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류재순 소설가

[서울=동북아신문]한국 문인협회에서 이번엔 해외 문학 탐방 길로 영국을 선택하였다.

영국이란 나라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오래전에 봤던 영화-OLIVER TWiSt(雾都 孤兒)의 장면들이다. 안개 속에 가려진 우중충한 하늘과 침침한 추위와 음침한 사람들 속에서 한 고아가 겪는 비참한 정경들…정말 찬란한 햇빛과는 대조적인 인상이었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핀란드와 같이 위도가 높아 백야 현상으로 해가 몇 주, 혹은 몇 달간 떠 있는 현상이 아니라 예전 중세기, 아프리카, 북미대륙, 오세아니아, 아세아, 세계 여기저기에 식민지가 있어 밤낮없이 지구 곳곳에 영국 국기가 휘날리게 되어서 나오게 된 이 역사적인 개념을 이번 탐방에서 터득하게 되었다.
12시간의 비행을 거쳐 그 찬란했던 역사와 문화의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 케임브리지대학 물리학가 뉴턴이 설계했다는 수학다리
런던에 도착한 저녁, 크라운 플라자 호텔에서 짐을 풀기도 전에 우리는 해외 한국문학 심포지엄과 해외 한국 문학상시상식을 진행하였다.

한국문인협회 문효치 이사장의 “세계적 대문호를 낳은 영국 땅을 밟으며”란 축사로부터 양왕용 부이사장님의 “한국 현대시에 수용된 영국시의 양상”, 문학 평론가 임영천 선생님의 “19세기 영국 소설과 20세기 한국 소설”, 그리고 수필가이며 한국 문학사 편찬 위원장인 권대근 선생님의 “현대 영국 에세이와 영국 희극의 두 갈래 오솔길”이란 강좌를 하셔 한국문학과 영국문학의 탐방 길에 참고의 시야를 만들어 주셨다.

총적으로 이번 문학탐방 길에서 세계적인 작가들의 담과 숨결이 밴 유적지에서 그들의 창작혼을 가슴에 고이 담아가자는 취지였다.

해외 문학상은 미국 텍사스에서 온 박 인애 시인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한국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 부커서가 제정한 맨부커 상이었다는 점에 우리의 생각은 오래 머무르고 있었다.

▲ 케임브리지 한 칼리지
1, 케임브리지 대학(cambrige University)
이튿날, 피곤이 몰려 왔지만 아침 일찍 우리의 첫 일정인 케임브리지 대학을 향하였다. 런던의 동북쪽으로 90km, 한 시간 가량의 버스 운행을 하였다.

우즈강 지류인 캠 강의 동안- 케임브리지, 예로부터 런던과 북부 지방을 잇는 교통요지이며 중세에는 스타브리지 시장 도시로 알려진 상업도시였는데 지금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소재지로 영국의 유일한 “참다운 도시”로 일컬어져 있다고 하였다.

가는 길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누가 만약 케임브리지대학을 다녔다고 한다면 그것은 완전 뻥치는 일이라고 하였다. 적어도 확실하게 어느 칼리지(专科学院)에 다녔음을 말해야 제대로 된 그 대학의 수학생 이였음 을 알 수 있다는 상식적인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밀 뜻을 우리가 케임브리지에 도착하였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중국이나 한국 혹은 미국처럼 학교교사(學校校舍)가 한군데 멋지게 운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중앙을 흐르는 캠 강 양안의 역사를 자랑하는 35개의 칼리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케임브리지 대학이란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각 칼리지는 자치적으로 운영되며 법적으로도 독립되어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은 빌 게이츠 장학금을 수여하는 유일한 대학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연구 단지인 케임브리지 사이언스 파크를 가진 대학으로서 미국의 실리콘 벨리와 함께 세계 과학단지로 양대 산맥을 인정받고 있다고 하였다.

대학에는 114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서울 대학의 30배에 달한다고 한다. 무려 3000 만권의 장서와 각종 자료가 비치되어 있다고 하니 영국출신 노벨 수상자 90 명중 32명이 이대학 출신이라는 기적적인 인재배출의 놀라운 숫자도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이런, 워즈워드, 등 문인과 뉴턴, 베이컨, 반고 등 유명 인사들이 수학한 유서 깊은 곳이란 점에서 더욱 마음을 사로잡았다.

▲ 바이런 시인이 나체로 목욕을 했었다는 수영장 자리

특히 금년3월에 타계한, 이론 물리학계의 큰별-스티본 호킹에 대한 애틋함과 그의 케임브리지학창 시절과 사랑을 그린 영화“사랑의 모든 것”을 다시 사색하게 하였다. 이 철저한 무신론자는 “우주는 신이 창조하지 않았다”는 유신론 세계를 충격시킨 어마어마한 이론 물리규칙을 내놓았고,“인공지능은 인류멸망을 초래 할 것이다.”라고 지적 하였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월계관을 스고 있던 중세기의 영국의 주역들을 키워 내였고 지금도 새로운 주역들을 키우고 있는 요람임이 분명하였다.
 
김대중 대통령도 유학 당시 케임브리지에서 수학 했었다 한다. 당시 그 분이 머물던 기숙사 건물을 통째로 “kim‵s house‵ ”라는 이름으로 개칭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학 출판부는 성경출판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로서 유명한 “킹 제임스” 성경책이 거기서 출판 되였다고 하였다.

 별로 크지 않은 사과나무가 만유인력을 창조 한 뉴턴이 수학했던 한 켈리지 문 앞 정원에 자라고 있어 유람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었다. 앞 다투어 기념사진 남기느라 분주한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연륜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저 작고 앳된 나무가 과연 몇 백 년 전의 그 나무일가 머리가 갸우뚱 거려 졌다.

백여 년의 학교 역사를 빛 내웠던 명인들의 동상이 즐비한 대학성당에서 나와 푸른 잔디 교정 잔디밭을 바라보니 지붕이 있는 개방식분수대 건물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낭만 시인 조지 고던 바이런이 나체로 목욕을 했었다는 수영장 자리였다. 학교 정원에서 나체로 수영을 했었다는 얘기가 나오며 우리는 케임브리지를 떠나면서 끊임없이 그에 대한 일화들을 나누었다.

그가 쓴 “돈 주앙은”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작품이었다. 날카로운 통찰과 비판의식, 자유분방하고 유려한 문체로 낭만주의 문학을 이끈 이 시인은 자신이 “하루라고 밤 자고 났더니 유명해 졌더라”라고 할 정도로 한 때 쓰나미처럼 영국 전역을 휩쓸며 천재적 위상을 떨쳤지만 “내가 영국에 맞지 않던가, 영국이 내게 맞지 않다”라는 비감을 토로하며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  만나는 여성들을 기절시킬 정도라는 그의 조각 같은 멋진 외모와 과분한 자유분방함으로 하여 그의 천부적 시 창작으로 인기가 치솟는 시기 여성들과의 너무 많은 염문을 뿌리며 센세이션을 일으켜 상류계층의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 한국문인협회 문효치 이사장(가운데)과 해외 문학상 수상자 박인애 시인(오른쪽)
그리고 이 미남에게도 한쪽 다리를 살짝 저는 알리기 싫은 콤플렉스가 있었다는데 그는 자신의 신체 결함을 상쇄하려는 듯, 승마, 수영, 권투, 펜싱, 사격 등에서 상당한 실력을 뽐내였다는데도 36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요절하였다고 한다. 1969년, 그의 기념비가 웨스터민스트 사원에 세워졌다.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구름 한 점 없이 빛나는 밤하늘처럼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어둠과 광명의 모든 정화는
그녀의 얼굴과 두 눈에 모여
하늘이 눈부신 한낮엔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빛으로 무르익는다.
……
- 바이런

나는 천재적인 시인 조지 고던 바이런의 조각상 앞에서 낮으막히 그의 시 한수를 읊었다.

류재순 약력: 재한동포문인협회장, 중국작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중단편소설집 베이징과 서울에서 각각 출판 소설, 수필 등50 여 편 발표.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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