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위크 5월호/작가와 작품]

[서울=동북아신문] 본지는 중국신문 한국어판 '차이나 위크'(잡지) 올해 5월호에 실린 '이달의 시 감상' 백성일 시인의 시 두 수를 싣는다. 많은 감상 바란다. 편집자 주   

꽃이 좋아

큰 애벌레 한 마리가
느리게 느리게 걸어간다
물도 식물도 없는 시멘트바닥
끝없는 사막으로 걸어간다
길 한 번 잘못 들어 죽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종일 지옥으로
미련한 믿음 하나로
목숨 걸고 가는 길
나는 하늘이 되어 바라보고 있다
성충의 고통을 생각하고
호랑나비의 부활을 생각한다
애벌레 한 마리 잡아
풀잎 위에 슬쩍 올려준다
호랑나비 되어 천국에서
꽃 찾아 날아다니는 꿈꾸면서
나도 하늘에서 꽃 찾아 다니고 싶다
너처럼


시 해설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애벌레의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왔다. 애벌레가 시멘트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상황은 시인이 애벌레화 되는 접합점이다. ‘시멘트바닥’이라는 현실적 삶의 자리를, ‘끝없는 사막’을 걸어가고 있는 고난의 길을 느리게 느리게 지옥으로 향하고 있음을 시인과 동일화된 형상으로 본다. 이 애벌레를 들어 풀잎 위에 슬쩍 올려줌으로써 호랑나비가 되어 천국의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꿈을 상정하고 있다. 애벌레 속에서 자아의 내면에 숨어 있는 꿈을 자신의 꿈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이 지닌 꿈이 시에 그대로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꿈은 애벌레의 부활과 나비가 되어 꽃밭에 날아다니는 세계이다. 이 꽃밭을 노니는 나비처럼 황홀한 성취의 즐거움을 시로 드러내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에 스며있는 의미의 이미지를 그가 지닌 꿈의 현실적 대용물로 변환시키는 방법을 시작의 개성으로 삼고 있다.


대문 지키는 소나무

눈 오는 날은 허수아비처럼
비 오는 날은 찢어진 우산 들고
바람 부는 날은 춤도 춘다
사시사철 푸른 옷 한 벌밖에 없는 너가
때론 연민의 정도 느끼지만
너는 안중에도 없고
지조 높게 한 자리에서 평생을 보낸다
하늘같은 고집과 절개
잡기와 부정을 막는 재주
수호신의 능력 알고 있다
나는 아부한다
푸른 너를
사시사철 시원한 솔향기
받아 가기 위하여


시 해설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백성일 약력:대성무역 회장. 심상 신인상 등단. 동인 시정회 회장. 시집 < 멈추고 싶은 시간 >
대문에 서 있는 소나무가 시인에게는 수호신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시사철 옷 한 벌’ 밖에 없는 소나무가 어떤 변화의 시간에서도 버티는 것은 시인에게는 삶의 극명한 자세로서, 현실에서 시인이 마주해야 하는 수많은 질곡의 파탄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자기변신의 소회를 소나무를 향한 아부로 그려낸 것은 바로 그의 삶에 하나의 지표로서 무릎 끓고 스스로 참다운 삶 정신의 지표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나무처럼 살 수 없기에 솔향기라도 담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의 삶과 그가 그려내려는 이상과의 사이에 놓여있는 시라는 다리가 바로 그가 도달하려는 정신의 정점이 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그가 살고 있는 지금 그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은 시에서 창출되고 이 시는 그가 지향하는 구원의 피안인 생명정신의 종점이 되는 것이라 보여진다. 대문을 지키며 살아 온, 나와 다른 소나무에서 나는 언제나 소나무의 정신적 향기에 대한 종속되어 있다. 소나무는 수호신으로서의 방관자일 뿐이다. 시인과 같이 대문 안의 삶을 짊어지고 하루를 견디어 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소나무와 시인의 대면은 항상 시인이 지니고 싶어 하는 꿈의 형상을 소나무는 보여준다. 바로 이 점이 시인이 진정 대면하게 되는 슈퍼에고(superego)인 것이다.

▲ 백성일 신간 시집 '멈추고 싶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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