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나는 늘 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을 토하군 한다. 이런 생각이 질책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있다. 필경 사람은 높은 곳을 향하기 마련이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생활이 행복한 것인가? 누구와 비교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나는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다. 얼마 전에 나는 먼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 문제에 대해 얼마간 깨닫는 바가 있게 되었다.

나는 베이징(北京)에서 출발하여 윈난성(云南省)의 왼모우현(元谋县)으로 가게 되었는데 열차가 스촨성(四川省)과 구이저우성(贵州省) 접경지대에 들어서자 차창 밖으로 눈에 닿는 것은 온통 황폐한 민둥산이였다. 기차는 싸워역(沙窝站)에서 2분밖에 정차하지 않았다. 차창밖으로 한 무리의 열두 서너살 되어 보이고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들이 보였다. 그들은 등에 커다란 광주리를 메고 기를 쓰며 차 위로 오르고 있었는데 등 위의 큰 광주리는 그들의 행동에 방해가 되었다. 내가 앉은 찻간에는 한 여자아이가 올랐는데 아주 야위였고 광주리에는 호두가 넘쳐나게 담겨있었다. 그는 광주리를 간신히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면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다듬어 넘겼다. 그러자 예쁜 얼굴이 나타났는데 아쉽게도 얼굴빛이 누르스름 했다. 반팔로 된 무명 적삼은 앞뒤가 모두 기운 것이였고 낡은 바지는 한가닥은 길고 한가닥은 짧았는데 역시 기운 곳이 많았다. 분명, 산속에서 생활하는 가난한 여자아이였다. 차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자아이는 미안해 하며 나를 밀면서 한손으로 광주리를 부추켜 잡고 자기의 몸을 나한테서 따돌리려고 하였다. 나는 그 아이를 앉히려고 했지만 세사람이 앉는 좌석에 한사람을 더 앉히기에는 불가능했다. 나는 힘껏 자리를 내어 될수록 그 아이가 편히 서있게 하고 지나다니는 여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광주리를 곁들어 주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감격에 넘치는 웃음을 보이면서 광주리 덮개를 열고 호두를 한줌 한줌씩 꺼내어 나의 호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내가 아무리 거절해도 무가내였다. 그 아이는 고집스레 넣어 주었다. 그 여자아이는 점차 내앞에서 구속스러워 하지 않았다. 그의 알아 듣기 어려운 말투에서 나는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 아이는 14살이고 집은 방금전에 오른 싸워역(沙窝站)에서 몇십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집에 있는 호두나무에서 많은 호두를 수확했다. 그런데 자동차가 산속까지 들어가지 못하기에 팔려면 광주리에 이고 먼 곳에 가서 팔아야만 했다. 지금 어머니가 병으로 앓아 누워 돈으로 병치료를 해야 하기에 아버지는 그 아이에게 이곳에 와서 호두를 팔라고 했다. 그는 한밤중에 일어나 또 날이 어두워 질 때까지 걸어서 이곳에 왔는데 오는 길에 한 산굴에세 하루밤 자고 날이 밝기 전에 광주리를 메고 걸어서 이제야 겨우 이 열차에 올랐다. 다 팔고 돌아가려면 또 하루밤 하루낮 걸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다.“이처럼 먼 길을 떠나는데 넌 두렵지 않니?”내가 물었다.“저는 동무들이 있어요, 열차에 오르자 모두 흩어졌지요. 차에서 내리면 만나게 되어요.”아이는 자신있게 대답했다.“이처럼 먼 길을 걸어 한 광주리의 호두를 팔면 얼마나 벌 수 있니?”“왕복 기차표 값을 제하고 15,6위안 벌 수 있어요.”아이는 미소를 지었다. 분명 이 돈액수는 그에게 힘을 주었다.“요까짓 돈으로 밥 한끼도 못 먹겠구나!”내 곁에 있던 한 여객이 말참견을 했다.그러자 여자 아이는 “우린 먹을 건량을 가지고 떠났어요”라고 말했다.그 여객은 말수가 많았다.“너는 어떤 건량을 가지고 떠났니?”“저는 이미 한 번 먹었어요. 나머지는 호두 밑에 있어요. 아버지께서는 다 팔고 난 다음 먹으라고 분부했어요.”“네가 말하는 건량은 무엇이니?”그 여객은 지꿎게 물었다.“고구마가루떡이예요.”주위의 여객들은 이 말을 듣자 측은한 눈빛을 띄였다.바로 이때, 열차의 방송에서 기차가 반시간 연착된다고 통지했다. 기차는 중도에서 정차했다. 나는 이 기회를 빌어 서둘러 차안의 여객들에게 말했다.“이 여자아이가 가져온 호두는 아주 맛있어요, 여러분들이 많이 사주기를 바랍니다.”누군가 물었다.“한근에 얼마씩 하니?”여자아이가 말했다.“어머니가 호두 열개에 25전씩 받으라고 저한테 알려주었어요. 더 낮은 값에는 팔지 못하겠어요.”나는 그 말을 이어 말했다.“값이 너무 싸구나. 우리 있는 곳에서는 한근에 8원씩 한다.” 여객들은 너도 나도 잇달아 와서 사갔다. 나는 아이를 도와 호두를 세어주었고 여자아이는 돈을 받았다. 이 호두는 껍질이 얇은 종류였는데 손안에 두개를 쥐고 약간 힘주면 터졌고 날로 먹어도 아주 향기로웠다. 잠간 사이에 광주리의 호두는 절반 넘게 팔렸다. 받은 잔돈을 자세히 정리하는 여자아이의 얼굴은 기쁨이 흘러 넘쳤다. 잠시 후, 열차는 역에 도착했고 여자아이는 차에서 내려야 했다. 나는 그를 도와 광주리를 등에 메어 주었다. 그리고나서 빨간색 저고리와 바지 한세트를 꺼내어 그의 광주리에 넣어 주었다.“이 옷은 내가 조카딸에게 선물하려고 산 것인데 너에게 한세트 선물한다. 집에 돌아가 입거라.” 그 아이는 기쁨에 겨워 그 옷을 바라보았다. 웃음속에는 나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있었다. 이때, 곁에서 카드를 놀던 네 농민공(农民工)들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는데 사람마다 손에 50위안을 쥐고 멀리서 손을 내밀어 여자아이에게 넘겨주었다. “꼬마야, 우리는 너의 호두를 사지 못해 아쉽구나. 이 돈을 가지고 가서 어머니에게 약을 지어 드리거라”여자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자기 마음속의 감격을 표달하지 못해 안달아 했다. 그의 얼굴은 조바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여자아이는 붐비는 차에서 내렸지만 떠나지는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 높다란 차창가에 서서 자기에게 돈을 준 농민공들에게 “할아버지, 할아버지들!” 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감격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자아이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했다. 그 농민공들은 모두 아주 젊었는데 할아버지라는 호칭은 분명 그들의 나이와 어울리지 않았다. 여자아이는 또 내가 있는 차창가로 다가와서 외쳤다: “할머니, 할머니께서 저에게 준 옷들을 당분간 입지 않겠어요. 간직해 두었다가 제가 시집갈 때에 입겠어요. 할머니…….”그의 목소리는 울먹이였다. “할머니, 저는 산궈라 불러요, 산—궈—…….”찬란한 해빛속에서 이 기차역은 재빨리 나의 시선을 벗어났다. 나의 가슴속에서 산궈! 이 이름이 오래도록 맴돌았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시간의 혼란이 지나자 열차는 또다시 조용해졌다. 차창밖으로 산과 벌판에 만발한 개나리꽃들은 관목 숲속에서 새하얗고 아릿다운 모습을 조용히 내밀었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 자그마한 싸워역, 그리고 야위고 얼굴이 이쁘장한 산궈와 함께, 그 옷차림이 헙수룩한 농민공들, 그리고 그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자애로운 마음과 함께 망망한 뭇산들 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인민일보/최용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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