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문호들의 숨결과 흔적 

▲ 에든버러성

A: “폭풍의 언덕” 브론테(Br0nte) 자매의 영혼, 그리고 에딘버러성(Edinburgh castle)

 케임브리지 탐방을 끝낸 우리는 버스로 북쪽 방향 3시간을 더 가 잉글랜드 중부 리즈에 도착하여 투숙하였다. 리즈로 온 것은 근처에 여류작가- 제인 에어가 쓴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브론테 자매가 살던 하워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즈에서 우리는 아트 갤러리를 관람하였는데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들이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갤러리 관람을 끝마치는 데로 우리는 급급히 하워드를 향한 버스에 올라탔다.잉글랜드 동부 지역은 정말 말 그대로 그랜드 세계였다. 시야에 끝없이 안겨오는 초록의 평원이다. 길섶에는 한국의 야생들국화 같은 작고 하얀, 마그리트(marguerlte)라는 꽃들이 널러니 피어 있었다. 영국 전체의 면적은 한반도와 비슷하지만 산지가 적어 가용 면적이 한국의 4~5배 수준이라 하는데 목축업과 밀, 보리, 감자 농사가 위주인데 물가가 아주 비싼데 비해 감자는 굉장히 싼 모양이다. 가이드의 말에 툭탁하면 돈 떨어지면 감자만 먹는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겨울에는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도 없지만 여름엔 안개와 비가 많고 섭씨30도를 못 넘기는 따가운 햇볕이 없는 이 나라 땅에는 볏 농사를 할 수 없어 입쌀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게 우리에겐 은근한 거부감을 안겨 주었다. 버스 안에서 우리는 영화 “폭풍의 언덕‘을 관람하였다. 옛적에 읽었던 책속의 스토리들을 다시 떠 올리며 우리는 곧 눈앞에 펼쳐 질 그 폭풍의 언덕을 상상 하고 있었다.
 브렌테자매의"폭풍의 언덕"에서
▲ 브렌테자매의"폭풍의 언덕"에서
 드디어 우리는 브론테 자매의 고장 하워드에 도착했다. 바람 부는 구릉의 드넓은 언덕, 이곳에서 언니ㅡ샬럿이 “제인 에어‘를, 둘째 에밀리가 ”폭풍의 언덕“을, 그리고 막내 앤이 ”아그네스 그래이“를 썼단다. 이들 세 자매는 거센 폭풍우속을 누비며 매일같이 황야에 사는 야생동물들을 탐색하고 공상에 잠기며 비껴 갈 수 없는 그 운명적인 사랑의 폭풍에 말려들기도 했으리라! 참 세 자매가 모두 길지 않은 일생에 소설 창작에 몰두 했다니 유전인가 감염인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저 멀리 우거진 숲속에서 관광 온 연인들이 작은 벤치에서 은밀한 정을 나누는, 다문다문 눈에 띄는 그림 같은 풍경들을 훔쳐보며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사랑 스토리를 음미한다. 그리고 우리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사랑이 될 수밖에 없는 원인을 해석해 본다. “폭풍의 언덕”이 만들어 낸 워킹 코스를 따라 산책하던 나도 언덕의 한 의자 위에서 한 컷을 남긴다. 나에게 사랑은 어떤 것 이었던가…목사였던 세 자매의 아버지와 사역했던 교회 ,그들이 살던 목사관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연간 250만 명의 방문객을 맞고 있단다. 인근에 요크셔 숲이 있는데 의적 로빈 후드의 무대라고 하였다. “폭풍의 언덕” 견학 후 우리는 근 5시간의 버스질주를 거쳐 스코틀렌드의 상진인 에든버러에 도착하였다. 에든버러에 도착하며 가이드는 먼저 에든버러성에 깃던, 잉글랜드에 정복당한 스코틀랜드 왕가의 비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에든버러성은 에든버러의 캐슬 록이라는 가파른 바위산에 세워진 고대의 군사요새였다. 그 치욕을 담은 역사의 후환으로 지금도 스크틀랜드 사람들은 하다못해 스포츠 경기를 볼 때도 잉글랜드가 우승하는 꼴을 못 본다는 우스개도 하였다.(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의 구성국이 합쳐진 나라다.) 
▲ 애든버러성, 애던버러 시 건축물
 내려서 보니 의외로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길 걷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시내 곳곳엔 악사들이 백파이프 등 악기들을 신나게 불어대며 관광객들의 흥을 돋우어 주고 있었다. 대오에서 떨어질세라 우리는 신경을 바짝 세우고 가이드의 음성 수신기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스코틀랜드의 대 문호 월터 스콧의 기념탑을 먼저 둘러보았다. 그의 대표작이라는“아이반호”를 읽어보지 못해 유감이었다. 이어서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의 구상을 무르익혔다는 엘리펀트 하우스 카페에 들어갔다. 작은 카페였는데 역시 관광객이 바글바글하여 급급히 나와 버렸다. 작가 롤링이 사색을 더듬었을 그 분위기를 체험해 보려던 나의 욕망은 무산되어 버렸다. 이어서 ”작가 박물관“ 왕관모양의지붕이 독특한 ”성자일스성당“의 외관도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귀족들에게만 허용된 전용 도로라고 하는 로얄마일이 있었다. 이 거리를 걸으며 나는 문득 신사의 나라 영국, 그리고 그 귀족세계를 상상 해보았다. 이번 관광에서 우리가 가이드에게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우리의 행동을“우아하게”하라는 일깨움이다. 호텔에서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자를 때도 두 어깨를 반듯하게 세우고 우아하게 먹으라는 둥, 화장실에 갈 때도 무리를 지어 안절부절 하는 행동을 보이지 말라는 둥 …그만큼 영국 사회의 신사적인 풍격에 어울리라는 당부였다. 나는 거리를 걸으며 남자 신사들의 연미복, 숙녀들의 허리를 졸라맨 원피스며 깃털 달린 모자 등등을 상상하였다. 그러며 나는 고대의 군사요새였던 난공불락의 에든버러성에 지금은 귀족 신사 숙녀들만이 아닌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다는 8월의 세계적인 문화예술 에든버러 대 축제의 각양각색의 인파들을 떠 올렸다. 
▲ 에든버러성에 붐비는 관광객들과 함께
 B: 원드미어, 그리고 윌리임 워즈워드(wordswrth)  에든버러에서 하룻밤 잠을 자고 우리는 또 5시간의 버스 운행을 거쳐 잉글랜드 중부 원드미어로 향했다. 원드미어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생가가 있는 글라스미어와 이어져 있다. 원드미어에는 길이 17㎞ 된다는, 중국의 서호와 닮은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그리고 15개의 호수가 주변의 수려한 산들과 아기자기한 농가들로 어우러져 수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의 영감을 안겨준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했다.우리도 이 호수에서 뭇 관광객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유람선을 타고 길지 않은 크루즈 여행을 즐겨본다. 그러면서 우리는 시인 워즈워드의 생가에 가볼 생각을 무르익힌다. 원드미어에서 나와 반시간쯤 달렸더니 드디어 작은 호수 그리스미어가 보이고 부근 한적한 시골에 윌리엄 워즈워드 시인의 생가에 도착하였다. 돌로 쌓아올린 소박한 중세기 시골집 형태였다.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과 유명세를 생각하면 조금은 뜻밖이란 생각이 들었다. 2층으로 된 조금은 침침하고 크지 않은 침실과 서재 복도 층계…시인의 자취를 찾아본다. 정원의 한쪽에는 시인의 묘와 아내의 묘, 그리고 평생 결혼도 안하고 존경하는 오빠의 시 작품들을 내조 하였던 여동생의 묘도 나란히 있었다.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여 정원을 아름답게 수놓은 그 변두리에는 시인이 친필 흔적으로 새겨놓은 시편들이 바윗돌에 새겨져들 있었다. 우리는 자연히 그의 유명한 시“초원의 빛”을 되새김질 해 보았다.
초원의 빛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그대를 사랑하는 마음 희미해진다면이 먹빛이 마름하는 날나는 그대를 잊을 수 있겠습니다. 초원의 빛이여꽃의 영광이여다시는 그것이 안 돌려진다 해도 서러워 말지어다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으소서!… …  C: 섹스피어(Segseupio) 생가, 그리고 오스틴(Austin)… 그리스미스의 탐방을 마치고 이튿날,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잉글랜드의 남부로 4시간이란 긴 여정을 달렸다. 끝없이 푸른 초원 같았던 동부지역과는 달리 서부 지역은 멀리 간간이 척박한 민둥산들이 보였다.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섹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포드어폰에이번 (Straford upon Avon)에 도착하였다. 세계 최대 문호라는 타이틀을 가진 불멸의 작가 섹스피어를 탄생시킨 이 소도시로 들어서면서부터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희극과 비극, 역사와 시 등 47여 편의 작품 중에서 내가 읽은 글은 고작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등 몇 편 밖에 없다. 세인들은 그를 “뛰어난 시적 상상력, 인간성의 안팎을 넓고 깊게 꿰뚫어 보는 통찰력, 놀랄 만큼 풍부한 언어 구사, 다양한 무대 형상화 등에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다.”고 평한다. 
▲ 섹스피어 생가
 ‘해가지지 않는 나라 “라는 영국의 타이틀엔 그의 빛이 한몫을 한 것임이 분명하다. 마을 입구의 광장으로 들어서니 섹스피어의 연극 “뜻대로 하세요.”에 나오는 어릿광대 터치스톤의 동상이 유람객들을 맞아주고 있었다. 크지 않은 소도시는 올드 시티와 뉴 시티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섹스피어 센트는 뉴 시티- 스트랫포드다. 센트 입구로 들어서면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RSC라고 크게 쓴 간판이 주목 되었다. 그의 극작품을 공연하는 대형 극장이었다. 이어서 섹스피어 박물관 생가 등등이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며 차례로 눈에 안겨 왔다. 길 양쪽으로 줄 지어선 목조 건물들이 중세기의 모습 그대로 선을 보이고 있었다.  거리엔 늦은 오후의 스타벅스들이 클레식한 음악들을 흘려보내며 영국 사회의 특유의 티타임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우선 먼저 2층으로 된 그의 생가로 들어갔다. 역시 400여년 된 목조 건물이다. 그가 쓰던 침실, 서재, 거실, 식탁…우리는 이 대 문호의 옛 자취와 정서를 찾느라 구석구석 조용조용 살펴보며 머리와 가슴에 무엇인가 묻어 보았다.2층에서 밖을 내다보니 공원 같은 장미꽃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관람객들이 법적 거렸고 중세기 복장을 한 남녀 배우가 섹스피어 작품의 어느 한 장면을 대사로 연출하고 있었다.도시 전체를 가로 질러 흐르는 에어번강- 강위를 자유로이 헤엄치는 백조들, 각양각색의 요트, 강가의 잘 다듬어진 산책로, 벤치…그리고 좀 더 걸으면 섹스피어의 무덤, 8세 연상이었던 아내-앤과 쌍둥이 남매 자식들의 무덤도 있다는데 우리는 가보지 못하였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섹스피어는 자기의 무덤에 “내 무덤을 파는 자는 엄정한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는 비문을 남겼다 하여 충격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어디에나 관광객이 차고 넘쳤다. “ 섹스피어가 자신의 고향인 스프렛포드 를 죽어서도 먹여 살린다는 말은 절대 과언이 아닌 덧 싶었다. 관광 중 나는 많은 생각을 하였다. 대학교육도 받지 못했다는, 하나의 장갑 제조업자의 아들, 그러나 “대학을 다니진 않았지만 자연과 인간의 실제 삶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다”고 세인들은 평한다. 비평가 칼리일이 “영국 식민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위대한 인류의 유산으로 되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수많은 명언이 있다. 그중 두 마디를 골라본다 “바닥을 기여 본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 제임오스틴기념관 전디밭에서
   D: 제인 오스틴 젊은 시절, 중국작가협회에서 춘절 기념으로 매 회원에게 캘린더 하나씩 보내왔는데 그 속엔 세계 명 여류 작가들의 사진이 달별로 찍혀 있었다. 그 첫 장이 바로 “오만과 편견”을 쓴 영국 여류 작가 제인 오스틴이었다. 나에게 확실한 꿈을 안겨 준 계기가 되었었다. 그래서 섹스피어 고향을 떠나 오스틴이 거주 했던 영국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배스에 도착했을 때도 나는 감회가 남달랐다. 가는 버스길에서 우리는 역시 영화 “오만과 편견‘을 보며 다시 그 작품의 세계에 들어가 보았다. 총 6권의 책밖에 못 남기고 41`세에 세상을 떠나간데 비해보면 오스틴의 유명세는 역시 대단한 것이다. 나는 영국 돈 10파운드를 주고 오스틴의 사진 한 장을 샀다. 배스는 로마 시대로부터 잘 알려진 온천 도시로 18세기부터 영국의 부유층이 가장 선호하는 요양과 사교의 세련된 도시로 거듭났다고 한다. 이곳에는 1801년부터 1806년까지 오스틴이 살던 집이 있었다. 사실은 내부를 개조하여 오스틴이 살았던 거리와 집안 분위기를 재현 한 것이었다. 11살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 했다는 오스틴은 처음엔 익명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 했지만 왕궁의 왕세자도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등 사후 그의 작품은 식상하고 진부할 수 있는 소재와 통속적인 구조 속에서도 주제의식과 재미 두 가지를 다 잡아낸 작가라는 평가의 재조명을 받았다. 우리는 그 후 관람했던 원체스톤 성당에서 그의 납골 탑이 세워진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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