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홍장전>>의 유래가 된 홍장고사

 

                                   조선시대 녀류시인들 시와 사랑 3:


 

 

                                      가장 웃긴 야담을 남긴 기상천외한 사랑
                                     ㅡ 소설 <<홍장전>>의 유래가 된 홍장고사  

                                                       홍용암 (엮음) 



                                 "관동별곡"의 홍장고사와 홍장암 및 홍장야우


    고려말엽, 조선초기에 홍장(紅粧)이라는 천하절색의 명기가 강원도 강릉에서 살고 있었다.     강릉고을의 기서(妓書)안에 올라있는 기녀는 무려 20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그가운데서도 시문과 기예가 출중하고 자태가 아름답기로는 홍장이 가장 뛰여났다고 한다. 

    홍장에 대해 <<해동가요>>, <<가곡원류>> 등 가집에는 그저 "강릉 명기"라고만 기록되여있을뿐 그녀의 행적이 전혀 없다.     하지만 홍장과 박신(朴信, 1362~1444)과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엮은 <<동인시화>>, 리능화가 편찬한 <<조선해어화사>> 등 책에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록되여 지금도 전해오고 있다. 

    서거정의 <<동인시화(東人詩話)>>에 실려있는 홍장과 박신에 관한 일화는 다음과 같다.  

    "강원도안렴사인 박신(朴信)이 강릉으로 순찰하러 갔을 때 홍장을 사랑하여 둘이 정이 아주 깊이 들었는데 다른 지역을 순회하고 강릉에 돌아와 다시 그녀를 찾았더니 강릉부윤(江陵府尹)으로 있던 조운흘(趙云仡)이 '홍장은 이미 죽었다'고 하고, 그녀를 마치 신선처럼 꾸민 뒤 박신을 경포호(鏡浦湖) 한송정(寒松亭)으로 유인하여 기상천외한 극적인 재회를 하게 함으로써 심하게 놀려주었다는 이야기가 '홍장암(紅粧巖)'에 얽혀 전한다." 

    홍장(紅粧)은 또 조선시대 대문호인 송강 정철이 쓴 "관동별곡"에 나오는 "홍장고사(紅粧故事)"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가사 "관동별곡"에 나오는 홍장의 고향인 "관동8경"은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여덟곳의 명승지를 일컫는데 강릉의 경포대,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락산사,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 등 8경을 말한다고 한다. 

    그 "관동8경"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손꼽는 절경명승이 바로 상술한 강릉의 "경포대"이다. 경포대는 경포호를 중심으로 사방 약 10평방키로메터 지역에 뼏어있다.  

    물이 거울(鏡)같이 맑은 호수(湖水)라 하여 경호(鏡湖)라고도 불리우는 경포호(鏡浦湖, 국가지점문화재명승 제108호)의 호수가에는 데크로 호수풍경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게 특별히 잘 꾸려진 "방해정(放海亭)"이란 정자가 있는데 그 정자 앞에 있는 바위를 "홍장암(紅粧巖)"이라고 부른다.  

    경포대의 여러가지 절경중에서도 기막히게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홍장야우(紅粧夜雨, 홍장암의 밤비)"는 또 그 "경포8경"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한 풍경으로서 바로 안개 낀 날 밤비 내리는 "홍장암"의 아름다움을 말하는것이다. 

    옛날 강릉 명기 홍장이 경포대에 놀러오면 반드시 그 바위우에서 놀았다고 해서 후세사람들이 그 바위를 그녀의 이름을 따서 "홍장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강릉의 명기 홍장과 강원도관찰사 혜숙공 박신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오는 바위로서 지금 그 주변에는 그들 두사람의 서로 련애하는 제미나는 형상을 본따서 생동하게 조각한 해학적인 포토존 동상도 11개나 만들어져있다. 그 매 히나하나의 동상들을 오똑 받쳐든 석돌우마다에는 홍장과 박신의 사랑의 전설을 간략하게 소개한 글자들도 또렷이 새겨져있어 흥미진진한 그 호기심을 한층 더 유발한다. 

    경포대(鏡浦臺, 도지방유형문화재 제6호)는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에 지어진 건물인데 여기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달맞이행사"가 꽤나 성대하게 진행된다고 한다. 

    이때 경포대 한송정에서 명절을 쇠며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은 도합 다섯개의 달을 볼수 있다는 랑만적인 곳이다. 하나는 하늘에 떠있는 달이요(天月), 또 하나는 경포호에 뜨는 달이요(湖月), 또 다른 하나는 술잔에 뜨는 달이다(樽月). 그리고 나머지는 님의 눈에 뜨는 달(眼月), 마지막은 님의 가슴에 뜨는 달이란다(心月). 

    봄날의 경포호에는 항상 사랑이 넘친다. 달은 하늘에도 물우에도 술잔에도 님의 눈동자에도 뜨지만 언젠가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히 질줄 모르는 달이 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의 두 가슴에 두둥실 뜬 달이다. 

    바로 홍장과 박신의 가슴에 떴던 달이 그렇다. 그 달은 아직도 지지 않는다. 지금도 두둥실 높이 떠올라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 


 

                                      안개 낀 경포호에서의 극적인 재회 



    리성계가 개국한 조선조가 갓 들어선 그 이듬해인 1393년 강원도안찰사 설봉(雪峰) 박신(朴信, 1362~1444)은 강릉지역을 순찰하던중 우연히 강릉 명기 홍장을 만나 깊이 사랑하게 되였다. 

    박신은 처음 홍장을 보는 순간 한눈에 반했고 홍장도 천하의 풍류객인 박신에게 정을 주어 두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였다. 

     두사람은 날마다 서로 시문을 주고 받으며 알콩달콩 달콤한 정을 나누었고 단 하루라도 피차 보지 못하면 상사병이 들 정도로 열렬한 사랑에 푹ㅡ 빠져들었다. 

    하지만 드넓은 강원도의 다른 지방을 골고루 순찰할 책임을 지닌 공직자의 몸이였기에 박신은 그냥 강릉 한 고을에만 들어박혀 머무를수는 없었다. 

    얼마후 박신은 부득불 홍장을 남겨두고 공무로 다른 지역을 순회하러 떠나게 되였으니 비록 너무 긴 리별은 아니였으나 두사람은 뜨거운 눈물로 아쉽게 잠시 헤여졌다. 

     박신은 다른 지역을 두루 돌면서도 날마다 정이 든 홍장만을 늘 생각하였다. 마음은 단박이라도 호상 정을 준 다정한 련인인 홍장에게 날아가 그녀를 한품에 꼭 안이주고 싶었다. 

    자신의 사명을 다하여 마침내 순시를 마치고 그리운 강릉으로 돌아온 박신은 피곤힌 려장을 풀자마자 홍장의 처소를 찾아갔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리 찾아도 홍장의 모습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이 당시 강릉부사는 한 스승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박신의 막역지우인 석간(石磵) 조운흘(趙云仡, 1332~1404)이였다. 조운흘은 그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으나 박신이 오직 연신 홍장의 안부만을 꼬치꼬치 캐여묻기에 한바탕 골려줄 생각으로 그동안 홍장이 밤낮 박신만을 생각하다가 상사병이 들어 그만 죽었다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박신은 그만 깊은 병이 들어 하루이틀새에 몸이 홀쭉해졌다. 비통함에 푹ㅡ 잠긴 박신은 눈물범벅이가 되여 끝끝내 몸져눕고 말았다. 

    며칠이 지나 보름달이 두둥실 뜬 어느날 저녁, 조부사가 박신을 다시 찾았다. 몹시 수척해진 박신을 보자 우울한 그의 속도 위로해줄겸 부근의 절승인 경포에 달구경을 가자고 요청했다. 

    하지만 전혀 그럴 마음의 경황이 없던 박신이 한사코 사절하자 조운흘이 다시 박신에게 “그곳은 다른 곳과 달라서 예로부터 보름달이 둥실 뜬 밤에는 가끔 천상의 선녀들이 내려온다는데 혹시 홍장도 내려올지 모르니 한번 가보자!”고 하며 잘 달래니, 며칠동인 오로지 죽은 홍장의 생각에만 골몰하여 이미 절반 제 정신이 아닌 박신은 그 말에 귀가 솔깃해져 마침내 조운흘과 함께 경포호에 달구경을 가게 되였다. 

    호수에 배를 띄여놓고 천천히 술잔을 기울이며 달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변에 얄포름한 안개가 짙게 끼더니 이상한 향기가 물씬 풍기며 구성진 피리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조운흘이 말하였다.     "이곳엔 옛날부터 전해오는 신선이야기가 있다네. 지금도 달 밝은 밤이면 신선들이 가끔 나와 다니는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는데, 하지만 범인(凡人)들은 그냥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뿐 절대 가까이 갈수는 없다고 한다네..."

     "글쎄... 산천과 절경이 저렇게 기이하고 아름다우니 어찌 신선이 없겠는가!" 

     박신이 눈물을 글썽이며 대꾸하였다. 

    불현듯 호수우의 저 멀리 자오록한 운무속에서 화선(花船) 한척이 나타나 유유히 노를 저으며 물가를 왔다갔다 하였다. 그안에서 울려나오는 신비한 거문고와 피리소리가 하도 맑고 아름다워 마치 하늘공중에서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조부사가 그쪽을 넋을 읽고 바라보며 박신에게 귀뜀하였다. 

    “이곳은 예로부터 신선들이 자주 노닐던 곳이라 산꼭대기에는 아직도 그때 그 신선들이 차를 끓여 마시던 석다조(石茶竈)가 그대로 있고 부근의 한송정 그 정자에는 사선비(四仙碑)가 있다고 하네. 지금도 그 정자와 사선비 사이로 신선들이 왕래한다고 하는데 꽃이 활짝 피는 새벽이나 달이 환히 밝은 밤이면 사람들이 간혹 그들을 볼수 있다고 한다네...”

     박신이 후ㅡ 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탄식하였다. 

    “풍경이 이와 같이 빼여나나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지금 이런 운치를 즐길만한 심경이 없구려!"     그렇게 말하는 박신의 우수에 잠긴 두눈에는 눈물이 그들먹이 꼴똑 고여있었다. 

    이때 아까부터 부근의 물가를 오락가락하던 그 신비한 꽃배가 순풍을 타고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들의 배가 둥실 떠있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배우에는 풍채가 비범한 백발로인이 선관우의(仙冠羽衣)를 입고 단정히 앉아있었고 그 좌우에는 푸른 옷을 입고 피리부는 한 동자와 예쁜 화관을 쓰고 푸른 소매를 두른 거문고 타는 한 선녀가 있었다. 그런데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선녀의 모습이 죽은 홍장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였다. 

    그리고 배전에는 아래와 같은 시를 적은 채색기발이 높이 걸려있었다. 

 

       신라성대노안상(新羅聖代老安祥), 

       천재풍류상미망(千載風流尙未忘); 

       문설사화유경포(聞設使華遊鏡浦),  

       란주불인재홍장(蘭舟不忍載紅粧).  

       신라성대 신선이 된 거룩한 늙은 안상  

       천년전의 풍류지사 아직도 못잊도다  

       듣건대, 관찰사가 경포대에 노닌다니  

       배에 차마 홍장을 싣고 가지 못하여라!



     그것을 본 박신은 크게 놀라며 대번에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금시 숨이 컥ㅡ 막힐 정도로 가슴이 막 울렁거리고 심장이 방망이질하듯 세차게 높뛰였다. 

    “아, 이는 분명히 하늘에서 하강한 신선이렷다... 더우기 나를 찾으시다니...?!”

     박신은 조운흘이 아까 한 말이 떠오르며 즉시 의관을 바로잡고 경건히 무릎을 꿇은다음 두손으로 삼가 정히 받들어 향까지 몇대 피워올렸다. 

    이윽고 신선과 선녀, 동자를 실은 그 화선이 눈앞에 다달았다. 로인이 아주 가까이 두 배를 맞대였다. 

    머리칼은 물론 수염과 눈섭까지 온통 눈처럼 새하얀 백발로인의 모습은 너무나도 기이하고 범상치 않아보였으며 배안에서 피리부는 동자와 함께 거문고를 타며 청아하게 노래부르는 선녀는 암만 봐도 홍장과 너무 닮아있었다. 

    박신은 두손으로 자신의 두눈을 힘껏 부비며 다시 한번 더욱 크게 놀랐다.

    박신이 얼른 배머리에 나와 선관(仙官)인듯한 그 백발로인앞에 꿇어 엎드려 큰절을 하니 그 선관이 느릿느릿 말하기를 “이 선녀는 워낙 옥황상제의 시녀인데 죄를 짓고 인간세상에 잠간 내려와 살게 되였다가 이제 속죄의 날이 다 차서 곧 다시 천상(天上)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그대 박신과의 연분으로 오늘밤 여기서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였도다...”라고 하는것이였다. 

    선관의 말을 들은 박신이 용기를 크게 내여 화선우에 올라 그 선녀에게 다가가 찬찬히 보니 틀림없는 홍장인지라 그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니 홍장도 그립던 님을 만나 너무 기뻐하였다. 

    박신은 선관앞에 다시 나아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비오듯 흘리면서 홍장과의 하루밤만 인연을 더 원하니 제발 허락해달라고 애걸복걸하였다. 처음에는 절대로 인된다고 뗑하며 딱 잡아떼던 선관이 동정심이 조금 들었던지 마지 못해 승낙하자 박신은 즉시 허겁지겁 홍장을 데리고 부리나케 처소로 돌아왔다. 

    그날밤 박신은 잠간이라도 놓으면 날아갈세라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너무나도 사무치게 그리웠던 홍장과의 그동안 오래 잔뜩 쌓였던 끔찍힌 정을 다 풀기에는 너무 짧은 그 한밤을 한없이 서러워하며 온밤 뜬눈으로 지새우게 되였다.     그러다가 새벽녁에 그만 깜박 풋잠이 들게 되였는데 바스락하는 인기척 소리에 끔쩍 놀라 눈을 번쩍 뜨고 두리번 살펴보니 그 사이에 천상(天上)으로 훨훨 날아 떠나간줄 알았던 홍장이 그냥 그의 옆에서 혼곤히 쌔근쌔근 단잠을 자고 있을줄이야???! 

    이때 줄곧 바깥에서 입을 싸쥐고 집안의 동정을 엿듣던 조운흘이 문을 벌컥 열고 뛰여들어와 허리가 끊어지게 죽어라고 박장대소하는 바람에 그제야 박신은 비로소 조운흘에게 깜짝 속은줄을 알고 너무나도 한심하고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리다가 어줍게 허허허허 함께 웃고 말았다.  

    사실 조운흘은 며칠 숨겨두었던 홍장에게 남몰래 정성껏 아름답게 단장하게 하고는 또 수하 부하를 시켜 별도로 꽃으로 알록달록 장식한 화선 한척을 미리 준비시켰다. 그리고 수염과 눈섭이 모두 하얗게 센 관아의 늙은 아전 한명을 뽑아 처용의 모양으로 그럴듯하게 꾸민다음 채액에는 자기가 직접 팔굽을 걷어붙이고 박신의 눈길을 끌만한 한시 한수를 써넣고 배전우에 기발처럼 높이 걸어두게 하였다. 그러고나서 안개 낀 어제밤 그 꽃배에 아전과 홍장을 태우니 정말 똑마치 물우를 떠다니는 신선과 선녀 같았다. 장난이 물론 너무 심하였지만 또한 너무나 재미있었다... 

    박신이 강원도안찰사로 임직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찾은 홍장과 마치 그동안 채 사랑하지 못했던 그 보상이라도 가배로 더 받아내려는듯 박신은 날마다 밤마다 뜨거운 정념을 활활활 불태웠다. 

    그후 홍장은 박신과 둘이서 평생 잊지 못할 그날밤 극적인 재회를 한 그 경포대로 자주 가서 더욱 딜콤한 정담을 나누면서 마음껏 즐기였다. 

    또다시 하늘중천에 둥근달이 휘영청 높이 걸린 어느날 저녁, 예로부터 "관동팔경"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는 경포대우에서의 "경포영월(鏡浦迎月, 경포대 달맞이)"은 또한번 사람을 폭ㅡ 취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날밤도 경포대의 달은 저 멀리 초병처럼 둘러서서 우뚝 서있는 울울창창한 장송들과 가까이 방실 웃는 꽃들마저 모두 환히 보일만큼 너무나도 밝고 교교하였다. 

    홍장과 박신은 둘이 함께 경포대에 올라 천천히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 달을 감상하고 있었다. 

    홍장이 박신을 정겹게 바라보며 속삭였다. 

    "아시나이까? 이 한송정에 오르면 동시에 달을 다섯개를 볼수 있대요..." "아니, 달이 하나이지 어찌 다섯개씩이나 되느냐? 거 말도 안되는 소리..." "모르사와요? 그럼 제가 가르쳐 올릴가요?"  "허허허허, 그래라. 네가 어서 가르쳐다오." "그러나 그냥은 안되나이다. 가르쳐드린 그 값을 제게 주셔야 해요." "허허, 무엇으로 값을 낼꼬? 장차 너를 데리고 개경으로 꼭 가면 되겠느냐?!" 

     "호호호, 당연하죠! 그러한 조건이면 지금 곧 알려드리겠사와요. 호호..." "거참 흥미진진하구나, 뭣인지 어서 아뢰거라."

    "한송정에 오르면 달이 다섯인데요. 하나는 하늘에 둥실 높이 걸린 달, 또 하나는 경포호수에 깊이 잠긴 달, 다른 하나는 감사님의 손에 든 그 술잔에 홀랑 빠진 달이고요. 그다음 네번째 달은 감사님의 앞에 앉아 오직 정든 님 얼굴만을 계속 빤히 쳐다보고있는 그윽한 제 눈에 비친 달이야요. 그리고 마지막 달은 뭔지 감사님께서 어디 한번 다시 잘 생각해보시와요..." 

     "허허허, 넌 참 재미있는 애로구나! 나는 정말 뭔지 잘 모르겠으니, 얼른 네가 알려다오..." "호호, 마지막 달은요. 감사님과 제 가슴에 동시에 떠서 영영 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의 달이예요..." "하하하...!!!" 

    "호호호...!!!" 오늘도 사람들에게 전설처럼 전하여지는 강릉 명기 홍장(紅粧)이 경포대에서 강원감사 박신과 주안상을 차려놓고 했다는 누구나 들으면 저도 모르게 취하는 그 "경포영월"의 이야기이다. 

     그후에도 홍장과 박신의 경포대에서의 밀애(蜜爱)는 계속된다... 

    하지만 얼마후 임금이 개경으로 그를 부르고 새로운 관직이 내려지자 박신은 부득불 강릉을 떠나지 않을수 없었고 홍장도 그를 보내지 않을수가 없었다. 

    박신은 물론 마음같아서는 그동안 정이 깊이 폭 든 홍장과 함께 가고싶었지만 관장이 부임지를 떠날 때 절대로 현지 관아기생을 뽑아서 데리고 갈수 없다는 당시의 국법에 따라 당장은 작첩하고 개경으로 올라갈수 없었다. 그는 "이제 때가 되면 적당한 시기에 꼭 데리러 오마!"하는 두리뭉실한 약속만을 남겨놓고 무작정 개경으로 길을 떠난다. 

    홍장은 그녀만 홀로 남겨둔채 딱히 언제 올지 말지 확실한 기약도 없이 떠나가는 야속한 님 ㅡ 박신의 옷소매에 동동동 매여달리며 구슬픈 목소리로 애간장 끊는 시조를 읊조린다. 

 

       울며 잡은 소매를랑 떨치고 가지 마소 

       초원(草原) 장제(長堤)에 해도 다 저물었네  

       객창(客窓)에 잔등(殘燈) 돋우고 새워보면 알리라! 

 

     "울며 불며 가지 말라고 애원하며 붙잡는 옷소매를 기어이 뿌리치고 떠나가는 님에게 풀빛 푸른 긴 제방에 이미 해도 다 저물었으니 가다가 중도에 묵게 될 려관방에서 점점이 꺼져가는 등잔불 심지를 돋우며 뜬눈으로 그 한밤을 지새워보면 홀로 남아 외롭기 짝이 없는 내 마음을 드디여 알게 될것"이라는 의미깊은 시조이다. 

    매일 그림자같이 함께 붙어있던 정든 님을 그렇게 갑자기 보내버린 홍장은 그날부터 날마다 바질바질 애간장이 점점 타들어갔다. 더우기 한번 떠난 박신은 한달, 두달, 석달... 반년이 되도록 아무런 소식 한장도 없고, 그렇다고 기생신분인 자기가 직접 나서서 찾아다닐 형편도 못되였다. 

    날마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님이 날 데리러 올가 애타게 기다리는 홍장에게는 느리게 지나가는 매일매일의 그 하루가 결코 하루가 아닌 여삼추였다. 

    혹시 전에 조운흘과 짜고 들어 박신을 너무 심하게 골려준 그때 일이 속에 잘 내려가지 않아서 다시는 자기를 찾아오지 않는것이나 아닐가 하는 별의별 불길한 추측과 의심, 위구심이 다 갈마들기도 하였다. 선례로 얼마나 많은 관료들이 현지에 있을 때는 수요에 따라 실컷 정을 주며 놀고는 후에 떠나갈 때 이제 꼭 데리러 오마 하고 철석같이 맹세해놓고는 영영 다시 오지 않는 그런 경우가 더더욱 많고 훨씬 비일비재함에랴! 

    날마다 혼자 자는 지지리도 긴긴 독수공방 잠자리는 눈물로 축축히 젖어있었고 워낙 가득이나 가냘픈 바싹 여윈 몸매는 바람이 불면 단박 날아갈듯 하였다. 

    홍장은 그토록 서러운 자신의 처지를 통탄하며 또다시 시조 한수를 지어 흥얼거린다. 

 

       한송정 달 밝은 밤 경포대에 물결 잔데 

       유신(有信)한 백구는 오락가락 하건마는  

       어이타 우리 왕손은 가고 오지 않는가? 

 

     "한송정에 달은 밝고 경포대 물결은 잔잔한데, 미물인 흰 갈매기마저 서로 소식을 전하면서 잘도 오고 가건만 어찌하여 그리운 우리 님은 아무런 기별도 없이 한번 가고 다시 오지 않는것인가?!"하는 절절한 사랑시조이다. 

    하지만 홍장은 이를 옥물고 끝까지 견디여내였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송죽같은 굳은 절개를 절대로 변치 않으면서 이 힌목숨이 다히는 날까지 기어이 오로지 박신만을 기다리리라 속으로 맹세하고 맹세하고 또 맹세하였다. 설사 그 님이 영원히 다시는 찾아오지 않아서 자신이 슬픈 생과부로 늙어죽을지라도...  

    하지만 고진감래(라고 안타까이 목빠지게 눈빠지게 그엏게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행복한 날은 드디여 찾아오고야 말았다. 

    1년이 썩 지나서야 마침내 박신이 순찰사가 되여 강릉에 들리며 홍장앞에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박신은 그동안 수소문하여 홍장의 굳은 절개를 언녕 알고 있었다. 

    박신은 지조 굳은 그녀를 한양으로 데려고 가서 부실로 삼고 여생을 함께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홍장과 박신 및 조운흘과 <<홍장전>>


     박신과 조운흘은 나이차이가 많았지만 옛날 한 스승의 밑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한 사이였고 벼슬길에 오른 뒤에도 서로가 허물없을 정도로 그 친교가 매우 두터웠다. 박신은 한평생 경포대의 그 추억을 잊을수 없었던것인가! 꽤 오랜 세월이 흘러간 썩 후에 그때 일을 감개무량하여 회상하는 시를 지어 조운흘에게 보낸것이 남아있으니 그 시가 곧 "석간 조운흘에게 부치는 혜숙 박신의 시(贈趙石磵云屹朴惠肅信)"이다. 


            少年持節按關東, 鏡浦淸遊入夢中; 
            臺下蘭舟思又泛, 却嫌紅粧笑衰蓊. 
            혈기왕성 젊은 시절 관동땅 돌아볼 때 
            경포에서 노닐던 일 꿈속같이 아득해라
            홀연 깜짝 나타나던 그 꽃배를 생각하면 
            이 늙은일 웃던 홍장 오히려 얄밉다네


    이 시에서 박신은 강릉 경포호에서 벌어졌던 그 어처구니없는 희극을 떠올리면서 그 황당한 사건의 막후지휘자인 조운흘보다도 그런 그와 함께 모의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숙한 지기를 혼줄나게 골려준 련인인 홍장을 더더욱 얄밉다고 나무라고 있는것이다. 암만 손으로 입을 싸쥐고 참으려고 해도 저도 몰래 키득 키드득 또 웃음이 터져나오지 않을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이 시를 썼을 당시의 박신은 어느정도 나이가 좀 들었고 홍장의 얼굴에도 점차 주름살이 세월의 년륜처럼 생겨나기 시작하였던 때인듯 싶다. 젊은 시절 노닐었던 경포호에서의 그 희한했던 배놀이를 새삼스레 떠올리며 깊은 추억에 잠겨 아직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걸 보면 말이다. 

    박신(朴信, 1362~1444)은 자(字)를 경부(敬夫), 호를 설봉(雪峰)이라 하며 고려말엽 공민왕 11년에 태여나서 조선조 세종 26년까지 산 사람이다. 포은 정몽주의 밑에서 조운률과 동문수학하였고 고려가 망하기 7년전인 1385년에 23세로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 규정을 거쳐 예조정랑, 형조정랑을 지냈다. 조선조 개국후에는 강원안찰사, 대사성, 이조판서를 지내였다. 아들 종우(從愚)가 임금 태종(太宗)의 딸을 안해로 맞아들여 운성부원군(雲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는 또 일찍 교명을 받들어 정몽주가 쓴 <<포은집(圃隱集)>>의 "서문(序文)"을 지어 바쳤다. 그에게 내려진 시호는 "혜숙(惠肅)"이다.  

    박신(朴信)은 어디 가나 청렴하고 공정하고 백성을 잘 다스려 칭송이 드높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막역지우인 조운흘(趙云仡, 1332~1404)은 호가 석간(石磵)으로서고려말, 조선초기의 문신이며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감직을 지냈고 조선조 개국후에는 강릉부사로 와서 선정을 베풀었다. 

    혜숙 박신과 석간 조운흘 및 홍장의 이야기는 다분히 전기적이며 희극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그들 세사람의 절묘한 조합이 후세에까지 전해진 강릉 명기 홍랑과 박신의 사랑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또 길이 남기였다. 만약 그들중 어느 한사람만 빠졌더라도 그토록 사림들의 웃음보를 한바탕 터트리게 하는 상술한 재미나는 야담을 만들지 못했을것이고, 그렇다면 또 그러한 기상천외한 사랑일화도 절대로 오늘날까지 전해져 우리를 즐겁게 하지 못하였을것이다. 

    이처럼 감동적인 사랑의 일화를 전설로 남긴 홍장과 박신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지만, 마땅히 그러한 절묘한 연극을 그토록 신통하게 구상하고 각색하고 연출한 조운흘에게도 더더욱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려야 당연할것이다. 

    약 300년후인 조선조 효종때의 성리학자 리익의 제자인 학자 신후담(愼後聃, 1702~1761)은 그렇게 전해내려오는 홍장과 박신의 이와 같은 애정고사에 근거하여 그 이야기를 소설화하여 <<홍장전>>을 지었다. 

    후날에 창작된 소설 <<홍장전>>은 바로 그렇게 나오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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