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룡: 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 소장, 중국동포타운신문 주간. 칼럼집/소설집 다수 출간
[서울=동북아신문]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는 사건이 일어나 아침 8~9시 태양과도 같은 300여 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문제는 ‘골든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서둘렀더면 능히 구조할 수 있었는데 정부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는 것이고 그 최종 책임은 푸른 기와집 여주인에게 화살이 꽂혔다.

푸른 기와집 여주인이 화살의 표적이 된 이유는 국가의 존재는 백성을 지키기 위함이요, 그 최종 의무와 책임이 바로 그녀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도리는 4~5천 년 전 국가가 세워진 이래 줄곧 전해온 아주 기본적인 상식인데도 300여 명의 청춘이 차디찬 바다에 가라앉아 목숨을 잃을 때까지 그녀는 뭐 했나? 이것이 이른바 ‘세월호 7시간의 비밀’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진들은 그녀가 근무했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뭘 했냐? 이렇게 그녀의 책임론이 도마 위에 오르자 ‘한 배를 타고 있던’ 심기가 불편한 새누리당(현재 자유한국당) 00의원이 변명조로 “대통령은 놀아도 된다”는 발언을 해서 붙는 불에 키질이요, 끓는 가마에 기름 붙기여서 국민을 더욱 들끓게 만들었다.

필자는 “대통령은 놀아도 된다”는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정말 놀아도 될까?
된다!
문제는 어떤 대통령인가는 것이다. 즉 놀아도 될 대통령이 있고 놀면 안 되는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놀아도 되는 대통령을 살펴보자.

놀아도 되는 대통령은 반드시 전제조건이 있다. 큰 틀을 마련해 놓고 놀아도 놀라는 것이다.
노자는 “정도(正道)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계(奇計)로 군대를 움직이고 무사(無事)로 천하를 취한다”고 했다. 푸른 기와집 여주인은 과연 그 정도로 나라를 다스렸는가? 답은 이미 ‘NO’로 나와 있다.

순자(荀子)는 “군주 된 자는 다른 사람에게 관직을 주는 재량을 자신의 능력으로 삼고 필부는 자신의 재능만을 능력으로 삼는다”라고 평했다. 진나라의 대학자 부현(傅玄)은 “사대부가 직분을 나눠 받아 명령에 따르고 제후가 영토를 나눠 받아 이를 지키며 삼공(三公)이 백관의 직무를 총괄해 의논하면 천자가 팔짱을 끼고 있어도 나라가 바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엇으로 이를 증명할 것인가?
요임금 때는 순(舜)이 백성을 교화하는 사도(司徒)가 되었고, 계(契)가 군사를 관장하는 사마(司馬)가 되었고, 우(禹)가 토목과 치수를 관장하는 사공(司空)이 되었고, 후직(后稷)이 토지와 농사를 관장하는 전주(田疇)가 되었고, 기(夔)가 음악을 관장하는 악정(樂正)이 되었고, 수(倕)가 수공업을 관장하는 공사(工師)가 되었고, 백이(伯夷)가 의례를 관장하는 질종(秩宗)이 되었고, 고요(皐陶)가 송사를 관장하는 이관(理官)이 되었고, 익(益)이 가축 치는 일을 맡았다. 요임금은 이 중 한 가지도 잘하지 못했는데 어찌하여 군왕이 되었으며 나머지 아홉 사람은 어찌하여 신하가 되었는가? 그 까닭은 무엇인가? 요임금은 아홉 가지 직분에 대해 잘 알고 아홉 신하에게 각기 그 일을 주었는데 모두 맡은 임무에 뛰어나 아홉 가지 공적을 세웠다. 요임금은 아홉 신하가 이룬 공적에 힘 업어 왕으로서 천하를 통치할 수 있었다.

중국 주체민족을 한족(漢族), 중국어를 한어(漢語), 중국문자를 한문(漢文), 중국의학을 한의학(漢醫學), 중국학을 한학(漢學)이라 부르는 것은 유방(劉邦)이 세운 한나라에서 유래 된 것이다. “막사 안에서 전략을 세워 천 리 밖에서 승리를 이끄는 일이라면 나는 장량(張良)만 못하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보살피며 군량을 공급하고 보급로를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나는 소하(蕭何)만 못하다. 백만 대군을 이끌고 전장에 나아가 싸우고 공격해 반드시 승리를 거두는 일이라면 나는 한신(韓信)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걸출한 인물이다. 그들을 잘 등용한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한나라 개국 황제 유방의 말씀이다.

중국 삼대 기서에 속하는『반경(反經)』의 저자 조유(趙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을 아는 것이 군왕의 도이고, 해야 할 일을 아는 것이 신하의 도임을 알 수 있다. 형체가 없는 것이 만물의 주재(主宰)가 되고,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이 만사의 근본이 된다. 북은 오음에 참여하지 않지만 오음의 주인이 되고, 도를 지닌 자는 오관(五官)의 직분을 행하지 않아도 일을 다스릴 수 있다. 군왕이 도를 지키고 관리가 일을 아는 것은 예로부터 있어온 일이다. 선왕들은 이러한 이치를 잘 알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능력을 마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용하는 것이 군왕의 도이다. 군주 된 자인데도 군왕의 도에 통달하지 못한다면 위와 같이 하지 못한다. 스스로 그 일을 다 하고자 하면 적합한 인재에게 일을 맡길 수 없고, 적합한 인재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면 인재가 이런 군왕을 싫어하게 된다. 이것이 공적과 명예가 손상되는 까닭이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까닭이다.”

상의 탕왕(湯王)과 주의 무왕은 하루아침에 각각 하(夏)와 상의 재화를 모두 차지해 그 땅으로 제후를 봉했다. 그러자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마음으로 기뻐하며 복종했다. 또한 그 재물을 공신에게 상으로 주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투어 권면(勸勉)하였다. 이것은 탕왕과 무왕이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을 쓰는데 통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벼슬자리를 마련하고 임무를 주고 계획을 세우고 관용하고 허물을 감싸고 부족함을 덮는 것 이 모두가 군주가 세워야 할 큰 틀이다.
푸른 기와집 여주인이 만약 이렇게 큰 틀을 마련하였다면 팔짱 끼고 놀아도 시스템이 잘 돌아갔을 것이고 ‘세월호 사건’에 의무를 하지 않았다는 의논에 휩싸이지 않았을 것이며 그 사건이 탄핵에 이르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군주든 관리든 기업의 오너든 인재를 잘 등용하고 쓸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승패를 가르는 기본 ‘잣대’이다.

옛날에 은나라 탕왕의 재상이었던 이윤(伊尹)이 큰 토목공사를 벌였다. 척추가 튼튼한 사람에게는 흙을 짊어지게 했고 외눈인 사람에게는 수레를 밀게 했으며 등이 굽은 사람에게는 길을 닦게 했다. 각자가 자기에게 적합한 일을 맡으니 저마다 재능을 고르게 발휘할 수 있었다.

제나라를 으뜸가는 패주로 만든 관중(管仲)은 인재등용에 관련하여 환공(桓公)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읍양(揖讓)하고 군주 앞에 나아가고 물러남이 궁정의 예법에 익숙하기로는 신이 습붕(隰朋)보다 못합니다. 바라옵건대 그에게 빈객을 접대하는 대행의 소임을 맡기십시오. 토지를 개간하고 곡식을 수확함으로써 땅의 이로움을 다하기로는 신이 영척(甯戚)보다 못합니다. 바라옵건대 그에게 농사를 관장하는 대사전(大司田)의 소임을 맡기십시오. 평원의 넓은 들판에서 전차가 뒤엉키지 않게 정렬하고 병사들이 되돌아서지 않게 하고 북을 쳐서 삼군을 독려해 싸움터에서 죽는 것을 마치 집으로 돌아가듯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하기로는 신이 왕자 성보(城父)보다 못합니다. 바라옵건대 그에게 군사를 관장하는 대사마(大司馬)의 소임을 맡기십시오. 형량을 결정하고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며 허물이 없는 자를 죽이지 않고 죄가 없는 자를 억울하지 않는 것으로는 신이 빈서무(賓胥無)보다 못합니다. 바라옵건대 그에게 법을 주관하는 대사리(大司理)의 소임을 맡기십시오. 군주의 노여움을 무릅쓰고서라도 나아가 간할 때는 반드시 충성을 다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부귀와 타협하지 않는 것으로는 신이 동곽아(東廓牙)보다 못합니다. 바라옵건대 그에게 군주께 간언을 올리는 대간(大諫)의 소임을 맡기십시오. 군주께서 나라를 다스리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자 하신다면 이 다섯 사람이 그 일을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또 만약 패업을 이류고자 하신다면 제가 여기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인재를 적재적소에 맞게 사용한 예가 많다.
장량에게 병서를 전해주었다는 황석공(黃石公)은 “지혜로운 자의 지혜를, 용기 있는 자의 용기를, 탐욕스런 자의 탐욕을,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음을 활용하라. 지혜로운 자는 공을 세우기를 즐기고, 용기 있는 자는 자신의 뜻을 행하길 좋아하고, 탐욕스런 자는 반드시 이익을 취하며, 어리석은 자는 죽기를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의 성정에 따라 사람을 쓰는 것이 바로 용병의 기묘한 권도(權度)이다”라고 했다.
『회남자』에 이르기를, “천하 만물 가운데 부자(附子)보다 독한 것은 없다. 뛰어난 의원은 부자를 주머니에 담아서 간직하는데, 이는 약재로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고라니가 산에 오를 때는 큰 노루도 쫓아갈 수 없지만 산에서 내려올 때는 어린 목동이라도 쫓아갈 수 있다. 이처럼 능력은 사람마다 각각 차이가 있다. 북쪽 사람들은 말을 타고 다니는 것에 능숙하고 남쪽 사람들은 배를 타고 다니는 것에 능숙하다. 재능과 쓰임새에 맞지 않게 일을 뒤바꿔서 한다면 어그러지기 마련이다.”고 했다.

조조는 조칙을 내려서 말하길 “내가 찾는 사람은 반드시 행실이 좋을 필요는 없다. 행실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내가 찾는 사람은 아니다. 진평(陳平)에게 무슨 돈독한 덕행이 있었으며 소진(蘇秦)에게 무슨 신뢰가 있었던가? 하지만 진평은 한나라의 창업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소진은 약소국인 연나라를 구해냈다. 이는 각자가 가진 장점을 잘 발휘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하여 조유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이로서 알 수 있는 것은 한신 같은 사람에게는 책략을 맡기고 , 동중서 같은 사람에게는 군사를 담당하게 하고, 우공(于公) 같은 사람에게는 유세를 맡기고, 육기(陸機) 같은 사람에게는 송사를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세운 공이 없었다면 오늘날에 명성을 떨쳤겠는가? 그러므로 재능에 따라 맡기는 방법을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푸른 기와집 여주인의 실패는 군주로서 큰 틀도 마련하지 못했고 인재등용도 문제거니와 엉뚱한 사람에게 모든 국정을 맡기다시피 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황당한 것은 평일인 수요일에도 근무하지 않고 뭘 하고 놀았는지?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배는 바다에 가라앉아 수백 명의 젊은 생명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손 놓고 있다가 그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리던 ‘임’이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해가 저무는 시간대에 마지못해 ‘중대본’에 찾아갔는데 그마저도 ‘임’의 뜻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하니 국민들은 자궤감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푸른 기와집 여주인은 놀아서는 절대 안 되는 군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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