 것이다. 사표 처리가 되지 않으려면 복귀할 수밖에.

고향에 있는 집을 팔아치워 당장 거처할 데가 없는 것이 큰 걱정이었다. 옥단이, 철매, 일선이 등 친구들이 서로 자신들의 비어있는 집에 들어가 살라고 했다. 일단 직장 후배 홍남이 집에 짐을 풀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나는 민족 사무 촉진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집도 절도 없는 내 처지를 알게 된 촉진회 책임자분이 사무실에 방 한 칸이 비어있는데 침대도 있다면서 들어와 살라고 했다. 집세, 전기세, 관리비는 사무실에서 부담하는 거니까 들어와 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모두가 눈물겹게 고마웠다. 홍남이네서 두 주일 만에 나는 민족 사무 촉진회 사무실로 이사했다. 가장 집물(밥솥, 그릇, 수저)과 이부자리는 옥단이와 홍남이가 다 해결해주었다. 사려면 돈이 많이 든다며 이들은 집구석구석을 뒤적여 살림에 보탬이 될 것들은 다 가져다주었다. 또 색다른 음식이 생길 때마다 나를 집으로 초대했는데, 떠나올 때는 한 짐씩 쥐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둘 다 뭘 더 주고 싶어서 안달이다. 꼭 마치 시집간 딸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애쓰는 친정어머니 같다. “또 친정집에서 끌어가네.” 한 짐 가득 지고 이 두 친구 집을 나설 때마다 난 그저 이 한마디를 남기면 된다. 정년퇴직한 지 10년이 넘는 모교 황표 부교장은 흰 구레나룻을 날리면서 지팡이를 짚고 된장을 통조림통에 가득 담아왔다. 다 먹으면 또 가져다주겠다고 하면서. 참말로 감동 그 자체다.

우리는 자연에서는 햇빛, 공기, 물을 섭취하면서 살고 더불어 사는 인간 세상에서는 사랑과 정으로 산다. 풋풋한 인정, 정녕 인간 햇빛이다. 한때 나는 햇빛이 따사로운 줄을 몰랐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2~3년을 힘들게 보내면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마음의 여유, 정을 나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려 햇빛이 비쳐 들어 올 틈이 없었다. 하지만 해는 자그마한 틈이라도 허락하면 놓칠세라 신속하게 그 빛을 강하게 비추었다. 자신이 힘들다고 주변을 거의 외면하고 살았던 나를 이들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나의 몸에서는 가슴 찡해 나는 전율이 오래오래 여울 쳤다.

부모 자식 간, 형제간, 친척간의 사랑, 친구지간의 사랑과 우정, 이것들은 햇빛, 공기, 물 등 자연이 주는 혜택처럼 우리가 손만 뻗으면 누릴 수 있는 것들인 것 같다. 아니, 어쩜 손을 뻗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그 소중함과 감사함을 모르고 산다. 심지어 무시해 버리기도 한다. 사랑과 정, 감사함은 인간이 만들어 낸 햇빛이다. 하지만 햇빛보다 더 강렬한 힘을 갖고 있다. 그게 바로 치유의 힘인 것이다. 상처받은 마음, 아픈 마음, 병든 마음을 치유해주고 있다.

따사로운 햇빛을 만끽할 수 있어 정말 좋다. 햇빛을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 나누어야겠다. 나눔이 감사를 낳고 감사가 나눔을 낳는다고 한다. 나는 매일 열심히 감사 제목을 찾고 있다. 우선 나가 나 된 것에 감사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감사하다. 내가 전에 우울증을 앓았던 건 바로 이 점을 깨닫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잃은 것에 대한 통분함과 슬픔, 그리고 원망, 불평이 한 가슴 가득해서 그 고통의 터널에서 벗어 나오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있었다면 우울증은 아마 내 근처에 얼씬도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감사함에서 발산되어 나가는 따스함으로 주변의 힘든 사람들을 살렸을 것이다. 생리학적으로도 마음에 감사함이 넘치고 기쁨이 넘칠 때 체내에서는 자체 면역력을 높여주고 자체 치유를 할 수 있는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이 분비된다고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치는 햇빛, 소중한 햇빛을 받아 안으면서 나는 비쳐오는 그 빛을 다시 반사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 마음이 한결 따뜻해진다. 뜨거워진다. 강렬한 햇빛마냥 내 안에서 뿜어져 나가는 강한 열기가 느껴진다.

햇빛이 좋다. 정말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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