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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김재연 수기 수상작]그리운 아버지께법무부 '제11회 세계인의 날' 수기 공모 우수상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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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4  13: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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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연 : 재한동포문인협회 사무국장. 시/수필 수십 편 발표. 수상 다수.
[서울=동북아신문]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께 편지쓰기는 이번이 처음이네요. 그만큼 서툴러서 많이 망설였어요. 요즘도 심장병으로 많이 고생하고 계시는지요? 그동안 편지 한 장도 못 드린 이 못난 딸을 용서해 주세요. 제가 한국행을 하던 날은 연이은 소나기가 그친 뒤였지요. 밤새 두드려 대는 빗소리에 잠을 설치며 항공편이 지연 될 가봐 속을 졸였죠. 오랜만에 맞는 아침 햇살과 함께 서쪽에 걸린 찬란한 무지개가 배웅하는 부모님의 얼굴에 비꼈지요, 아버지께서는 무지개가 뜨니 참 아름답구나. 너가 일곱 가지의 색채가 조화를 이루듯이 어디서나 조화로운 사람으로 살아다오.”라고 부탁을 하셨지요. 아버지는 가끔 저에게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이 고향이라며 살아생전 고국 땅을 한 번이나마 밟아 볼 수 있을는지 하면서 외우셨지요. 그 음성이 아직도 제 귀에 쟁쟁히 남아 있어요. 지금까지 고국 땅을 밟아 보도록 해드리지 못한 것이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네요. 이 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셨던 아버지께 십여 년간의 한국생활을 지면으로나마 전해드리고 싶네요.
 
저는 현재 대한민국 OOO라는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십 년 전 한 지인의 소개로 화장품회사에 방문판매사원으로 입사를 했어요. 그때 우리 사무실에 중국교포는 저 혼자뿐이었어요. 사장님도께서는한국인들도 견디기 힘든 방문판매를 교포가 잘할 수 있을까? 몇 달 하다가 그만두겠지하셨다고 나중에 고백하셨거든요. 주변 동료들의 시선도 만만치 않았어요. “차이나는 차이가 난다니까, 중국은 달걀도 맘대로 못 먹는다면서? 화장실은 60년대의 재래식이라며?”이런 말을 들을 때면 정말 속상하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어요. 나는 그럴 때마다 담담히 웃으면서 속으로끝까지 노력해서 반드시 인정을 받고야 말겠어.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어. 교포들의 자존심을 걸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채찍으로 삼겠어.”라고 다짐하면서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두었어요. 주변으로부터 편견을 가진 시선을 받지 않으려면 저 자신이 부단히 적응하고 발전하면 되는 거지요.
 
방문판매라 첫 시작은 냉대와 거절을 밥 먹듯이 해왔지요.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니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거절도 자주 당하니 내성이 생기고 오기가 생겼어요. 누가 더 끈기 있게 버티나 보자하고 속으로 벼르기도 해봤어요. 저는 늘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원답게 일을 했어요. 이런 성실한 모습이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는지 하나둘 제 고객이 되기 시작했어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저는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쇼핑백을 들고 매주 눈도장을 찍었지요. 저 자신도 놀랐어요. 제가 이렇게 푸접 좋고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저는 매일 일찍 출근했어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하나라도 더 먹을 수 있듯이, 준비된 자세로 하루를 시작했어요. 저는 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즐겁게 하루하루를 만들어 갔어요. 매일저녁 화장품 관련 서적들에 대해 공부하며 잠을 설칠 때도 많았어요. 제가 책을 좋아하고 배우기 좋아하는 건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인연이 닿은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해 관리했어요. 저의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기 시작했어요. 고객이자 친구로 가족처럼 지금껏 인연을 이어가는 분들이 많거든요. 제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고객을 만나니 서로가 편하고 영업도 더 잘되었어요.
 
저는 이 회사에 들어오자 차가 꼭 필요해서 새벽 다섯 시부터 운전 연습을 했어요. 중국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대한민국은 왕초보라고 써서 차 뒤에 붙여 놓으면 얼마든지 양보를 해주거든요. 이제는 운전경력이 십 년 넘었어요. 아버지가 오시면 제가 전국 어디든지 운전해서 모시고 다닐 거예요. 그리고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의 고향인 밀양으로 꼭 가고 싶어요. 그러면 아버지는 늘 그랬듯이우리 총리가 참 대단해.”하면서 당신 유머 감각으로 감동의 응원을 보내 주시겠지요. 저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일에 미쳤어요. 신바람 나게 일을 하니 힘든 줄도 몰랐어요.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일에 미친 사람한테는 당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 입사해서부터 날에 날을 거듭할수록 저의 실적은 상승세를 그으면서 승진도 급속도로 빨라졌어요. 회사의 크고 작은 상은 거의 빼 놓치고 않고 받아 안는 영예를 가졌어요. 본사에서 하와이, 일본, 동남아 여행을 크고 작게 십여 차례 보내줬어요. 지도에서만 보아오던 곳을 제 발로 직접 밟아 보았거든요. 또한, 열심히 일한다며 강의요청도 받았어요. 저는 현재 새 차를 두 대나 바꾸고 한강 근처에 집도 샀어요. 아버지가 오시면 집 근처에 있는 한강공원, 난지공원, 월드컵공원, 하늘공원으로 모시고 다닐게요.
 
그 가운데서도 제가 가장 잘한 일은 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손녀딸을 중학교 때부터 한국에 데려온 거죠. 한국에서 일 년 만에 가족들이 그리워 중국에 들어갔을 때였지요. 열흘간 쉬었다가 한국으로 오기 위해 딸애를 떼어 놓고 공항으로 향하는 제 가슴은 한올한올 찢어내는 듯한 통증을 느꼈어요. 커튼을 열고 손만 흔들며 눈물이 앞을 가리어, 말 한마디 못 하는 어린 딸애 얼굴이, 지금도 제 기억에서 지워지지가 않았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의 고국인 한국에서 우리말, 우리글을 배울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고 싶었어요. 또한, 자녀에게는 자라는 과정에서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야 사춘기를 잘 견디고, 뿐만 아니라 인성이 원만해야 사회생활도 잘하잖아요. 그래서 딸아이를 화교학교에 입학시켰어요. 화교학교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학교였어요. 딸애는 성격도 아주 밝고 예쁘게 잘 자랐어요. 지금은 한국에서 취직해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학원 공부도 자비로 하고 있어요.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제가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는 꿈이 있고 문학을 많이 사랑했잖아요. 제가 열여덟 살 때 아버지를 졸라서 길림에 있는도라지잡지사의 강습반에 갔던 추억은 30년이 지난 오늘도 흑백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네요. 그 날도 흐린 겨울날, 하늘도 추울세라 솜털 같은 함박눈이 펄펄 흩날리던 날이었지요. 저는 이불 짐을 메고 앞장서서 성큼성큼 걷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부지런히 걸었지요. 그곳에서 문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때 발표한 수필이 제 문학의 길에서 처녀작이 된 거지요. 저는 작년부터 다시 문학 습작에 매진하면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어요. 제가 글쓰기 좋아하는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아요. 고국은 이토록 노력하는 자에게 값진 보답을 확실하게 해주는 따뜻한 나라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어요. 이런 수상의 자리에 아버지가 계셨으면 얼마나 흐뭇해하셨을까요. 작은 일에도 감동을 멈추지 않는 아버지는 아마 친구나 지인들 앞에서 자랑을 수없이 하셨을 거예요. 자식 사랑이 남다른 아버지였으니까요. 요즘은 제가 운영하는 동아리에서 동인지를 만드느라 아주 바쁘네요. 지난 한해는 제생에 가슴 벅찬 한해였어요. 회사에서 준 최고 직급자 상패 세 개, 문학상 두 개가 진열장에서 날마다 저에게 새 힘과 희망을 주네요. 그동안 이루지 못했던 제 꿈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갈 거예요. 아버지의 딸은 기대한 것만큼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자랑스러운 딸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할 것 이예요.
 
끝으로 제 꿈을 이루게 한 아버지와 나의 모국 대한민국께 감사해요. 주변의 지인과 채찍질을 해준 동료들께도 감사해요. 한국에 와서 저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었어요. 한국에서 벌써 14년 동안 살아왔네요. 제 삶이 곤고하여 눈물 흘릴 때도 있었고, 정착하면서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힐 때도 많았어요. 지나고 나서 뒤돌아보니 모두가 연금로가 있어야 순금이 나올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훈련의 과정이었네요. 그리하여 눈뜨는 순간부터 하루를 마치고 자리에 누울 때까지, 매순간마다 감사해요. 지상에서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생각의 차이인 것 같네요. 저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매일 천국처럼 느껴져서 행복해요.
 
오늘도 오랜 장맛비가 그치고 수줍은 아침 해가 언제 울었냐 싶게 활짝 웃고 있네요. 제가 한국 떠났던 날처럼 서쪽 하늘에 칠색으로 아롱진 무지개가 걸려있네요. 아버지가 서쪽 하늘에 알록달록 페인트칠한 둥근 문을 여시고 저를 내려다보고 계시나 봐요.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서, 아름다운 강산에서 아버지가 우리랑 함께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14년 전 제가 한국행을 떠났던 그해 겨울에, 무엇이 그리 급하셨는지 하늘나라로 가셨지요. 이 딸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미처 보시지 못하고 돌아 가셨지요. 이제는 우리 곁을 영영 떠난 아버지께 가슴시린 사연을 봉투에 차곡차곡 담아보네요. 주소 없는 이 편지를 곱게 날개 접어 하늘을 향해 아버지께 고이 날려 드릴게요.
 
그럼 오늘은 이만 쓸게요. 보고 싶은 아버지 부디 안녕히 계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를 만나는 그날까지 이 딸은 이 땅에서 아버지를 언제나 제 인생의 나침판으로 삼고 정진할게요.
 
사랑해요, 아버지! 사랑해요, 대한민국!
 
오늘도 아버지를 그리는 딸 재연 올림
2018/2/28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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