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세계인의 날' 수기 공모 특선상 작품

▲ 방예금 약력: 중국 (흑룡강 오상) 방송국 1급 아나운서, 흑룡강신문, 흑룡강방송 특약기자. 2015년부터 수필 창작 시작, 흑룡강신문, 요녕신문, 송화강, 청년생활 다수 발표. 수차 KBS 한민족 방송 우수상 획득.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시낭송협회 분과장.
[서울=동북아신문]  4년 전 처음 한국에 온 이튿날, 남편 친구가 밥을 사 준다며 우리 부부를 한식집으로 청했다.
 
  “여기 제육볶음 주문요.”

 ‘제육볶음이 뭐지?’, ‘제육볶음’이 올라오자 나는 그 요리를 주시해봤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돼지고기볶음 같았다. 살그머니 남편한테 물어보았더니 돼지고기볶음이 옳다고 했다. 순간 ‘반응’이 왔다. ‘돼지’ 한자 발음 ‘제(猪)’와 ‘고기’ 한자 발음 ‘육(肉)’을 직역하여 한자어 합성어 ‘제육(猪 肉)’이 된 것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제육’을 ‘돼지고기’로 순화”했다고 해석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한국인이 나를 집으로 청했다. 삶은 달걀이 상에 올라왔다. “이 ‘닭알’ 정말 맛있네요. 토종 ‘닭알’이에요?”, 내가 ‘닭알’이라고 하는 말에 주인집 11살 난 막내딸이 우스워 죽겠단다. “엄마, 계란을 ‘닭알’이래, 웃겨.” 애가 너무 웃는 통에 나는 면구스럽기 그지없었다. 어려서부터 달걀을 사투리 ‘닭알’로 습관적으로 말하다 보니 또 저도 몰래 입에서 ‘닭알’이란 말이 불쑥 튀어나간 것이다. ‘계란’은 ‘닭’의 한자 발음 ‘계(鸡)’와 “알’의 한자 발음 ‘란(卵)’을 직역하여 한자어 합성어 ‘계란(鸡 卵)’이 된 것이다.(국어사전에서는 ‘계란’을 ‘달걀’로 순화했다고 했다.) ‘돼지고기 볶음’과 ‘제육볶음’, ‘계란’과 ‘달걀’, 나는 한 가지 사물에 대한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표현을 반복적으로 비교해보았다. 어딘가 느낌이 다른 것 같았다.

 ‘제육볶음’이 ‘돼지고기 볶음’보다, 계란’이 ‘달걀’보다 심플하고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반면에 ‘돼지고기 볶음’과 ‘달걀’은 어딘가 약간 ‘우아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비유가 타당할지 모르겠지만 ‘돼지고기 볶음’과 ‘달걀’은 옛날 상놈이 쓰던 언어 같은 반면 ‘제육볶음’과 ‘계란’은 옛날 양반이 다루던 언어 같았다.

 그 언어가 고유어든 한자어든 외래어든, 한국인들은 항상 듣기에 편하고 부드럽고 ‘스타일리시’한 언어를 쓰는 것 같다. 강하고 직설적인 느낌을 주는 언어사용은 될수록 피하고 있다. 완곡하면서 유연한 표현들, 듣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 좋게 하는 표현들을 많이 사용하려 한다.

  24년 전, 한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직장 상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울의 어느 공원에 갔는데 공원에 씌어진 표어에서 가슴 뭉클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표어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고 한다. “남몰래 버린 휴지, 슬그머니 버린 양심”. 상사는 고향에서 “휴지를 버리면 벌금”과 같은 딱딱하고 거부감이 드는 표어만 보아오다가 사람을 감화시키는 이런 표어를 보니 신선하기도 하고 감동되기도 하였단다. 그 분은 중국식 표현으로 한국의 공공시설에 씌어진 표어들이 대체로 아주 ‘인간적이다(人性化)’라고 했다.

  한마디로 한국인들은 항상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는 생각, 함양, 의식수준의 구현이다. 그만큼 행동을 할 때도 주변 사람들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몸에 배어있고 언제 어디서나 품위와 품격을 갖추기 위해 여러모로 신경을 쓰는 한국인들이다. 세인의 주목을 받았던 2016년~2017년 촛불시위 때 연 천 만명이 몇 달 동안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 엄청난 인파로 발 디딜 틈도 없는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의 안전을 배려하여 몹시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뭐든지 기꺼이 남에게 양보하려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인간 품격의 절정’이라는 말을 떠올렸었다. 외신들도 모두 이런 모습에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나의 동북 모 초등학교에서 교장 직을 맡고 있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국 0000항공사에서 이 학교에 유치원 건축 비용을 기부했는데 커팅식이 있던 날 양측 지도자들의 차림새가 아주 대조적이었다고 한다. 항공사 측 책임자들은 반듯한 정장에 넥타이를 착용한 반면 현지 주관 책임자들은 그냥 수수한 캐주얼 차림이었다고 한다. 사후 현지에 있는 한 책임자는 나의 친구에게 그날 자신들의 옷차림 때문에 스스로 민망해서 죽을 번했다고 한다. 단순 문화의 차이일까? (여기서 밝히고 싶은 건 어느 한 측을 폄하하고 다른 한 측을 ‘추앙’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 금방 왔을 때 나는 장보러 갔다가 사람들의 손에 들린 대파와 샐러리가 담긴 비닐봉지를 보고 크게 감탄한 적 있다. 비닐봉지가 좁고 긴 것이 대파나 샐러리와 같은 길게 자란 채소를 담기에 안성맞춤했다. 정녕 맞춤형 비닐봉지였다. 나는 파를 아주 즐겨 먹는다. 즐겨 먹는 정도가 아니다. 나는 군것질로 날 파 잎을 먹는 특이한 식습관이 있다. 그래서 항상 잎이 생생한 대파를 사려한다. 그런데 고향에 있을 때는 대파를 사도 잎을 온전하게 ‘보전’하기가 참 힘들었다. 파 담는 봉지가 넓긴 하지만 깊지 않아서 장에서 산 파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잎이 끊어져 상하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아주 속상하고 짜증났었다. 지금 여기선 전문 대파 담는 비닐봉지가 따로 있어 파 잎이 끊어질 염려가 전혀 없다. 작은 비닐봉지가 나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면 바로 만들어 제공하는 한국인, 이 또한 한국인의 품격이다. 더욱이 나라가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헌신을 아끼지 않는 한국인이다. 그래서 1998년 IMF 때 금 모으기에 전 국민이 동참하는 감격적인 장면이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이다.

 “얘들아, 밥 먹어라.”
 TV에서 무료배식을 다룬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는데, 자원봉사자들이 두른 앞치마에 씌어진 글이다. 연말을 맞아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 나선 자원봉사자들의 일손이 분주해졌다. 이웃이 필요로 하면 수시로 달려가는 한국인의 모습이다.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3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고마웠던 자동차 부품 회사 사장 부부가 생각났다.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사장 사모님’이다. 2015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자동차 부품 조립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중국에서 문자가 날아왔다. 5월 8일까지 직장에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회사 사장 사모님한테 이 말을 하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한동안 우울증으로 정서가 많이 불안정했던 나는 눈물이 엄청 헤펐다. 사장 사모님이 말없이 나를 꽉 끌어안아주었다. 사장 사모님의 포근했던 그 품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항상 큰 언니 같았던 사장 사모님이었다. 출근해서 며칠 안 되던 어느 날 사장 사모님은 나를 회사 식당으로 부르더니 사발, 접시, 공기, 컵 등 그릇과 수저를 가득 챙겨주는 것이었다.

 “식당에 그릇이 많으니 가져다 써, 금방 와서 살 것들이 많을텐데.”

 사장사모님의 나에 대한 관심은 이 것이 시작이었다. 찬 체질인 나에게 몸이 찬 데는 옻물이 최고라며 수시로 옻물을 챙겨주던 사모님, 강원도 옥수수라며 친척이 보내온 얼마 되지 않던 옥수수를 나눠주던 사모님, 명절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사 주던 사모님. 정 많은 사장 사모님 덕분에 나의 회사생활은 매일매일 즐거움의 계속이었다.

 출국을 10일 앞둔 날 퇴근 전, 사장 사모님이 나보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그날 사장님 부부는 나를 안산 시의 최고급 한우집으로 청했다. 이 날은 내가 처음으로 한우의 참 맛을 알게 된 하루였다. ‘일개 직원인 나에게 이렇게 까지 베풀다니’, 감동으로 나의 콧마루가 찡해났다. 하지만 감동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장 사모님이 나에게 봉투를 건넸다.

 “1년간 우리 회사에서 정말 수고 많았어. 중국 들어가면 돈 쓸 일도 많을텐데, 더 드리고 싶은데 교통비라고 생각하고 받아줘.”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내가 회사에서 남들보다 더 했던 일이 있다면 중국인 직원들이 많아 통역을 했다는 것이다. 실은 나는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통역을 해서 오히려 육신적으로 많이 편했었다.

 “통역비라고 생각하고 받아. 많이는 못 줘, 백만 원밖에 안 넣었어.”

 50만원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백만 원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직원이 100명도 안 되는 작은 회사에서 퇴사하는 직원에게 과분한 혜택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이튿날엔 또 회사 부장이 나에게 교통비라며 30만원을 주었다. 중국에서 사업한 적이 있던 부장은 중국 사람만 보면 반겨주었었다. 부장이 평소에 나에게 각별한 관심을 베풀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너무 생각 밖이었다. 고맙다는 말 밖에 더 할 말이 없었다. 다른 동료 직원들도 너도 나도 아쉽다며, 언제든 다시 한국에 들어오면 꼭 연락하라고 하면서 스타킹, 손수건, 핸드크림 등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넘쳐나는 정, 이 또한 한국인의 품격이다. 진한 감동을 자아내는 한국인의 정, 높게 평가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인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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