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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기행수필/장경률]남도 푸르른 바다가에 문향 만리한국 장흥문학특구를 찾아서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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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4  15: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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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한국에서 문학의 고향으로 일컷고 첫 문학관광특구로 명명된 전라남도 장흥에 가 보려는 생각이 언제부터 있었는데 마침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김우영회장의 초청으로 장흥문학특구를 견학할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였다.

장흥군은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받은 문학의 고장이다. 장흥이  한국의 최초로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된데는 소설가 이청준이나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등 한국문학계의 큰 별들을 배출한 문향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 한국문단에 등단한 작가가 12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만큼 장흥은 문학 자원이 풍부한 곳이며 첫 전국문학인대회를 개최하는 등 한국문학의 메카라는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문학력사의 장을 써 나가고 있다. 그때부터 장흥에서는 해마다 뜻깊은 문학축제를 열었다. 올해도 한국의 전국적인 문화축제로 장흥의 위상을 확보하고 널리 알린다는 취지에서 였다.

   
 장경률 약력 : 연변일보 30년 기자 생애ᆞ정치부장 논설부장/편집국장, 신문연구소 소장 역임ᆞ 현재 길림성신문잡지 심열위원 연변일보 논설위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해외고문
‘2016에는 제6회 한국문학특구 포럼’ -`한승원 작가 문학 50년, 그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다` 문학 포럼도 성대하게 펼쳐지였다. 조선 중기 문신 가사문학의 효시 기봉 백광홍의 관서별곡으로 부터 이청준. 한승원과 그의 딸 한강 등 이 선각 문인들의 활약으로 장흥의 오늘이 있게 되었다. 따라서 당시 포럼의 주제는 ‘한승원 문학 50년-그 지순한 시공이야기’ , 이 해로 해산 한승원 선생이 문단에 나온지 50해 되는 해였던것이다.
우리 일행은 포럼 참가 이후 김선욱 시인의 안내로 기봉 백광홍의 기양사. 이청준 생가. 정남진을 거쳐 숨겨진 장흥의 속살여행을 하였다.

청명한 가을속에 노릇노릇 익어가는 황금 들판이며 남쪽 바다 넘실 티없이 불어 오는 바닷바람이 한 자리에 모인 문인들의 가슴에 시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하였다.

남해와 잇닿은 장흥은 인근 지역에 비해 해풍에 씻긴 굵직한 산들이 많고 불끈 힘을 자랑하는 기암괴석이 보기만 해도 남성적 산악형태를 보이고 있다.

정동진과 대비하여 정남진이 있어 바다와 산물이 많아 먹고 살기에 넉넉한 고장으로 예로부터 알려져 왔다.

해내외에서 모여 온 문인들에게 장흥을 자랑하려는 순수하고 푸짐한 인심이 남해바다 남풍마냥 훈훈하게 마음을 녹였다. 우리 일행은 소슬한 가을비가 반갑지 않게 신새벽부터 쏟아붇는것도 아랑곳없이 우산을 받쳐들고 문학답사에 열심하였다.

문득 철학자 ‘스티브 잡스’의 말이 생각이 난다.  “여행은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지만, 그 자체로 보상이다.”  ‘체 케베라’도 말하지 않았던가! “청춘은 여행이다. 찢어진 주머니에 두 손을 내리꽂은 채, 그저 길을 떠나도 좋은 것이다.”
   
장흥문학길 답사여행

장흥문학길 답사여행은 처음부터 푹 빠져들면서 더없이 흥겨웠다. 우리 일행이 제일먼저 장흥문화관광해설협회 ‘김상찬 해설가의 안내로 장흥문학의 옛길 새길을 찾아 출발한 버스는 안양면 기산리 기산 백광홍 고택을 찾았다.

안양면 기산리에서 내려 약간의 내리막길을 달리다 좌측으로 차 머리를 돌리니 마을 입구에 커다란 표지석이 있어 기양사(岐陽祠)에 다 왔음을 알려준다. 부드럽게 휘인 좁은 돌담길을 따라 50여미터쯤 올라갔을까. 담장 앞에 늘어선 비석들이 일행을 맞는다.

기양사는 백광홍 선생을 비롯한 13인을 배향한 서원의 사당으로 사당 앞엔 기양강당이란 강학당이 서 있고 기양사의 편액을 보니 전 국무총리 김종필씨가 쓴 것이다. 기양사 좌측에 가사비가 서 있고 그 옆으로 1901년 복설 때 만들었던 석조 위패들이 나란히 서 있다. 

 관서의 명승지에 왕명으로 보내실새/행장을 다스리니 칼 한 자루뿐이로다(중략)/벽제에서 말을 갈아타고 임진강에서 배타고 건너/ 천수원에 돌아드니 송경(개성)은 옛 서울이거늘/만월대 바라보니 슬퍼지누나//
아무리 나랏일이 튼튼치 못하단들 풍경좋음 어이하리/연광정 돌아들어 부벽루에 올라가니/능라도 방초와 금수산 노을은/봄빛을 자랑한다//

천년 개성의 태평스런 문물은/ 어제인 듯 하지마는(중략)/하늘 높고 땅은 먼 곳에서 흥이 다 하고 슬픈 생각 일어나니/이 땅이 어디런가 부모 생각에 나그네의 눈물이/ 소리없이 흐르는구나(중략)// 어느 때 여러 경치 기록하여서 임금께 사뢰리요/ 머잖은 때에 임금을 뵈오리라...

 위 노래는 기행서경가사의 효시로 알려진 백광홍(白光弘:1522-1556)이 지은 `관서별곡(關西別曲)'의 서두이다. 백광홍은 자를 대유(大裕), 호는 기봉(岐峯)이라 했는데 그는 본디 경기도 수원사람으로 선조들이 대대로 수원에서 살았는데 조부인 백회(白檜)가 연산군 때에 장흥에 귀향와 살게 되었다. 

아버지 삼옥당(三玉堂) 백세인(世人)과 어머니 광산 김씨와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조선왕조실록' 선조 22년조에서 송익필, 이산해 등과 함께 당대 8문장으로 불렸다. 그러나 아우 옥봉(玉峯) 광훈의 유명세에 가려지고 임•병 양란의 참상이 시인의 혈육 같은 유고를 삼켜버린 탓에 문집의 간행이 늦어지는 등 여러 연유로 진면목이 감춰졌던 한국 최초의 기행가사 작가이다.
기봉 관서별곡 가비 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기봉 백광홍은 조선가사문학을 선도한 문인이시다.” 기봉은 시인으로서 보다 관서별곡에 의해 가사문학가로 더 유명하게 된다. 아래는 요절한 자신의 삶을 상징하는듯 삶의 무상함을 빗대어 읊은 '숙소소래(宿小蘇來)'라는 시이다.
"덩굴풀 옛길 덮고/ 고라니 사슴 뜰에 와 노네/ 중들은 말없이 수행중인데/ 빈창만 바닷 달 휘영청 비치어서 추어라"
 
이청준 문학길

그래, 누군들 그 따뜻한 남쪽 마을을 향한 그리움이/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일지 않겠는가/내 손과 발과 머리털에서/내 모든 생각들의 시원이 되어/여전히 봄날 철쭉은 붉게 타오르고/늦가을 바람에 억새가 서걱이는 정남진/
         -소설가 김석중의 '누군들 따뜻한 남쪽 마을이 그립지 않으랴' 중에서

장흥 별곡문학회 김석중회장은 이 고장 토박이로 1979년 삼성문예상 소설부문에 장편 '바람'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뒤 '햇빛 부신 날의 초상‘ ’꿈 꾸 물새'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장흥문단을 지키고 있는 역량있는 소설가이다.

김석중회장의 안내를 받으면서 우리 일행은 두 번 째 장흥문학 답사여행, 이청준소설가 문학길코스에 올랐다. 이곳에는 소설작품을 영화로 만든 ‘천년학’은 의붓 남매인 동호와 송화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담겨진 곳이다. 소리꾼 양아버지 밑에서 소리와 장단을 맞추며 자란 두 사람은 애틋한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마음속의 연인을 누나라 불러야 했던 동호는 괴로움에 집을 나간다. 몇 년 뒤 양아버지가 죽고 송화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제 송화를 여자로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동호. 그러나 엇갈린 운명으로 두 사람은 잠깐의 만남과 긴 이별로 자꾸만 비껴간다. 이청준 문학길 메밀꽃밭은 선학동 뒷편으로 펼쳐져 있다. 면적이 20㏊나 된다. 산자락에서 이어지는 구릉에 메밀꽃이 활짝 피어 바닷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하얀 꽃물결이 흡사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다. 겨울에 피는 눈꽃 같기도 하다. 하얀꽃이 파란하늘의 뭉게구름과 어우러져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마을의 여러 색깔 지붕과도 만나 한 폭의 그림을 그려진다. 이곳을 찾은 전국의 많은 관람객들은 그저 ‘아, 무아지경 황홀경!’ 바다와 언덕에 펼쳐진 메밀밭의 아름다운 조화는 한 폭의 동화속 자연풍경화이다.

 메밀밭에 담긴 뒷이야기도 아리땁다. 외지인을 배려하는 마을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선학동을 찾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생긴 일이다. 영화 ‘천년학’ 촬영 뒤부터 마을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 왔다.

원래 장흥에는 선술집 세트 외엔 별다른 볼거리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괜히 미안해했다. 먼 길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마땅히 보여줄 게 없어서였다.  주민들끼리 머리를 맞댄 끝에 경관작물을 심기로 했다. 외지인들에게 볼거리를 주면서 마을까지 아름답게 가꿀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마을 주변 밭에 유채 씨앗을 뿌렸다.
 지난 2006년. 그 해 봄 노랗게 물든 마을을 본 사람들이 탄성을 토해냈다. 주민들도 뿌듯했다. 더불어 행복했다. 유채밭 사이에 원두막도 설치했다. 노랗게 물든 바닷가 마을을 영상에 담으려는 방송팀도 수시로 찾아왔다.

인적 드물던 마을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을도 활기에 넘쳤다. 마을사람들은 내친 김에 가을농사마저 포기하고 메밀씨앗을 뿌렸다. 2008년이었다. 봄에는 유채의 노란 꽃물결로, 가을엔 메밀의 하얀 색으로 물들인 것이다.  선학동의 메밀꽃밭이 더 매혹적인 이유다. 방문객을 배려하는 마을사람들의 예쁜 마음이 스며 있어서이다. 이로하여 농림수산식품부가 주관한 '경관 우수마을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일행은 전국에서 온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이청준 문학길 메밀밭 중턱 원두막에서 가을 분위기에 맞게 즉석공연을 했다. 준비해간 이동식 앰프를 설치하고 김우영 김애경 부부듀엣의 ‘사랑하는 이에게’를 감미롭게 불러 갈채를 받았다. 이어 김애경 성악가의 ‘시월 어느 멋진 날에’를 열창하고 이준영 이사님의 경쾌한 하모니카 연주를 함께한 관람객들로 부터 박수를 많이 받았다. 같이 간 허응만 수석부대표(시인)의 표현에 의하면 이렇다.
 “즉석공연이라! 참 좋은 아이디어라오. 오, 꽃을 주는 것은 자연이고 그 꽃을 엮어 화환을 만드는 것은 예술이구나. 마치 태양이 꽃을 물들이는 것과 같이 예술은 인생을 붉게 물 들어가는구나. 이 메밀밭에서 ---”

한승원소설가 해변문학산책로

지난 2016년 5월. 전남 장흥 안양면 사촌리 율산마을회관에서 조촐한 잔치가 열렸다. 이는 한승원소설가의 여식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에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장흥 출신 작가 한승원의 문학작품을 기념하기 위해 장흥군청이 장흥군 안양면 여닫이 바닷가 모래 언덕에 마련한 길이 600미터의 산책로. 작가 한승원은 전남 장흥 출신 문인으로 1996년부터 율산 마을에 집필실인 해산토굴을 마련하여 고향의 바다와 바닷길을 시, 에세이, 소설을 통해 세상에 내놓았다. 그에게 장흥은? 어머니이며, 고향의 바다는 자궁과도 같은 것이었다. 장흥군은 한승원의 고향 사랑을 기념하여 사업비 2억여 원을 들여 산책로를 꾸몄다. 산책로는 간이의자와 돌과 나무로 된 통로 좌우에 20미터 간격으로 여다지 바다와 마을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을 그린 한승원의 시비 30기를 세워져 있다. 여다지 해변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가장 깨끗한 개펄이 숨쉬는 아름다운 바닷가에 뽑힐 만큼 풍경이 빼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장흥 회진면은 흔히 ‘장흥 문학의 자궁’으로 표현된다. 수많은 작가에게 문학적 토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회진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키운 대표적인 인물로 이청준, 한승원 소설가를 꼽는다. 동갑내기인 두 작가 중 이청준은 회진 근처의 진목마을, 한승원은 회진리 바로 맞은편의 덕도에서 태어났다.
장흥은 현대문학의 거장인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 이승우 소설가와 맨부커상 수상자 한강과 김석중 소설가,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이대흠시인, 이 고장 출신이며 충남대 명예교수인 이동규 시인,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대표 김정시인, 장흥교도소에 근무하는 투박한 시를 써 눈길을 끄는 김헌기 시인 등을 배출한 문림(文林)의 고향이다.

오늘날 한 전지역에서 문학도들이 매년 구름처럼 장흥을 찾아 장흥문학의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장흥군이 현대문학의 거장들을 많이 배출하게된 것은 역사를 거슬러 17세기 이르면서 실학파의 가사문학을 만날 수 있다. 

 장흥은 한강의 아버지이자 작가인 한승원 소설가의 고향이다. 그가 오랜 외지 생활을 접고 귀향해 터를 잡은 곳이 안양면 사촌리의 ‘해산토굴’이었고, 남도 끝자락의 갯마을에서 마을잔치가 열린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한승원소설가에 따르면 한강은 학생시절 가끔 회진면의 삼촌 댁을 찾아 뱃일 거들며 방학을 보냈다고 한다. 비록 고향은 아니라 해도 감수성이 풍부한 학창시절에 찾았던 회진은 그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게 분명하다. 어린 시절 너 나 없이 찾아갔던 시골 ‘외할머니댁’에 얼마나 많은 추억을 묻어두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장흥을 찾을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한승원 소설가의 창작실 ‘해산토굴’ 아래는 ‘문학산책로’ 해변이다. 이곳에는 ‘어등’ ‘모래알’ 등 한승원의 글이 새겨진 문학비들이 700m 정도 이어진다.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마을은 가사문학의 선구자인 존재 위백규 선생이 태어난 마을이다. 방촌리 마을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잘 보존되어 내려오는 남도의 전통한옥이 많이 있다. 또한 그와 함께 기봉 백광홍 선생도 이곳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마을 출신이다.

한승원 소설가 해변 문학산책로에서 우리 일행이 부른 힘찬 노래가 하이얀 백사장을 지나 저 멀리 푸르런 남해바다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끝간데 없이 이어진 푸르런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다시 허공으로 비상하며 저 멀리 장흥문학을 실어 망망대해로 퍼지고 있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배경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철학자 ‘프리벨’의 말이 생각이 난다.

 “여행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영역이 얼마나 작은 것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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