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눈은 한 사람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곳이며 정서를 나타내는 곳이다. 우리는 서로 얘기를 나눌 때면 상대방의 눈을 보며 말하게 된다. 그만큼 눈은 인간의 빛이며 삶의 흔적이기도 하다.   

디지털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점점 외부로부터 오는 요소들로 인해 눈이 쉽게 피로하고 노안이 급속도로 진행된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오랫동안 보고 나면 눈이 침침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중독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전철에서나 버스에서나 공공장소에서 저마다 머리 숙여 핸드폰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나쁜 자세로 인해 어린나이에 눈만 나빠지는 것이 아니다.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 환자들이 젊은 연령층으로 확산되어 간다. 세 살 된 아기에게도 엄마들이 가끔 귀찮으면 핸드폰으로 뽀로로 동영상을 틀어놓고 보게 한다. 

이런 무차별한 스마트폰의 사용이 사람의 눈뿐만 아니라 생명도 빼앗아간다. 길을 걸으면서도, 운전 하면서도, 수시로 아찔아찔한 위험에 부딪힌다. 사실 나 자신도 이런 점에 특히 신경을 써야 했다. 운전 하면서 전화를 받고 신호대기 중에는 문자도 자주 하곤 했다. 주변 사람들한테 수시로 야단을 맞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핸드폰 중독에 빠지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기기들을 사용할 때는 가능한 밝은 곳에서 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블랙라이트로 실명될 경우 현재 의술로서는 치료할 수 없다고 한다. 

요즘 사십 대 후반부터 노안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도 작년부터 작은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눈살을 찌푸려 가며 보가다 너무 답답해서 돋보기를 하나 맞추었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잘 보이다가도 저녁쯤 되면 피곤이 몰려와서 핸드폰 글씨도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시력이 1,2~1,5였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은 벌써 돋보기를 껴야 하니 슬퍼진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가끔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흘려들었다. 이제는 남의 얘기가 아닌 나의 현실로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눈에 좋은 블루베리, 아사이베리도 자주 사서 먹는다. 요즘 눈 건강식품도 새롭게 계속 출시된다. 시대에 맞는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정말 지금이라도 보석 같은 눈을 잘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안 속도를 늦추는 노력이라도 해야 할 필요성을 몸으로 느낀다. 

얼마 전 카톡 방에서 환갑을 넘긴 선배님이 올린 글이 나는 깨알 같아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선배님이“나는 잘 보이는 데요”하는 말에 내심 부끄러웠다. 의학계에서는 노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홍채 바로 밑에 있는 안구 내의 수정체가 안구에 빛을 굴절시켜 망막으로 전달하도록 돕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수정체가 탄력을 잃게 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능력이 저하된다.’ 노안예방을 하려면 먼 곳을 자주 보고 명상을 해야 눈의 피로가 풀린다. 장시간 한 곳만 보고 나면 수정체가 수축이완이 잘되지 않아 노안이 빨리 진행된다.

한 후배가 운전 하면서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다가 대형 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중앙차선을 넘어 마주 오는 차량을 들이받았다. 천만다행으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후배는 두피가 찢겨져 14바늘이나 봉합했다. 눈은 충혈이 되고 퉁퉁 부어서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다. 눈이 핸들과 맞부딪혀서 하마터면 실명할 뻔했다. 운전하던 차는 폐차수준으로 망가져 버렸다.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좋은 정보나 지식을 많이 준다. 반대로 그만큼 사람들에게 주는 큰 피해도 무시할 수가 없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앉으나 서나 게임을 많이 한다. 그것도 단계별로 난이도가 달랐다. 옆 사람이 뭐라고 물으면 게임에 빠져 동문서답하기도 한다. 나는 눈 아프게 한 두 시간씩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보거나, 유용한 정보나 지식을 얻는 게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지인이 초등학교 시절에 안경 낀 모습이 지성인으로 보여 그렇게 부러웠다고 했다. 가끔은 안경알도 없는 안경을 걸고 다녔다고 했다. 학교에서 시력검사를 할 때마다 일부러 보이지 않는다고 계속 거짓말을 했다. 그 결과 도수 높은 안경을 낀 탓에 시력이 점점 나빠졌다. 지금은 까만 뿔테안경을 벗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 지인은 좋은 시력을 잃고 나서야 가슴앓이를 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부모님이 좋은 시력을 준 것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날 나는 전철에서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로 겨우 더듬더듬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옆으로 핸드폰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급히 걷던 청년이 자기도 모르게 시각장애인의 지팡이를 걷어찼다. 그래서 가느다란 플라스틱 지팡이는 부러지기 직전이었다. 시각장애인은 누가 그랬는지 볼 수가 없었다.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만 계속 가고 있었다. 울상이 된 시각장애인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지팡이만 만지고 있었다. 건강한 눈을 가지고도 아픈 사람을 돌보지는 못할망정 피해까지 주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한 마을에서 사돈의 팔촌도 인사하고 사이좋게 지냈었다. 요즘 우리들은 집 식구들끼리도 온종일 밥 한 끼도 얼굴을 마주 보며 같이 먹기 어렵다. 사촌들끼리 얼굴도 잘 모르는 남남처럼 지내는 집도 많다. 집에 오면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느라 눈을 마주하며 대화 나눌 시간이 없다. 대화가 단절되는 가정도 많다. 부부 사이에도 한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는 시간이 너무 적다. 아내들이 제발 십분 만이라도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자고 호소한다. 

눈은 제2의 두뇌이기도 하다. 마음의 창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눈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위로해 줄 수가 있다. 기쁠 때 함께 웃고, 슬플 때 함께 울 수 있고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음에 행복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가까운 것에 너무 익숙하다. 익숙하다 못해 코앞의 것만 보인다. 인터넷 속도가 조금만 느려도, 핸드폰 접속이 조금 느려도 금방 교체를 하려고 한다. 무엇이든지 맘대로 되지 않으면 금방 화가 폭발한다. 인내심이 너무 결핍하다. 생각한 대로 바로바로 이뤄져야 직성이 풀린다. 

백세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가능하면 핸드폰을 자제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고, 마음의 산책을 많이 하고 명상도 많이 해야 한다. 우리는 눈 건강을 위해 먼 산을 보는 노력도 많이 해야겠다. 먼 곳에는 푸름으로 둘러싸인 산이 있다. 구불구불 구부러진 오솔길이 있고 숲이 있다. 그 꼭대기에 걸쳐져 있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보자. 산새들이 우짖는 숲속으로 눈을 돌리자. 눈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기 때문이다.
 

 

초    심
 

  요즘 우리 사무실에서는‘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있다. 초심의 사전풀이를 보면 맨 처음 가졌던 수수한 마음가짐이라는 뜻이다. 누구나 첫 시작의 끓어 넘쳤던 의욕과 열정이 식지 않는다면 못해낼 일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얼마간 흐르고 나면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면서 신선함이 사라지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초심을 잃게 되고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열흘을 웃는 얼굴로 대할 수 있지만 일 년, 십 년을 웃는 얼굴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수양을 탄탄히 쌓은 사람이다. 맨 처음 먹었던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예로부터 수많은 남녀의 신화 같은 사랑도, 요즘 세대들의 금방 끓고 식어버리는 양푼 냄비 같은 사랑이 아닌, 연탄불처럼 서서히 달아올라 좀처럼 식지 않는 도가니 같은 사랑일 것이다. 오죽하면 24시간 집착의 화살에 꽂혀, 커피를 마셔도 잔 속에서 연인의 얼굴이 보인다고 했을까? 책을 보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감성에 젖어서 눈물을 흘리는 연인도 봤다. 그렇듯 열애를 한 후, 결혼하고 나서 몇 년 지나면 언제 그랬던가 싶을 정도로 시들해진다. 그래서 사랑의 유통기한이란 말도 생겼나보다. 물론 그런 순백의 감정을 그대로 이십 년, 삼십 년 간직하고 사는 잉꼬부부도 있기는 하다. 

사랑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십년 전, 처음 입사했을 때의 상황을 그리면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배우고 배워도 갈증을 느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의욕은 넘쳤다. 자다가 새벽에 깨어나서 수시로 관련 자료들을 읽었다.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만 맴돈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수없이 고민하고 생각의 깊이를 더해봤다. 고객에게 쓴 손편지만 해도 수없이 많았다. 첫 거래에 감사해서 쓰고, 생일 때에 쓰고, 명절 때에도 썼다. 동료들이 부탁한 편지도 많이 써주었다. 좋은 습관을 3주 동안만 견지하면 3개월, 3년, 30년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한 가지 일을 시작하면 한 곳으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 일에 미치는 것이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그 일에 대한 생각뿐이다. 그런 열정 덕분에 회사에서도 급성장하는 뿌듯한 경험도 해봤다. 몇 년 동안 실적이 상승세를 그으면서 거침없이 성장해왔었다. 수시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초심을 잃지 않은 결과이다.

초심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일에나 슬럼프가 따라오기 때문에 초심이 흔들리기도 한다. 슬럼프는 거의 3개월 6개월 혹은 9개월 만에 찾아온다고 하는데, 이때 잘 견디면 일 년, 십 년, 삼십 년을 한 직장에서 쭉 견지 할 수 있다. 우리 회사에서 30년, 40년 근속하신 선배님들을 볼 때마다 존경심이 마음에서 우러나오게 된다.

사실 처음 입사했을 때를 생각하면 무슨 일이나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화장품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나 자신을 예쁘게 꾸밀 수 있는 것도, 시간이 자유로운 것도, 대가만큼 보수를 받는 것도,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게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심과 감사의 마음은 환상의 짝꿍이란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길가에 핀 한 떨기 장미꽃과도 교감할 수 있다,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한 자세로 서서 활짝 피어 웃어줄 수 있는, 가시가 돋쳐 있어도 도도한 매력의 장미꽃에 감사할 수 있다. 힘든 일을 겪어도 이만한 게 다행이지, 어떤 큰 복을 내려 주려고 나에게 이런 큰 아픔을 주는 것일까? 하면서 고통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면 내 주변에는 불행하고 기분 나쁜 일만 생기는데 어떻게 감사가 나올 수 있냐고 한다. 감사가 좋은 일을 낳고 말이 씨가 되기 때문에 늘 감사에 습관이 되어야 한다. 맘에 병이 들면 세상 그 어떤 명약도 무용지물이라 했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지 하면서 생각만 하기보다는 감사가 끊이지 않으면 초심은 바로 내 맘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다.

사람은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드러눕고 싶어진다. 어릴 때 어머니가 가마솥에 불을 지펴 밥할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물도 펌프질을 해서 길어 먹어야 할 때이다. 마중물이 없으면 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마중물 한두 바가지는 늘 준비해놓아야 했다. 그 마중물의 중요성을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알 리가 없다. 마중물 한 바가지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초심과 같은 내 마음의 샘물을 길어 올릴 수 있다. 고요하게 잠자던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맑은 물이 샘솟듯 초심의 샘물이 퐁퐁 솟아오를 수도 있다고 기대해 본다. 물을 소중하게 얻은 만큼 애착을 가지게 된다. 쉽게 얻고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 가치의 진정성을 망각할 수 있다.

지금은 어느 집에서나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원하는 데로 나오니 그 소중한 초심을 잊을 수도 있다. 내가 어릴 적에 어머니는 비나 눈이 오면 땔감이 비에 맞을 까봐 걱정부터 앞세운다. 그때는 불을 때지 않고도 도시가스로 반찬하고, 전기밥솥에 밥을 하는 몇 안 되는 ‘부잣집’을 수없이 부러워했다. 몇 년이 지나자 집마다 도시가스와 전기밥솥이 보급되자 모든 것이 당연한 거로 생각됐다. 요즘은 가스가 몸에 좋지 않다며 인덕션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렇듯 편리하지만 사람들은 ‘피곤하다’ , ‘사는 게 힘들다’는 불평들을 입에 달고 산다. 사실 뒤 돌아보면 우리는 그토록 어려운 시기에도 잘 견디고 살아왔다.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못 견디고 못 해낼 것이 없다. 

결혼해서 십여 년 동안 임신을 못한 친구가 며칠 전 나를 만나더니 자신이 요즘 너무 좋은 일이 생겼다며 조심스레 얘기를 시작했다. 한참 뜸을 들이기에 궁금함을 참지 못해 내가 다그쳐 물었다. 자기가 여덟 차례 실험관아기임신에 도전한 끝에 성공해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얘기하면서 눈물을 뚝뚝 떨구는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 울었다. 사십 대 중반인 그녀에게, 자녀가 하나도 없는 그에게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우리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고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그토록 어렵고 힘들기에 그만큼 소중하고 눈물 나게 행복할 수 있다. 

요즘 다들‘어렵다, 힘들다’고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도 초지일관 초심으로 열심히 잘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바로 내 주변에 내 가까운 곳에,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누린 것에 감사하자, 당연한 것은 한 가지도 없다. 초심을 삶의 초점으로 맞춰 살아간다면, 아무리 어려운 것도 거뜬히 잘 이겨나 갈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구 절 초

 
 나는 어렸을 때부터 꽃이란 꽃은 다 좋아했다. 꽃만 보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릴 때 나는 해마다 아버지를 졸라서 집 앞마당의 화단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봄부터 가을까지 피어나는 채송화, 봉선화, 분꽃, 접시꽃, 백일홍, 코스모스와 집 뒤 울안에 고이 모신 함박꽃까지 볼 수 있었다. 내가 이렇듯 꽃을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들녘에 수수하게 피어있는 구절초에는 눈길을 별로 주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구절초를 애틋하게 사랑하기 시작한 건 작년 이맘때부터이다. 

  회사 동료의 제안으로 리솜 리조트를 우연히 가게 된 적이 있다. 우리 일행이 리조트 입구에 들어서니 피톤 치유할 수 있는 키 높이 미인송과 편백숲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곳의 정화된 맑은 공기로 인해 우리는 온몸이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길가에서 목을 길게 빼든 코스모스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야트막한 자락에서 떨기떨기 핀 금관화도 우리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 곁에 사이좋게 피어있는 풍차국화의 고운 숨결은 환상적이었다. 그런데 화려한 화초들 속에 왠지 자꾸 눈부신 빛으로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꽃이 있었다. 노란 가슴을 활짝 열고 하얀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주는 구절초였다. 소박하고 순결하지만 다른 꽃들에 비교해 화려하지도 않았다. 또한, 감탄할 만한 자태를 지닌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수수한 그 매력이 도심에서 살다 온 내 눈길을 꽂혀 버리게 했다.  

  체크인 후에 우리는 삼삼오오 다니면서 아름다운 꽃들을 사진 속에 담아 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사진을 여러 각도로 찍어봤다. 다른 화려한 꽃들보다 구절초의 하얀 바탕의 배경이 뒷받침을 해주니 자연과 어우러진 사진이 예술의 극치로 담겨졌다. 자신을 낮추어 한 자리를 지키며 상대를 부각시켜주는 구절초의 자세에 다시 한 번 빠져본다.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무슨 옷을 입었든 간에 한 자세로 주인공을 뒷받침해 주는 사진들을 보고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잠시 다리쉼을 하느라 벤치에 앉아 시원한 바람결에 구절초를 관상해 보았다. 단풍과 어우러진 꽃들 중에 청아한 구절초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구절초는 이른 봄이면 여린 풀로 세상에 손가락을 한두 마디씩 내민다. 5월에 다섯 마디 자라고 음력 9월에 아홉 마디까지 자라 9월 9일에 자르면 약효가 뛰어 난다고 한다. 꽃잎은 말려서 차로 마시기도 한다. 따뜻하고 상긋한 꽃잎이 동동 떠있는 차 마시는 상상만 해도 구름 속을 거닐 듯 한 기분이다. 구절초 차는 피를 맑게 해준다. 혈액속의 콜레스테롤을 줄여 준다하니 나도 구절초 차를 부지런히 마셔봐야겠다. 한방과 민간에서는 꽃이 달린 풀 전체를 치풍, 부인병, 위장병에 처방한다. 고혈압, 항염, 감기, 폐렴 등등에도 쓰인다. 구절초의 줄기, 잎, 꽃을 따놨다가 구절초주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듯 구절초는 줄기에서 꽃잎까지 어느 것 하나도 버릴 수 없이 소중하다.

  구절초 꽃을 보면서 하염없이 감상에 젖어 본다. 봄에서 여름까지 이 한 떨기의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고를 거치고, 비바람과 맞서 싸웠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천둥번개에도 놀란 가슴 진정이며 목 빠지게 가을을 기다린 게 아니었던가? 마지막 꽃잎이 시들어져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미소만큼은 잃지 않는, 설움을 속으로만 삼키는 가을 여인의 모습인 듯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인류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구절초의 파랗고 꿋꿋한 줄기를 곁에 앉아 자세히 살펴보았다. 구절초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홉 번의 곡절 끝에 굴하거나 굽히지 않는 곧은 모습이다. 

  나는 구절초 줄기처럼 한 자리에서 한 길을 걸어온 사람이 존경스럽다. 한 직장에서 회사원으로 이십 년, 삼십 년 경력을 가진다는 건 그 사람 인생의 전반이 따른 다는 것이다. 현재 나는 OO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한 지가 십 년이 넘는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고도 멀다, 하지만 내가 십 년 동안 고락을 함께 해온 회사에 감사하고 보람을 느낀다. 한 우물을 파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최상의 약수가 나오지 않겠냐는 신념을 가지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언젠가 5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긴 권사님 부부가 병원에 장기기증을 신청해 놓았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곁에서 십여 년째 지켜봤던 분이다. 평소에 크고 작은 일에 엄청 많은 봉사를 하신다. 하지만 목숨이 다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장기를 기증한다고 하셨다.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 권사님이야말로 구절초 같은 삶을 실천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나도 이런 분들을 모델삼아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싶다. 자신이 가진 것을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구절초의 삶을 닮고 싶다.  

  나는 내가 해놓은 일에 혹시 누가 알아주지 않을까봐 속앓이를 한 적도 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계산의 저울로 손해라도 볼까봐 염려한 적도 있었다. 어디서나 주인공의 역할만 부러워하고 그 자리에 서려고 한 나 자신이 구절초 앞에 한없이 낮아지고 작아진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인정받으면 외면당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칭찬에 익숙하고 교만으로 채워진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상대방을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에 너무 인색했다.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면 그로 인해 기쁨이 배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도리를 모르고 살았다. 내가 대접받기 전에 먼저 남을 대접하는 미덕이야말로 한 사람의 인격을 높여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묵묵히 뒤에서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도와주는 그런 헌신의 자리에 나는 익숙해져야겠다.    

  운전면허를 따러 갔을 때 코치님이 한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좋지 않은 것은‘섭섭함’과‘불평’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치른 만큼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섭섭한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에도 늘 불만의 태도를 보인다. 이런 병들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기에 바로바로 감사의 빗자루로 쓸어버려야 한다.

올가을에도 내년 가을에도 수수한 구절초의 삶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변함없는 자세로 구절초처럼 살아가야겠다.

 

당선소감

김재연

지금부터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 김재연 프로필: 중국 길림성 반석현 출생 길림성 영길시 조선족고등학교 졸업. 교사, 자영업 종사. 현재 아모레 퍼시픽. 1989년 '도라지' 문학지에 수필(처녀작) <천국의 주인은 누구?> 발표. 그후 시 작품 다수 발표. 동북아신문 영업부장, 재한동포문인협회 사무국장
내 가슴속 깊은 곳에 감춘 삶의 노래를 아름다운 글로 수놓고 싶어 늘 가슴앓이를 해왔습니다. 그러던 나에게 삼십 년 동안 잠재웠던 꿈을 깨우는 시절이 왔습니다. 3월의 봄꽃 향기에 실려 온 신인상 당선 소식이었습니다. 

  메말랐던 줄기에 새파란 봄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듯했습니다. 저는 아직 일어서기도 어설프고 걸음마도 제대로 띠지 못하는 초학자입니다. 뒤뚱뒤뚱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나는 지금부터 몸에 근육을 만들어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가끔은 넘어지기도 하지만 오뚝이처럼 일어설 것입니다. 진실함과 아름다움을 담는 글을 쓰도록, 수필가의 이름에 걸맞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김영미 박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문학의 기초 지식부터 하나하나 이끌어 주신 박사님께 감사함은 글로 이루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도록 여러모로 조건을 마련해 주신 재한동포문인협회 이동열 대표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저와 조석으로 함께 글을 공유하고 있는 성좌문학사 동인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와 사랑을 주신 문우님들과 지인들에게 멋진 글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끝으로 채 여물지 못한 미숙한 제 글을 빛 보게 해주신 <현대시선> 윤기영 사장님과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맞습니다. 쉬지 않고 연마하여 달리고 달리겠습니다. 인생의 역전은 후반전입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달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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