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서울에서 출판된 통일시집 <<다리를 놓자>>

 
                                               <<다리>>를 놓는 시인



                                                     (중국) 김룡운


                                                              1


한 시인이나 작가에 대한 력사적인 판단은 적지 않은 경우 기성판단의 배후에 있는 <<인식의 기초>>의 재판단을 필요로 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은 자연과학과는 달리 절대적 파괴나 부정이 아니라 대개는 보충과 보완의 형태로 나타나며 그러한 재평가작업은 또 흔히 새로운 작품의 출간을 계기로 진행하게 된다.

본 글은 최근 평양에서 출간된 홍용암의 시집 <<다리를 놓자>>를 계기로 홍용암시인을 재조명해보는 소개성적인 작업으로 될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기교보다는 사사성에 바탕을 둔것이다.

<<다리를 놓자>>는 오래동안 절필했던 시인이 민족의 통일이라는 민족적사명감을 높이 추켜들고 세상을 향해 다시 시를 쓰려고 웨치는 선언성적인 시집이다.

이 시인은 요지음 또 새로운 시집의 출판을 계약하고 이미 100여수의 시를 창작하였으며 또 계속 쓰고있는중이라고 한다.

​ 

 



                                                          2


지난(2005년) 5월 30일 조선 평양출판사에서 홍용암의 시집 <<다리를 놓자>>를 단꺼번에 4만부나 출판하여 일대 센세이숀을 일으켰다. 우리가 승인하든 안한든 이것은 엄존의 사실로서 거론하지 않을수 없으며 이를 외면하는것은 현실을 외면하는것에 다름없을것이다.

이 시집의 출간이 주목을 끄는 리유는 ㅡ 첫째로 해외시인으로 조선에서 시집을 찍는 행운을 지녔다는것이고, 두번째로는 한 시인의 시집을 한꺼번에 4만부씩이나 찍기는 조선출판사상 전대미문이라는것이고, 셋째로는 <<6.15공동선언>> 5돐을 기념하면서 기획특집으로 찍었다는것이고, 네번째로는 <<한국>>에서까지 이 시집 1만부를 비행기편으로 실어갔다는 사실이다. 이 시집이 이토록 영향을 일으키게 된것은 이 시집의 핵심이 남북통일을 위한 다리로서의 구실과 모든 백의민족을 단결과 화합과 강성의 마당으로 부르는 호소성적인 구실을 하고있기때문이며 따라서 이 시인이 <<다리를 놓는>> 시인으로 크게 주목되기때문이다.

적어도 조선이 보는 시각이 이러하며 한국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친것만은 엄연한 기존의 사실로 되여있다. 이쯤하면 론의의 대상이 되기에 족할것이다.

시집 <<다리를 놓자>>에 대한 살핌에 앞서 지난날 우리 시단이 이 시인에 대해 어떤 가치평가를 했던가를 간단히 되돌아보는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것이다. 오늘의 가치판단은 동떨어진것이 아니고 어제의것을 전제와 바탕으로 하기때문이다.

2001년 3월 24일 연길시 아리랑호텔에서 연변문학예술연구소,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흑룡강성조선족창작위원회,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와 아동문학창작위원회 등 5개 단위들의 공동주취로 <<홍용암시작품연구세미나>>가 륭중하게 거행되였다. 회의측에서는 그번 세미나를 <<묻혔던 보물을 파내고 닦아주고 빛내주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평가하였으며 두달후인 2001년 5월에 그번의 그 홍용암시작품연구세미나기념특집 론문집성집이 연변교육출판사에 의해 <<청춘표류의 고독한 인생고백>>이라는 표제의 단행본으로 두툼하게 출판되여 세상에 나갔다.

아래에 일부 평자들의 말을 인용함으로서 당시 시작품세미나에서 홍용암시인에게 내린 가치판단을 회고해보고자 한다.

<<모두어 말하면 홍용암씨는 예술적천부를 가진 젊은 시인이며 민족과 삶에 대한 애정과 풀리지 않은 서러움의 생을 장중한 가락으로 울린 발전중에 있는 시인이며 화장하지 않은 맨 근육질과 같은 분명히 남성적이며 새로운 형이상학적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그리고 우리 시단에 좋은 작품들을 선물한 청년시인입니다...>> (조성일, 평론 <<한의 가락, 기다림의 미학>>에서)

<<이 시집을 읽으면서 우리는 당시의 10대, 20대의 나어린 시인 홍용암의 뛰여난 문학재질과 뜨거운 마음에 감복되지 않을수 없습니다...>> (김호근, <<홍용암시작품연구세미나에 드리는 축사>>에서)

<<우리에게는 앞으로 우리 시단을 리드해나갈수 있는, 세계화속의 연변시단을 구축해나갈수 있는 덕과 시적재질을 겸비한 홍용암과 같은 후비력량이 긴박히 요구되고있습니다...>> (리성비, <<축사2>>에서)

<<홍용암의 이번 시집에서 강하게 시선을 끄는 주제의 하나가 인생론에 대한 초보적인 정립이다. 그의 길지 않은 인생행로는 가난에 찢겨진 파편화된 쪼각으로 정착되여있다. 이러한 시세계는 아직 사회에 정식으로 진출하기전의 불안한 마음과 내통되여있기도 하다...>> (한춘, 평론 <<청춘표류의 고독한 인생고백>>에서)

<<동화적상상으로 동심에 회귀하여 그 누구보다도 더 깨끗하고 더 천진하고 더 재미나는 동심세계를 펼쳐보인 여기서 19세때 홍용암의 동시의 주되는 특징이 보인다...>> (김만석, 평론 <<동화적상상과 홍용암의 동시>>에서)

<<홍용암은 토막이야기가 있는 서정시를 쓰는데 마무리를 정채롭게 맺는다. 토막이야기를 간결하게 묘사하고 마무리의 조약을 하는데 능란하다...>> (정몽호, 평론 << <사슴뿔나무>의 동심과 의상형태>>에서)

<<모두어 볼 때 홍용암의 시편들은 상실에 의한 고독의 정감이 주조를 이루어 그리움과 기다림, 그리고 그것에 유관되는 상봉과 리별의 정감세계를 창조하고있다...>> (전성호, 평론 << <려행자>에 내비친 홍용암의 정감세계>>에서)

<<우리 시단에는 홍용암이와 같은 재간많은 젊은 시인이 너무 적다. 가득이나 적은 이 대오속에서 용암이가 하해하였다는것은 생활의 필연이기는 하겠지만 시단의 손실이고 불행임은 더 말할나위가 없다. 이제 슬픔의 미학을 지니고 저 멀리 바다로 떠났던 이 천재소년이 하루빨리 돌아와서 당년의 <문학신동>으로서의 옛사명을 다시 짊어질것을 시단은 간절히 기대하고있다...>> (리복, 평론 <<홍용암과 그의 시집 <흰구름이 된 이야기> >>에서)

<<홍용암시에서의 또 하나의 선명한 특징은 짙은 민족성과 강한 민족의식이다. 시인은 자신을 철저히 백의동포네크위트(집단)속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민족과 일심동체가 되여 민족과 함께 울고 민족과 함께 웃고있다. 우리 시단에 민족의 우환의식을 다루고있는 시인들이 많지만 홍용암만큼 자기 민족에 집착하는 시인은 얼마 안되는줄로 안다...>> (김룡운, 평론 <<홍용암시에서의 흰구름의 상징적이미지>>)

물론 홍용암의 시가 안고있는 이런저런 부족점에 대해서도 지적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경솔했거나 가장 자상하지 못했던 점도 있었던바 바로 그의 시의 가장 중요한 핵으로 되고있는 민족의식에 대해 그렇게 깊이있는 분석과 가치판단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던것이다. <<통일문학>>의 평론가 김성희는 이 면에서 아주 투철한 파헤치기를 하면서 홍용암을 장차 조국이 기억할 순결한 애국애족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있다. 

<<다리를 놓자>>에는 홍용암이 초, 고중시절과 대학시절에 썼던 시 98수가 수록되여있다.

우리는 우에서 중국조선족평단의 평가를 두루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조선의 평가는 어떠한가? 그것을 알아보는것도 퍽 흥미로울것이며 홍용암시인의 시의 사상성을 전면적으로 리해하는데 매우 유조할것이라고 생각한다. 

 



                                                         3


<<통일문학>>편집부는 시집의 앞표지 안면에다 홍용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있다.

<<꿈많은 소년시절 조국과 겨레의 품이 그리워 넋도 마음도 한송이 흰구름이 되였던 동포시인 홍용암, 그 시절에 남긴 수많은 시편들은 그 외로운 구름에서 휘뿌려진 한많은 눈물이 아니였던가... 슬픔과 외로움의 눈물로 얼룩졌던 그 흰구름은 오늘 순결한 애국애족의 뜻으로 더욱 부풀어올라 무궁무진한 창작적 재능을 한껏 발산하고있거니 조국이 기억하고 겨레가 사랑할 그의 작품들을 우리는 기대해마지 않는다.>>

평가의 무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에서는 이 시집의 출판을 앞두고 또 전문 조선에서 인정받는 일류평론가를 파견하여 홍용암의 시집에 대해 평글 50여페지(4만여자)나 쓰게 하였다.

<<통일문학>>편집부의 저명한 녀류평론가 김성희는 <<다리를 놓자>>에 대한 평론 <<민족의 넋을 안고 숨쉬는 순결한 서정세계>>에서 다음과 같은 네개방면으로 개괄하고있다.

1) 홍용암동포의 시편들을 일괄해보면 개인적상실의 세계에서 부득이하게 마주치게 된 그 가혹한 고독의 슬픔속에서 과감히 일떠서 조국과 민족에 대한 <<큰 사랑>>의 대하에 합류하여 개인적 고독감을 이겨낸 운명의 모대김을 감수할수 있다.

2) 홍용암의 시에서 분렬된 조국을 두고 흩어진 겨레를 두고 사무치게 터져나오는 <<한>>의 정서는 시집의 전반에 눈물의 강이 되여 흘러넘친다. 그에게서 상실의 아픔이란 곧 민족의 자주권이 유린당한 력사의 갈피에 자기 삶의 뿌리를 묻은 리향민의 눈물이며 허리 끊어진 고국의 수난이 이국에까지 미치여 자유를 구속당한 갈라진 민족의 설음이다. 겨레를 끝없이 사랑했기에 수난당한 민족을 생각할 때 흐르는 그것은 우선 눈물이였다... 이직은 육체의 골격과 함께 사상의식도 다 여물지 못했던 소년의 몸으로 자기의 시적체험을 현실과 결부시키고 개인적자아의 세계를 벗어나 민족의식의 높이에서 시상을 찾아낸 그 순결한 애국애족의 정신에 감동된다.

3) 그의 정신, 그의 의식은 민족의 품에 굳건히 닻을 내리였으며 복잡다단한 이국살이의 풍파속에서도 자기 좌표를 잃지 않았다. 인간사랑, 조국사랑, 겨레사랑의 순결한 흰바탕을 일생동안 고이 지켜가려는 이 생의 좌우명을 시인은 지키였다.

4) 그의 시들은 길지 않으나 하나를 통해 열백을 보여주는 천만마디 사연과 이야기를 안고 함축되여있으며 시행과 시행 사이에서, 말과 말 뒤에서 다른 시, 다른 말들이 화성을 울리고있다. 정갈한 민족정서를 구현하고 전통적인 운률조성방법에 의거한 사실주의적시풍은 그의 뛰여난 비유적상상력과 결합되여 두드러진 개성적문체를 이루어놓고있다. 여기에 철학적사색이 짙은 시적표현들로 하여 지성도 높은 현대서정시의 완미한 경지를 개척하고있다.

한마디로 김성희의 평은 민족의식, 민족애 등을 뿌리로 하여 홍용암의 시를 조명하고있다. 홍용암의 시가 평양의 중시를 그토록 크게 받고있는것은 바로 그 남다른, 처절할 정도로 심각한 민족의식과 뜨거운 민족애로 남과 북 사이에, 모든 민족성원들 사이에 단결과 융합의 다리를 놓고있기때문이다. 그것도 문학과 인생의 완전한 각성기에 들어서기전인 10대와 20대초반의 어린 시기에 말이다. 다시 말하여 나이에 비해 너무나 절절하고 투철하고 심각한 그 사상성때문일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인을 평가함에 있어서 시적기교도 화제에 떠올려야겠지만 그보다도 더 먼저 깊이 생각해볼것이 바로 그의 매 한편한편의 시에 내장되여있는 높은 사상성이다. 

 



                                                        4


홍용암시의 단초(断初)는 페부로부터 흘러나오는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일목료연해진다.

<<...우리 민족의 가장 보귀한 특징인 자기의 언어와 문자, 그리고 마지막 민족적 자존심마저 거의 까맣게 잊어가고있는것이 오늘의 보편적현실인것입니다. 단군의 후손으로서 실로 부끄럽고 가슴아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고난많은 고국의 5천년 풍운력사와 지금도 분렬에 리별에 리상에 아파 울고있는 옹근 칠천만 백의겨레의 슬픈 오늘의 현실도 함께 떠올리고 깊이 사색하고 깨치게 되였습니다.>> (시집 <<다리를 놓자>>에서 <<저자의 말>>)

22살의 나이에 쓴 글이라고 생각할 때 나이에 비해 너무나 성숙된 그 뜨거운 민족의식이 갸륵하게 안겨든다. 많은 경우 10대와 20대 시인들의 경우 화조월석이나 음풍영월에 심취되거나 개인적인 사랑, 고민, 허무 등의 뒤안길에서 소자아의 추연한 인생관일 경우가 많은데 홍용암의 시들은 이런 흔적이란 전혀 없고 오로지 민족우환의식에만 집착하고있다.

이러한 점을 헤아려 필자는 5년전의 평글 <<홍용암시에서의 흰구름의 상징적이미지>>에서 <<시인은 자신과 민족군체를 동일시하고있는것같다. 시인은 자신을 철저히 백의동포네크워트(집단)속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민족과 동심일체가 되여 민족과 함께 울고 민족과 함께 웃고있다. 우리 시단에 민족의 우환의식을 다루는 시인들이 있지만 홍용암만큼 자기 민족에 집착하는 시인은 없는줄로 알고있다.>>고 말한바 있다. 지금도 역시 같은 견해다.

홍용암의 민족의식은 일찍 소년시절부터 싹트기 시작하였는바 자신을 민족군체 -- 하얀 민들레가족중의 일원인 한알의 민들레씨라고 생각하며 그 애어린 민들레씨속에 잔잔한 그리움과 소망이 반죽된 기대를 재워넣어 바람을 타고 동실동실 날아올라 민들레가족의 옛터를 찾아가는데 가슴 뭉클한 독백, 애잔잔한 서정, 그 진실한 시적 표현에 가슴이 찡해진다.

<<한가득 하얀 그리움과 소망을 꽃씨처럼 펴들고 하염없이 먼- 하늘 정처없이 떠있는 흰구름을 바라보며 일구월심 북편풍이 불어오기만 기다린다.>> (산문시 <<민들레가족 신화>>에서)

<<아쉬웠던 소년, 그날부터 날마다 하염없이 저 하늘 구름만 쳐다보는 운(云)바라기가 되였답니다...>> (산문시 <<운바라기가 된 소년>>에서)

그냥 해를 바라보는것이 해바라기인데 시인은 구름을 바라보는 <<운(云)바라기>>가 됨으로써 영원한히 변치 않을 민족적량심을 다진다. 시인의 이러한 어여쁜 민족적자각은 그것을 죽음으로까지 승화시킴으로써 그 민족성이 강렬한 울림과 함께 비장성을 흭득하기도 한다. 


          한번도 안겨못본 고국의 품
          수륙만리 이역에서 나서 자라도
          커갈수록 그리운 사랑의 품
           . . .

          혈관속에 맥맥이 굽이치는건
          백색의 끓는 피 어머님의 피라네>>

                    (시 <<어머님을 그렸다네>>에서)


          그래도 어머님 물려주신 옷
          죽어도 그 옷만은 못버리겠다
          언제나 어디서나 시시각각
          어머님 천금당부 명심하며
          흰옷을 입고 끝없이 류랑한다...

                   (시 <<백의류랑자>>에서)


           그 사람을 다 만나면 죽습니다
           그곳에 다 가보면 죽습니다
           그날을 다 맞으면 죽습니다

                   (시 <<삽니다 그리고 죽습니다>>에서)


          물속에 비낀 제 흰 그림자를 보고
          두고온 전설속의 옛고향을 생각해내곤
          어찌할수 없는 향수에 그리움에
          둥-둥- 날아올라 먼데 하늘을 떠돈다...

                    (시 <<구름>>에서)


          외로운 이 심령의 그늘을 비춰주고
          서러운 나에게 희미한 위안과 
          끝없는 명상을 안겨주는
          영원히 꺼질줄 모르는 그런 소중한 
          초불 하나가 내 마음에 있습니다...

                   (시 <<초불>>에서)


          누에가 한오리 실밥을 다 토하듯
          초불이 마지막 심지를 다 태우듯
          그렇게 내 사랑 그대에게 주리다 

          그렇게 한평생
          아낌없이 깡그리 바치오다가
          그대 발밑에 쓰러져 죽으리다! 

                   (시 <<고백>>에서) 


           나는 차라리 한평생
          기다리다 죽는 사람이 되겠다...

                  (시 <<기다림의 함의>>에서)


민족의 얼을 고스란히 지키기 위해 죽을 때에는 소복을 입겠다는 처절한 유언, 민족의 융합이나 통일을 위해서는 죽어서도 민족의 일원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굳은 다짐, 민족의 부강창성을 보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장엄한 선언은 어진간한 민족심으로서는 되지 않을줄로 안다.

민족의식을 다룬 홍용암의 대부분의 시들은 욕망의 불재라는 실존적허무의 그림자가 두루 깔려있다. 다시 말하면 흩어진 민족, 허리 끊어진 고국 등 뼈아픈 현실상황으로 하여 많이는 슬픔의 색조를 띠기도 한다. 이 경우 강렬한 참여의식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그러다가 비애와 통한이 화산처럼 폭발, 분출하여 마침내 통일과 화합을 촉구하는 현실참여의 장으로 들어선다. 


         나도 장벽을 허물었노라고
         나도 마침내
         나와 당신들을 대표하여
         내 할일을 장한 일을 했노라고...

                (시 <<가령 어느날>>에서)


          듣느냐 죄인 되기 원치 않는 자
          나서라 모두가 떨쳐나서
          낮과 밤 이어가며 다리를 놓자
          어린애건 늙은이건 부녀자이건
          주석이건 대통령이건 할것없이
          총동원하여 다리를 다리를 놓자
          조속히 꼭 다리를 놓아야 한다 

          다리를 놓자 !
          다리를 놓자 ! !
          다리를 놓자 ! ! ! 

                  (시 <<다리를 놓자>>에서)


일괄하면 홍용암의 시는 흩어진 무리, 분단된 강토를 만나게 하고 이어주려는 <<다리>>로서의 시도를 남다른 열정으로 끈질기게 펼치고있다는데서 그로서의 독특한 사상내함을 갖고있다. 또 이리하여 이 시인은 <<다리를 놓는 시인>>으로 크게 주목된다.

더우기 시집의 시들이 10대와 20대초반에 쓴것임을 감안할 때 더더욱 놀라움이 가기도 한다.

이 글은 홍용암시에 내장된 사상내용파악을 근본취지로 평양에서 출판된 <<다리를 놓자>>를 두고 소개성적인 작업을 했을뿐 완전한 평글은 못되므로 기타에 관해서는 불문에 붙인다.



( 2005년 중국 <<도라지>>잡지 제5기에 발표. 평자는 중국 연변사회과학원 <<문학과 예술>>잡지사 문학평론가 겸 문학연구원임.)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