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문학 8호 공모 작품-

▲ 방예금 약력: 중국 (흑룡강 오상) 방송국 1급 아나운서, 흑룡강신문, 흑룡강방송 특약기자. 2015년부터 수필 창작 시작, 흑룡강신문, 요녕신문, 송화강, 청년생활 다수 발표. 수차 KBS 한민족 방송 우수상 수상, 2018년 3월 한국 계간 “현대시서” 수필 신인상 수상으로 한국 문단 등단.
[서울=동북아신문]“제가 아빠,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주지 못해 죄송해요.”

이는 며칠 전 딸이 위쳇으로 보낸 문자에서 한 말이다. 딸이 보낸 장편의 문자를 보는 나는 마음이 더없이 아렸다. 사연은 이러했다. 중국에서 대학을 나온 딸은 약 반년 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사를 하고 지난해 봄부터 한국 대학원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한족학교를 나온 딸은 유학준비로 한국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공부를 하는 동안 생활비를 부모인 우리가 대주었었다. 그런데 딸은 지원한 대학원으로부터 입학통지서를 받지 못했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부모에게서 생활비를 얻어 써야 하는 것이 죄스러웠고,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이 부모에게 너무 미안했던 것이다. 나는 딸이 속상해하고 괴로워 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딸의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자식이란 부모에게 바로 이런 존재다. 자식의 슬픔은 부모의 슬픔이고 자식의 아픔은 부모의 아픔이다. 아픈 자식을 대신해 아파 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다. 나는 바로 딸에게 답장을 보냈다. “사랑하는 딸아, 너는 항상 아빠,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단다, 너는 하늘이 아빠, 엄마에게 내려 준 소중한 선물이란다, 너의 존재자체가 우리에겐 즐거움이고 행복이란다.”

요즘 아버지가 동거녀와 함께 네 살짜리 친딸을 학대 치사해 암매장한 사건이 메스컴을 크게 달구고 있다. 정상적인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일이다.

2013년 말 금방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의 부분적 기성세대의 가정관, 혼인관이 나에게 아주 큰 충격으로 다가온 적 있다. 전자회사에 있을 때다. 두 아들을 둔 부장이 하루는 큰 아들이 결혼 할 생각이 없어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하는 부장의 말이 나를 아주 크게 놀라게 했다. “솔직히 가정을 이루고 살면 고생이지, 혼자 사는 것도 좋아.” 모터공장에 근무할 때다. 그 날은 토요일 특근이었다. 여반장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 딸내미가 내가 출근할 때까지 이불 속에 있었는데 이젠 일어났겠지? 지금이 최고 편하고 좋을 때지.”, “애가 시집 갈 맘 없대, 나도 좋을 대로 하라고 했어, 시집가면 고생이지.” 어느 날 30살이 갓 지난 연년생 두 딸을 가진 교회 여신도가 하는 말에 나는 내 귀를 의심할 뻔했다. “나는 우리 두 딸을 내 품에 계속 품고 있고 싶어요. 어떤 남자를 만날지 걱정되고 두려워요.” 신앙인들까지 이런 말을 하다니? 나는 마음이 더없이 착잡해졌다. 만감이 교차했다. 중국에서는 과년한 자식을 둔 부모들은 의례히 ‘자식이 어서 빨리 짝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걸로 나는 알고 있다. 문화의 차이일까? 발전할 나라일수록 결혼을 꺼리는 걸까? 하지만 한국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라가 몇 년간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한국 청년들은 취직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식들에게 결혼을 강요할 수 없게 부모 된 입장이다. 청년들은 취직이 안 되니 결혼을 늦추거나 안 하게 되고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을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자연히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고 출산율 저하로 인해 인구가 감소되고, 인구가 감소되다보니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자연히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2년 전 방송에서 이런 프로를 본 적 있다. ‘독일에서 한국의 부산이라는 도시가 50년 후면 인구가 줄어서 도시 전체가 황폐화 될 거라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50년 후의 부산시의 정경이 화면에 뜨는데, 거리엔 사람 그림자가 몇 보이지 않고 큰 교량만 휑뎅그레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 도시의 모습이 너무 한산하고 스산해서 내 마음도 같이 황폐해지는 것 같았다. 프로를 보고 있는 내내 마음이 무겁기 그지없었다. 현재 한국은 인구감소가 너무 심각해 단어사용도 ‘인구감소’, ‘인구위기’에서 ‘인구절벽’으로 변화했다. ‘인구절벽’은 주로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사용되는 언어로 주로 어린이-청소년의 유년층인구 그래프가 어느 시점부터 절벽과 같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어제 k방송사 “명견만리” 프로를 보는데 가슴 한 구석이 커다란 돌덩이에 짓눌리우는 것만 같았다. 프로 제목이 “청년이 사라지다”였다. 말 그대로 한국이 청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름난 작가 로우서(老舍)의 장편소설 《사세동당(四世同堂)》이 떠오른다. 소설의 내용보다도 이 네 글자가 자꾸 눈에 알른거린다. ‘사세동당’이란 조부에서 아들에 이르는 4대가 대가족을 이루어 탈 없이 단란하게 살아간다는 뜻으로, 중국인의 행복한 삶을 가리키는 전통적인 대명사다. 북경의 전통 가옥은 모두 자금성(紫禁城)을 본따 ‘사합원(四合院)’을 지었다. ‘ㅁ’자 형태에 가운데에 마당을 두고 본채와 사랑채 등 4개 건물로 둘러싼 구조로 된 것인데 중국인들은 사합원에서 4세대가 오구작작 함께 살았었다. 헌데, 이런 모습은 이젠 중국에서도 아주 먼 옛 이야기로 되어 버렸다. 사세동당은 바라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 핵가족이 없었으면 좋겠고, 핵가족에서 1인 가족으로 쪼개지는 현상은 더욱 없었으면 좋겠다. 독거노인의 쓸쓸한 삶을 반영한 프로를 방송에서 보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가정은 사회의 세포이다. 세포가 건강해야 신체가 건강하듯 가정이 평안해야 나라도 태평하다. 한국 정부에서는 현재 인구 출생률 제고를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 일자리 만들기 부서도 내오고 청년창업지원, 남자 육아휴직, 육아로 인한 여성경력 단절 없애기 등 여러 가지 정책을 내오고 있다. 나는 이러한 조치들이 좋은 결과, 즉 인구증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비록 시간은 얼마간 걸리겠지만.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 땅에 충만하라”, 나는 성경 속 이 말을 아주 좋아한다. 결혼은 축복이고 후대가 태어나는 것은 더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일찍 결혼하고 자식을 많이 낳기”, 이는 내가 딸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딸도 자기는 결혼해서 애를 셋 낳겠다고 하는데, 딸의 이런 생각은 나를 아주 기쁘게 하고 있다. 딸의 바라는 바가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오촌조카가 얼마 전 세 번의 시험관 임신 시도 끝에 결혼 2년 만에 어렵게 아기를 가졌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지만 약 5천만원의 ‘거금’을 들여 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주변에서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연신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나라에서 나의 조카 같은 젊은 부부들을 장려해주는 정책은 출시하지 않는지? “지금은 애를 낳는 것이 가장 큰 애국”이라고 했던 한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고령화 사회가 청년이 많은 사회, 청년이 행복한 사회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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