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진 :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수필/수기 수십 편 발표
[서울=동북아신문] 봄이 왔다. 대동공단에도 봄이 왔다. 내가 이곳에 와서 7번째로 맞는 봄이다. 올봄은 어쩐지 더 새롭고 유정하게만 느껴진다. 영주권(F-5)도 취득했고 또 올해 최저임금도 7530원으로 껑충 인상 되어 삶의 질도 많이 좋아지게 된다. 2020년까지 만원으로 인상한다하니 인제야 노동이 대우받는 사회, 열심히 일한 자 보상받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오는 가 싶다. 사람 사는 세상의 문을 연다는 문재인대통령, 세계인이 함께 살고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하는 한국정부, 당신에게 세계인의 마음이 갑니다.

  내가 전라북도 익산시 대동공단에 위치해있는 우리 회사로 오게 된 것은 2012년 3월, 그때 나는 이 회사에서 청소부로 일하시던 어머님과 함께 살고 싶었고 또 회사에서 일하시다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의 생전의 소원이 이 아들이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 때문이었다. 한국의 악덕업자들을 만나 건설현장(노가대판)에서 힘들게 일하고 돈도 받지 못하는 착하고 어진 이 아들이 항상 걱정되었던 것이었다. 

  2005년에 세워진 이 회사는 자동차 자동제어기계장비 및 관련부품을 가공하여 전주첨단산업단지에 있는 유명한 대기업인 코팅코리아에 납품하는 직원이 백 명 미만인 협력업체중소기업이다. 초창기인 처음 몇 해는 호황을 누리다가 여러 경쟁업체들이 생겨나고 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줄곧 불황을 겪어오다가 회사내부의 여러 가지 경영상불찰 등 원인으로 하여 거의 부도직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내가 취직수속을 밟고 회사생활을 하여보니 부모님들한테서 들은바 있는 대로 회사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최소한 회사를 제집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도 되어있지 않았다. 십여 명되는 한국인들은 주로 관리직을 맡고 칠팔십 명되는 외국인근로자들은 생산직에 종사하는데 모두가 그저 일을 쉽고 편하게 하면서 돈을 많이 벌려고만 한다. 쉽고 편하게 돈 많이 벌수 있는 검사장 같은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서로 물고 뜯고 아귀다툼을 하며 관리자들에게 로비도 주고 (성 로비 포함) 그야말로 꼴불견들이어서 눈이 감기고 기가 막혀 죽을 지경이다. 

  회사를 제집처럼 사랑하고 아끼며 열심히 일해서 회사와 더불어 공감하고 공조하면서 공생을 도모하려는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고 그저 잔꾀만 부리려고 한다. “회사가 부도나려면 나라, 나는 나대로 다른 회사를 찾으면 그만이다”는 배부른 배짱들이었다. 작업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인위적인 조작실수로 숱한 불량제품이 나와도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마음이 아파하지도 않았으며 어떻게 해서라도 그저 일을 쉽고도 편하게 하면서 돈만 벌어 가면 장땡이라는 얄팍한 속셈들이었다. 한국인관리자들도 주인공다운 드높은 책임감도 없이 자기만 편하게, 일은 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눈치만 살피며 요령을 피워 관리직자리나 지키면 그만이라는 눈치들이었다. 

  직장생활이 개판인데 생활관은 더욱 말이 아니었다. 샤워실과 탈의실에도 신을 신고 들어가는 자가 있지 않나, 남자가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용변을 보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 술 처먹고 오바이트 해 놓는 자가 있지 않나, 욕실에 똥을 싸놓는 자가 있지 않나 참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특히는 베트남인들이 유별나게 말썽들이다. 누가 새 작업화를 벗어놓으면 어느새 자기의 낡은 신발과 바꾸어 신고 누가 새 작업복을 씻어 널어놓으면 인차 훔쳐가 버리며 퇴근하여 기숙사로 돌아오면 음향을 엄청 크게 틀어놓아 타인들의 휴식에 지장 주는 것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어쩐지 이들에게는 공중도덕 개념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나무가 크면 조용할 새 없다고 오십여 명되는 베트남인들은 늘 사달을 일으켜 회사에서는 여간만 애를 먹지 않았다. 

  회사가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못가서 곧 부도날 것만 같았다. 그러면 회사를 내 집처럼 생각하며 편하게 일하면서 돈도 벌고 즐겁게 살자던 나의 아름다운 꿈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것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 어느 날 조용히 사장님을 찾아갔다. “회사를 내 집처럼 너무너무 사랑하는 이 회사의 직원으로써 몇 가지 건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회사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만 있어야 하고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회사는 기업이지 보건복지부가 아닙니다. 회사에 피해를 주는 사람은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하고 회사에 특수한 공로가 있는 직원은 반드시 표창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올바른 회사문화를 창출해내고 정착시켜야 합니다.” 나는 며칠 동안 심혈을 기울여 고안해낸 몇 가지 효과적인 조치를 적은 건의서를 정중하게 사장님한테 드렸다. 워낙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정직하고 부지런한 나를 예쁘게 보아오신 사장님은 나의 건의서를 한참 읽어보시더니 매우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응, 그래 알았어! 며칠 좀 더 깊이 연구해보자꾸나!”

  며칠 후, 회사 내 게시판에 회사의 세 가지 원칙과 10개 규칙(룰)을 적은 공지문이 나붙었다. 회사의 원칙: 첫째, 회사를 제집처럼 사랑하고 사장님을 아버지처럼 존중하며 회사의 관리자들을 어머니처럼 따른다. 둘째, 회사동료들을 친형제자매처럼 생각하면서 화기애애한 회사분위기를 조성한다. 셋째, 주인공다운 높은 책임감을 지니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한다. 회사의 10개 규칙: 1,작업시간을 엄격히 준수한다. 2,인위적인 실수로 불량제품을 내오면 절반은 본인이 배상한다. 3,술 마시고 출근하면 엄중경고 한다. 4,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5,싸움을 하면 퇴사조치 한다. 6,남자가 여자화장실을 사용하면 안 된다. 7.기숙사에서는 작업화를 벗고 슬리퍼를 신어야 한다. 8,매일 자기가 일하는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9,작업시간에 휴대폰사용을 금지한다. 10,담배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피운다. 그날 오후, 회사에서는 전체 직원들에게서 이를 위반했을 때 달갑게 처벌받겠다는 각서를 받아냈다. 그 후로 한동안 회사의 분위기가 몰라보게 바뀌어 지고 회사면모도 눈에 확 뜨이게 변했다.

  반년 후, 어머니가 중국으로 귀국하게 되자 회사에서는 더는 청소부를 두지 않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직원들에게 당번을 짜서 기숙사청소와 화장실청소를 맡겼다. 회사의 사정이 어려우니 경비라도 좀 절감하려는 것이었다. 그러자 모두들 불만이 꽉 차서 제대로 자기 당번을 지키지 않았다. 회사가 어려우면 함께 공감하고 같이 공조하여 회사에 조금이라도 도움주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자기만 편하고 제 돈만 잘 벌면 된단다. 기숙사청소는 서로가 감시하고 독촉하여 그런대로 잘 돼가지만 현장화장실청소는 그야말로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청소당번들이 누구도 청소를 하지 않아 더럽기 말이 아니었고 늘 변기가 막혀버려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

  차마 그대로 볼 수 없어 이번에도 마음씨 착한 내가 나섰다. 화장실청소는 내가 잘 할 테니 모두 기숙사청소당번을 시키라고 제안했다. 잔꾀부리는 밉상스런 화장실당번들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내가 힘들겠지만 평등과 공정을 찾고 싶었고 실현시키고 싶었다. 자고로 선행과 효도는 미루지 말라는 말이 있다. 늘 선심을 베풀고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니 나는 항상 기쁘고 즐겁기만 하다. 회사에서 돈도 주지 않는데 왜 고생을 찾아하는가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좋은 일 해도 알아봐줄 회사가 아니라고 괜한 고생을 하지 말라고 만류하는 마음씨 좋은 동료들도 있었다. 

  내가 매일 화장실을 청소하니 변기가 막히는 일이 더는 없고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하니 다들 기분이 좋아서 나를 보면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중국아저씨 정말 좋은 사람이야”하며 날 칭찬한다. 그러면 나는 “너희들도 이 아저씨처럼 좋은 사람으로 되어라.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사람 되는 거란다! 화장실은 항상 깨끗하게 사용해야 되는 거야!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단다.”하고 애들을 타일러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회사에서 중국동포들이 제일 열심히 일한다. 한 핏줄, 한 형제인 중국동포들이 회사 일을 제집 일처럼 생각하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말없이 잘하니 회사의 믿음과 인정을 받아 생산주임직책은 다 중국동포들인 백성호와 강철봉이 맡았다. 비록 중국동포라는 이유 때문에 한국인들처럼 승진할 수 없어도 동포라는 이름으로 양심껏 일하고 있다. 일회용시대에 일회용종이컵신세가 되어 비참하게 버려질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악덕업자들한테 당한 외국인근로자(블랑카)들은 한국사장님 나빠요, 한국사람 나빠요 하면서 변덕 많은 한국의 날씨처럼 변덕 많은 한국 변덕쟁이라고, 비단에 싼 개똥처럼 말만 잘하고 사람을 개 취급한다고 욕을 한다. 악덕업자들 때문에 대한민국과 한국인들의 이미지가 실추된 현실이 안타깝다.
  한국에서 질이 안 좋은 한국인들한테 당한 중국동포들도 한국을 욕하고 원망하는데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처사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에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한국에도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위대한 대한민국은 동포들에게 따뜻한 봄처럼 귀중한 존재이다.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고국 땅에서 단군의 후손으로, 깨끗한 백의민족으로 살 수 있어 너무 행복하고 돈도 벌고 또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위해 자그마한 기여라도 할 수 있어 너무너무 기쁘다.

  평화올림픽ㅡ 평창올림픽이 선사한 한반도의 평화의 봄, 차갑고 무정한 동장군이 쫓겨 가고 유정한 봄 아가씨 사뿐사뿐 춤추며 찾아온 따뜻한 대동공단의 봄날, 5월 20일(세계인의 날)을 맞으며 세계인이 함께 사는 세상 함께 가는 길을 꿈꾸어 본다. 

대한민국 전라북도 대동공단에서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