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학(수필): 

 


                                            통일을 기다리는 족보

                                                           한춘옥



    우리집에는 100년도 넘게 몇대를 내려온 족보가 있다. 족보는 관향이 같은 씨족의 세계를 기록한 보첩이다. 후손으로 하여금 자기의 가족력사를 알게 하는 족보는 한 종족의 혈연관계를 체계적으로 나타냈다.


    우리가족이 조선에서 연변에 북경, 청도까지 수도 없이 이사를 하면서도 조상처럼 모시고 다닌 유일한 고물이 바로 족보이다. 한세기도 넘는 세월의 비바람속에서 이미 누렇게 가랑잎처럼 변색을 하고 손때가 묻었지만 어쩐지 족보를 보면 마음이 무거워지면서도 편안해진다.


    조상의 기운이 흐르는 청주 한씨 족보는 나에게 신앙과도 같은 존재이다. 여기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많은 옛말이 담겨있다. 할아버지는 족보를 펼치면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원한을 토로하고 항일에 목숨을 바친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통일의 소망으로 위안을 얻으셨다.


    굶주림에 시달리며 온가족이 산산히 헤여진 할아버지가족은 쪽박차고 두만강을 건너왔다. 만주벌판에 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는지 모른다. 아리랑고개 고개길에는 피눈물나는 가족이야기가 있다. 지척에 자식들을 두고도 만날수 없는 할아버지는 날마다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면서 하면서 생리별한 가족을 절절하게 그렸다. 할아버지는 평생 수염을 깎지 않고 하얗게 기르면서 할머니와 아들을 만날 때 깎으시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총창을 겨눈 판문점에 문은 꽁꽁 닫겨 열릴줄 몰랐다. 삼천리 아름다운 강산의 허리를 뭉청 동강낸 분계선은 한겨례 혈육들을 생리별시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한으로 이 세상을 떠나가게 했는지 모른다. 나의 할아버지도 기다림에 지쳐서 하얗게 떠나셨고 아버지도 목마르게 가셨다.


    족보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언장과도 같은 존재이다. 할아버지는 기아에 허덕이다가 막내아들인 나의 아버지를 데리고 두만강 건너 중국에 왔다. 큰아들은 북에 둘째는 남에 이렇게 온가족이 헤어져 살면서 3년 농사하고 다시 모이자고 약속했다. 가난해도 자식을 공부시키라고 할아버지는 가훈처럼 말씀하셨다. 큰아들, 장손이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면서 언젠가는 청주 한씨 대가족을 합류시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38선이 막히면서 다시는 만날수 없게 되였다.


    기다림의 징표인 하얀 수염이 가슴에 닿을 때까지 이제 통일되는 날 38선에서 세 아들 껴안고 대성통곡할거라던 할아버지는 끝내 땅이꺼지는 긴긴 한숨소리만 남기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통일소망의 바통을 받아쥔 아버지께서 족보를 펼쳐놓고 할아버지 하얀 수염 이야기를 하고 또 하시며 그리움을 달랬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평화의 종소리를 듣지 못하는것이 불효라며 안절부절하셨다. 할아버지께서 통일을 갈망하면서 살아 생전 이루지 못한 소망을 아들세대에 가서는 볼것이라던 통일의 종소리는 끝내 아버지세대에도 울리지 않았다.


    10년전 아버께서 추석달을 바라보시면서 그 무거운 바통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너의 세대에 가서는 꼭 통일이 될것이라고 믿는 아버지의 그 진지한 눈빛을 나는 지금도 잊을수 없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 가족에게 하루속히 통일의 종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요즘 남북에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판문점에 평화의 소나무도 심었다. 아마도 그 소나무는 지금 뿌리를 내릴것이다. 통일의 종소리는 울릴것이다. 나는 평화의 비둘기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판문점에 려행갈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의 할아버지 하얀 수염은 저 하늘에 흰구름이 되여 비물로 평화의 푸른 소나무에 소리없이 내리며 뿌리를 적셔줄것이다.


    통일의 종소리가 울리는 그날 나는 할아버지 족보를 가슴에 안고 하늘에 계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높이높이 웨칠것이다. 우리는 드디여 하나가 되였다고...

.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