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용암의 시세계

평론:



                            민족혼의 카타르시스와 정체성 탐색
                                      ㅡ 홍용암의 시세계


                                         (한국) 김영철

 


                          1. 연변문학의 ≪대표적 개인≫


연변문학은 비유컨대 고립된 섬과 같다. 조선족이라 칭해지는 중국 소수민족의 문학으로서 한자문화권인 중국문학에 비껴나있으며, 한국문학이나 조선문학과도 일정한 거리를 구축하고있다.

민족문학을 동일민족(属人)이 동일언어(属言)로 동일지역(属地)에서 창작된것을 기준으로 삼는 소위 삼속주의립장에서 볼 때 연변문학의 고립성은 더 분명히 드러난다. 국적은 중국이지만 민족은 한민족이고, 조선문으로 창작을 하고있는것이다. 중국이라는 지역에 갇혀서 조선인들이 조선문으로 작품을 쓰고있는 형국인것이다.

여기에 연변문학의 특수성과 고립성이 있다. 연변문학을 주도하는 창작주체인 연변조선족자체가 민족정체성(national identity)의 혼란을 드러낸다. 국적은 중국인이면서 조선족으로 살고있는것이다.

그들의 정체성의 혼란은 연변의 특산물인 <<핑거리(苹果梨)>>라는 과일로 상징된다. <<핑거리>>는 사과와 배를 접목시킨 <<사과배>>라는 독특한 과일이다. 모양과 맛이 사과와 배를 혼합해놓은 상태이다. 연변조선족은 <<핑거리>>처럼 중국인이면서 조선족인 이중성을 갖고있다. 이 이중성(doubleness)이 자칫 민족의 정체성혼란을 초래하는것이다.

하지만 조선족들은 이 혼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연변조선족문학이라는 한 집단의 문학을 개성있게 구축하고있다. 500만 해외동포들중에서 연변조선족처럼 한민족의 정서를 우리 말, 우리 글로 표출하고있는 동포들이 어디 있겠는가? 재일교포, 재미교포들은 일찌기 한글문학을 포기한지 오래됐으며,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한글문학도 소멸의 경지에 놓여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한글문학을 고수하고있는 연변조선족문학에 대해서 우리 민족은 뜨거운 갈채와 성원을 보내야 마땅할 일이다.

필자는 그 고립된 섬에서 한글문학을 고수하고있는 한명의 시인을 만나는 영광을 안게 되였다. 일찌기 청소년시절부터 연변문학의 신동이라 칭해지던 홍용암시인이 바로 그이다.

그는 16세 소년시절에 <<꽃무지개>>라는 시집을 상재하여 연변문단에 데뷔한후, <<나는 시골아이>>, <<흰구름이 된 이야기>>, <<려행자>>, <<사슴뿔나무>> 등의 시집을 발간했으며, 소설, 수필, 평론, 실화 등 다방면에 걸쳐 정력적으로 문필활동을 전개한 연변의 대표적인 문인이다.

2001년 3월 연길에서 <<홍용암시작품연구세미나>>가 연변의 여러 문학단체들의 공동주관하에 개최됨으로써 연변문학에서 갖는 그의 문학적 위상을 높여주었고, 그의 문명(文名)은 널리 조선, 한국에까지 알려졌으며, 급기야 2005년에 조선의 평양출판사에서 <<다리를 놓자>>라는 시집을 4만부나 찍기에 이르렀다. 그의 시세계는 이미 조선의 평론가들과 김룡운, 조성일, 전성호, 한춘... 등 연변의 대표적인 론자들에 의해서 조명된바 있으나, 한국의 평자로서 좀 더 객관적이고 다각적인 시각에서 접근해보고자 한다.

홍용암은 분명 연변문학의 <<대표적 개인>>이다. 고립된 문학의 섬에서 외롭게 문학혼을 불태우고있는 시인이다. 따라서 그의 시세계를 살피는것은 연변문학의 한 단층을 파헤치는 작업이 될것이고, 연변문학의 퍼스펙티브(perspective)를 살피는 관건이 될것이다.

특히 그의 시세계가 조선족의 민족적 정체성 찾기와 민족혼의 구현에 초점을 맞추고있는바, 연변문학의 특수성을 살펴보는 좋은 계기가 될것이다. 
 

 




                              2. 정체성의 혼란과 자아찾기


홍용암은 전형적인 중국 조선족이다. 여기서 전형적이란 말은 현재 중국 조선족사회를 구성하고있는 구성원의 보편적 특성을 구유하고있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그는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여나 자랐지만 그의 선조는 조선땅에 뿌리를 둔 유이민들이였다. 친할아버지는 함경북도가 고향이고, 외할아버지는 경기도가 고향이다. 말하자면 홍용암은 유이민 3세인것이다. 째지게 빈궁한 가정에서 태여나 중국사회의 제일 최하층에서 너무 일찍 어린 나이에 버려진 비극적삶을 살면서 시달리고 허덕여야 했던 그는 어느날 파멸되여가는 몰락가정을 구해내기 위해 분연히 출판하려고 준비해두었던 5권의 시집원고마저 불태우고 대학마저 중퇴하고 상업에 진출하였다. 그렇게 참혹한 운명에 도전하여 후에 끝끝내 성공하였으며 지금은 연길시에서 명망높은 사업가로 활약하고있다. 그의 고학과 립지전적인 사업가로의 변신은 연변사회에서 일대 화제가 되고있다.

이러한 그의 성장환경이나 가계보를 볼 때 그의 시에 주조를 이루는 정체성의 혼란과 자아찾기의 몸부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수 있다. 중국 조선족들이 겪는 민족정체성의 혼란, 즉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고 그 뿌리는 어디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방황은 홍용암에게도 결코 례외가 아니였던것이다. 더구나 시인으로서 감수성이 누구보다 예민한 그로서는 민족정체성의 문제가 인생의 화두, 나아가 시적 화제로 각인되였던것이다. 그의 시 도처에서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뿌리찾기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러한 홍용암 시의 영원한 화두인 정체성의 문제는 두개의 객관적 상관물로 명확하게 형상화되고있다. 그것이 바로 <<흰구름>> 이미지와 <<민들레>> 이미지이다. 이 두 이미지를 통하여 그는 정체성의 문제를 선명하게 형상화하고있다. 구름과 민들레는 그 공통적인 속성이 부유성에 있다. 어느 한곳에 정착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다니는 속성이 구름과 민들레 홀씨인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이미지는 유이민들의 떠돌이삶을 환유하는 적절한 시적 기제이다.

연변의 대표적 평론가인 김룡운이 홍용암의 시세계를 <<흰구름 이미지>>로 재단할 정도로 홍용암의 시에서 흰구름은 지수(指数)적 기능을 수행하고있다. 말하자면 구름은 홍용암 시에서 일종의 라이트 모티브(light motive)인것이다. 따라서 구름의 의미분석은 그의 시세계를 파헤치는 관건적 요소가 되는것이다.

홍용암의 필명은 <<백운(白운)>>이다. 그만큼 그는 구름, 특히 흰구름에 집착하고있다. 김룡운은 흰구름이 홍용암 시의 근간이며, 시적 에너지이고, 메시아라고 평하고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아, 한, 사랑, 순결, 민족애, 효성 등의 다양한 주제를 함의한 시그니페라고 분석하고있다. 시집 <<흰구름이 된 이야기>>는 그의 자서전적 소재를 시화한 시집인데 흰구름이 되여 살아온 그의 인생역정을 담담하게 그리고있다.

본고의 대상이 되는 시집 <<다리를 놓자>>에서도 흰구름의 역할은 중요하다. 특히 흰구름은 정체성의 혼란을 그리는데 중요한 시적 무기로 기능하고있다.


        나는 한쪼각 흰구름
        오고 돌아오지 못하는 한쪼각 흰구름
        산산이 흩어진 한쪼각 흰구름
        회오리 선풍에 휘말려 오락가락
        낯설은 이역만리 타향에서 떠돌다
        눈 못감고 승천한 흰옷의 원혼들이
        정든 고국 못잊어 죽어서 찾아가는
        나는 한쪼각 흰구름

               ㅡ <<나는 한쪼각 흰구름>> 부분 


이 시에서 흰구름은 일제 강점기에 북간도로 쫒겨난 유이민들의 시적 표상이다. 시에서 <<회오리 선풍>>은 조선말기부터 불어닥친 민족수난의 력사적 광풍을 암시하고있다. 그 광풍에 그들은 멀리 중국땅까지 떠밀려온것이다. 그리고 <<어디 가나 발길 잇닿는 곳/ 거기가 바로 내집이라/ 긴긴 세월 방랑살이>>(생략부분)가 시작되였던것이다. 홍용암은 바로 그 유이민세대의 후손이다. 말하자면 또 한쪼각의 뜬 구름인것이다.

<<구름세대>> ㅡ 그것이 홍용암이 그리고자 하는 중국 조선족의 시적 자화상이다. 그리고 그것이 흰구름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미 시에서 암시하고있듯이 흰구름은 <<흰옷>>의 환유인것이다. 다시 말해 백의민족의 시적 표상인것이다. 일제 강점기 북간도로 정처없는 삶의 표랑을 떠났던 우리 민족의 슬픈 력사를 암시하고있다. <<백운>>이라는 홍용암의 아호는 얼핏 랑만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기실 이러한 심오한 함의를 내포하고있는것이다. 어쩌면 민족시인으로 평가받고있는 홍용암으로서 걸맞는 아호인것이다.

이처럼 그는 유이민 3세대로서, <<흰구름>>의 후손으로서 민족정체성을 상실한채 덧없는 삶을 영위하고있다. <<어제도 오늘도 한쪼각 흰구름/ 정처없이 떠도는 한쪼각 흰구름/ 세월따라 바람따라 하염없이 표류>>하는 부유하는 존재로서, 그의 정체성을 표명하고있다. 뿌리가 없는,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부평초같은 존재, 그것이 홍용암이 인식하고있는 민족정체성의 본체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연변의 특산물인 <<핑거리>>, 사과도 아니고 배도 아닌 그 과일의 속성이 그대로 중국 조선족의 자화상인것이다.

이러한 민족정체성의 혼란과 자아탐구는 <<구름>>, <<흰구름의 길>>, <<흰구름이 된 이야기>>, <<운바라기가 된 소년>> 등 자서전적인 내용을 담은 시들에서 확인된다. <<흰구름의 길>>에서 시인은 이 땅에 서있는 나는 <<나의 속이 텅빈 껍데기>>이고, 유유히 떠도는 흰구름이 <<생동한 나의 육체>>라고 노래하고있다. 그래서 그는 <<속이 텅 빈 허울을 벗어두고/ 나의 육체는 령혼을 따라/ 정처없이 표류하고있는>>것이다. 이 땅(중국)에 서있는 나를 속이 텅 빈 껍데기로 인식하고있다는것은 그만큼 그가 민족정체성의 혼란속에 빠져있음을 암시하는것이다. 이러한 혼란이 어찌 홍용암 개인의 문제일뿐일것인가? 그의 선조, 그리고 지금 현세대, 그리고 후세대가 짊어질 중국 조선족의 영원한 멍에일것이리라!

홍용암은 중국조선족의 한 일원으로서 그러한 조선족동포의 애환을 시적으로 승화시킨것이다. 그 점에서 대표적 개인으로서 홍용암의 시적 위상이 확인된다.

민족정체성의 혼란을 암시하는 또 하나의 시적 표상은 민들레이다. 그의 시 도처에서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민들레 홀씨를 만날수 있다.


     전해내려온 전설에 의하면, 듣자니 나는 원시 저 건너 어디라 할가 그 무슨 먼 바다 남쪽 제주도 한라산 기슭에 오붓이 모여 피던 하얀 민들레 집거가족 꽃씨의 꽃씨의 꽃씨의 꽃씨였다는데...
     어느날, 그 어느 회오리선풍에 휘말려 문득 여기 낯설은 지대에 불려와 자리를 잡고 싹이 트고 자라서 꽃을 피웠을가? 흙도 물도 기후도 생소한 이땅에 --
     나는 왜 꼭 여기서 피여야 했고 앞으로도 그냥 못박힌듯 이곳에서 뿌리를 박고 잎을 치고 꽃씨를 뿌려야 할가? 그것이 곧 개변할수 없는 정해진 내 숙명일가? 매양 돌이킬수록 무척 의문스럽다. 풀기 힘든 어려운 수수께끼처럼 ㅡ 

                                ㅡ <<민들레가족 신화>> 일부분


이처럼 시적 자아는 내가 누구이고 내 뿌리는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지속적으로 던지고있다. 그의 선조는 원래 제주도의 민들레였건만, 그 어느 회오리선풍에 떠밀려 중국이라는 이국땅에 뿌리를 내렸다. 시적 자아는 그 제주도 민들레의 후예의 후예인것이다. 중국 유이민 3세대로서 시인의 민족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탐색정신이 엿보인다. 내가 왜 여기서 피여야 했는가, 앞으로도 이곳에서 뿌리를 다시 내려야만 하는가 라는 자문속에 이민 3세대로서 살아가는 시인의 아픔과 력사적 통찰을 느낄수 있다. 그 아픔과 번민이 어찌 홍용암의 개인적 고뇌로 끝날 문제일것인가?

중국동포들의 태생적 한계, 운명론적 존재성에 대한 시적 탐구가 홍용암의 시적 주제임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그의 호가 <<백운>>이듯이, 흰구름과 민들레 홀씨는 중국조선족의 민족적 표상이며, 백운시의 영원한 시적 화두로 자리매김되고있다. 이 지점이 한민족 시인으로서 홍용암이 갖는 위상이다. 
 

 



                                     3. 유이민 의식 


유이민문학은 한국문학에서는 하나의 독립된 쟝르를 형성할만큼 독자적인 문학령역을 구축하고있다. 시에서 리용악, 백석, 안용만, 소설에서 강경애, 안수길 등이 그 중심을 이루고있으며, 이들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된바 있다.

유이민문학은 말 그대로 일제 강점기에 북간도나 만주로 떠나온 유이민들의 삶의 문제를 조명한 문학을 말한다. 그렇게 본다면 현금 연변조선족문학도 광범위한 의미에서 유이민문학의 범주에 넣을수 있다. 왜냐하면 연변문학의 창작주체나 향수주체가 모두 유이민들의 후예이기때문이다. 비록 일제 강점기는 아니라 하더라도, 유이민 1세대의 후예들이 같은 지역에서 똑같은 삶을 영위하고 그 삶을 문학으로 형상화하고있기때문이다.

하지만 주제의식에서 홍용암의 시는 유이민문제를 좀 더 예리하게 천착하고있음이 확인된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유이민문학이 아니라 2000년대의 유이민문학의 령역을 개척하고있는것이다.

홍용암의 유이민의식은 전술한바 민족정체성찾기로 구현된바 있으나, 나아가 유이민 1세대의 망향의식이나 두만강 모티브로 표출된다. 유이민의 당사자였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망향가, 그리고 유이민들의 심리적 국경선이였던 두만강을 소재로 한 노래를 통해 유이민의식을 새롭게 조명하고있다. 유이민 당세대가 아니라 그 후세대의 관점과 시각이라는 점에서 홍용암의 유이민시는 이채를 띤다.

고향땅을 떠나온 선조들의 망향가는 홍용암시문학의 한 주류를 형성하고있다.


        해마다 청명날은  
        할아버지 남쪽하늘 우러러 
        술을 붓고 무릎꿇고 두손 모으고 
        엎드려 조아려 절하는 날

        ㅡ 아버지!
        이 불효자식의 죽을죄를 용서해주옵소서...

        남쪽나라 쑥대 우거진
        임자없는 산소 하나
        외로움에 한결 황폐해지는 날

        해마다 청명날은
        할아버지 대취하여 
        울고 불고 노래하며 춤추는 날

        <<신라의 달밤>> 옛가락
        더욱 처량하게 들리는 날...

                  ㅡ <<청명>> 전문


청명일을 맞이하여 고향땅에 돌아가지 못하고 먼 이국땅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을 기리는 자식의 애틋한 심정이 절절하게 묘사되여있다. 서러움에 못이겨 대취한채 울고 불며 망국의 한을 담은 <<신라의 달밤>>을 불어제끼는 할아버지를 바라다보는 손자의 모습에서 이민 후세대의 표정을 엿볼수 있다. <<신라의 달밤>>소리가 <<처량하게>> 들리는것은 유이민인 할아버지의 아픔이 그에게로 그대로 전이됐기때문일것이다. 시인은 유이민의 후세대로서 유이민 당세대인 할아버지와 공감대를 형성하고있다. 그 공감대의 매개가 바로 <<신라의 달밤>>인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가요 <<신라의 달밤>>은 유이민의식을 환기하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이 객관적 상관물은 때로는 <<두만강>>, <<타향살이>>, <<아리랑>>으로(<<애주가 할아버지>>) 변주되기도 한다. 이러한 망향의식은 아늑하고 신비로운 고향의 꿈으로(<<운바라기가 된 소년>>), 고향생각때문에 주름살이 늘어나는 어느 며느리의 울음으로(<<고향생각>>), 고향흙을 퍼와서 할아버지 산소에 뿌려드리는 효성행위로(<<대대의 숙원>>), 죽어서도 두눈 뜨고 고향땅을 바라보겠다는 할아버지의 유언으로(<<유언>>), 조상들의 흰 뼈를 끌어안는 충동으로(<<내 고향>>) 표출되고있다. 이처럼 망향의식은 홍용암의 시의 주조음으로 나타난다.

한편 홍용암의 시에서 두드러지게 표출되는 두만강 모티브도 유이민의식을 강화하는 또 하나의 시적 기제로 작동하고있다. 대표작 <<두만강>>을 보자.  


        력사의 강 ㅡ 두만강! 
        네 거울에 비친 흰옷의 그림자들
        너는 기억하고 있으리라! 

        너를 건너오던
        흰옷입은 서러운 나그네
        쪽박 차고 
        막대 짚고
        지게 지고... 

        금이 간 쪽박안엔 겨떡 하나
        휘여든 막대엔 휘친휘친 지친 몸
        지게우엔 배고파 우는 철부지아이  

        나는 그때 
        그 배고파 울던 철부지아이
        아들의 아들의 아들

        강아
        너를 보러 너를 찾아 내가 왔다
        못박힌듯 묵묵히 네 기슭에 왔다

        설음의 강 ㅡ 두만강!
        너를 한번 건너오기는 쉬워도
        다시 건너가기는 쉽지 않았더라

        너 도도히 감도는 물결이여
        너는 예나제나 다름없으련만
        묻노니, 오늘따라
        무슨 한많은 설음 실었느냐...?!  

                  ㅡ <<두만강>> 전문


유이민들의 참상이 리얼하게 묘파되고있다. 지게우에 철부지아이를 짊어지고 람루한 옷차림으로 두만강을 건너던 유이민의 형상이 사진처럼 각인되여있다. 시인은 바로 그 서러운 나그네의 후손이다. 시인의 선조가 되는 그 할아버지의 형상은 일제강점기 대규모로 발생한 유이민들의 전형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더구나 그것이 유이민 후손의 기억속에서 재현되고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유이민문학은 일제 강점기로 끝나지 않았음을 이 시는 말해주고있다. 유이민 후세대에 의해 명징한 기억으로, 그리고 삶의 현장속에서 생생히 재현되고있는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실로 2000년대의 신유이민시가 되는것이다.

이 시의 주된 시적 배경이 되는 두만강은 홍용암의 시에서 하나의 라이트 모티브로 작용하면서 주제의식을 구현하고있다. <<두만강 련작시>>라고 할만큼 많은 두만강시가 창작되고있다. 그는 두만강을 눈물의 강인 <<루만강(泪满江)>>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흰옷 입은 난민들의 서러운 눈물>>이 쏟아져 이루어진 <<한겨레 수난의 눈물의 강>>이 되고만것이다(시 <<루만강(泪满江)>>). 시인은 두만강의 푸른 물결을 유이민들이 쏟아낸 눈물이 모여 이루어진 강으로 인식하고있는것이다. 

홍용암의 두만강노래는 한국문학사에서 탁월한 유이민시인으로 평가되는 리용악의 두만강절창을 환기해준다. 주지하다싶이 대표적 유이민시인인 리용악은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와 같은 두만강 련작시로 두만강을 넘나들던 유이민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던것이다. <<잠들지 말라 우리의 강아/ 오늘밤도/ 너의 가슴을 밟는 뭇슬픔이 목마르고/ 얼음길은 거칠다 길은 멀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라고 절규했던 리용악의 생생한 목소리가 홍용암의 시에서 들리는듯 하다. 

리용악을 두만강의 시인이라 했듯이, 2000년대 또 하나의 두만강시인을 우리는 만날수 있는것이다. 
 


                                4. 민족혼의 카타르시스


홍용암의 정체성찾기와 유이민의식은 마침내 민족혼의 카타르시스(catharsis) 경지에 이른다. 어쩌면 정체성의 혼란과 유이민으로서의 방랑은 민족혼에 이르기 위한 통과제의였는지 모른다. 그 고난의 통과제의를 거친 홍용암은 한민족의 웅원한 목소리와 단군신화의 설화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게 된다.

홍용암은 민족혼의 형상화를 위하여 흰색 이미지와 모성 이미지를 적극 수용하고, 때로는 민족혼을 환기하는 민속물들을 동원하기도 한다.

첫번째로 먼저 단군의식을 보자. 주지하다싶이 단군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신화적 존재이다. 따라서 단군이라는 시적 소재는 민족의식에 물꼬를 대는 중요한 매개물이다. 따라서 홍용암의 시에 단군이 중요한 시적 소재로 수용되고있다는것은 그만큼 민족의식이라는 시적 주제를 강화하려는 시인의 의도가 작용하고있음을 암시하는것이다. 다음시를 보자.


         단군님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당신의 모습은 목소리는
        도저히 볼수도 들을수도 없는
        광막한 우주의 신비한 존잰가요

        당신은 백두산에 계십니까
        한라산에 계십니까
        아니면 묘향산에 계십니까
        금강산에 계십니까

        아무도 구세주를 본 일 없듯이
        나 아직 한번도 제눈으로
        직접 당신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구주를 성심으로 받들듯이
        나 그 이상으로 당신을 우러러
        한없이 경건히 신앙하는
        당신의 충실한 신자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당신은 아직도 이 세상에
        칠천만의 성도를 가지고계십니다

        당신께 고백하는 말이지만
        나 가장 예수님을 숭상합니다
        그러나 당신을 더 숭배합니다

        어느날 주님이 부활하셔
        속세에 돌아오실 날 있듯이
        당신께서도 언제든 문득 제앞에
        강림하실줄로 굳게 믿습니다

        그때면 일제히 무릎꿇고
        성령이신 당신을 찬미하며
        일편단심 당신의 부름 받들어
        주저없이 곧추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당신이 계신 천국으로 가서
        당신의 선량한 백성이 되겠습니다
        제 평생의 유일한 소원은
        오직 이것뿐 ㅡ 
        그런 날이 꼭 있으리라 고대합니다...

                ㅡ <<내 평생의 소원>> 전문


시인은 단군을 성령적 존재로 부각시키고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 실로 단군은 우리 민족의 성령인것이다. 따라서 그를 <<한없이 경건히 신앙하는 당신의 충실한 신자>>로 남는것이 시인, 아니 우리 민족이 취해야 할 정도(正道)임을 설파하고있다.

신화의 차원에서 종교의 차원으로 단군 이미지를 끌어올리려는 시인의 의도에서 도도한 시인의 민족의식을 엿볼수 있다. 오랜 세월 전해오는 단군신화나 단군설화에서, 또는 단군소재의 현대시에서 단군을 종교적 대상으로 노래한것은 일찌기 본바가 없다. 따라서 홍용암의 단군시는 단군에 대한 종교적 해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만큼 홍용암의 단군의식, 말하자면 민족의식은 가히 종교의 경지에 이르고있다.

아무리 단군의 혈통을 이은 동포라지만 엄연히 중국이라는 국적을 가진 시인으로서 종교적 경지로까지 승화된 민족의식은 참으로 경이의 경지가 아닐수 없다. 남북의 어느 시인도 이룰수 없는 민족의식의 정점에 이르고있는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경지에 이른 단군의식은 민족정체성을 잊고 살아가는 500만 해외동포들에 대한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로 울리기도 하며(시 <<례배>>), 때로는 단군이 백두산의 천지폭포 소리로 변신하여 우리 민족의 나아갈 방향을 계시하기도 한다(시 <<백두산 천지폭포>>).

두번째로 홍용암의 민족혼의 카타르시스는 화이트 컴플렉스(white complex)로 현현되기도 한다. 그의 시를 한폭의 수채화로 비유한다면 흰색으로 채색된 백화(白画)라 칭할수 있다. 흰색의 마술사, 이것이 시인으로서 홍용암의 자화상이다.

<<백운>>이라는 아호가 시사하는 상징성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체로 그의 화이트 컴플렉스는 <<흰구름(白云)>>과 <<백의(白衣)>>로 구현된다. 흰구름의 이미지는 앞서 고찰한바 있음으로 여기서는 백의(白衣)의 이미지를 분석하기로 한다. 대표시 <<백의류랑자>>를 보자.


        천양만색 옷물결이 파도치는
        낯설은 이국의 네거리에서
        흰옷을 간직하고 살아가기가
        이리도 어려운줄 미처 몰랐다

        흰옷을 입고 나서면
        조금만 먼지가 앉아도
        인차 얼룩이 가고
        그 얼룩이 너무나 확연히 드러나
        자주 씻어 갈아입지 아니하면 안된다

        흰옷을 초라하지 않도록
        소박하고 품위있게 단속하기란
        참으로 조련치 않음을
        너무나 늦게야 알았다

        그래도 어머님 물려주신 옷
        죽어도 그 옷만은 못버리겠다
        언제나 어디서나 시시각각
        어머님 천금당부 명심하며
        흰옷을 입고 끝없이 류랑한다...

               ㅡ <<백의류랑자>> 전문


<<백의(白衣)>>는 백의민족의 환유이다. 시인은 백의민족의 후예로서 당당하게 살아갈것임을 천명하고있다. <<낯설은 이국의 네거리에서/ 흰옷을 간직하고 살아가기가/ 이리도 어려운줄 미처 몰랐다>>는 시인의 언명에서 중국조선족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시인은 중국을 차라리 <<이국>>이라고 호칭하고있다. 분명 그는 중국의 국적을 갖고있는 중국인이면서 어찌 그곳이 <<낯설은 이국>>이란 말인가? 중국인이면서 중국을 이국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인식은 중국조선족의 의식구조의 심연을 드러낸 표현이다.

앞서 <<핑거리>>를 지목했지만 사과도 아니고 배도 아닌 사과배로 살아가야 하는 조선족의 아픔이 있다. 흰옷을 입기가 힘들다는 표현은 중국조선족으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또 하나의 비유이다. 물론 흰옷은 때가 잘 타고 간수하기가 힘든 옷이다. 그만큼 조선족들은 조심스럽게 조련하면서 삶을 영위해가야 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 흰옷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고있다. 흰옷을 입고 류랑할망정 <<초라하지 않도록 품위있게 간수하며>> 살아갈것을 굳게 다짐하고있다. 다시 말해 어머님의 뒤를 이어 조선족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갈것을 천명하고있는것이다. 

<<흰옷>>의 이미지는 여러 시들에서 확인되는바, 시 <<어머님을 그렸다네>>에서는 앞서 살핀 <<백의류랑자>>의 인식을 반복하고있으며, 시 <<무슨 옷을 입고 돌아갈가>>에서는 흰옷의 수의를 입고 생을 마감할것을 다짐하기도 한다. 시 <<한여름 두만강가>>에서는 흰옷을 입고 흰 빨래를 하고있는 아낙네들의 모습에서 백의민족의 영상을 한폭의 수채화로 그리고있다.

이러한 <<흰옷>> 이미지는 끝내 <<흰피>> 이미지에로까지 승화된다. 시인은 자신의 몸에 붉은 피가 아닌 흰 피가 돌고 있음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나는/ 혈관속에 흐르는/ 내 피가 워낙/ 하얀 피였음을/ 처음 알았다...>>(시 <<력사의 이주민족>>), <<혈관속에 맥맥이 굽이치는건/ 백색의 끓는 피/ 어머님의 피라네/ 어머님의 피라네>>(시 <<어머님을 그렸다네>>)라고 시인은 읊조리고있다. 어찌 하얀 피가 있을수 있으랴만 시인은 피조차 백의민족의 피는 흰색임을 강변한다.

이쯤이면 시인의 흰색 콤플렉스가 어느 정도인가 짐작할수 있다. 말하자면 거의 병적인 상황인것이다. 실로 시인은 민족의 고황병에 걸린 상태이다. 화이트 콤플렉스가 그 사실을 입증한다.

홍용암은 민족혼의 카타르시스를 위하여 또 하나의 시적 전략을 동원하는데 그것이 바로 객관적 상관물의 직접수용이다. 조선혼을 환기할수 있는 각종의 시적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있다.

그 례를 보자. 청명, 칠월칠석, 추석(민속명절), 콩쥐팥쥐, 장화홍련전, 춘향전, 심청전(민간설화), 월향, 론개, 남이장군, 리순신, 을지문덕, 안중근(력사적 인물), 기와집, 물바가지북, 저가락장단, 족집게(생활소재), <<아리랑>>, <<눈물젖은 두만강>>, <<타향살이>>, <<신라의 달밤>>(전통민요 및 류행가요), 무궁화, 진달래, 해당화, 봉선화... 등등 실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소재들이 동원되고있다. 렬거한것은 시집 <<다리를 놓자>>에서 추출된것들인데 여타 시집에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이고있다. 이러한 소재들은 공히 한민족의 력사와 정서를 환기해주는 시적 상관물들이다. 시인은 이러한 다양한 소재들을 시속에 끌어들임으로서 민족혼의 카타르시스에 성공하고있다.

홍용암은 다양한 소재를 시적 전략으로 활용할줄 아는 소재주의 시인인것이다. 아무튼 그는 민족혼을 환기하는 객관적 상관물들을 통하여 마음껏 민족혼을 카타르시스할수 있었던것이다. 

 


                                     5. 분단극복과 통일의지


남북한의 분단극복과 통일은 우리 한민족의 지상과제이다. 하지만 중국조선족동포에게는 현실적인 과제일수는 없다. 분명 그들은 중국이라는 국적을 소유한 중국인이기때문이다.

홍용암역시 조선족일망정 엄연히 중국인이다. 따라서 남북통일의 문제는 피부에 와닿는 절실한 문제일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 조선의 어느 시인 못지 않게 통일에의 념원을 적극적으로 노래하고있다. 그의 분단시를 읽고있노라면 도대체 그의 국적이 어디인가 의아해할 정도이다.

물론 분단극복과 통일의 문제가 조선족문인들의 별개의 문제일수는 없다. 바로 분단은 한민족의 문제이고 같은 피줄의 문제이기때문이다. 하지만 분단의 질곡에서 신음하는 남북 당사자들의 시선에서는 한발치 멀리 떨어져 바라볼수밖에 없을것이다. 이 점에서 홍용암의 분단시는 단연 이채를 띤다. 주제면이나 의식면에서 분단시로서 손색이 없는 경지를 보여주고있기때문이다.

그의 분단시는 통곡으로부터 시작된다. 분단에 대한 아픔과 설음을 애절한 어조로 풀어내고있다.


         북위 38도 군사 분계선
         원한의 삼팔선
         분단된 한반도 국토
         그 남과 북에 갈라져 사는
         한겨레 친골육
         너무나 아프고 서러우리

         허나, 나는 더 서러우리
         남도 북도 모두 아닌
         이 지구 방방곡곡
         구름처럼 떠돌며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아픈 마음
         나는 더욱 더 서러워...

                ㅡ <<우리들의 아픈 마음>>


이 시에서 중국조선족이 분단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 나타나있다. 한겨레 친골육끼리 분단의 벽을 치고 살아가는 아픔도 깊지만 남도 북도 아닌 이국땅에서 <<구름처럼 떠도는>> 조선족의 서러움이 더 깊다고 호소하고있다. 분단의 슬픔과 류랑의 고통을 함께 짊어진 조선족의 힘겨운 상황을 잘 묘파하고있다.

홍용암에게는 분단과 탈향을 별개의 문제로 보고있지 않는것 같다. 분단의 아픔이나 조국을 등진 탈향의 고통이 한뿌리에서 기인하고있음을 인식하고있다. 실로 이 두가지 문제는 일제강점기로부터 야기된 우리 한민족의 공통된 비극인것이다. 이 사실을 홍용암은 놓치지 않고있다.

이 통곡의 눈물은 고이고 고여 마침내 동해바다를 이룬다(<<동해바다>>). 동해바다를 눈물의 바다로 인식하는 홍용암의 시의식은 그가 투철한 분단시인임을 확인시켜준다.

때로 이 통곡은 파도같은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시 <<대성질호>>에서 시인은 분단상황을 늙으신 어머니의 허리를 졸라매는 상황으로 전이시켜 허리를 졸라매고있는 남북의 자식들을 호되게 꾸짖고있다. <<이놈들 이놈들/ 이 배은망덕한 나쁜놈들 모처럼 너희들을 키우시느라/ 산전수전 다 겪으며 고생하신/ 어머님 허리를 졸라매다니?>>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질타하고있다. 조국을 어머니로, 분단의 주체를 두 아들로, 분단상황을 <<허리졸라매기>>로 비유하고있는 상상력이 참신하다. 흔히 조국을 <<모국>>이라 표현하듯이 그 어머니가 두 자식의 싸움으로 허리가 졸린채로 신음하고있는것이다. 마땅히 남북의 두 아들은 천벌을 받을 불효자식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참신한 상상력과 비유로 시인은 분단의 고통을 실감나게 형상화하는데 성공하고있다.

또 하나 참신한 비유로 돋보이는 시가 <<삼팔>>이다. 중국에서 3.8은 3월 8일, 즉 <<국제부녀절>>을 의미한다. <<온 세상이 환호하는 축복의 명절>>인것이다. 그러나 38도선은 남북한의 군사분계선을 의미한다. 분단의 <<원한의 계선>>인것이다. 축복의 명절과 원한의 계선을 대비시켜 분단의 아픔을 극명하게 부각시키고있다. 

시인은 분단의 아픔을 때로 자연물에 전이시켜 표출하기도 한다. 새나 나비처럼 자유롭게 허공을 비상하는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통로가 차단된 우리 민족의 분단현실을 유추해낸다.


         새여
         가없이 탁ㅡ 트인 푸른 하늘을
        사이좋게 자유로이 오가는
        그대들의 모습은 어이 그리 신비한고
        생기와 행복으로 차 넘치는가

        그대들의 나라엔
        국계도 분계도 없는가
        오로지 고요한
        평화와 친선과 사랑만이 있는가
        그런 천국이 그곳에 있었던가

             ㅡ <<동경>> 일부


이처럼 시인은 <<가없이 탁ㅡ 트인 푸른 하늘을/ 사이좋게 자유로이 오가는>> 새의 존재에서 분단의 아픔을 끌어내고있다. 국경도 분계도 없이 평화롭게 사랑으로 공존하는 새들의 공간, 그것은 분단현실에서는 천국일수밖에는 없으리라. 자연의 미물인 새들조차 그 천국의 공간을 자유롭게 노니는데 인간은 갈등과 대립으로 분단의 벽속에서 신음하고있는것이다. 역설적으로 시인은 한마리의 새가 되여 분단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싶다는 의지를 표명하고있는지 모른다. 다시 말해 분단의 아픔을 노래하는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연물을 매개로 하여 분단의 극복의지를 표출하고있는것이다.

이러한 시적 발상은 여러 작품에서 하나의 모티브로 작용한다. 시 <<한쪼각 구름이 되여>>는 한쪼각 구름이 되여 남쪽하늘까지 날아가고싶다는 시인의 의지를 표현하고있고, 시 <<눈이 내린다>>는 하얀 눈이 <<인간들이 그어놓은 세상금>>을 지워버리는 상황을 설정하고있다. 시 <<한강과 대동강>>은 남북을 상징하는 한강과 대동강이 서해바다에서 합쳐지는 장면을 연출한다.

<<견우직녀>> 모티브도 자주 등장하는데 그 모티브역시 남북이 하나로 통합되는 상징성을 내포한다(시 <<칠월칠석>>, <<다리를 놓자>> 등).

홍용암은 동시를 짓는 시인이기도 하다. 이미 여러권의 동시집을 출간하여 아동문학가로서도 큰 위상을 다지고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맑고 투명한 동시적 상상력이 드러난다.

시 <<북간도의 이슬>>에서는 이슬처럼 투명한 존재성을 표출하여 홍용암이 동시적 상상력의 시인임을 말해주고있다. 늘 그의 시에는 시 <<소년>>에서처럼 무지개같은 소년의 꿈이 펼쳐져있다. 때로는 시속에 <<푸른 하늘 은하수>>, <<나의 살던 고향>>과 같은 동요를 끌어들여 동심의 화원을 펼쳐보이기도 한다(시 <<옛말의 나라>>). 이러한 동시적 상상력은 윤동주의 시에서도 동일하게 현현되는데, 아마도 홍용암시인이 가장 존경했던 시인인 윤동주의 간접영향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홍용암의 동시적 상상력은 통일의 노래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것이 <<아기와 지도>>이다.


         내가 그린 조선지도
         아차 깜박 조는 새에
         아기가 고무로
         마구 지워놓았다

         그만에 정신 번쩍
         눈 부비고 다시 보니
         내가 그린 분계선
         삼팔선이 없어졌다

         야--! 정말 대단해
         분단된 조선반도
         아기가 남북을
         통일시켜놓았다

         하늘 높이 우로 버쩍
         아기를 추켜들고
         아기 만세 만만세!
         통일 만세 만만세!

              ㅡ <<아기와 지도>> 전문


얼마나 깜찍한 발상인가? 고무로 지워버린 <<삼팔선>>,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발상이다. 묵시적으로 이 시는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이를 등장시킴으로서 분단의 죄업이 어른들의 책임임을 간접적으로 고발하고있는것이다. 동시에 그 아이의 세대까지 그 죄업이 이어지지 않길 바라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도 내포되여있다. 이처럼 이 시는 여러 함의를 내포하고있다.

끝내 시인은 통일의지를 강력히 표출하기에 이른다. 벼랑에 서서 독수리에게 가슴이 파먹히더라도 의연히 백두산을 지키겠다는 조국수호의 신념을 표출하기도 하고 (시 <<소년>>), 통일을 위한 길목을 지키는것이 나의 존재의 리유임을 확인하며 (시 <<리유>>), 남북을 가로막고있는 장벽을 없애기 위해 벽돌 한장이라도 허물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기도 한다(시 <<가령 어느날>>). 실로 홍용암의 통일의지는 신념을 초월한 신앙의 경지에 이르고있음이 확인된다.

이로 볼 때 홍용암은 중국조선족의 통일시인, 민족시인으로 호칭됨이 타당하리라 본다. 


 (한국의 문학잡지 <<문학세대>> 2006년 제5호에 발표, 평자는 한국 건국대학 교수이고 문학박사이며 저명한 문학평론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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