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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홍연숙 여행수필]연숙이가 서장에 가다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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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4  12: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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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아무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도 함께 할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쵸몰랑마봉을 직접 만나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건 아마 소학교 2학년에 다닐 무렵이였던지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고 알아 버린 후 였다. 그리고 40여년을 묵히다가 더는 보관 할 수가 없는 이 작은 꾸러미를 2016년 12월에 남편앞에 어렵게 풀었다.
왜 하필 서장이냐고?
왜 그 어려운 여행이여야 하냐고?

어려웠다. 함께 백년해로를 약속한 부부지만 서장 여행만은 함께 하기가 곤난했다. 고민을 하다가 친구들을 여기 저기 찔러 보면서 지금 아니면 다음은 없을 거라는 절망에서 꼭 갈 것이라는 희망을 마음 한구석에 새겼다. 친구들은 모두가 가고싶어 하면서 또 모두가 못 가는 이유가 있었다.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정해진 인생의 룰 처럼 바꿀 수 없었다. 하마트면 친절한 친구의 조언에 나의 계획까지 강바람의 갈대처럼 흔들리다가 그냥 단호하게 모멘트에 쫙~ 올리면서 내 자신을 더 이상 번복하지 못하게 다잡았다. (하긴 언제인가 술을 끊는 다고 모멘트에 올리고 소문 냈지만 결국 더 왕창 퍼 마시게 되긴 했어도...) 두려운 건 나도 자신을 믿을수 없어서였다. 그리고 드디여 나의 파트너 김미옥씨를 만났다. 미옥이는 나의 고향친구 김창호 (청도 "창미달" 그룹회장) 의 마누라다. 자그마하고 외소한 체격이지만 다부지고 한마디라도 탱글탱글하게 여문 벼알이 튕겨 나오듯이 옹골 찼다. 그만큼 뭐나 시작하면 확실하다. 우리는 함께 팀을 만들어 보자고 했지만 난 한건도 잡지 못했다. 미옥씨는 그 사이에 청도의 부동산 사장의 모녀, 해물식품회사 사장의 부자간, 변호사네 세가족, 은행지점장의 모녀로 서장여행위쳇췬을 만들고 가이드와 운전기사까지 깔끔하게 완벽한 팀을 만들었다. 나는 미옥씨와 그녀의 큰 아들 (미국류학중) 그리고 그녀의 조카 (오스트랄리아류학준비생) 랑 "조선족가족팀" 으로 "서장여행단" 에 합류 했다.

2017년 6월 21일, 드디여 떠나는 날이다. 울산 태화강 정류소까지 배웅해 주고 잘 갔다 오라고 덤으로 미소도 남긴 남편. 고마웠고 미안했다. 그것도 잠시 부산 공항으로 떠나는 뻐스에 오르자 마음은 벌써 서장의 하늘가로 고고씽이다.
 
   
 
1.부산에서 청도로

비행기는 뜨자 내릴 준비다. 서너페지도 읽지 못한 책을 덮고 청도에 내린다. 살뜰한 고향 후배덕에 비행장부근으로 가격이 합리한 호텔은 예약 되였는데 한시간반가량 돌고 돈 짐들 속에 나의 짐가방만은 도무지 나타날 생각을 안한다. 웬지 부산 공항에서의 찜찜함이 스물스물 기여 오르며 눈덩이처럼 커지는 걱정이 숨통을 막는다. 여행짐이라 해봐야 달랑 바람막이옷 두벌, 운동복 한벌, 신 두컬레, 양말3컬레, 속벌 2벌, 잠옷 한벌, 치솔, 치약 그게 다다. 그리고 인문학책 2권하고 일기노트 뿐이였다. 화장품도 센플만 넣어 자리도 별로 차지 하지 않았고 샴푸니 린스니 바디워시니 클린징폼이니 모두 버리고 비누 하나로 퉁쳤다. 무게도 초과 될 일이 없는데 사달은 폰이였다. 폰 2개를 들고 가다나니 전원을 끈 다른 폰은 짐가방에 생각 없이 넣은 게다. 카운터의 아가씨가 이미 짐을 다 부치고 난 후에야 혹시 폰이나 바테리 같은걸 짐가방에 넣었냐고 물었으니 일이 전도된 상황에 나더러 어찌하란 말인지... 아가씨는 나보고 자기 옆에서 5분만 기다리다가 확성기에서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그대로 출국해도 된다고 했다. 나도 뻘쭘하게 서서 기다리기가 무엇해 자리를 찾아 앉아 도서 삼매경에 빠졌는데 도대체 내 이름을 불렀던지가 가물가물해 버렸다는 걸 어찌하란 말인지... 남편이 제일로 진저리 떠는, 책을 보면 옆에서 불러도 못 듣는 나의 불치병이 아가씨가 알 길은 없었던 게라 그냥 무사히 통과 시켰으니. 그런데 고것이 화근이 되여 지금 짐을 기다리는 내 맘이 다 타고 재만 남았다는 거다.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화는 주체가 안되고 부산공항의 나를 통과시킨 남집규수만 바리바리 욕을 해대싸니... 지옥 같은 시간도 흐른다는게 참말 다행이다. 두시간이 지나 애기 가방 같이 생긴 내 짐이 깍딱이며 기여 나온다. 휴~~ 저 멍청한 짐 놈에게 해대지도 못하고 그냥 처 끌고 비행장을 나선다. 청량리 지즈쥬땐으로.


9821에들어서자
한눈에 안겨오는 너의 라체
허연 몸뚱아리 대자로 펼치고
이글거리며 바라보는 너
그냥 한품에 안기고 싶지만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지
홀라당 바디워시로 향긋하게
너의 품으로 몸을 던졌지
부드러운 너의 애무에
아름다운 밤을 흠뻑 보내다가
너의 뽀샹뽀샹한 냄새에
청도의 새벽을 맞이했지
훌쭉하니 맥을 못추고
시들어 자고 있는 널
야릇한 눈으로 살풋이 내리 쓸고
너의 사랑 벗어놓고 난 간다
고마웠어 잊지 않을게
청량리의 하루밤을


2. 라싸로 떠나다

6월22일, 청도비행장. 탑승 시간은 다 되여 가는데 미옥씨가 보이지 않는다. 둬번 만났던 사이 인지라 보면 인츰 알아 볼 수 있을 터 지만 좀처럼 눈에 띄이지 않아 당황스럽다. 갑자기 눈이 똥그래진 미옥씨가 내 앞에 나타난다.
"왜 여기 있어요.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가 우리 탑승구역이..."
"아...우리 지금 VIP 휴게실에 있어요."
췬 내에서 이미 사전에 알렸었는데 한어가 부실한 내가 어울리지 못해 그냥 패스해 버린 결과 어정쩡하게 혼자 놀고 있었던 거다.

VIP휴게실이다. 탁 트인 널찍한 거실에는 한 사람을 쏙 품을 듯한 폭신한 쏘파들에 묻혀서 다들 스마트폰 열공 중이다. ( 금방까지 딱딱한 의자도 차지하지 못하고 쭈뼛이 서서 딱딱한 책만 번지던 나, 대뜸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느라 촌티를 감추려는 수작이 어색하다.) 미옥씨의 호출에 다들 얼굴을 들고 친절히 반긴다. 홍작가, 홍시인이라고 얼마나 깍듯이 (여기에서 내가 최고령이다~풉) 불러대는지 몸둘바를 모르겠다. 하긴 모두가 엘리트 출신인지라 미옥씨가 식당아줌마라고 소개하기가 무엇했을 거다. 당황스럽긴 해도 기분은 좋았다. 미리 작가, 시인을 대출내는 거라고 자위하며 스스럼 없이 받아 들였다. 자신은 당당하다고 한점의 부끄럼 없이 정직하다고 여겼던 어느 구석에서 소인의 열등감이 급기야 진면모를 드러내고...
우리를 태운 철새는 세시간 날개 짓에 란주에 도착하여 15분간 숨 돌리고 다시 라싸로 출발이다. 안전 벨트만 매면 책을 펼치는게 공식이 되여 버렸다. 그러다나니 옆에 누가 있는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자꾸만 몰몰 풍겨오는 젖냄새가 날 유혹한다.

내 곁엔 라싸여인
그 품엔 갓난쟁이
옹알이 장난 아닙니다
풍겨오는 젖냄새
24년전 내 몸의 그 냄새
말라 비틀어진 내 유두가 탱탱해 집니다
꼴락꼴락 넘기는 저 소리
주고 주어도 넘치는 사랑의 멜로디
세상이 다 마른다 해도
엄마의 젖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겁니다
아...갓난쟁이 내 엄지 잡습니다
찌르르 감도는 전률에
저도모르게 까꿍~까꿍~
모성애는 자연산인가 봅니다

   
 

3. 라싸에서의 첫날

뭉게구름 아래로 회갈색 산들이 하얀 하다를 머리에 이고 엄숙하게 앉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청장고원이다. 왠지 마음이 경건해지고 알수 없는 감동이 흐른다.
라싸에 내렸다. 사처에 군용비행기, 짚차, 대포들이 어마어마하게 널려있다. 안전감보다 긴장이 흐른다. 다행이 맑고 푸른 하늘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따가운 해빛이 얼어든 마음을 녹여준다.
아...머리가 어질어질하더니 빠개지듯이 아프다. 속도 울렁거리고 눈도 아프고 귀도 아프다. 누구나 오면 아파야 하는 고산증이다. 마중나온 가이드에게 하얀 하다를 선물 받았지만 기쁨은 잠시 고산증이 삼켜버리고 우리는 차안에 쓰러진다.

우리를 태운 15인승합차는 40여분을 달려 어느 사하원 (四和院) 정원안으로 미끌어져 들어 가더니 멈춘다. 라싸에서의 첫 날을 여기에서 보낸단다. 말로는 최고급호텔이라고 하는데 어느 여관보다 더 허름하다. 사전에 "교육" 을 받아서인지 다들 불평 불만 없이 짐들을 챙긴다. 한 방으로 안내받은 나와 미옥씨는 하얀 알약 두알씩 목구멍에 넘기고 젖은 낙엽이되여 침대에 납작 드러 눕는다.
얼마나 잤을까? 부시럭대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미옥씨가 부다라궁에 가보자며 생글거린다. ㅎㅎ~ 에너지도 전염이 되는지 나도 가볍게 일어난다.

한밤의 라싸는 초저녁 처럼 들끓는다. 아마 늦게 해가 지는 일기 차이인 것 같다. 보슬비가 사바락 사바락 내린다. 부다라궁! 희미한 비 속에서도 그 눈부심은 아마 우리가 다가가지 못했던 그 어떤 신성한 기운의 또 다른 세상 때문이였을 게다. 조잘대던 우리의 입은 어느새 꼭 다물어지고 스적스적 비에 젖은 신전을 조용히 돈다. 스르르륵... 스르르륵... 거대한 물체들이 끌려오는 듯한 소리에 후닥닥 뒤를 돌아보니 비길을 엎어지며 기도드리는 서장인들이다. 여자도 남자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뒤에 뒤를 이어가는 모습들에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한번에 올라온다. 저들은 지금 무엇을 위하여 기도를 드릴까? 왜 육체를 저렇게 괴롭히는 걸까?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우리들을 의식조차 하지 않는 저들의 의미심장한 모습들에 나도 모르게 몸가짐을 다잡게 된다. 이것 저것 만지던 손이 주눅이 들어 살며시 소매속에 옴츠러 든다. 온통 오체투지로 기도들이는 장면들로 꿈속을 헤메던 라싸에서의 첫날 밤이다.

4. 얄루쟝보강을 지나 융부라캉에 가다

비가 아직 그치지 않는다. 란주풍미로 차려진 전통적인 아침식사다. 잼있게 생긴 대나무 밥 그릇에 숟가락도 없이 죽도 국도 사발을 들고 젓가락으로 훌훌 넘기는 것이 인상적이다. 가이드의 말이 가슴에 담긴다. 우리가 지났던 지역은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난 두꺼운 솜옷을 입고 밥상을 차려주던 식당주인의 눈을 맞추고 미소를 나눴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인연들, 다시는 체험할 수 없는 느낌들을 소중하게 가슴 한켠에 쌓는다.

출발이다. 어머니의 강이라고 불리는 얄루쟝보강변을 달린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선명한 빨간띠의 강이다. 그 옆으로 희말리아산맥이 하얗게 지켜보고 있다. 얄루쟝보강은 청장고원의 눈이 녹아 흘러 이루어진 강으로, 라싸를 비롯한 서장의 중심을 적셔주는 강이다. 이 강은 서장 싼난지역을 지나 히말라야산맥 동쪽에서 얄루쟝보(雅鲁藏布) 대협곡을 거쳐 방향을 바꾼 뒤 남쪽을 향하여 내려 가면서 인도 아삼지방을 관통한다. 이때부터 강 이름이 브라마푸트라강으로 불리며 다시 방글라데시 중앙을 지나면서 갠지스 강과 합해져 거대한 강으로 변하여 벵골만으로 나간다. 서장에서 길이만도 2057키로미터나 되는 젖줄이다.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전형적인 네모 반듯한 집들, 정부에서 통일로 지어준 집들이란다. 지붕에는 오색기와 붉은기가 꽂혀 있다. 그 주위로 잘 가꾸어진 넓게 펼쳐진 평지의 논밭들이 두 눈을 즐겁게 한다. 얄루쟝보강의 혜택으로 비옥해진 땅은 풍요로운 삶을 그려준다.

융부라캉이다.
서장의 최초의 궁전이다. 인민페 백원을 내고 말을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조선족가족팀" 은 계단을 타고 걸어서 올랐다. 숨이 넘어 갈 것 같다. 평지에서도 헐떡이면서 뭔 오기인지... 희희락락 웃으며 올라가는 어린 승려들과 눈을 맞추고 힘을 모으고 또 오른다. 전신을 꽁꽁싸고 새카만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우리들과 달리 채양모도 쓰지 않고 그대로 해빛을 다 받아주는 소녀 승려들의 구리빛 살결이 너무 아름답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손시늉을 했더니 부끄러워 하면서도 순순히 들어준다. 새카만 눈동자에서 뿜어져나오는 찬란한 빛에 내 맘속까지 밝아지는 것 같다. 하얀 이를 두손으로 막고 웃는 저 소녀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참 부럽다.

천신만고 끝에 궁에 올랐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려고 세운 궁전이리라. 촬영이 금지된 사원의 내부는 특유의 향내음이 베여난다. 가운데벽에 석가모니상이 있고 좌측에 나트리찬포초대왕이, 우측에는 송짠감보 32대왕의 상을 두었다.
흠칫 눈에 띄는 풀꽃 한송이. 메마른 벽쪽에 알릴듯 말듯 하게 피여 있는 하얀 꽃. 고산에서 어렵게 싹을 틔우고 피기까지 얼마의 인고를 거쳤 겠는가...

갸냘파서 이 가슴 울리는 저 하얀 미소
강인하여 이 마음 흔드는 저 하얀 바람
오,
희말리아의 풀꽃이여

   
 
5. 하늘 호수 남쵸로 가다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체력이 점점 고갈되여 간다. 사흘째, 고산증에 밥맛을 뺏기고 맥 풀린 눈이 차창밖을 순간도 놓지 않을 세라 응시하면서 연신 셔터를 누르는 손은 쉴새 없다. 이게 서장의 마력이다. 우리는 의지와 상관 없이 끌려간다. 해발 4718 미터의 고지대에 길이는 70키로, 너비는 30키로이며 수심은 최대 33미터의 남쵸가 탕글라산맥앞에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서장어로 남=하늘, 쵸=호수의 뜻을 가진다. 말 그대로 하늘호수라는 남쵸는 서장에서 제일 신성한 호수로 성호라고도 불리운다. 하늘과 잇닿은 비취 색갈의 남쵸 앞에서 사진도 찍을 념을 못하고 멍때리고 있다. 막혔던 눈물샘이 열렸나부다. 눈물이 영문 모르게 흐른다. 깊은 가슴 골짜기안에서 올리치는 뜨거움에 목구멍으로 흑! 터져 나온다. 신성하고 아름다운 하늘 호수 앞에 욕망으로 똘똘 뭉친 추한 모습들이 그대로 들킬 즈음에 말끔히 가셔주는 성호,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진을 남기고 차가운 물에 손을 넣고 신성한 돌을 만진다.

물이였습니다
흙이였습니다
전생의 그 많은 사연들을
담고 담아
억겁의 인연으로 쌓고 쌓으며
사랑이 되였습니다
이 사랑 펼치면
저 우주를
이 세상을
덮고 덮어도 넘쳐나는
이야기들이 눈부실겁니다
지금
이렇게 오롯이 하나가 되여
당신에게만 향하는 마음입니다
성호의 돌은

남쵸의 주변엔 흰 야크들을 몰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돈벌이하는 장사군들이 많다. 남쵸의 흰 야크들은 알록달록 실타래로 장식하고 사진 한장에 백원씩 받으며 깨끗하고 맛나는 건초를 원 없이 먹을수 있다. 또 잠자리 또한 아늑하고 깨끗하다. 그런걸 보면 먹이 찾아 해발 5000 미터씩 올라가 풀 없는 돌산, 설산을 헤메고 다니는 검은 야크들이 불쌍타. 그래도 의리있게 꼬박꼬박 집으로 잘 찾아간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고기가 봍었다 싶으면 바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검은 야크들. 꼴랑 털 색갈의 차이로 이런 천차 만별의 부당한 대우를 받는 야크들의 세상. 그렇지만 흰 야크들은 매일 목메여 갇혀 있고 검은 야크들은 자유롭게 마음껏 활개치며 쏘다닌다. 선택된 자들의 합리한 보상이기도...

남쵸에는 갈매기도 많다. 남쵸의 갈매기들은 음식점의 쓰레기통에서 통 떠나질 않는다. 휘여~ 하고 쫓으면 그냥 둬발 뒤로 갔다가 또 쓰레기통에 하얗게 둘러 앉아 마실나온 아줌마들 처럼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있다. 참 쟤들은 바다를 알기나 하는지?

남쵸에는 고기도 많다. 하지만 누구도 잡지 않는다. 그냥 관상용이다. 신성한 호수이기에 이 호수의 고기들도 신선의 대우를 받는 거다. 현지인들은 고기밥을 풀어주고 고기들이 몰려오면 여행객들에게 사진을 찍으라 하고는 돈을 받는다. 많지는 않다. 그냥 "이콰이챈" 이다. 하긴 고기밥 값이나 되려는지 모른다. 산과 강과 호수를 신성시하는 서장인들 덕분에 서장은 지금처럼의 순수한 모습은 잃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6. 천년의 가시나무 숲 그리고 유황온천에 가다

서장 싼난지구 춰나현이다. 마을 밖에는 맨손으로 소똥빙을 빚는 아주머니 바쁘다. 서장의 유일한 땔감 ㅡ 소똥빙이다. 기후의 차이로 한여름에도 불을 지펴야 하니 식량만큼이나 소중한 소똥이다. 집집마다 쌓아 올린 소똥빙들이 풍기는 냄새는 마을에 배여들고 사람들에도 배여 들었나부다. 아무렇지도 않게 맨땅에 둘러 앉아 뜨개질하는 여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그 옆에 옹기옹기 모여 앉은 꼬맹이들은 전신무장한 우리를 기웃기웃 쳐다보며 그냥 웃음이 물방울처럼 터진다. 솜이 삐죽나온 꼬질한 옷이면 어떠랴, 까막까막 턴 볼살에 코물이 씩 게발리면 어떠랴, 활짝 핀 얼굴에 마음 만은 풍요로운 것을...
마을 주민을 따라 한참을 걸어 천년의 가시나무 숲으로 간다. 가시나무는 일년에 1미리밖에 크지 못한단다. 하지만 천년을 조용히 살아온 덕에 십여메터의 큰 키에 3, 4 메터의 굵은 나무들로 숲을 이루지 않았던가. 백년도 못살거면서도 서로가 잘났다고 아웅다웅 다투는 저 인간들은 언제가야 하나의 숲을 이룰까. 날카로운 가시 사이로 뾰족하게 돋아나온 잎은 포실포실 부드럽게 안겨오고 쩍쩍 갈라진 속살들이 카맣게 비여 있어도 전혀 헐벗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 고요한 품격에서 서장인들도 닮아 갔으리라. 이 세상이 그들의 아름다움을 알기까지 아주 오래동안.

통통통 경운기에 앉아 유황온천으로 간다. 길이 좁고 가파로와 우리의 승합차는 올라가지 못한단다. 한번 털썩 엉덩방아에 우리의 고함소리는 희말리아산맥을 타고 날아 어마어마한 메아리를 데려온다. 우리의 세상이다. 길옆에는 김이 몰몰 피여오르며 꼴록꼴록 토하는 젖무덤 같은 유황샘들이 신비의 경이로움을 그림처럼 펼쳐 준다. 여기가 천당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떠들소냐~ 눈은 화등잔처럼 켜도 한눈으로 다 보지못해 안타까움만 더 할 뿐이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통통차에서 내리고 한참을 달렸건만 엉덩이 가릴 작대기도 없어 눈가리고 야옹이다. 아, 창공을 이리저리 휘젓는 저기 저 매 한마리가 내 머리우를 빙빙돈다. 무엇이라도 가려야만 문명인이 되는 것 처럼 화장실타령을 입에 달고 다닌 나에게 뭔가 선포하는 것 같다. 자연속에서 자연적인 일을 처리 하는게 똥우에 똥싸는 것 보다 낫다고...
매끄러운 유황온천에 몸을 담그고나니 자연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참 좋다. 그래 자연에 이 몸을 맡긴다. 위선을 버리자.


7. 러부꺼우 원시림속에서

서장에도 원시림이 있다. 참 이나이가 되도록 몰랐던 사실이다. 자연 그대로 보존되여 있는 하나의 다른 세계였다. 서장어로 "아이의 락원" 이라는 뜻인 러부꺼우. 기후가 알맞고 사계절 늘 푸르고 자원이 풍부한 아름다운 원시림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진달래꽃이 여기에 있다. 고향의 사과나무보다 더 큰 진달래꽃나무에 넋을 놓았다. 아무리 뻥쟁이라도 이 말은 못할거다.
여기는 인도와의 변경으로 충돌이 여러번 있었다고 한다. 1962년 10월20일부터 11월21일까지 벌어진 "중-인 전쟁"은 중국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인도군의 4천여명의 사망과 1700여명의 행방불명을 초래했으며 중국군의 722명의 전사자를 내고 2300여명이 부상당하는 양측의 막대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그야말로 전쟁은 악마였다. 지금은 할아버지 한분이 그 유적지에서 자그마한 박물관을 지키고 있다. 원시림은 말없이 할아버지를 지키고...

한참을 걷다가 ( 여긴 걸을수 밖에 없다. 도로가 없으니까) 당승이 머물던 자리라는 바위앞에 섰다. 희미하게 새겨진 스님의 모습앞에 하아얀 하다가 차분히 놓여져 있고 사방에 널려있는 지페들이 낙엽처럼 쌓여져 있다.

629년 불경얻으러 인도 가던 당승은
바위돌에 머물며 고독을 두런거리고
2017년 심심풀이로 관광 갔던 나는
바위돌에서 당승의 고독을 엿듣는다
수많은 죄들이 뿌리고 간 지페들이
쌓이고 날리고 퇴색하고
비물에 바람에 세월에
나붓기는 하다들이
머리를 풀고 하얀 순간을 위로한다
당승의 념불이 중얼중얼 바위를 뚫고 나와
내 숨겨진 이야기마저 세탁시키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나는
바위틈새로
나무잎속으로
땅속으로
그렇게
그렇게
스며든다
발가 벗기고
깨끗이 깨끗이 씻기우고
마침내 찬란하게 가벼워진다
깃털 처럼 창공을 훨훨 날아옌다
나를 잃는다
나를 버린다

계속 골짜기로 간다. 사품치며 내려오는 빙하도 파란색이다. 바위도 파랗고 나무껍질들도 이끼로 덮혀 파랗다. 아마 우리의 얼굴도 파랗지 않았나 싶다. 파란눈들이 파랗게 비추며 골짜기를 오르는데 쌩하니 길을 가로막는 자가 있었으니... 원숭이들이다. 원숭이들이 북적댄다. 툭툭 치고 뺏으며 텃세가 장난 아니다. 그 와중에도 흔들흔들 그네타며 꿀잠에 빠진 놈도 있었으니, 아마 수행중인 것 같다. 갸들도 집단을 이루고 살려니 마음이 복잡할 수 있지... 한참을 진땀빼며 그 놈들을 따돌리고 시원히 툭 터진 중턱에 오르니 절벽으로 잘잘잘 발리 듯이 내려오는 폭포가 해빛에 눈부신다. 롄화승 대사님이 수행하던 곳이란다. 하다들로 오색기로 지페들로 헤아릴수 없는 그 믿음들이 뤄부꺼우를 살뜰이 감싸준다. 사시절 파랗게...
하얀수염이 한가슴 되시는 할아버지가 독특한 향내와 함께 아래로 내려온다. 산신령이 내려 오나고 다들 놀란 눈치다. 그냥 다가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또 한분을 데리고 온다. 너무 닮아 보이는게 아마 형제인 것 같다. 살림도구가 전혀 없는 동굴속에서 한 가족이 평생을 여기에 뿌리박고 향을 피우며 오로지 불심의 길만 가고 있다. 자연속에서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자연의 가르침을 그대로 순응하는 사람들...
아름다움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뿜어져 나오는 거다. 보는 이의 가슴에 스며드는 거다.너무나 깨끗하고 너무나 순수해서 놀라운 러부꺼우.

   
 

8. "산우의 목초지" 암드록쵸(羊湖)와 만년설의 카롤라빙하를 만나다

해발 4000~5000미터의 "탠루", 신장공로는 전인미답의 험로다. 계곡과 산 릉선을 따라 룡의 꼬리처럼 구불구불 멋진 곡선을 그리며 아슬아슬하게 나있는 도로를 힘겹게 오른다. 해발 4990미터의 캄발라 고개 정상에 오르니 타루쵸와 룽다가 반갑게 맞는다. 나부끼는 타루쵸 깃발 사이로 전갈모양으로 길게 누워 있는 옥빛의 양후(암드록쵸)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인다. 자줏빛 산과 짙푸른 하늘, 흰 뭉게구름, 옥색 물빛이 어우러져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양후는 "산 위의 목초지"란 의미로 해발 4441미터의 고지에 있는 서장에서 세 번째로 큰 염호다. 바다가 융기해 생긴 짠물의 호수로, 조개, 암모나이트 등의 화석이 발견된다. 길이 130 키로메터, 너비 70키로메터, 면적 638 만 평방키로미터에 총 둘레 250 키로미터의 거대한 호수다. 호수는 9개의 섬을 품고 있다.

캄발라고개 정상에는 서장 토종개인 짱오로 십원 한장에 사진을 찍게하는 장사군들이 있다. 세계에서 제일 비싼 개 라는데 보기와는 다르게 너무나 유순하다. 나도 살짝 그러안고 한컷 남기고...

많은 검문을 거쳤다.
요즘 터진 인도와의 충돌로 군용차들이 분주하고 사방에 군대들이 널려있다. 긴장된 군인들의 얼굴과 달리 느슨한 서장인들의 표정은 하늘이 무너진다 한들 변하겠는가. 하늘우에 사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평생 울음도 모를 것 같다.
또 음식점이다. 재빠른 가이드 덕분에 벌써 대여섯가지반찬들이 줄줄이 나온다. 머리가 아프든 속이 울렁거리든 밥은 왕창 들어간다. 갑자기 가벼운 무엇이 어깨에 떨어지는 느낌이다.

허겁지겁 한술 뜨는데
누군가 어깨 톡톡
돌아보니 눈 맑은 소년
두손 모아 구걸한다
줄게 없다고
미안하다고
두손모아 합장만
서장의 거지야
날 좀 봐라
내 눈에 들어 있는 탐욕들
서장의 아름다움 구걸하러 온
이 거지가 안보이냐
내가 감히 너에게 무얼 준단 말이냐
세상의 아름다움 꽉 들어찬
너의 반짝이는 두 눈
내 눈부시여 뜰수가 없구나
넌 모든 것을 가졌다
넌 부자다
내가 거지다

배가 두둑해진 거지들이 떠난다.
서장의 4대 신산중 하나인 만년설의 카롤라빙하가 앞에 있다. 해발 5560미터, 하늘과 맛 닿은 눈부신 카롤라빙하주위에는 오색의 타르쵸들이 바람에 나붓기고 있다. 이 거장의 앞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작고 미개한 존재인지 새삼스레 깨닫는다. 아릿다운 열댓살의 소녀들이 사진을 찍어 달라며 조른다. 인민페십원이란다. 음식점, 여관들이 즐비하다.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인간은 쓰레기로 대 자연을 모독하고 있다> 는 박완서 소설가님의 소설 "모독"이 떠오른다. 대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내여 주려고 하지만 우리는 이용만 할 뿐이다. 인간은 인간 서로에게도 그럴때가 많으니 말해 무엇하랴.
빙하는 계속 녹고 있단다. 2035년이 되면 볼 수가 없단다. 그때는 한장의 사진으로만 남을 카롤라빙하, 이렇게 한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9. 성녀봉(줘무라일봉 )그리고 파리초원의 진달래와 뚸칭후

르카저로 가는 길이다.
한참을 가면 비가 오고 또 한참을 가니 눈이 온다. 로정은 길고 멀다. 구불구불 뱀꼬리 같은 길을 구불구불 뱀꼬리 처럼 가다가 연신 터져나오는 감탄소리에 차도 감탄하며 멈춘다.
줘무라 일봉이다. 해발 7350 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며 구름속을 뚫고 하얀머리 고고하다. 희말리아산맥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으며 쵸몰랑마봉과 자매봉이다. 현지인들은 성녀봉이라고도 부른단다. 사진에는 그 웅장함을 담을수가 없다. 가슴속에 깊이 그려 넣을 뿐이다. 구름이 지나며 언뜻언뜻 완전한 몸체를 보일쯤이면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함성을 지른다. 자신의 초라함이 더해진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였다.

비가 오면
비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
봄비
여름비
가을비
겨울비에
아무데나 흔적 없이 스며드는 나
바람 불면
바람 따라 떠도는 나
봄바람
여름바람
가을바람
겨울바람에
여기저기 어딘가로 따라가는 나
사랑하는 그대들이여
나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마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주같은 마음으로 보라
나는 보이지도,
존재하지도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드디어 해발 4000미터의 파리초원에 들어섰다. 색색의 야생화들이 아름다운 그림을 물 들인다.

아, 저 빠알간 속살로
이 척박한 땅을 품은
우리의 진달래!
너의 소박한 사랑에
이 땅이 불탄다, 불탄다

진달래다! 이 신성한 땅우에 저렇게 소담하게 피여나 내 마음을 진동한다. 아름답다! 파아란 하늘에 잇닿은 빠알간 진달래, 광활한 초원에서 몇시간을 달리며 감상할수 있다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난 행운의 여신이라도 된듯 자랑스러움에 벅차 연신 우리 진달래라고 불렀다. 지나가는 양이, 야크가, 웃든지 말든지...
세계에서 제일 크고 제일로 해발 높은 고산목장을 지나 뚸칭후라는 돌비석 앞에 멈췄다. 설산이 녹아내려 성결한 호수가 된 뚸칭후, 끝없는 양떼무리들이 호수에 담겼다. 모래더미에 허리까지 잠긴 뚸칭후 돌비석. 인연이 아닌가부다. 나의 눈앞에는 뚸칭후가 마르고 갈라져 신음하고 있었다. 그냥 어느 이야기로 들었을 적한 아름다운 호수로 남기다가 혼연히 기억에서 사라져갈 뚸칭후여, 어느 연분을 만나면 아름답게 나타나길~


10. 영웅성 "종산고보" 그리고 "타쉬룬포사원"

르카저의 장쯔현이다. 고풍스런 종산고보가 멀리 보이고 그 아래로 백거사가 하얀 성벽만 보인다. 서장교통의 요지인 쟝쯔지방을 방어하기 위하여 1268년에 최초로 건립되고 1365년에 지금의 규모로 확장된 종산고보. 보물창고인 서장은 끝끝내 인간의 탐욕을 불렀으니 1904년 영국의 침략으로 2개월간 열심히 싸웠지만 최신식무기를 무장한 영국군에게 끝내 함락된 종산고보, (자그마한 유리집으로 된 영국침략 박물관에서 십원 한장 내고 들어가 본, 그때 전투에 사용한 무기들은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주 구식인 총,칼, 창 뿐이였으니...)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항복하지 않고 절벽으로 떨어져 죽음을 택한 서장인들, 지금은 종산영웅기념비를 세우고 영웅성이라고 불리우지만 페허가 되여 들어가 볼 수도 없다. 영화 "红河谷"는 그때의 아픔을 재현한 역사적 사실로 서장의 옛 영광만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광장에서 로라스케이트를 타는 여자애가 붉은 넥타이를 팔랑이며 신나게 광장을 돌고 돈다. 인간의 욕심으로 채워진 역사도 돌기만 할뿐...
타쉬룬포사원이다. 1447 년에 12년동안 건립한 길이가 3천미터, 50개이상의 경당, 3천여칸의 방을 가진 거대한 수도원 사찰이다. 사원내 가장 웅장한 건물은 높이 30미터의 대미륵전과 역대판첸의 영탑전이다. 미륵상은 6700돈의 금과 12키로의 순도 높은 동으로 만들어져 있다. 또한 다양한 크기의 1400여개 남짓한 다이아몬드, 진주, 호박 등으로 새겨져 있다. 사원내 흰색 건물은 주로 주거용 건물이고 붉은색 건물은 종교적인 용도다. 겨울철 실내 열기가 빠져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건물의 창은 작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단다. 창문 주변은 검은색이다. 서장 불교에서는 붉은색은 지혜, 흰색은 자비, 검은색은 금강불을 의미한다. 서장의 전통적인 집들에는 모든 문에 흰색의 천으로 장식 한 것이 특징이다. 서장인들의 자비로움은 그냥 온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타쉬룬포사원은 기도한다 ...자비를...용서를...

   
 

11. 드디어 쵸몰랑으로

2017년 6월30일, 드디여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새벽에 먹은 밥 알갱이들이 긴장된 위벽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연신 목구멍으로 시큰한 트림을 부른다. 오래 헤여진 연인 만나러 가듯이 활량거리는 이 마음 진정이 안된다. 40여년만에 만나는 첫 사랑이니 오죽하랴...
쵸몰랑으로 가는 입구다. 산길이 가파로워 많은 차들이 앞으로 나아 가지 못하고 정지 상태다. 몇시간 동안 장족 음악을 영혼 없이 듣다가 차에서 내려 슬로우모션으로 스트레칭을 해본다. 체력을 아끼느라 말도 아끼면서... 전통복장의 두 서장할머니가 우리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나의 바로 옆에 쭈크리고 앉아 쉬를 본다. 너무도 당황하여 우리는 슬금슬금 피하고 만다. 자연스런 일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우리가 바보같다. 왠지 여기에 와서 점점 위축 되여가고 처음의 그 당당함들이 맥없이 시들어져 간다.
차도 힘겨워 한다. 가파로운 낭떠러지를 빙빙 타며 한참을 기여간다 .아래배가 부어오름에 참지 못하고 일제히 차에서 내리고 자연스럽게 짝을 지어 볼일을...ㅎㅎ~ 이런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 벽은 허물어지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여행은 참말로 아름다운 고역이다.
쵸몰랑마봉의 제1캠프장 (해발5955미터) 에 도착했다. 인간이 거주할수 없는 고도이며 극한에 도전하는 관문이다. 숨가쁘게 헐떡거리는 우리의 앞에 쵸몰랑마봉이 우뚝 서 있다!

꿈이였고 로망이였던 쵸몰랑마봉이여
내가 왔다
해발4000의 청장고원을 딛고
해발6000의 희말라야산맥을 넘어
해발8800의 너를 올려다 본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
얼마나 자랑스럽고
얼마나 위대한거니
이 세상 모두가 널 흠모하고
이 세계 모든 것이
너의 발 아래에 있구나
멋지다
쵸몰랑마봉이여
난 너를 사랑한다
하지만
너 하나를 위해
한몸 받쳐준
희말라야산맥의 리더정신을
더 사랑하고
희말라야산맥을
최고의 산맥으로 키워준
청장고원을
더더욱 사랑한다
잊지마라
쵸몰랑마봉이여
이 땅우의 먼지까지도
널 위해 희생한거란걸

중국과 네팔 국경지대의 희말라야산맥에 있는 해발8844.43미터의 세계의 최고봉 쵸몰랑마봉의 이름은 서장어로 "세계의 어머니"란 뜻이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쵸몰랑마봉은 오기로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비싼 비용을 받는다. 극한 경우에 목숨까지 지불해야 하니까... 아직 수거하지 못한 시체 200여구가 그대로 있다고 한다. 그래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등반가들은 점점 많아 지고 있다. 5, 6년이란 시간을 준비하면서 말이다. 왜? 이런 산을 목숨 걸고 올라 가냐고?

산을 왜 오르는가?
보라! 저기 산이 있으니까
나는 산을 오르지 않는다
산이 나를 오른다
산은 곧 나다
내가 나를 오르는 것이다
산은 없고
나도 없다
그저 뭔가 움직일뿐
위로 아래로
공중에서

일본의 현대시인 나나오마카키의 시이다. 산을 오르는데는 답이 하나가 아니겠지만 자신의 사연을 담고 극복하기 위해서 일거다. 오로지 목숨을 걸고 오르고 목숨을 찾고 내리는 것이 최고의 목표인 쵸몰랑마봉의 등반가들에게 경의를 드린다. 어디에도 목숨을 걸어 본적 없는 나는 쵸몰랑의 품에서 영하40도의 추위에 뇌를 조여오는 고통의 저녁을 맞는다.

12. 쵸몰랑에서의 일몰과 별들의 잔치

우리는 현지인들이 꾸며놓은 풍막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생각보다 포근했다. 하지만 서장의 특유의 차향 때문에 속은 연신 울렁거렸고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체력은 만사를 지체놓고 눕고만 싶은 심정이다. 애들보다 건장한 어른들이 산소기를 달고 거칠게 숨을 쉬며 불안감을 더해준다. 타닥타닥 소똥, 양똥이 타는 난로의 팔팔 끓는 물을 한잔씩 마시고 다시 풍막을 나선다.
일몰이다. 쵸몰랑은 불타고 있다. 나도 하나가 되여 끓는 감정 주체하지 못하고 얼어든 볼로 따갑게 흘리고야 말았다. 우리는 서로를 알고나서 한번도 떨어진적 없는 것 같다. 애초부터 함께였을... 원래 이 세상은 거대한 한덩어리가 아닌가? 우리 모두가 연결 되였고 그 모든 벌어지는 것 들은 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였다. 우리가 아무리 따로 떨어져 나가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 한다더라도 결코 자신의 능력 때문인 것 만은 아닐 것이다. 황금빛으로 변한 정상을 넋없이 바라보며 감사 하다고 사랑 한다고 잊지 않을거라고 연신 다짐을 한다. 마치 나의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한 듯이 쵸몰랑은 어둠속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텅 빈 공간에서 왠지 꽉 찬 듯한 마음은 행복이였다. 아, 비움은 채움이구나!
숙소의 시설은 열악했다.
어둡고 춥고 난방장치도 없는 방에서 우리는 가지고 간 누에고치 이불속에 기여 들어가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야 했다. 몸을 옆으로 돌리는 데도 숨이 막히고 땅속으로 꺼져 내리는 것만 같다. 가지고 간 산소기를 한참 들이 쉬다가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들기가 힘들었다. 정말 아무나 올수 있는 곳은 아니다. 밤새 들려오는 현지인 남자의 노래소리는 알아 듣지 못해도 왜 저리 구슬픈지... 노래와 함께 잠속으로 빠진다. 갑자기 누군가 툭 치는 것 같다. 풍막주인이다. 서툰 한어로 밤에 검사를 한다고 귀띰한다. 모든 풍막에는 열명까지만 숙식을 할수 있단다. 건데 우리가 인원이 초과 되였기에 검사 할 때만 다른 곳에 피해 있으란다. 미친다. 이 밤에, 이 추운 곳에서 어디로 숨어라는 말인지... 어쩔수 없다. 다들 골아 떨어진 것 같아 나와 미옥씨하고 은행점장하고 밖으로 나왔다. 폰을 보니 새벽 2시다. 와~ 칠흑 같이 까만, 불빛 하나 없는 밤이 이처럼 황홀 할 줄이야~

어둠속에 사라져간 쵸몰랑이니
이렇게 부스러져가며 나에게 달려 오는거니
연애하는 연인처럼
우리 둘만의 비밀의 대화로
이렇게 날 유인 하는 거니
너의 반짝이는 눈빛들이
내 가슴에 박혀버리고
너가 보는 세상들이
내 마음에 자리든다

별들이 쏟아진다. 은구슬들이 퍼 붓는다. 추위도 어디론가 사라져 가고 가슴이 펑 뚫린다. 이렇게 많은 별들을 한번에 볼수 있는 기적 같은 날을 뜻하지도 않은 야간검사 땜에 당첨 될 줄이야. 벌어지는 일들은 이유가 있다는 말이 와 닿는다. 어쩌면 다 좋은 징조라고... 슬픈 일이든 화날 일이든 달갑게 맞으라고...
별들의 잔치를 바라보다나니 검사가 끝났단다. 더 보고 싶었지만 온 몸이 얼음장이 되여 버린 상황에 마려오는 오줌 또한 급하다. 서로 손쥐고 공동변소에서 함께 볼일 보고 나오는데 검은 물체가 슬그머니 우리 앞을 막는다. "이콰이챈~" 변소 문지기다. 돈이 없다고 했더니 그냥 가란다. 바삐 나오다나니 지갑을 들고 나오지 않았던게 미안하다. 이 추운밤에 밤새 구석에 쭈크리고 있을 그가 자꾸만 생각나게 하는 쵸몰랑의 첫날 밤을 불면으로 보낸다.

   
 
13. 세계에서 제일 높은 우체국 그리고 내가 쌓은 유일한 돌탑

캠핑장 가운데 양철곽처럼 생긴 파란 집이 있다. 세계에서 해발이 제일 높은 우체국이란다. 낮에는 풍막주인들 모두가 그 주위에 앉아 해빛쪼임을 하며 담배도 서로 권하고 서로의 외로움도 달래고 있다. 그 악렬한 환경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고요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그들도 세계에서 유일한 관광 사업자들이 아닌가.
쵸몰랑에 간 사람들에게 우편엽서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더 많이 가질 수는 없다. 그냥 일인 한개씩 차례진다. 여기에는 돈으로 해결 안되는 일이 많다. 또 돈이 아니여도 해결되는 일도 많다. 그래서 천당이라고 하는지도... 한장의 엽서를 누구에게 보낼가고 하다가 중학생인 변호사네 따님한테 주고 말았다. 사실 보내고 싶은 데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우체국옆에 돌탑을 세웠다. 쵸몰랑의 봉우리를 마주 보이게 여기저기에서 큰 돌을 주어다가 헐떡이며 쌓았다. 바람에 넘어가지 말라고 속삭이면서... 쵸몰랑의 돌들은 이쁘지가 않고 거칠다. 속세의 때가 묻지 않아 너무 순수하고 깨끗해서 일거다. 아름다워서 일거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돌탑을 쌓는다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서장의 안녕을 위하여


14. 희말리아의 자전거와 유채꽃, 그리고 막걸리세잔

쵸몰랑에서의 아침이다. 기적 같은 이 멋스러운 날이 흐렸다. 안개가 짙어 쵸몰랑마봉이 보이지 않는다. 쵸몰랑을 밟고 섰는데 봉우리가 안보이다니... 꿀꿀해진 기분에 주섬주섬 짐들을 챙기고 밤새 고단한 몸을 라면으로 위로한다.

간다~ 잘 있어라, 쵸몰랑마봉!
다시는 오지 않으련다
하지만 너를 쓸거야
그리고 기억 할거야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이 비가 내린다. 그렇게 차안은 적막으로 차고...

한참을 달리다가 갑자기 앞에서 감탄하는 소리에 목을 빼들어 차창을 내다본다. 세상에 이길에 자전거라니? 자전거에 바리바리 물건을 실은 이십대의 젊은이가 힘겹게 올리막을 올라 오고 있다. 쵸몰랑을 정복하러 가는 사나이! 웬지 모르게 덩달아 흥분되여 차안이 들끓는다. 아무나 볼수 있는 장면도 아니지, 어쩜 기적의 순간이지.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 처럼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 쨔유! 쨔유! 쨔유! " 너무나 멋있다! 잘 났어! 정말!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산들을 돌고 돌고 또 돌고... 어슴프레 잠이 들었다. 갑자기 싱그러운 냄새가 코밑을 간지르며 잠을 꼬집는다. 눈앞이 환하다. 온통 황금벌이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헐떡이며 유채밭으로 달렸다. 서장의 곡창지대로 불리우는 르카저다. 노오란 유채꽃이 한창이라 풍요로운 느낌이 든다. 하늘과 유채밭이 어울려 너무나 산뜻하고 아름다운 그림속에 들어선 것 같다. 이런 대규모 유채꽃밭에 우리만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유명한 관광지를 전세낸 기분이다. 아, 서장의 아름다움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노란물결 출렁이는 바다에서 내 마음은 갈 길을 잃는다.
몇시간을 달려도, 유채밭은 아직도 우리를 길게 길게 배웅하고, 서장의 웅장함은 매일 실감해도 또 놀래고, 우리는 놀라고, 또 놀라고...

주유소에서 잠간 멈췄다. 어디선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방을 휘둘러 보다가 오백미터 떨어진 곳에 빙 둘러 앉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냥 무작정 다가갔다. 7, 8살되는 쪼무래기들이 달려오더니 한어로 어디에서 오냐고?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바로 앞에 여인 하나가 볼일보고 옷을 입는다. 대수롭게 보고 웃어 줬더니 그쪽도 하얗게 웃어 준다. 한참 걸어 둘러 앉은 장소로 갔더니 전부 여자들 뿐이다. 할머니들과 젊은 여인들이 모여 앉아 차파티 ( 서장의 전통밀가루떡) 를 손으로 뜯어 먹으며 쌀로 만든 술을 마시고 있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기어코 말리며 술을 권한다. 하긴 술을 너무 오래동안 굶은 터라 사양 않고 한컵 원샷 했더니 또 따른다. 우리의 청주 비슷한 맛이라 두말 없이 또 원샷이다. 아니 글쎄 또 따를 줄이야... 컵도 우리 옛날 보온병 뚜껑이였으니 양이 엄청 많은 건데 말은 안통하고 흉내를 아무리 내여도 그냥 입에 들이 붓는다. 또 원샷이다. 그랬더니 다들 신나게 손벽을 친다. 그리고 제일 년장자분이 오시더니 나의 옷에 밀가루를 발라주고 포옹한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핑 돈다. 너무나 따뜻해서...

그냥 지나갔으면
다가가지 않았으면
오늘이 달라지겠죠
용기를 가지고 찾아갔죠
반갑게 맞아주더군요
드시던 음식도 선뜻이 내주시면서요
활짝핀 얼굴들에
저도 환하게 웃더군요
언어도 틀려요
풍속도 틀리죠
다가가면 모든게 열려요
틀린것이 아니고 다를 뿐
다가가면 다름도 편해져요

   
 

15. 하늘의 궁전 부다라궁에 가다

부다라궁의 이름은 "관은의 성지" 라는 뜻으로 서장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 답게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무려 해발3600미터의 고지대에 이렇게 거대한 궁전이 건축될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저번에는 밤에 갔기에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현재 검사가 엄격하다. 신분증과 변방증외에는 개인적인 물건은 소지할 수가 없다. 사진도 찍을 수 없다. 부다라궁은 서장자치구 라싸에 있는 궁전으로 달라이 라마의 거주지였으며 1994년에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록되였다. 전통적인 단일 건축물로 총면적은 13 만평방미터이며 전체부지는 36 만평방미터, 동서의 길이는 360 미터, 남북의 길이는 270 미터, 높이는 13 층으로 117 미터에 달한다. 641년에 토번왕국의 송짠감보왕이 당나라에서 시집오는 문성공주를 데려오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이곳은 크게 제사를 지내는 훙궁과 라마들이 거주하는 백궁으로 결합된 구조인데 서장의 과거를 몸소 증명하는 살아 있는 증거다.
부다라궁에는 다른 불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영탑전(靈塔殿)이 있다.영탑은 달라이 라마의 시신을 모신 탑인데, 전각(殿閣)안에 봉안되었다. 화장한뒤 뼈 만 모아 넣어 두거나 약품처리한 시신을 그대로 넣어 두는 경우도 있다. 탑신 전체에 도금을 하고 옥돌들과 보석들을 박아 넣고 공로의 크기에 따라 복발식으로 한층씩 더 올라가며 아주 화려하다. 달라이라마 5 세의 영탑전은 황금이 5500키로가 들고 옥돌과 보석이1만8086개나 박혀 있다고 한다. 999개의 방, 40여개의 불당, 천여개소의 불전, 2만여개불상으로 구성된, 철골은 커녕 못하나 쓰지 않고 나무, 흙, 돌 만으로 지은 부다라궁에는 세계의 박물관들이 탐내던 많은 문화재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자리하고 2천여년의 력사와 문화를 기록한 36 키로그램짜리 경전만도 7천여종이 보관되여 있다. 우리가 2시간동안 부다라궁안을 돌고 있었는데 쿵쿵쿵쿵 방아 찧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바닥을 손보고 있단다. 반질반질한 바닥을 보노라면 얼마나 두드리고 만지고 보완을 했겠냐는 아픔도 서서히 올라온다. (서장의 민속춤을 보면 긴 막대기로 땅을 내리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이 부다라궁의 바닥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한다.) 권력쟁탈도 끊이지 않았던 궁내의 추문들...그 많은 어린 달라이 라마들이 탐욕의 음해로 이슬처럼 사라졌으니... 무거운 마음이 궁전에서 엄습해오는 한기에 차갑다. 밖으로 나오니 부다라궁의 흰 담장벽에 노오란 민들레가 아련히 눈에 띄인다.

1350년의 흐느낌이
적막속에 짓눌러져
꺽꺽~비집고
노랗게 흘렀구나
얼마나 많은 울음들이
아직도 터져나오지 못하고
저렇게
아프게
삐여져 나오려고
발가락을 긁고 있을까

마니차를 돌리며 들어 오는 사람들이 붐빈다. 구석구석 종이돈을 박아넣은 담장들을 허무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다음의 여행지 조캉사원으로 향한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위병들에게 파괴되는 부다라궁을 주은래 총리가 견결히 막아 나서서 지킬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박제가 되여 관상용으로만 작용하는 부다라궁이 웬지 쓸쓸하다.

16. 조캉사원 그리고 오체투지의 기도

서장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꼽히는 조캉사원이다. 부다라궁에서 걸어 얼마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캉사원은 몇달, 혹은 몇년을 거쳐 오체투지로 찾아오는 순례자들로 바깥까지 넘쳐난다.
7세기, 송짠감보왕시기에 건축된 조캉사원은 조는 "불상", 캉은 "법당" 을 뜻하며 당나라에서 시집온 문성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상을 안치한 곳이다. 순례자들이 부다라궁보다 조캉사원을 더 많이 찾는 이유는 바로 이 석가모니상 때문인거다. 중국의 유명한 영화배우가 애가 들지 않아 여기를 일부러 찾아와 불공을 들였다는 소문이 날 만큼 영 하다는 말이다. 무신론자인 나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여기지만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세월에 믿음 하나라도 있다는 것은 소중하다고 본다. 서장에 와서 제일로 감명깊게 느낀건 아름다운 경치보다 서장인들의 불심이다. 세상에서 이처럼 생을 다하여 불심에 충성하는 민족은 없을 거라고 본다. 조캉사원으로 오기까지 몇십벌의 옷과 장갑, 그리고 가정의 전 재산을 올인하는 서장인들을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보라고, 미개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오기전까지 나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으니... 그들은 왜 온 몸을 던져 기도를 하는가?
완전히 온 몸을 땅에 밀착시키며 기도를 하는 그들은 자기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생명을 가진 만물이 평화롭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거란다. 오체투지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면서 불, 법, 승 삼보에 큰 절을 올리며 최대의 존칭을 표하는 예법이다. 머리, 팔, 가슴, 배, 다리 오체로 땅에 닿도록 엎드려 부처나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礼)에서 유래된 것으로 교만과 거만을 떨쳐 버리고 하심(下心)의 의미를 되새기는 서장의 오랜 기도법이다. 람루한 옷마저 더 다슬도록 , 오체투지로 기도하는 그들 앞에서 나는 너덜너덜 해진다. 어쩌면 서장인들은 우리보다 한단계 혹은 아주 높은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에 생을 다하는 우리와 불심에 생을 다 하는 서장인들과의 대조되는 생활에 딱히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조캉사원은 역사의 난을 거치면서 많은 파괴를 당했다. 하지만 서장인들의 불심은 오히려 더 강렬해지고 그러므로 조캉사원이 지금까지 보존 될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조캉사원의 벽화들이 그때의 어지러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大昭寺,
불교 최고 무상의 자리에
손톱발톱 다슬며 살아온 세월
1350년동안 그 인고의 무게를 이겨내며
피비린내 나는 난사의 향을 태우고
오장륙부를 그을리며
참아온 그 지혜로움
지금 우리는
그 옛말을 듣고 있다
역사를 매만지고 있다

조캉사원을 돌고 나서 저녁에는 야외극장에서 장예모 감독의 "문성공주"라는 극이 있었다. 산으로부터 깎아 만든 대형극장에서 몇백명의 배우들로 구성된, 송짠감보시기에 부다라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개한 극을 보노라니 그때의 역사를 체험하는 긴장된 기분에 왠지 모를 슬픔이 올라왔다. 웅장한 역사는 거대한 희생을 동반하는 거다. 모든 휘황찬란한 업적을 찬양하기전, 우리는 그 아래에 깔려있는 이름도 없는 희생들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17. 서장에서의 여행을 마치며

2017년 6월22일- 7월4일의 서장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여행하는 동안 행복했다. 비록 고산증으로 포기하려는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용하게 잘 견뎌준 우리 팀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많은 성장을 기대한다.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여행중이야
고원, 빙하, 햇살을 맞받으며
앞으로 계속 가야만 해
숨가쁘고 탈진도 오지만
되돌아 갈 수가 없어
죄 때문에
선 때문에
그런게 아니야
스스로 용서하고
스스로 용기주며
내 자신과 더 잘 지내려는
길을 찾을 뿐이야
이 야심한 밤에도 멈출 수가 없어
계속 가야만 해
내 자신과 더 잘 지낼수 있는
그 길이 나타날때까지
나는 여행중이야

서장 여행이라 해봐야 서장의 3분의 1지역만 돌아 봤을 뿐이다. 서장에 대해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이번 여행으로 나의 생각이 바뀌였다는 것은 내 일생의 크나큰 수확이라고 생각 한다. 내가 지나온 지역들, 그리고 황홀한 절경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 하겠지만 서장인들의 순수한 모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 온 것도 오체투지로 기도드리는 그들의 소망 때문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 부터 함께 였을 거라고... 우리는 하나일 거라고...이 세상, 더 나아가 우주부터 미소한 먼지까지, 우리 모두 한 덩어리라고...얽히고 섥힌 우리 모두 동그라미안에 있다고!

가도 가도 그 안
뛰고 뛰여도
그 안
퍼덕이고
허우적여도
그 속
언제부터라고 없이
어디까지라고도 없이
끝도 없이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였고
꽉꽉 차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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