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연옥 프로필:1973년 중국 흑룡강성 계서시 출생. 흑룡강조선족창작위원회 회원, 흑룡강신문 산동지사에 근무, 중국 북방문단 제1회 흑토문학상 수상, 2008년부터 한국에서 거주, 2017년 제1회 설원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 KBS방송국 한민족방송 우수상 수상. 현재 재한동포문인협회 수필분과장. 해외직구 사업자.
[서울=동북아신문]13억 인구중의 한 여자와 5천만 인구 중의 한 남자가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중국을 대표하는 여자와 한국을 대표하는 남자가 한집에서 사니 두 사람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정상 아닌 정상인 셈이다.

서로 다른 나라라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권이라는 뜻이다. 굳이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가정에서 몇십년을 살다가 한 집에서 살다 보니 부딛 치는 일이 없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결혼해서 3년이 고비라고 하고 3년을 넘기면 5년, 7년이 고비라는 말도 들은 것 같다. 연애할 때는 서로의 다름에 끌린다고 하지만 결혼해서는 그 다름 때문에 싸우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사랑의 설레임은 길지 않다는 것이고 부부의 많은 시간은 책임감과 정으로 산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 역시 다르지 않았다.

불 같은 연애와 신혼이 지나고 결혼생활이 이어졌다. 일년, 이년 해가 거듭할수록 결혼전의 내 꿈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 역시 안정된 수입과 함께 안정된 생활을 원했으나 남편은 취직한 직장에서 오래 버티질 못했다. 자신이 오너를 했었기에 본인만의 경영마인드로 새로운 회사의 중간관리직에서 적응을 못하고 취직과 실직을 번갈아 갔다. 그리다 보니 재취업을 하기까지 공백기간은 오롯이 나의 수입으로 생활을 이어 나가야 하니 물가가 높은 서울살이가 버거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안의 모든 수입과 지출 그리고 가정운영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의도치 않게 가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해 나가는 편이라 남편 만나기 전에도 그런 독립된 성격으로 살았고 결혼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와 다투는 것도 싫어하고 바가지도 잘 긁지 못한다. 역지사지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내가 굳이 잔소리를 해야 하나 싶어 참고 넘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나도 신이 아니고 사람인지라 서운한 게 생기고 참지 못할 때가 있기 마련…그때면 우리 집 비정기적인 비정상회담을 내가 주도로 열게 된다.

소통이라는 것이 대화이고 대화를 할 때 서운한 감정을 많이 담으면 싸움이 되기에 대화야말로 지혜가 필요한 소통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마음에 서운함이 있어도 심각하게 이야기하면 안 되기에 웃으면서 “여보, 우리 중한회담 좀 합시다.” 하고 제안을 한다. 그렇게 차 한잔 나누면서 서운했던 이야기를 꺼내고 대화를 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니 우리 집 비정상회담은 국가간의 정상회담과 같이 문제해결을 위한 회담이요, 이 가정을 더 화목하게 행복하게 꾸려 가기 위한 대화의 방식이다.

몇 년전 까지는 이런 비정상회담이 한달에 한번 열릴 정도로 자주 있었다. 그만큼 내 마음이 힘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해 두해 흐르다 보니 삶의 지혜가 생기고 회담은 해를 거듭하며 차수가 줄어들었고 요즘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서운함이나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서로를 완전히 받아 들이고 체념하였다고 할까…

부부금슬이 좋아지려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해야 한다고 한다. 결혼초반에 자주 부딛쳤던 이유가 바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정리정돈을 잘 하는 편이지만 대신 요리는 잘 못한다. 나는 요리는 잘 하지만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한국가정생활의 정서상, 남편은 나에게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여러 번 불만이 오가고 나서 내가 말했다. “우리 서로를 바꾸느라 하지 말고 각자 잘 하는 걸 합시다, 당신은 청소당번, 나는 주방 요리부 담당으로 삽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을 하고 받아 들였다. 그렇게 또 다시 평화가 찾아 왔다.

남편과 만난 지 강산이 한번 바뀌었다. 그 동안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조용히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비정기적인 비정상회담이 한몫을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갈 까 하고 고민을 하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마련이다.

앞으로 우리 집 비정상회담은 문제 해결을 위한 자리 보다는 좋은 일을 축하해주는 그런 자리가 될 것을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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