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신문사소개 | 기사제보
최종편집 2018.10.17 수 11:45
특별기획
【 중편소설】 뿌 리 / 허만석-- 허만석선생의 눈물겨운 가족사
백운 기자  |  hry7777@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9.29  18:34:3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통일문학(중편소설)

 

 

                                  뿌  리  (1)

                                  허만석

 

                        1. 야밤중의 결혼식

    1939년도 저물어가는 겨울의 어느날.
    삭풍이 몰아치는 안동(지금의 단동)역에 람루한 옷차림의 다섯식구가 좇기는듯한 걸음으로 개찰구에서 밀려나왔다. 보아하니 중년이 넘은 부부가 아들딸들을 데레고 온것이 분명하다. 큰딸은 열대여섯쯤 되여보이고 작은딸은 열서넛살쯤, 작은아들애는 열두어살 되여보인다. 역전앞에서 그들이 다시 심양까지 쌍바퀴마차로 이동한후 도문행 만행렬차를 타고 교하 신잔에 내릴때는 이미 정오가 훨씬 지났다. 신잔역을 나오니 두대의 썰매차가 그들을 맞아주었다.
    차부외에도 한차에 한사람씩 곁들어왔다. 흰솜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뛰여오더니 중년남자의 손을 덥썩 잡고 흔들었다.
    "처남, 먼길 오느라 고생했구먼!"
    그런후 녀인과 아이들을 일일이 알은체 하였다.
    "오라버니!"
    중년녀인이 마중온 흰솜두루마기에게 공손히 인사를 건넨다.
    "니도 애들 델고 오느라 여간 심려했다마."
    "애들아, 니들 외삼촌이다."
    세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삼촌"을 불러대며 머리를 꾸벅이였다.
    그러는 사이에 수달가죽털외투를 입고 울로신을 신고 썰매차우에 앉아있던 텁석부리사나이는 이  사람 저 사람 훑어보더니 큰 녀자아이에게 눈길을 멈추었다.
    "이 사람이 왕로따(王老大), 푸장마을 제일부자요."
    흰솜두루마기는 왕로따를 향해 연신 굽신거리며 처남에게 인사를 시켰다.
    "왕로따 이 사람이 처남하고 사둔 될 사람이요."
    중년남자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몹시 어색해하였다.
    만주땅에 들어온지 십여년이 넘는 흰솜두루마기는 익숙한 중국어로 왕로따와 몇마디 나누더니 처남네 식구들을 두차에 나뉘여 앉히였다.
    왕로따가 차몰이군에게 "조바(가자)!"하고 소리쳤다.
    온 천지가 눈에 덮혀쌓인 허허벌판으로 썰매가 실그덕 실그덕 미끄려져 갔다.
    길길이 자란 쑥밭을 지나니 승냥이의 울음소리가 오싹하게 들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느릅나무 우듬지에 둥지튼 까마귀들이 말발굽소리에 놀랐다는듯이 까욱까욱 짖어댄다.
    오십여리 눈길을 톺아 왕로따네 집에 도착하니 이미 밤이 깊었다. 그런데 한적한 동네를 븕은 등불이 벌겋게 밝혀주고있다. 더우기 왕로따네 집대문우 량켠에는 함지만한 등불들이 여러개씩 걸려있고 대문복판에 쌍"희(喜)"자를 망짝만큼이나 크게 붙였다.
    썰매차가 대문앞에 당도하자마자 왕로따가 "워 라이라(내가 왔다)!"하고 소리치자 대문이 열리며 기다렸다는듯이 수십명 사람들이 우루루 쏟아저 나왔다.
    팔간기와집 대청에는 작은 등불을 수없이 걸어놓고 정중앙에 탁자를 놓고 벽 절반씩이나 가리우게 쌍'희(喜)"자로 장식하였다.
    사람들은 장내에서 좌충우돌하며 바삐보냈다. 주방에서는 음식준비로 기름튀기는 냄새가 메스꺼울 정도로 풍긴다.
    왕로따는 옷차림을 바꾸려고 뒤방에 들어갔다.
큰딸 연이는 외삼촌댁에 이끌려 작은 방으로 들어갔는데 빨간 꽃신을 신은 젊은 녀자 둘이서 연이를 신부로 분장시키려 기다리고있었다.
    열여섯살 꽃나이 연이는 만주로 먼저 이주한 외삼촌댁의 소개로 왕로따집 며느리로 팔려오는 길이다. 그 몸값은 연이 아버지, 엄마하고 동생 둘까지 온집식구가 경상남도 합천의 농촌에서 만주의 신잔까지 오는 차비값이였다.
   연이는 무아몽중에 로보트가 되여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섰다. 우선 옷부터 조선에서 입고 온 검정치마, 흰저고리대신에 붉은 천으로 만든 바지저고리를 입혔다. 분치장을 받고 연지곤지 찍었다. 이제 붉은 천으로 얼굴만 가리고 례식장에 나설 판이다.
    "훈리 카이스(혼례 시작)!"
    주례자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대청을 울렸다.
연이의 화장을 해주던 젊은 녀자 하나가 대반이 되여 연이를 붙들고 대청중앙으로 걸어나와 큰 탁자앞에 섰다. 탁자우에는 차주전자와 차잔 네개를 놓았다. 왕로따와 부인이 탁자 오른쪽에 앉고 연이 부모가 다른켠에 마주앉았다.
    왕로따는 동전문양의 고동색 비단옷을 입고 부인은 꽃을 수놓은 비단기포를 입었다. 연이 아버지는 조선에서 입고 온 흰 바지, 흰 저고리, 연희엄마는 검정치마, 흰저고리 그대로 초라하였다.
    연이가 탁자앞에 나설 무렵, 신랑감도 밤색비단옷을 입고 중절모 쓰고 허리에 붉은 천띠를 가로매고 남자대반의 배동하에 나타났다. 연이는 붉은 천을 머리우에 얹었기에 아무것도 보지못하였다.
    이때 주례자가 소리쳤다.
    "이빠이 탠띠! (하늘과 땅에 첫번째 절을 올리고..."
    연이는 대반이 시키는대로 고개를 굽혀 절을 올렸다.
    신랑감도 대반의 시중을 받으며 절을 올렸다.
    "얼빠이 꼬우탕! (부모님어르신들께 두번째 절을 올리고..."
    연이도 신랑감도 첫번의 례절을 되풀이하였다.
    "푸치 뚸이빠이!(신랑신부 마주 경례)"
    녀자대반이 연이의 몸을 돌려 신랑감과 마주서게 하고 절을 시키는 순간, "푸당탕" 신랑감이 신부를 마주하고 절을 한다는것이 신부의 이마를 박으며 넙쩍 엎으려졌다. 호되게 연이의 이마를 박으며 코등까지 깼다. 머리에 씌운 붉은 천아래로 코피가 뚝뚝 바닥에 떨어진다. 옆에 섰던 대반이 놀라서 붉은 천을 제치고 손수건으로 코피를 닦아주었다.
    바로 그 순간, 연이는 자기앞에 뻐드러져 늘어진 남자를 보게 되였다. 남자대반이 인차 손을 써서 신랑감을 일으켜세우려 했지만 신랑감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는지 요지부동이다.
    "콰이바 씬랑 타이진 우리!( 빨리 신랑을 들어다 집안에 모셔라)..."
    주례자가 고함치고 왕로따부부는 부부대로 맴돌이치는데 연이의 부모는 어쩔바를 모르고 바늘방석에 앉은듯 새파랗게 질려있다.
    그렇게 문득 치루어진 야밤의 결혼식은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2. 감나무아래 깨여진 소녀의 꿈

    연이의 고향은 경상도 합천군의 작은 시골마을이였다. 삼남매의 큰딸로 태여났지만 련속 녀동생과 남동생이 태여나자 빈곤한 생활은 끼니를 이어대기도 힘들었다. 연이의 부친은 연이가 다섯살나던 해에 연이를 밥술이나 먹이려고 고모네 집으로 보냈다.
    고모집도 형편이 그다지 좋지는 못했다. 연이는 다섯살 어린 나이에도 닭, 오리를 키우며 논밭에 나가 새 쫓는 일이라도 해야 보리밥 한숟가락 얻어먹을수 있었다. 고모집 마당에는 수십년이나 되는 감나무가 몇그루 있었다. 가을이 오면 빨갛게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수없이 많이도 달린다. 감을 따들여 껍질을 볏겨 꽂감을 만들 때는 감 두어개만 먹으면 배가 하루종일 고프지 않았다. 기아를 밥먹듯 할 때 배불리 먹는것보다 더 큰 행복이 없었다. 평소에 근근득식하며 고모집에서 십여년을 보내며 소녀는 차차 애티나는 처녀로 자라났다.
    연이가 열다섯살 되던 해다. 밤사이 마을앞 동구밖에 오막살이 한채가 문득 나타났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모자가 이사왔다. 엄마는 이집 저집 길쌈과 바느질 품삯일을 맡아하고 아들은 산에서 마른 나무가지를 주어다가 읍내에서 팔았다.
    어느날 산나물 캐러 갔던 연이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중이다. 그날따라 취나물이며 오갈피나물이 무더기로 소복이 자란 곳을 면바로 만나 광주리가 넘치게 뜯어 담았다. 물살이 센 강 중턱에서 외나무다리를 건너던중 광주리의 하중을 못이겨 기우뚱하다가 나물광주리를 든채로 그만 강물에 뚝 떨어졌다. 물살에 나물은 산지사방 흩어지고 연이도 저쯤 밀려갔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요!" 연이는 강물살에 밀려 떠내려가며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산에서 땔나무를 한지게 짊어지고 오던 나무군총각이 마침 강가에 이르렀다. 나무군총각은 다짜고짜로 지게를 벗어던지고 강물에 뛰여들어 연이를 구해주었다.
    그때부터 연이는 고모집 감나무밑에서 울바자를 거쳐 동구밖 오막살이집에 눈길이 가군 하였다. 나무군총각이 지게를 지고 나타날 때면 저도 몰래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렇게 한해가 지났다. 어느날 밤, 연이는 가마타고 시집가는 꿈을 꾸었다. 신랑은 다름아닌 나무군총각이였다. 말을 타고 신부를 데리러 오는 모습이 너무나 름름해보였다.
    이튿날 점심무렵, 우장창우장창 요란한 소음에 놀란 연이가 감나무앞에 다가와 울바자사이로 소리나는 방향을 살펴보았다.
    일본군경 몇놈이 동구밖 오두막집을 둘러싸고 샅샅히 들쑤시더니 나중에는 총각의 어머니를 잡아가며 오막살이에 불을 질러버렸다.
    나무군총각이 산에서 땔나무 한지게 하여 읍에 가서 팔아 좁쌀 한바가지 사서 마을로 돌아왔을 때에는 오두막집은 벌써 새까만 재더미로 변해버렸다. 마을사람들이 모여들어 나무군총각에게 오늘의 불상사를 자초지종 알려주며 위로하였다. 집집마다 먹을것을 날라와서 나무군총각에게 주었다. 나무군총각은 억이 막혀 실성한 사람처럼 함구무언하고있었다.
    그날 밤, 나무군총각은 아무도 몰래 마을을 떠나버렸다. 마을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공론했다. 풍문에 나무군총각네는 워낙 함경도에서 살았는데 아버지가 의병장을 따라 항일구국운동에 참여하여 만주를 거쳐 연해주로 갔단다. 일본군경이 냄새를 맡으려고 사흘드레 찾아오기에 나무군총각네 모자는 남쪽으로 피난하던중 연이네 마을에 잠시 터를 잡게 되였던것이다.
    나무군총각은 한번 떠난후로 어디로 갔는지 다시는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또 한해가 지났다. 연이는 버릇처럼 감나무밑에서 울바자사이로 동구밖을 내다보며 막연한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하루는 연이아버지가 오래만에 고모집으로 왔다. 마루청에 앉아 고모와 한나절이나 상론하던 아버지가 연이를 불렀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연이는 웬 일인지 몰라 가슴이 콩콩 뛰였다. 다섯살에 고모집에 와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제 그만 고모집사람이 되는줄로만 알았던것이다.
    연이가 두눈이 휘둥그레지며 아버지와 고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널 데리러 왔으니 이젠 그만 가거라." 고모도 한마디 하였다.
    연이가 집에 돌아와보니 집에서는 집을 팔고 이사짐을 꾸린다 하면서 부산하였다. 이제 그만 배고픈 고생을 피하려고 만주로 간다는것이다. 만주에만 가면 배가 터지도록 먹고 살수 있다는것이였다.
며칠후 연이네 집식구 다섯이 함께 대구에 가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를 거쳐 단동으로 가는 려정에 올랐다. 압록강을 지나 단동에 오면 만주땅이다.
    연이의 아버지는 십여년전에 만주로 들어온 처남의 소개로 만주로 가게 되였다. 연이를 교하 푸장 왕로따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는 조건으로 다섯식구의 기차표 값을 받게 되였다. 그것도 모르는 연이는 부모형제따라 만주땅을 밟고 왕로따의 며느리로 되는 꼭두각시극에 본의아니게 말려들었다.


                            3. 노예며느리

    연이는 첫날밤을 외로움과 공포속에서 울고 떨며 보냈다. 신랑감은 방 한복판에 산 송장처럼 뻐드러져 누운채로 코만 드르렁드르렁 대들보를 울렸다.
    이튿날 울안에서 왁짝지껄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문밖에 나가보니 연이네 부모들이 동생들을 데리고 떠나려고 준비하고있었다.
    "엄마, 나도 가겠어. 나 이곳에서 못살아!"
    연이는 마당으로 쫓아나가 엄마손을 붙잡고 애걸했다. 두 동생들도 누나와 함께 가잔다.
    왕로따가 고리눈을 부릅뜨고 연이를 못마땅하게 지켜본다. 왕로따가 눈짓하자 한족머슴이 뛰쳐나와 연이의 손을 잡아채여 방문쪽으로 밀었다. 연이아버지는 고개만 숙인채 연이하고 말 한마디 못한채 가족을 데리고 대문을 나선다. 연이가 따라나서려 하니 왕로따 로친이 한발이나 되는 긴 담배대로 대문을 가로막았다.
    "뿌씽, 니 뿌능취!(안돼 넌 못가)"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연이네 식구들은 푸장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외딴 마을로 소작농사를 짓게 보냈단다.
    푸장에서 왕로따는 제일 큰 부자였다. 마을을 둘러싼 펑버짐한 논밭이 거의 다 왕로따의 소유란다. 원래 모두 한전이였는데 근래 조선에서 건너오는 막벌이군들이 늘어나자 왕로따는 그들을 머슴으로 들여놓고 수전을 개간하여 벼농사를 지었다.
    벼농사는 잡곡농사보다 훨씬 소작도 많고 쌀값도 비싸니 큰 돈을 벌수 있다고 타산했던것이다. 가까운 강에 보를 막고 수원을 끌어들여 수전을 개간하였다. 평생을 한전농사밖에 모르던 왕로따가 수전개간을 해서 큰 리득을 본것은 순전히 조선유민들을 머슴으로 받아들여 피땀을 빨아먹은데서였다.
    가을이 되면 왕로따의 곡간은 벼가마니로 가득가득 차넘치고 점점 더 많은 부를 차지하게 되였다.
왕로따에게도 약한 갈비대가 있었으니 로친이 십년 치성을 들여 아들 하나 보았다는게 천생 백치였다. 무엇이나 가르쳐도 아무것도 할줄 모른다. 게다가 간질병까지 심하다. 첩을 하나 들여 자식을 더 보자니 암펌같은 로친이 무서워 그러지도 못한다.
세상에 무서운걸 모르는 왕로따도 로친만은 무서워한다. 왕로따가 원체 로친네 집에서 차몰이군으로 있었는데 로친이 부모가 죽자 왕로따를 부군으로 선택했다. 아첨할줄 아는 왕로따는 본래 리씨성이였는데 로친네 가문의 성을 따서 왕씨가 되였다. 여북하면 성까지 바꿨으니 로친앞에서는 고양이앞의 쥐행사를 하는수밖에...
    왕로따가 대를 잇고 가문을 번창하게 할려면 유일한 희망을 손자에게 걸수밖에 없었다.
    로친을 시켜 밤마다 아들방을 감시하는데 백치아들은 아무리 시켜줘도 그 일조차 못해낸다.
    밤마다 에미가 흉내내는대로 연이에게 덮쳐보지만 그놈의 무골충이 일어서지를 못한다. 백치는 고자이기도 했다. 장밤을 고자에게 시달리다나니 온 사지에 맥이 다 빠졌다.
    시달림에 견디다못해 반항할라치면 주먹으로 막 치고 손톱으로 꼬집고 하여 온 몸이 성한데가 한곳도 없었다. 못난 제아들 탓인데도 로친은 그 분풀이를 애매한 연아에게 한다는것이 한발이나 되는 담배대로 시도 때도 없이 연이의 머리며 어깨며 등어리를 공치듯 호되게 두들겨댔다.
    왕로따네 집에서는 아예 연이를 상머슴으로 부려먹었다. 낮이면 머슴들과 함께 포전에 나가 온갖 일을 다하였다. 벼종자붓기로부터 시작하여 모심기, 논김매기, 가을걷이, 타작하기까지 하루도 쉴새없이 들판으로 내몰았다. 머슴들이 하는 일이면 다 시켰다.
    왕로따는 논밭이 많아 머슴도 열두명이나 두었다. 그중 빠터우(우두머리)하나만 한족이고 나머지 열한명은 모두 조선인이였다.
    그들중 한 머슴이 연이에게 어쩐지 낯익어보였다. 똑바로 보지는 못해서 다시금 여러번 곁눈질해보니 아무리해도 꼭 어디선가 보던 얼굴 같았다. 연이는 다섯살때부터 고모집 감나무밑에서만 자라다나니 이 세상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저 머슴이 누굴가?"
    집식구들과 소식이 단절된 상태에서 외로움속에 살아가는 연이는 밤이면 자주 이런 생각을 되풀이 해본다. 그럴때면 이상하게도 자그마한 위안이 되였다.
    백치신랑에게 밤마다 시달리고 새벽에는 아침먹거리준비에도 참여헤야 한다. 낮에는 머슴들을 따라서 포전에 나가 힘든 농사일을 한다. 머슴들보다도 더 힘겨운 생할속에서 연이는 점점 더 여위여갔다. 어느덧 피골이 상접할 정도다.
    삼복철이다. 수렁논에는 갈잎이 둥둥 뜨고 돌피가 제 잘난척 벼포기를 제치고 솟구친다. 수온이 올라가며 논물은 부글부를 괴여오른다. 이쯤때면 찰거머리들이 수렁논에서 득실거린다. 연이는 머슴들과 함께 엎드리면 눈을 찌르는 벼포기 사이를 휘젓으며 갈잎을 걷어내고 똘똘 뭉쳐 흙속에 묻었다.
갑자기 장단지가 따가워난다. 놀라서 다리를 들고보니 한치나 실히 되는 찰거머리가 장단지에 붙어 피를 빨고있었다. 그놈은 얼마나 피를 빨고 배가 부른지 둥실둥실하였다.
    "어머나, 난 몰라..."
    소리치며 찰거머리를 장딴지에서 잡아떼려 하였으나 요지부동이다. 찰거머리는 똑마치 연이의 장단지살이 된듯이 딱 붙어있었다.
    "때려야 돼, 때려야 돼!"
    논김매던 머슴들이 이구동성으로 웨쳐대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바로 옆에서 논김을 매던 그 눈익어보이는 머슴이 잽싸게 몸을 돌리며 찰거머리가 붙어있는 연이의 장딴지를 잽싸게 때렸다.
    "찰ㅡ싹!" 뙤알진 소리와 함께 찰거마리는 너시시 떨어져버린다.
    "고마워요!"
    연이가 감격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인사차로 다시 바라보니 합천의 마을 오막살이에서 살던 그 나무군총각이 분명하였다.
    "아, 그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가?"
    연이는 의문을 마음속에 묻으며 방긋 웃어보였다. 그가 만주땅에 발을 붙인후 처음 웃는 첫웃음이였다.

.    

                                  4. 탈 출

     그후 연이는 마음의 기둥이 섰다. 식구들과는 헤여졌으나 한마을에 살던 나무군총각이 곁에 있어서 어쩐지 마음이 든든하였다. "남녀칠세부동석"이여서 합천마을에서 별로 오래 깊이 사귄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삭막한 만주땅에서 목숨을 구해준적 있는 고마운 은인을 만난것은 운명의 작간이 아닐수 없었다. 예전처럼 고독하지 않았다. 나무군총각이 연이의 마음속 초불이 되여 어두운 구석을 밝혀주는것만 같았다.
    나무군총각은 연이에게 만주땅에 발을 붙이게 된 자초지종을 알려주었다. 나무군총각은 합천군의 마을을 떠난후 부모의 행방을 찾았으나 묘연했고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만주로 건너왔기에 여기까지 찾아다니다가 결국은 조선인머슴들이 여러명있는 푸장 왕로따에 집에 잠시 머슴살이로 들어온것이 어느덧 벌써 한해가 넘었다 한다. 설이 되여도 새경돈을 계산해주지 않고 밥값으로 때워버리니 원래 로비돈을 좀 만들어서 다시 부모를 찾아 나서려한것이 수포로 되였다. 그러나 언제라도 다시 떠날 준비가 되여있었다.
    기실 나무군총각은 연이를 연이네 가족이 야밤중에 왕로따네 집에 들이닥친 그날밤부터 언녕 알아보았다...

    왕로따는 머슴들이 밥먹으러 오는 시간을 줄이고 더 부려먹을 욕심에 아침일터로 갈 때 점심에 먹을 전병이나 강낭떡을 광주리에 넣어 보냈다. 연이는 음식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물주전자는 손에 들고 다녔다. 그것이 안스러워 연이가 대문을 나서면 나무군총각은 다른 머슴들 뒤에 섰다가 인츰 물주전자를 받아들었다. 그때마다 연이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하루는 로친이 아침에 일터로 나가는 연이를 불러세웠다.
    "니디(너) 꼬우리빵즈(조선놈)를 좋아해? 니디(너) 우리 집 며느린데 그놈의 꼬우리빵즈종놈하고 시시덕거려?? 감히!"하면서 삿대질을 하다가 그것도 성이 안차니 담배대에 달린 구리통으로 연이의 정수리를 냅다 내리쳤다. 또 못난 백치아들때문에 잔뜩 난 화풀이였다.
    "아갸갸!..."
    연이는 밑둥 잘린 나무처럼 선자리에 폭ㅡ 꼬꾸라졌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사이로 선지피가 철철 흐르고 계란만한 혹이 불어났다.
    기혼해 자빠진 연이는 여러날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봉변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간혹 나무군총각이 걱정어린 눈길로 연이가 누워있는 방문쪽으로 시선을 돌리곤 하였다.
    며칠후 연이는 허약한 몸을 이끌고 가까스로 일어났다. 어느덧 가을이 찾아와 들판은 황금색으로 변해가고있었다. 연이는 매일마다 새벽에는 부엌일, 낮에는 가을걷이에 나섰다. 백치신랑감은 백치대로 진종일 집구석에서 뒹굴며 서로 개 닭보듯하였다.
    그날도 하루종일 뼈빠지게 벼가을을 하던 머슴들이 달을 등에 업고 돌아오던 길이다. 모두들
허기진 배를 달래며 땅거미를 밟고 걸음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연이는 금방 크게 앓고 겨우 일어난 허약한 몸인데다가 이날 너무 지치고 또 무거운 점심그릇까지 머리에 챙겨 이다보니 맨뒤에 떨어졌다. 걱정이 되여서인지 나무군총각도 발걸음을 늦추며 연이와의 거리를 좁혔다.
    "연이야, 여기서 평생 노예질하겠니? 우리 둘이 도망가자."
    나무군총각은 음성을 낮추며 모기소리로 말했다.
    "네에ㅡ?..."연이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땅거미속에서 나무군총각의 얼굴은 똑똑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만은 강경하게 들렸다. 롱담이 아닌것이 분명했다.
    그날부터 연이느 며칠밤이나 불면지야를 보냈다.
    (도망을 가? 가면 어디로 갈건가...?!)
    도망간다 해도 친정식구를 찾아갈수는 없다. 가야 다시 덫에 걸릴것이요, 더 많은 고통을 자초할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바라고 머슴보다 더 못한 노예, 종년으로 살겠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더더욱 오리무중에 빠져들며 눈앞이 캄캄하다.
    벼가을이 끝나자 또 콩꺽기가 시작되였다. 맨손으로 대궁이가 여물어진 콩가지를 꺽다나니 손가락에 피가 뚝뚝 떨어질 지경이다.
    해가 슬몃슬몃 서산에 질 무렵 한벌판 베여놓은 콩무지를 수수대로 묶었다. 나무군총각이 콩단을 거두며 연이곁으로 다가왔다.
    "래일 신새벽 수닭이 첫홰를 치면 뒤문으로 빠져나가자."
    망설이던 연이는 듣는둥 마는둥 하면서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꼭 새겨두었다.
    저녁후 정주칸에서 식기들을 씻어 정리한후 연이는 옷도 벗지 않고 잠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믐이라 창밖은 칠흙을 뿌린듯 캄캄했다.
잠이 올가 말가 할 때 드디여 닭이 첫회를 울었다. 연이는 살그머니 일어나 어둠속을 더듬어 보자기를 찾아 옷 몇견지 닥치는대로 넣고 돌돌 말아서 어께에 멨다. 숨을 죽이고 벽에 기대여 앉았다.
    가슴이 퐁퐁 뛰였다. 왕로따가 문득 뒤덜미를 잡는것 같았다.
    "호ㅡ!..."
    연이는 길게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다졌다.
    백치신랑감은 웃목에서 평일처럼 코로 풀무질하고 있었다.
    연이는 가만히 몸을 일으켜 살금살금 방문을 열고 나섰다. 고요한 어둠속에서 마구간 말들의 코투레소리만 요란하다.
    그 마구간을 빙ㅡ 에돌아 쪽문으로 갔다. 평소에 자물통을 잠궈놓았던 쪽문은 배슥히 열려져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전신이 오싹했다. 붙잡히는 날이면 왕로따의 몽둥이찜질에 곤죽이 될것이다.
    연이는 필사의 결심을 하고 열린 문틈으로 빠져나갔다. 쪽문밖에 사람의 형태가 보인다. 등에 무언가 메고 있는듯하다. 연이가 쪽문을 나서자 검은 그림자는 덥석 손을 잡아끌었다. 따뜻한 손기운이 흘러나왔다. 나무군총각이 틀림없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무군총각은 소리없이 연이의 손을 잡고 앞으로 끌었다. 두사람은 한몸이 되여 칠흑같은 야밤속을 기척없이 걸어나갔다.
    어디로 가는지 연이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디로 가던지 무작정 나무군총각을 따라 이 지옥같은 마귀굴을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남자가 어찌나 힘차게 잡아끄는지 연이는 질질질 끌리다싶이 따라갔다. 얼마나 갔을가 연이의 하신은 감각을 잃었다. 끌리여 가다 가다 가다 그만 풍덩 주저앉고 말았다.
    먼동이 트기 시작한다. 나무군총각이 내가에 가서 물 한바가지 떠오고 메고온 보자기에서 돌덩이처럼 땅땅한 강낭떡 하나를 꺼내여 두개로 나누었다.
    "물 마시고 이거 좀 먹고 다시 떠나자."
    "?..."
    어디까지냐고 묻는듯이 연이는 올롱해진 눈으로 나무꾼총각을 빤히 쳐다보았다.
    "북으로 이틀가량 더 가면 소성이란 곳이 있어. 고향친구 하나가 벌목장에서 일한대. 거기 찾아가면 도와줄거야!"
    내가에서 떠다준 물을 마시고 얼음덩이처럼 차가운 강낭떡을 겨우 씹어 넘기고나니 그래도 사지에 힘이 솟았다.
    가까운 마을에서 컹컹 개짖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집집의 굴뚝에서 아침밥짓는 연기가 몰몰 솟아오른다. 그들은 내가를 에돌아 될수록 인적이 적은 길을 택해 북쪽을 향해 걸어갔다.
    시내물 모래톱에 막대기를 꽂고 해뜨는 동쪽을 향해 두팔을 벌리고 동서남북 하면서 방위를 찾아갔다. 한낮이 되여 큰 느티나무아래까지 왔다. 몇백년이나 되는지 나무 밑둥은 구새통처럼 비여있었다.
    "여기 고목 아래서 백년해로 언약을 맺자..."
    나무군총각이 연이의 손을 잡고 햇가지가 늘어진 그늘밑에 섰다.
    "오라버니...!"
    연이는 저도 몰래 눈물겨운 탄성을 지르며 나무군총각의 품에 덥석 안겼다.
    "이제부터 부부되여 자식 낳고 살아야지..."
    연이도 고개를 련이어 끄덕인다.
    "아버지 말씀이 옛날부터 천년묶은 고목앞에서 소원을 빌면 꼭 성사된다지 않나?!  우리가 이 고목앞에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면 꼭 성취될거야!"
    나무군총각과 연이는 람루한 옷이라도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고목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이어서 나무군총각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구새통이 된 밑둥아리에 연이를 번쩍 들어 놓더니 자기도 성큼 뛰여들었다. 한아름밖에 안되는 구새통안에서 두사람은 한덩어리가 되여 서로 부등켜안았다.
다섯살 유년시절에 부모님곁을 떠나 고모집에서 큰 연이는 열여섯살 꽃나이가 되기전까지 단 한번도 따뜻한 사랑의 품을 모르고 살아왔다.
    두 청춘은 함께 뒤엉켜 불덩어리가 되였다. 용광로의 쇠물이 녹아 나오는듯 뜨거웠다. 뼈도 녹고 살도 녹고 피도 녹울것만 같았다.
    쓍쓍 비바람이 불어와 타들어가는 불덩이를 식혀주는듯 했다.
    "에구, 비올것 같네. 오늘 어둡기전에 저 산을 넘어야 하는데..."
    나무군총각이 하늘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빨리 떠야겠어..."
    두사람은 행장을 차리고 나섰다.
    "저어기 저 산이 라법산인데 푸장 갈 때 저 산을 넘어온적이 있거던. 오늘 어둡기전에 저 산을 넘으면 래일 해질무렵에 소성에 도착할거야."
    나무군총각이 긍정적으로 말하자 연이는 자기도 모르게 새 힘이 솟구쳤다. 무너질듯 무겁기만 하던 장딴지가 신기하게도 날듯이 가벼워졌다.
    "가자, 어둡기전에 산을 넘자!"
    코구멍에서 단김이 나게 발길을 재우치는데 광풍폭우가 끝내 앞장을 지르고 말았다.'
    "우르릉 쾅! 우르릉 쾅!..."
    순식간 산골물이 골짜기를 메우고 비물이 등과 허리를 쳤다. 그들은 소낙비에 물병아리가 되였다. 허줄한 옷이 살에 찰싹 달라붙고 보자기에 싼 강낭떡도 물에 펴져 누런 물이 흘렀다.
    물줄기를 이리저리 에돌아서 얕은 곳으로 건너 마침내 저쪽 산기슭에 이르렀다.
    날은 빨리도 어두워진다. 무인지경에서 밤을 보내는외 다른 방도는 없다.
    산등성이를 올라가며 동굴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험상궂은 날에는 동굴이라도 찾는것이 상책이다.
    한참을 올라가서 널직한 동굴 하나를 찾아냈다. 허리를 조금 구부리고 그 굴안에 들어가보니 여기저기 돌덩이를 모아놓은 재무더기가 보였다.
    좀 더 앞으로 들어가니 하늘로 동굴이 뚫려있다.
이런 동굴을 통천동(하늘과 통하는 동굴) 혹은 기포동(기포때문에 형성된 동굴)이라한다. 화산폭발시 암장속에 많은 공기가 발산되지 못하고 뭉치여 생긴것, 지질학적 특수현상이다.
    "동굴안에서 하늘로 통한다?..." 연이는 소녀처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선 급선무는 불을 피우고 옷을 말리고 음식을 먹어야 한다. 나무꾼총각은 능란한 솜씨를 보였다. 여기저기 재무더기에서 타다남은 나무가지들을 모아 작은 우등불을 붙히고 동굴밖에 나가 마른 나무가지들을 주어다 불을 크게 지폈다. 그다음 보자기에서 젖은 옷들을 꺼내여 말리웠다.
    옷이 대충 마르자 연이는 동굴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나무군총각하고 거리가 멀어졌다.
    그 사이 소나기는 지나가고 하늘은 더욱 맑아졌다. 뚫어진 동굴 웃면으로 하늘의 별들이 유난히도 반짝이였다. 연이는 별들의 눈길에도 얼굴을 붉히며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나무군총각도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몸도 마음도 개운하였다.
    화토불은 점점 왕성하게 피여오르며 툭툭 탁탁 터지는 소리가 동굴의 정적을 몰아냈다.
    나무군총각은 워낙 허우대가 좋았다. 불빛에 비친 곧은 코마루에 어글어글한 눈이 사내답게 믿음이 갔다.
    연이는 피부가 박속처럼 새하얗지만 수집음으로 화끈 달아오른 두볼은 잘 익은 능금처럼 발가우리했다.
    타오르는 화토불에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은 통천동은 이 밤만은 그들의 세상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세상에 부러움없는 이 작은 왕국의 공주와 왕자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나무군총각이 노래 <<나의 살던 옛고향>>의 1절을 시작하자 연이도 함께 2절까지 따라 불렀다. 부르다 부르다 그만 목이 꺽ㅡ 메였다.
    연이가 먼저 흑흑 흐느꼈다. 합천군 고모네 집 감나무옆에 이른봄 하얗게 피던 살구꽃이며, 빨갛게 익은 홍시들, 눈바람속에서 만행렬차를 타고 팔려오던 지난 일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헤여진 부모형제가 그리워서 울었다. 개보다 못한 굴욕을 당하던 왕가네 집이 떠올라 어깨를 세차게 들먹거리며 울고 울고 또 울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나무군총각도 꺼이꺼이 신음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린다. 외놈들에게 빼앗긴 고향과 조국과 생사를 알수 없는 부모를 그리며 구슬프게 울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둘이는 한덩이로 부등켜안고 서로 등을 두드리며 울기도 하고 위안도 하였다.
    "이럴 때가 아니야. 오늘은 우리 혼례를 이룬 날이야! 우리 춤을 추자..."
    나무군총각이 또 선창을 떼였다 .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연이의 손을 잡고 화토불을 에워 돌며 둥실둥실 춤을 추었다.
    "힘을 내자! 용기를 내서 살자! 아들딸 낳고 대를 이어 살다나면 좋은 날도 올거야..."
    나무군총각이 연이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마주보는 두 청춘의 눈길은 사랑의 불꽃이 튕기며 한없이 아름다웠다.
    나무군총각은 바닥을 두루 고르고 보자기를 훌훌 털어 넓게 펴놓았다.
    "신부님, 라법산 통천동이 우리들 신방이고 보자기가 첫날밤 침대라오!"
    나무군총각이 재치있고 익살궂게 말했다.
    "오늘낮에 천년묵은 느티나무아래서 례를 올리고 몸까지 섞었으니 이제 우리는 부부가 됐소..."
    나무군총각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함경북도 길주에서 태여났소. 연이는 경상도 합천에서 태여났지. 우리 함께 고향의 조상들께 엎드려 큰절을 하기오..."
    연이도 나무군총각을 따라 동남쪽을 향하여 큰절을 올렸다..
    "우리 부모들 말씀이 부부를 맺으면 어른이 된다고 했소."
    연이가 부끄러워 어쩔줄을 모르자 나무군총각이 연이의 저고리 옷고름을 풀어주었다.
    화토불은 더더욱 세차게 타올랐다. 으스스한 동굴은 궁전처럼 밝고 따뜻해졌다.
    언틀먼틀한 땅우에 조이장처럼 얇은 보자기기를 깔고 누웠지만 둘은 더없이 폭신하였다.
    정열이 화토불처럼 타오른 두 청춘은 별빛이 굽어보는 통천동에서 다시 한번 뜨겁게 몸을 섞으며 잊지 못할 첫날밤을 보냈다.
    새벽이 다가오자 활활활 타오르던 화토불도 꺼졌다. 미구하여 아침이 밝아왔다.
    "나 이제 어른이야. 내 이름은 태산이라고 하지. 오늘부터 우리는 서로 여보 당신 하고 부르는거야! 나두 연이의 이름을 안부를테니까."
    화토불 재더미를 헤쳐 그 재불에 남은 강낭떡을 구워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산언저리를 타고 넘어가니 벌판이 나타났다. 그 벌판을 지나 다시 산발을 타고 60여리를 가면 소성에 이른다.
    다음날 소성에 도착했다. 벌목장은 여기서도 한참이나 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교하 푸장을 수백리나 떠나왔으니 뒤걱정은 없다. 벌목장으로 가는 길을 물어서 찾아가니 마침 고향친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의 알선으로 벌목부들이 사용하는 통나무귀틀집 한모퉁이를 막아서 작은 신방을 만들어주었다.
    늦가을이 왔으니 벌목장에는 일손이 부족했다. 바야흐로 첫눈만 내리면 채벌에 들어가고 눈길을 따라 목재를 실어내릴수 있다.
    목재장 여기저기에 남은 원목들을 한쪽으로 모아야 했다. 새로 채벌하여 끌어올 목재들을 쌓아놓을 자리를 비우는 작업이다.
    태산은 벌목공들과 목도를 하고 연이는 남자화부를 도와 식당일을 하였다. 매일매일 강냉이가루와 시래기배추, 소금으로 백여명 벌목공들의 음식을 만들었다.

    연이는 통천동의 밤을 지낸후 태기가 있어 이듬해 가을에 둥글둥글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태산은 아들이 험악한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돌덩이처럼 단단해야한다고 생각되여 아이 이름을 바위라고 지어줬다.
    애기울음소리가 없던 벌목장은 바위의 출생이 대희사였다. 벌목장의 고된 하루를 보내고 귀틀집에 돌아온 벌목공들은 애기의 웃음소리나 울음소리가 들릴 때면 희죽희죽 웃으며 즐거워했다. 고향에 두고온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며 피곤한 삶의 생기를 되찾는듯 했다.
    세월은 빨리도 흘렀다. 바위가 한돐이 되였다. 돐상을 차리고 바위 목에 흰 실타래를 걸어 평생의 무병장수를 축원해주었다. 산천어를 잡아다가 술자리를 마련하고 벌목공 친구들을 청했다.
    걸음마를 아장아장 떼는 바위를 보고 고향의 자식들을 생각하며 누구나 감개무량해하였다.
    소성벌목장에서 두해 세월이 평온하게 흘러갔다. 삭값은 받는대로 착착 모아두었다.
    그러나 심산속의 벌목장은 너무나 세상과 동떨어져있었다. 밖에서는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알수가 없었다.
    태산네는 벌목장에만 있어서는 안된다는것을 깨달았다. 태산도 부모의 종적을 찾아야 되고 연이도 헤여진 가족의 생사가 념려되였다. 어느날 벌목장을 떠나기로 마음을 모았다.
    눈석이물이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이른봄에 그들은 벌목장을 떠났다. 신잔 부근에 자리잡은 오리하자로 갔다.
    오리하자마을은 작은 강을 끼고 수전농사를 짓고 사는 조선인부락이였다. 신잔에서 한 칠팔리 떨어진 곳이다. 아주 가까운 거리이다. 당시 신잔은 도문에서 장춘으로 통하는 장도선과 심양에서 할빈으로 통하는 심하선이 교차되는 철도교통의 요충지이였다. 이런 고장이면 세상소식을 알수 있을것 같았다.
 


                             5. 동틀무렵

    오리하자에서는 세상소식을 알아볼수 있었다. 매일매일 신잔으로 달구지들이 오고 가고 사람들의 래왕도 뻔질났다. 꽃을 꺽어다 파는 사람, 땔나무를 해다 파는 사람, 쌀을 내다 팔고 옷견지나 생활필수품을 사오는 사람들로 이래저래 흥성흥성했다.
    그때 신잔은 만주에서 심양, 장춘, 할빈, 대련을 내놓고 대여섯번째는 가는 꽤 큰 도시였다. 교하시는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였다. 철도기무단이 있는가 하면 일본군수비대도 있었고 감옥도 있었다. 동쪽으로는 도문에 이르러 조선의 접경지대와 련결되고 북으로는 만주리로 쏘련과 련결되며 남으로는 대련에 이르러 바다로 통했다. 이런 철도교통의 중심이여서 형형색색의 사람들의 모여들어 인구도 아주 많았다. 온 만주땅에서 이보다 더 소식이 령통할 자리는 없을것 같았다.
    태산네는 먼저 땅을 소작맡아 농사준비를 하면서 시간이 되는대로 뒤산에 올라갔다. 땔나무를 주어서 지게에 지고 신잔에 갔다. 끼니를 에때울 수수쌀이며 소금간장을 바꿔오며 소식을 알아보기도 하였다.
    신잔 장거리에 나무지게를 내려놓고 팔면서 오고가는 조선인들에게 탐문을 하였다.
    원래 태산의 아버지는 길주 린근의 칠보산을 누비던 산포수였다. 일제의 "총화기 강제수거"폭정에 생계를 잃게 된 강원도와 함경도의 산포수들은 홍범도를 위수로 의병을 일으켰다. 태산의 아버지도 의병에 가담했다.
    그후 의병운동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대한독립군총사령관이 된 홍범도장군의 병사로 거듭났다. 연해주와 만주땅에서 항일투쟁에 참여하여 싸웠다. 북간도에서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으로 왜놈군대를 호되게 족치기도 했다. 그후 전례없이 참혹한 토벌로 쏘련국경을 넘어 연해주로 다시 갔을것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소식은 쏘련변경을 넘나들며 일본군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체포되여 서울 서대문감옥에 갔을거라는 추측도 있었다.
    합천군 오막살이에서 아버지의 인질로 붙잡혀간 태산의 모친의 행적도 알수가 없다. 누군지 서울의 서대문감옥앞에서 보았다는 소문도 들렸다.
    풍만수력발전소가 완공되면서 수력발전에 수요되는 대량의 물을 가두어 송화호라는 인공호수가 생겼다. 교하와 화전의 많은 농전과 마을이 침수되였는데 푸장은 깊은 물속에 잠기였단다. 푸장과 린근에 살던 사람들은 산지사방 흩어져서 누가 어디로 갔는지 행방불명이란다.
    연이네 부모형제의 소식도 알길없이 깊은 안개속에 휩싸이고 말았다.
    량쪽 친척들의 행방은 도무지 종잡을수 없이 오리무중이 되였다.

    그들은 오리하자에서 1945년 8월 15일, 드디여 광복을 맞게 되였다.
    오리하자의 황지주는 부랴부랴 땅을 한족토호들에게 헐갑으로 팔아 넘겼다. 짐을 싸기 바쁘게 심양가서 비행기로 서울에 가버렸다.
    태산네 같은 가난한 농민들은 고국으로 돌아갈래야 돌아갈 려비가 없었다. 해방이 그들에게 가져온 혜택은 당분간은 별것이 아니였다. 거의 무정부상태에서 토비들만 제 세상을 만났다고 오뉴월 마당가 변소에 득실거리는 구데기처럼 독판을 쳤다.
백주에 거리에서 재물을 강탈하는 강도가 있는가하면 밤이면 산속에 둥지틑 틀고있는 토비들이 홍수처럼 쏱아져 내려왔다.
    마을사람들은 쌀독을 땅에 묻고 가금을 광주리에 들고 소를 몰아 야산으로 피신했다.
    밤이 낮보다 더 괴로웠다. 밤이 고되니 낮에 포전에서 일하다가도 밭머리에서 고시러지기가 일쑤였다.
    어수선한 날들이 더디게도 흘러갔다. 오리하자 조선인농부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변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이듬해 봄, 마을에는 낮선 군인들이 또 나타났다. 일본군경이나 국민당군대와 판다른 군인들이였다. 농가의 마당을 쓸어주고 물을 길어주며 "의용군행진곡"을 부르는가 하면 "도라지",  "노들강변"도 불렀다. 조선의용군 제7지대 군인들이였다.
    밤이면 동구밖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촌민들과 함께 강강수월래를 부르며 빙빙 돌았다.
    7지대 군인들이 마을에 입주하자 토비들은 밤이 되여도 감히 더 소란을 피우지 못했으며 략탈은커녕 얼씬조차 못하였다.
    7지대 군인들은 마을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우리는 나라 잃은 비분을 안고 상해로 갔다. 나라를 찾을 힘을 키우려고 중경의 장개석에게도 원조를 청했다. 후에 중국공산당을 연안에서 만나고 공산당은 로고대중들을 위해 나라를 세운다는것을 알았다. 또 공산당은 우리와 힘을 합쳐 일제를 몰아내고 나라를 찾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중국인민해방군에 가입했다. 중국을 해방한후 조선으로 간다."
    마을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달포가 지났다. 7지대 군인들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운이 감돌았다. 닭기름을 얻어다 총신을 반들반들하게 닦고 터진 신발을 깁고 각반을 다시 휘감고 밤중에도 풀지 않았다.
    연이도 종잡을수 없는 불안속에 가슴이 짜릿하고 떨리였다. 다섯살 먹은 바위는 아무것도 모르고 전날처럼 군인아저씨들과 숨박꼭질유희를 놀자고 졸랐다.
    평소에 바위하고 제일 잘 놀아주던 키 큰 아저씨는 바위가 옆에 가서 칭얼거려도 못본체 하였다. 다른 아저씨들도 바위의 장난을 별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날은 아버지도 달랐다. 새벽에 산에 올라가서 팔뚝만큼이나 굵은 나무가지를 몇개 끊어오더니 하루종일 무슨 도구를 만드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바위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하루였다. 누구도 그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는수없이 초저녁에 일찍 자리에 누워 눈을 뱅글뱅글 돌리다가 잠이 들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7지대 대원들이 소리없이 떠나갔다. 태산이도 낮에 만들어놓은 담가를 메고 따라나섰다.
    연이는 쌕쌕 꿈나라에 빠져버린 바위옆에 누워서 초조하고 불안한 밤을 지새웠다.
    먼동이 트기 바로 직전, 마른 하늘에 천둥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다음은 콩볶듯한 소음이 오래오래 계속되였다. 신잔 라법쪽에서 큰일이 일어났는 모양이다. 연이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뙤창밖을 응시했다. 신잔 라법 방향은 밤하늘에 화광이 충천하여 온 하늘이 붉게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날이 휘붐이 밝아서야 전투가 끝났는지 충천하던 화광이 사그러지고 검은 연기만 사처에서 무럭무럭 피여올랐다. 언제 그렇게 소란했느냐 하듯이 고요속에서 아침해가 피빛으로 떠올랐다.


                                6. 망향의 한

    며칠이 지나서야 태산이가 돌아왔다. 남편에게 불상사가 났을가봐 가슴을 도사리고있던 연이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태산이는 그날밤 해방군의 전투를 지원하는 담가대로 나갔던것이다.
    광복후 정권에 공백이 생긴 동북을 차지하려고 국민당은 많은 군대를 동북에 파견하였다.
     국민당의 60군은 손쉽게 길림을 점령하였다. 계속 교하와 돈화 일대를 장악하고 연변일대로 진군하려 시도하였다.
    그날밤에 장도선 철도를 리용하여 중장비와 한개 사단의 병력을 싣고 떠났다. 이때까지만도 동북전역에서 국민당이 전면 우세로 진공태세였다.
    장도선 철도는 신잔에서 오륙리 떨어진 라법역을 지나간다. 길림방향에서 교하로 오면 로야령을 비롯하여 군산을 넘어오다 쑈구쟈역을 지나면 평지가 나타난다. 유독 라법역에서 철길을 마주하고 수호신처럼 우뚝 솟은 탑같은 산이 지척에서 철길을 굽어보고 있다.
    해방군은 이 유리한 지형을 리용하여 매복전을 벌리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해방전쟁의 전략후퇴로부터 전략진공의 시작이란다. 주덕총사령이 비행기를 타고 순찰한후 최종결정한 전투라 한다.
길림에서 첩첩 산을 넘어오던 60군은 평지를 만나자 긴장을 풀고 방심하던차. 라법역의 외딴 산중턱에 매복했던 해방군전사들의 불의의 공격을 당했다. 철길복판에 파묻은 지뢰가 폭발하며 기관차가 철길에 나딩굴었다.
    산중턱에서 차바곤을 향해 우박처럼 던지는 수류탄에 급살을 맞은 국민당군대는 렬차에서 뛰여내려 반격을 시도했다.
    눈깜박할만큼 숨돌릴사이도 없이 돌격나팔소리가 울리자 7지대 대원들이 제일 앞장서서 전투장에 뛰여들었다.
    그 기세에 혼백이 떨어진 60군의 장병들은 철길을 떠나 벌판과 마을을 향해 뿔뿔히 퇴각하였다.
기차의 뒤부분 차바곤에 있던 극 소부분의 패잔병들이 요행으로 탈출하여 길림으로 돌아갔다. 전투장에서 7지대 용사들이 조선말을 주고 받은것을 기억한 패잔병들은 길림에서 조선인대숙청으로 보복하였다.
    "꼬우리빵즈(고려인)때문에 우리가 패전했다."하며 복수하려고 조선인들을 샅샅히 수색해 죽이려 하였다.
    라법전투에서 승리한 7지대 군인들은 길림과 장춘을 해방하기 위해 계속 전진하였다.
    태산네 담가대는 길림까지 부상병들을 호송한후 집으로 돌아왔다.
    몇달후 오리하자의 장정들은 다시 담가대를 조직해 사평으로 파견되였다.
    사평의 국민당군대는 아주 완고하였다. 세번이나 해방했지만 필사적으로 다시 쳐들어왔다. 해방군의 상망도 엄중했다. 태산네 담가대는 포화를 무릅쓰고 전투장을 누볐다. 중상병들을 담가에 담아 후송하는데 총알이 귀전을 쌩쌩 스쳤다.
    시가전은 참혹하였다. 철두철미한 인간도살장이다. 적들을 제압하고 거리와 골목을 쳐들어가는데 돌연히 층집지붕우에서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퍼부었다.
    머리를 다친 중상병을 담가에 담아 나오는데 갑지기 길옆 3층집 열린 창문에서 수류탄이 날아와 쾅쾅 터졌다.
    태산은 눈앞에 섬광이 번쩍하더니 사지가 찢어져나가는 아픔을 느끼며 쓰러졌다. 담가는 고사하고 자기 몸도 지탱하지 못하고 쿵하고 무너졌다. 그리고 어렴풋이 천길나락에 떨어지며 서서히 지각을 잃고말았다.
    태산은 야전병원에서 1년이나 치료받았다. 수류탄폭발에 형편없이 망그러진 왼쪽팔은 고름이 생기고 썩어나기에 팔굽우에서 겨드랑사이를 절단하고야 말았다.
태산이 오리하자집 삽작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연이는 정주에서 저녁먹거리 준비중이였다. 문이 열리고 태산이 나타나자 연이는 그릇을 내동댕이치고 태산에게 달려가 품에 와락 덮쳤다. 한아름 꽉 차던 남편의 체구가 반짝으로 느껴졌다. 너무 의아해서 손으로 만져보니 한쪽 팔소매가 후줄근히 쳐져있다. 왼팔이 없었다.
    "이게 웬 일이예요?"
    연이는 울먹거리며 물었다.
    "사평전투장에 두고 왔소."
    태산은 극력 마음을 진정하며 태연해보이려 애썼다.
    (사지가 온전해도 먹고 살기가 힘든 세상에 외팔로 가족을 어떻게 먹여살린단 말인가?!)
    한팔을 절단하는 그날부터 태산의 마음은 근심걱정으로 가득찼다...

    해방을 맞아 중국공산당의 령도아래 토지개혁이 진행되였다. 대를 이어 남의 땅을 부치던 농민들이 자기소유의 땅을 가지게 되였다.
    오리하자에서 토지개혁을 실행할 때 태산이네는 수전 아홉무지와 한전 한무지를 분배받았다. 땅을 분배받던 날 "외팔이" 태산은 날이 어두울 때까지 지경돌우에 걸터앉아 깊은 사색에 잠겨있었다.
    씨 뿌려 가꿀 한뙈기 땅을 잃고 빼앗긴 나라를 찾겠다고 목숨을 걸고 의병으로 나선 아버지, 의병의 안해된 죄라고 사지로 끌려간 어머니, 지금은 생전이기나 한지? 두만강을 다시 건너 조선으로 갔는지?? 아니면 어느 이국땅에서 무주고혼이 되였는지???… 태산의 가슴속은 농부의 천년숙원인 땅임자가 된 기쁨과 함께 행방조차 막연한 부모님을 그리는 큰 슬픔이 얼기설기 한데 뒤엉키며 세차게 소용돌이쳤다.
    경자유기전의 토지개혁은 전쟁으로 피페해진 농촌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다. 번신한 농민들의 생산적극성은 전례없이 높았다.
    해방전쟁터에서 왼팔을 잃은 태산을 정부에서 도와주었다. 벌목장에서 퇴역한 늙다리암소 한마리를 주었다. 일손이 모자라는 집을 위해 호조조를 무어주기도 하였다.
    봄날 아지랑이 피여날 때 연이는 소고삐를 잡고 앞에서 끌고 태산은 한손으로 보탑을 잡고 분배받은 내 땅을 갈아넘겼다. 바위는 이랑이랑 갈아번져지는 흙덩어리를 버들가지로 탁탁 두드리며 흥이 나서 따라다녔다.
    늙은 암소와 세식구는 논갈이로 번져눕힌 논이랑을 따라 한일자로 서서 걸었다. 피여오르는 아지랑이를 밟고 가는 그 모습은 운무속의 아름다운 그림 같았다.
    분여받은 땅에서 첫해농사가 만풍작을 이루었다. 태산은 오른팔로 벼줌을 움켜쥐고 탈곡기에 돌려댔다. 윙윙ㅡ, 탈곡기가 힘차게 돌아갈수록 태산은 더욱 힘내여 밟았다. 토실토실 익은 황금낟알들이 탈곡기앞에 수북이 쌓인다.
    밤이 오자 둥그런 달이 동산우에 솟아올랐다. 태산은 탈곡일의 피로도 말끔히 잃어버리고 한번 속구구를 해보았다. 금년같은 풍년농사를 사오년만 더 하면 고향가서 초가삼간 마련하고 부모님을 모실 준비는 충족하게 할수 있으리라! 
(그래 그렇지 그러구말구!...) 태산의 마음은 푸근해졌다.
    태산은 성한 오른팔로 무슨 일이나 가리지 않고 다 하였다. 삽질은 물론 모상판에 벼종자 뿌리기, 논갈이, 보탑잡이, 모심기, 써레질, 모짐지기, 논김매기, 논뚝풀베기, 벼가을하기, 타작하기, 수레몰기... 등 못하는 일이 없었다.

    이어서 "6.25"조선전쟁이 폭발하고 몇해 지나 또 정전협정이 체결되였다. 전쟁으로 재더미가 된 조선은 사회주의진영의 령도아래 불철주야로 복구건설을 진행했다.
    전쟁으로 인구가 최대한 줄어든 조선은 중국정부와 협상하고 동북의 조선족들을 동원하여 자의에 따라 조선으로 가도록 하였다.
    많은 조선족 장정들이 가족을 이끌고 조선으로 떠났다. 태산이도 정부를 찾아가서 조선에 가겠다고 신청하였다.
    "조선에서 복구건설을 위한 로동력이 수요되는데 당신같은 장애인이 가면 조선을 도와주는게 아니라 오히려 부담이 되오."하며 향정부의 담당간부는 그를 말리였다. 중국해방전쟁에서 부상을 당했으니 여기에 있으면 정부의 보살핌도 받을수 있다고 하였다.
    "난 그런건 생각지도 않소. 그리구 나는 어떤 일이나 다 할수 있소. 조선에 짐이 되려 가는게 아니요!"
    태산이 오른주먹을 불끈 쥐고 휘둘러 보였으나 담당간부는 휘줄근이 늘어진 왼쪽팔소매를 응시하며 머리를 가로 저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봄, 논갈이가 한창인데 왼팔상처가 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큰시큰 쑤시던것이 점차 아픔이 심해졌다. 아물어 붙었던 상처가 다시 감염되여 고름이 생겼다. 그것뿐이 아니였다. 허리도 심히 아팠다. 사평시가전때 담가를 메고 나오다가 무너지는 굴뚝에 허리를 다친적이 있다. 그때는 살도 터지지 않고 피도 흘리지 않았으니 별문제로 보았지만 사실은 어혈이 깊이 들었던것이다.
    소염주사를 맞고 약을 쓰니 왼쪽어깨는 좀 나았으나 허리는 점점 더 아팠다. 병원에도 뾰족한 치료방볍이 없었다. 침구로 치료했으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하는수없이 구들을 지고 누워버렸다.
    옹근 삼년을 방구들에 누워있었다. 호조조의 도움을 받아 논밭은 묵이지 않았지만 연이는 죽을 고생을 다 했다. 두꺼운 요대기를 깔아주고 이쪽저쪽 엇갈아 돌려눕혔지만 오래도록 누워있으니 등허리에 여기저기 고름이 생기며 등창에 걸렸다. 시간이 흐르자 페혈증으로 넘어갔다.
    여름밤이 여느날처럼 고요속에서 깊어갔다. 논김매기에 기진맥진한 연이는 열한살 나는 바위를 보고 학교숙제작업을 끝낸후 아버지를 지키라고 당부하고 안방에서 잠에 골아떨어졌다.
    밤중에 태산은 갑자기 호흡이 급해지더니 감았던 눈을 흡뜨고 천정을 응시했다. 옆에 있는 바위를 알아보고 빨리 엄마를 불러오라고 하였다.
    "엄마, 엄마!"
    바위가 성급한 소리로 부르자 연이는 잠에서 소스라쳐 놀라 깨여나며 큰방으로 건너왔다.
    태산이 급해지는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며 안해를 바라보았다.
    "저 벽에 걸린 사진틀 뒤에 조상들의 산소를 모신 산을 그려넣은 그림이 있소. 언제라도 우리 바위가 커서 어른이 되여 조선에 갈수 있을 때 주오. 꼭 찾아가서 조상들의 묘소에 술 한잔 부어올리라 하오. 거기만 가면 할아버지도 만날수 있을거야! 헉헉..."
    넘어갈듯한 가쁜숨을 몰아쉬더니 한마디 덛붙혔다.
    "내가 죽으면 뒤산 소나무옆에 묻었다가 조선 갈 때 뼈라도 가져다가 묻으라 알려주오. 헉헉헉..."
    태산은 모자의 손을 꼭 쥐고 억지의 미소를 입가에 흘렸다.
    태산은 들숨날숨이 이어지지 않아 안깐힘을 쓰다가 조용히 눈을 감아버렸다...


                        7. 뿌리를 찾아가다

    60년후, 태산의 손자 석주는 1990년 7월 상해교통대학을 우수생으로 졸업하였다. 북경도로공사에 다리건축공정사로 취직한후 좋은 성적을 내고 부총공정사로 승급하였다.
   15년후에는 길림성고속철도공사의 부총경리 겸 총공정사가 되여 수천키로의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수백개의 다리를 놓았다. 그의 서재 한쪽을 다 메운 상장과 함께 고속철도건설로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지천명의 오십대에 들어섰다.
    석주에게는 아무리 사업이 바쁘더라도 달을 넘기지 않고 지키는 일이 한가지가 있다. 매달마다 홀로 남은 할머니를 뵈러 오는 일이다. 할머니는 이미 장춘에 있는 청수담 별장구에 모셔왔다.

    석주 가문을 뒤돌아보면 하많은 가슴아픈 사연들이 세월따라 흘러갔다.
    바위가 열아홉살 되던 1961년 늦은 여름이다. 집집마다 황토를 실어다 바깥벽을 매질하였다. 구들고래 재를 털어내고 풋강냉이를 따다 삶으며 구들을 말리웠다. 감자를 캐내고 가을배추를 심자 벼가을전의 짧은 농한기가 닥쳐왔다.
    바위와 동무들은 조선에 갈 계획을 상론했다. 기차표값과 간단한 소지품들은 저마끔 준비하고 날자를 정해 교하역전에서 기차를 탔다. 모두 아홉이였다. 목표지는 림강인데 거기서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가려고 했다. 그들중에는 이미 조선으로 한두번 갔다온 동무가 있어 향도가 되였다.
    길떠나기 전날밤, 바위는 어머니가 깊은 잠이 들  때를 기다렸다. 큰방 벽에 걸려있는 사진틀을 조용히 내려다가 뒤면을 뜯어 보았다. 아버지가 사망할 때 하신 말씀대로 광목천에 붓으로 그려놓은 지형도가 있었다. 마을이며 산길과 묘소들이 그려져있었다.
    바위는 등잔불 심지를 조금 높혀놓고 도화지에 지형도를 옮겨 그렸다.
    (조선에 가면 꼭 찾아봐야지. 돌아가신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리라!)하고 바위는 속으로 다졌다.
    60년대는 동북에서 조선족청년들이 조선으로 다수 건너갔는데 그중에는 대학졸업생, 공인, 농민은 물론 과학자도 있었고 비행기조종사도 있었다.
초기에 주로 도문과 화룡구간의 물목을 선택하여 월경했다. 남양을 바라보는 두만강은 별로 넓지 않아 건너가기 쉬웠고 화룡쪽으로 올라가면 개울물만 하여 건너가기가 식은죽 먹기라 하였다.
    월경자가 많아지니 중국정부의 통제가 심해져서 차차 건너가기가 바쁘게 되였다.
    그래서 오래도록 벼르다가 선택한 곳이 바로 이렇게 압록강을 건너가는것이였다.
    림강에 도착하여 려관을 잡은다음 배낭을 내려놓고 압록강가로 나갔다.
    압록강은 두만강에 비할바가 아니였다. 강폭도 얼마나 넓은지 백메터달리기 육상경기장보다 훨씬 더 넓었다. 강심에는 물이 얼마나 깊은지도 알수 없었다. 강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많다는 소문도 있었다.
    강건너에서는 녀인들이 빨래가 한창이다. 투닥거리는 빨래방망이소리가 들리는듯 하였다. 마을의 집들은 하얀 회칠을 하여 깨끗하고 정연해보였다.
    바위는 길주마을의 조상들이 살던 동네를 머리속에 그려보았다.
    여울목이 보이는 상류는 다소 얕아보였다. 그곳을 향해 조약돌을 집어들고 돌팔매도 던져보았다. 얇고 타원형으로 곱게 생긴 조약돌이 여울목에서 제비처럽 물을 차며 길게 뿌리워져 나갔다.
    여울목은 물이 깊어보이지 않았다. 너무 넓은것이 문제였다.
    이래저래 공론하며 려관으로 돌아오니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변방관리소 사복경찰들이였다.
    "강가에는 무엇하려 갔댔는가?"
    "압록강 경치를 보러 갔어요."
     그들중에 담 큰 동무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교하에서 여기까지 압록강 보러 왔단 말인가?"
     "농한기라서 여행을 떠난거지요.""
     담큰 동무가 계속 태연자약하게 응부했다.
      "그럼 이것들은 뭐 하는거야?"
      사복경찰들이 가방을 열라고 했다. 가방에서 라이터와 원자필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할말이 없었다.
    말문이 막힌 그들을 한사람씩 따로 심문하였다. 성명과 나이, 주소, 사업기관, 가족관계... 등을 상세히 캐고 물었다.
    "압록강은 중조 나라의 국경선이다. 정부의 비준수속도 없이 국경선을 넘어가면 나라의 법을 위반하는 범죄를 짓는거다. 밀수군들이 그렇게 하고 특무도 있을수 있다."
    "너희들은 농촌 사원으로 력사가 청백하니 빨리 돌아가서 로동에 참가하라. 일단은 다시 이런 일이 있다면 전과범이 될수 있으니 정신들 똑바로 차려야 한다..."
    사복경찰들은 그들이 머리가 뗑하도록 호되게 훈계하였다.
    그날밤 바위네 동무들은 변방관리소의 창고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이튼날 아침에 교하로 돌아왔다.
그후 바위는 일심전력으로 농촌에서 열심히 사업업하여 입당하고 촌지부서기가 되였다. 산량이 아주 낮은 한전밭을 수전으로 개간하고 수전을 알뜰히 가꾸었다. 린근 일대에서 제일 잘사는 농촌으로 건설하였다. 벽돌공장을 꾸려 수입도 올리고 사원들의 초라한 초가집도 몽땅 허물고 그대신 고래등같은 벽돌집을 새로 지었다. 새농촌건설의 모범촌이 되여 많은 곳에서 참관하러 왔다.
    마음씨 고운 녀자와 결혼도 하여 바위도 아들 석주를 보았다.
    아들 석주는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늘상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았다.
    팔월의 장마비는 끈질기게 쏟아부었다. 처음 며칠은 비가 질근질근 내려 물이 땅을 흠뻑 적시였다. 뒤이어 련사흘 폭우가 퍼부었다. 하늘에 어마어마 큰 구멍이 뚫린것 같았다.
    오리하자마을은 장마에 포위되였다. 마을을 에도는 사나운 강물은 큰 뱀의 혀처럼 마을 언덕까지 넘실대였다. 바위는 온 마을 촌민들을 총동원해 홍수방지에 나섰다.  큰물이 차오를가 말가 하는 제방뚝에 지게로 흙을 져다 붙이기도 하고 가마니에 모래를 담아 나르기도 하였다.
    저수지 제방뚝에는 물이 말랑말랑 곧 그 방뚝을 단박 넘을 위기에 처했다. 일단 몇길 높이의 제방뚝이 터지는 날이면 농전은 물론 마을까지 수정궁이 될 판이다.
    "빨리 수문을 열어야 한다!"
    바위는 모래가마니를 제방뚝에 내려놓고 수문을 관리하는 봇도감을 불렀다.
    봇도감이 그의 지시대로 저수지의 물을 가두었던 널장 두개를 들어냈다. 물이 퇴수구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는 심술이라도 부리듯이 더욱 세차게 퍼부었다. 모래가마니를 쌓아올리고 지게로 자갈을 져다 붓고 수문으로 방수를 해도 물뱀의 혀바닥은 제방뚝만 노리며 계속 날름거렸다.
    "수문을 더 크게 열어요!"
    봇도감은 수문우에서 갈구랑이로 수문 널장을 끌어 올리려 안깐힘을 다 써도 안된다.
    물쌀에 밀린 수문널장은 자석처럼 달라붙어 요동부동이였다.
    바위는 지레대를 찾아 들었다. 지레대로 수문널장을 막고있는 철길의 레루철을 향해 내리꽂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지레대를 재꼇다.
    "하나, 둘, 셋..."
    수문 널장이 레루틀에서 벗어나자 물이 확 빠져나갔다. 저수지 물은 한껏 사품치며 퇴수곬으로 빠져나갔다.
    "앗 ㅡ !"
    봇도감이 비명소리를 지르며 제방뚝에서 일하는 군중들에게 구원을 청했다.
    장정 십여명이 달려갔다. 촌지부서기 바위가 보이지 않았다.
    지레대로 수문 널장을 열어제끼는 순간 몸의 중심이 기우뚱하며 물사태에 확ㅡ 밀리여 나갔던것이다. 어디까지 밀려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장정들은 가슴을 치는 황토물속에 뛰여들어 샅샅히 뒤지며 찾았다.
    밤중이 되자 장마비는 슬그머니 멈추었다. 저수지는 홍수를 넘기였고 마을과 농전도 재해를 피면하였다.
    이튿날 아침, 물이 빠진 퇴수곬 끝자락에 촌민들이 모였다. 늙은 버드나무 그루터기를 부여안고 진흙에 얼굴을 묻은채 숨을 거둔 바위를 찾아냈다.
    남편 잃고 아들 잃고 세상에 가장 소중한것을 다 잃고만 할머니는 몇날 몇일을 울었다. 어찌나 울었는지 눈두덩이가 부어 눈이 안보일 지경이였다.
    설상가상으로 석주 엄마는 그길로 시름시름 앓더니 한해후에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할머니는 죽을 생각까지 하였으나 하나 남은 혈육이 걸리였다. 손자 석주가 살아있으니 남편 태산네 가문에 아직 씨가 마르지 않았다. 종자가 있으니 대를 이어 번창할 날도 있을수 있었다.

    청수담 별장구는 명절을 맞은듯한 기분이였다.
석주의 동료들이 사처에서 모여들었다. 집앞 길거리에 고급승용차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다수 동료들이 이제 먼길을 떠난다. 중조경제협력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고속철도건설을 위해 조선으로 간다. 철도건축용 중장비 100여대까지 함께 간다.
    신의주에서 평양, 평양에서 서울까지 고속철로를 건설한다. 이 어마어마한 공정을 1년 9개월에 완성할 임무를 맡고 간다.

    료리사들이 송화호의 이름있는 물고기들과 장백산 버섯, 드릅 같은 산나물로 산해진미를 차리였다. 석주는 지하실에 소장했던 모태주 한상자까지 꺼냈다. 동료들은 모태주를 마시고 중화담배를 피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평양에서 서울까지 250여키로라지요"
    "북경에서 상해까지 1463키로에 비하면 아주 가까운 거리네."
    "북경에서 상해로 직통 고속렬차를 타면 여섯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데 평양과 서울을 직통고속렬차로 가면 한시간도 걸리지 않겠다."
    "두 시간이면 왕복도 할수 있지."
    "분단을 넘어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는 고속철로일세."
    "이 위대한 철로를 우리가 놓는단 말이지...?!"
    석주동료들은 사명감과 자호감으로 흥분하였다.
석주가 길 떠나기 전날밤, 할머니와 작별인사를 하려 했다. 세월의 풍상고초를 다 겪은 할머니는 머리카락이 햐얗다못해 완전 은색이 되였다. 백세를 바라보는 96세 나이에도 허리가 굽지 않고 귀가 쟁쟁하다. 할머니는 한참이나 석주의 손을 잡고 있더니 큰방 벽에 60여년이나 걸려있던 사진틀을 내려오라 했다.
    사진틀 뒤면 뚜껑같은것을 제끼니 광목천 하나 나타났다. 흰 광목천은 이미 누렇게 퇴색하였지만 검은 먹물냄새는 여전한것 같았다. 거의 100년전에 그려진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는 고향마을과 뒤산 조상들의 묘소지가 표시된 지형도였다.
    "손자야, 이게 너의 할아버지가 남긴거란다. 할아버지 림종시 유언이 있단다. 언제라도 조선에 가면 길주 고향집을 찾고 조상들의 선산에 할아버지의 유골을 묻어달라 했단다. 북망산의 귀신이 되더라도 고향에 가서 조상들의 선산에서 귀신이 되고싶다 했단다... 이번 길에 꼭 잊지 말고 찾아가봐다오..."

                                               ( 2018.년 6월 2일 )

 
   
 

<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백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등록외국인도 사전등록 없이 자동출입국심사대 이용 가능
2
다문화가족을 위한 "엄마와 함께하는 역사탐방"에 신청하세요
3
법무부,10월1일부터 ‘불법 체류자 특별 자진출국기간’ 시행
4
(서정시) 판문점의 봄 / 신영남
5
(서정시): 어느 별난 나무의 숙명 / 최화길
6
조선족 중의사 전태영원장, 산동 연태서 중의특강 및 환자 시술로 호평
7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옛훈장이 빛나는 영국을 가다(3)
8
“한반도 평화 정착 위한 모국 정부 노력 지지한다”
9
연변의 사과배 / 조문찬
10
[시/千愛玉]시계 외 2수
신문사소개구독문의광고후원회원/시민기자가입기사제보제안/제휴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0-824]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2동 1024-21 | 대표전화 : 02-836-1789 | FAX : 02-836-0789
등록번호 113-22-14710  |  대표이사 이동열 |  E-mail : pys048@hanmail.net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동열
Copyright © 2004 동북아신문.∥dbanews.com의 모든 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