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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수필/김홍란]소리 치유법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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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31  12: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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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란 약력: 중앙민족대학 조문과 졸업. 로신문학원 제2기 고급연구반(주필반) 수료. 《도라지》잡지사 주필 역임/편심.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국작가협회 제9차 전국대표대회 대표. 작품집 《오늘밤 커피는 향기로왔다》, 수필집《억새를 만나다》등 출간. 《장백산》문학상, 길림성우수작품편집 1등상, 《민족문학》 번역상 등 20여 차 수상.
[서울=동북아신문]입추가 지나니 제법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아직 가을의 기운 같은건 아니지만 일단 여름무더위의 고역에서 구조된 것 같아 정신이 맑아진다.

 태풍의 영향으로 연며칠 흐린 얼굴로 비를 퍼붓던 하늘도 오늘 아침은 한결 청청하다. 동쪽창에는 아침햇살이 매달려 와글거리는데 창안에서도 그 따사로운 기운이 피부에 감지된다. 창문을 스르륵 열자 청량한 공기와 함께 해살이 달려들어 내 몸에 키스세례를 퍼붓는다. 그렇지, 이것이야말로 진짜배기 볕쪼임이지. 해볕을 쪼이면 비타민 D가 생겨 칼슘흡수를 촉진한다지만 유리창 넘어온 해볕은 그 작용을 못한다지 않는가. 

해볕무리가 다소곳이 내려앉은 방바닥에 방석을 깔고 엎드려서 즐기는 책을 펼치고 읽는데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린 다리에 햇살이 매달려 간질거린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않은채 맨살로 햇살 받는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일광욕이 아니고 뭔가.

그렇게 모처럼 아침햇살에 심취해있는데 유난히 요란한 매미소리가 귀맛을 당겨간다. 매미들도 오늘 아침 이 햇살이 반가운지 한결 들뜬 목청으로 노래를 뽑고있다. 그들도 일광욕을 즐기는것일가. 그들도 모처럼 서늘하면서도 따사로운 이 아침이 반가운걸까. 이 시각 내 고막은 매미들의 노래소리로 흘러넘친다. 그 흐름을 타고 내 마음도 말못할 흥분에 찰랑이는구나. 이보다 더 좋은 자연의 혜택이 어디에 또 있을소냐. 자동차의 소리도 행인들의 주절거림도 내 청각엔 와닿지 않거늘. 

한참동안 신들린 듯 열창하던 매미들이 갑자기 사라진 듯 조용하다.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저 멀리 은은하게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그사이에 매미합창단이 감쪽같이 무대를 옮긴 듯싶다. 워낙 이동식무대였던가. 그러나 나는 안다. 이제 순회공연이 끝나면 매미들은 새 종목을 준비해서 다시 찾아와 나를 벗해주리란걸.

매미소리에 즐거운 심정이 되듯 나의 하루는 늘 자연의 소리로 채워져서 충만하다. 첫새벽이면 어김없이 까치소리에 눈을 뜬다. 까치는 밤새 어디에 가있다가 동녘이 희붐히 밝기 바쁘게 창밖에 우르르 몰려와 깍깍 우짖으며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이 성화같다. 언제 들어도 싫지 않는 까치소리, 그 소리는 새벽을 열고 내 하루를 열고 내 마음을 연다.

낮이면 참새들의 지절대는 소리도 귀가에 맴돈다. 포르릉 포르릉 신나게 날아다니며 재롱을 피우는 참새들은 복도에 들어와 한바탕 휘젓고 다니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방안에까지 들어와 요란을 피우기도 한다. 

 때론 까욱까욱 애절하게 우는 까마귀소리도 들려온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까치가 울면 상서로운 희소식이 있다고 기뻐하고 까마귀가 울면 재수없는 일이 생긴다고 침을 퉤퉤 뱉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만나는 까마귀는 그냥 까치와 다를바 없고 그 까마귀울음소리 또한 자연속의 한 소리일뿐이다. 까치도 까마귀도 참새도 매미도 함께 어울리며 제각기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게 바로 자연이란 대가정이다.

 저녁이 되면 또 하나의 정겨운 소리- 개구리울음소리가 고막을 채워온다. 오가는 차량이 줄어들고 달빛이 교교히 흐르는 늦은 밤이면 제법 구성지게 들려오는 개구리소리에 가슴이 울먹인다. 전등도 끄고 티비도 죽인 방안에 고요히 있노라면 쏟아져 내리는 창밖의 달빛에 마음은 젖고 정겨운 개구리소리에 가슴이 부풀며 개구리들이 들려주는 이 세상 최상의 콘서트에 감동한다. 그런 날은 틀림없이 실면의 밤이 되고 꿈을 키우는 밤이 된다. 멍든 피부도 다독이고 녹쓴 가슴도 닦아낸다.

평생 살아가는 동안 귀가 즐겁고 마음이 행복한 이런 자연의 소리만 들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죽도록 좋은 이런 자연의 소리외에도 살아가다보면 수없이 들려오는 소리들이 많다. 저 창밖에서 매일매일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소리, 각종 기계들의 동음, 헬기소리, 정치인들의 선거유세소리, 장사군들의 사구려소리, 술주정뱅이의 싸움소리… 소리, 소리, 소리들… 그것들은 소리가 아니라 소음이었다.

처음 여기 집을 잡았을 때는 그런 소음들에 정말 적응이 안되였다. 차량이 특별히 많이 오가는 것도 아니건만 한번 지나갈 때마다 그 동음이 어찌나 요란한지 마음이 불안하여 통 안정을 취할 수가 없었다. 책을 봐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밥상을 차려놓고있으면 자동차들이 금방이라도 창문으로 달려들어와 밥상을 덮칠 것만 같았다. 수많은 밤을 불면에 시달리다 결국 귀막이로 귀를 틀어막고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소음속에 포위되여 살아야 하는 현실을 한탄하며.

그동안 참 복잡한 소리속에 살아온것 같다. 자연의 평화로운 소리가 아닌 각종 소음들에 할키우고 뜯기우며 피를 흘린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배치받으면서부터 도시인이 되었다. 직장의 4층짜리 건물은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되였고 큰길을 마주한 창밖은 환하게 시야를 틔워주었다. 사무실도 작지 않아보였고 문단의 유명한 시인과 작가분이 자리잡고 계셔서 만족감을 더했다. 그러나 그런 신선감과 안정감은 잠시, 곧 불안감이 갈마들었다. 창밖의 큰길에서 끊임없이 오가는 차량들의 소음이 골을 때렸고 아래층에서 울려오는 악기반주소리와 노래연습소리가 심금을 불안하게 했다. 거기다 무시로 울려오는 고음의 웃음소리와 전화통화소리… 선배님들은 그런 소음이 되려 반주소리 같이 감칠맛나게 들리고 글 쓰고 작품 수정한는데 효력을 내게 한단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거라지만 나는 오래도록 적응되기는커녕 그런 소음에 골이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는 장애까지 온듯 했으며 치유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쯤은 약과라는걸 세월이 한참 흐르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각종 소리중 인간이 내는 소리는 가장 유별나고 다양하다. 노래보다 아름다운 소리도 있지만 각종 차량과 기계들이 내는 소음보다 더 파괴력이 강한 소리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이는 말도 있지만 사심과 야심에 차서 사람의 가슴을 할퀴는 괴성도 있다. 그런 괴성은 비루한 영혼에서만이 나올 수 있고 남을 상처주면 결국 그 흉터는 자신에게로 돌아가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그러기에 같은 값이면 고운 목청으로 고운 소리를 남겨 노래로 되고 예술로 승화되는게 훨씬 현명할 것이란 걸 사람들은 흔히 인생 한참 살고 막바지에 가서야 깨닫게 된다.

멀리 순회공연을 갔던 매미합창단이 돌아왔는지 창밖은 또다시 매미들의 노래소리로 우렁차다. 신기한 것은 이전에 그렇게 짜증만 나게 하던 소음들이 지금은 내 귀에 잘 들리지 않는 것이다. 차량은 여전히 쉬임없이 오가고 행인들의 주절거림도 변함없지만 나에게 보다 생동하게 들려오는건 매미의 소리요 까치들의 재잘거림이다. 그 어떤 소음도 자연의 소리앞에선 왜소해지는가보다. 소리로 받은 상처는 소리로 치유하는게 상책인 것 같다. 워낙 자연의 소리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약이었다. 창밖은 여전히 따사로운 해살로 넘치는구나.(20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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