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를 읽고

평 론 :

 
 
                                    력사와 민족앞에 바친 젊은 시인의 진정                                       --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를 읽고                                                      (중국) 우상렬       홍용암선생은 우리에게 작가보다는 사업가로 더 많이 알려진것 같다.      그가 쓰고 있는 영예의 월계관만 보아도 크게는 <<중국100명개혁창업걸출인물>>, <<중화공훈인물>>, <<중국당대 걸출한 인재>>, <<중화창업영재>>, <<중국당대우수기업가>>에, 작게는 <<연변10대청년창업새별>>, <<연변청년5.4상장획득자>>, <<연길시10대우수청년>>… 등등 그 대부분이 경제사업면에서 두각을 나타낸것들이다.      그가 맡고있는 사회적 직책을 볼 때도 연변백운그룹 회장, 연변청년기업가련합회 부회장, 연변두만강지역국제합작개발추진회 부회장… 등도 거지반 경제령역과 관계됨은 더 말할것도 없다.      사실 나는 이런 사업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쩐지 자꾸 돈냄새(銅臭)가 풍기기때문이다. 우리 사회 시장경제의 악취가 전형적으로 이들 사업가들가운데서 많이 난다는 선입견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홍용암회장이 시를 쓴다는 아취(雅趣), 그것도 이미 10여권의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라는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사업가에 대한 나의 시각, 적어도 홍용암회장에 대한 나의 시각은 많이교정되였다.      특히 이번에 우연한 기회에 <<6.15공동선언발표6돐기념 시조집>>인 <<력사와 민족앞에>>를 접하게 되면서부터 그러한 나의 시각교정은 한단락을 고하게 되였다.      현재 우리 시는 너무 좁고 속되다. 남이야 알아듣든 말든 나만이 아는 <<잠꼬대 하기>>, 그리고 자기만의 <<눈물코물 쥐여짜기>>에 바쁘다. 한마디로 자기 혼자서 찧고 빻고 하는것이 목전 우리 중국조선족시단의 시인들의 <<자화상>>이다. 더우기 젊은 시인들일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내가 홍용암회장에 대한 시각교정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하게 된것은 --- 그의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가 바로 그러한 <<자화상>>(?)을 철저히 떨쳐버리게 하는 우리의 력사, 시대, 민족, 고국, 인생… 등에 대한 거창한 담론의 시적토로이기때문이다.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를 보면, 제1집 <<망국노 설음>>(망향시조편), 제2집 <<귀향나그네>>(귀향시조편), 제3집 <<리산의 슬픔>>(리산가족상봉시조편), 제4집 <<분단의 한>>(분단시조편), 제5집 <<우리 민족끼리>>(6.15선언시조편)까지가 근현대사에 있어서 우리 민족이 충격적으로 받아안은 희로애락을 읊고 있다면 그 뒤부분인 제6집 <<백두산 산봉우리>>(애국시조편), 제7집 <<영웅전설>>(영웅송가시조편), 제8집 <<력사앞에>>(력사시조편), 제9집 <<민족앞에>>(애족시조편), 제10집 <<력사와 민족앞에>>(맺음시) 등은 시적 자아를 통한 시인의 고백을 토로하고있다. 물론 그의 시는 민족적 희로애락과 시인 개인의 진솔한 고백이 잘 녹아들어있다.      제1집 <<망국노 설음>>(망향시조편), 일제 강점하에서의 우리의 망국노 신세를 읊고있다. 그것은 <<집 잃고 나라 잃은 몸 구름처럼 떠도는(시조 <류랑가족>)>> 신세이다. 이로부터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타향살이, <<고향 떠나 몇해던가/ 손꼽아 헤여보니 // 타관살이 반백년에/ 이 인생도 다 저물어 // 일락서산/ 지는 해 보며/ 집생각 간절해라…(시조 <집 생각>)>>.      부제인 <<망향시조편>>이라는 그 <<망향>>이 시사하다싶이 바로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는 정조(情調)를 주요한 시적 모멘트로 하고있다. 시조 <<망향>>은 극명하게 이것을 말해주고있다. <<어머님의 울먹임/ 귀에 쟁쟁 남아있고 // 아버님의 허연 백발/ 눈에 삼삼 떠오르네 // 떠나온/ 고향산천을/ 언제 다시 밟아보랴…>> 그래서 망향은 일종 대물림하는 민족의 정한이 되여 자장가가 되기도 한다. 쓸쓸하고 쓰라린 민족의 현실이 아닐수 없다.      <<할아버지 망향가락/ 아버지의 장탄식 // 자장가로 들으면서/ 이 몸은 자라>>났다. 인간은 상상, 환상 내지는 꿈의 동물이다. 실제로 욕구만족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상상, 환상 내지는 꿈을 통하여 욕구만족을 추구한다. 그래서 프로이드는 꿈을 욕구의 만족이라 했던가?      다른 한 시조 <<흥분>>을 좀 보자. <<눈 감아도 선히 보이는/ 삼천리 금수강산 // 간밤에도 보았더라/ 꿈속에서 보았더라 // 못보는/ 고향산천을 // 그리 보고 좋아 우네…>> 그런데 꿈은 어디까지나 꿈, 깨고나면 허황한것... 그래서 결국 망향은 한으로 남는다. <<일락서산 지는 해는/ 저무는 내 인생이요 // 피빛 황혼 저녁놀은/ 타드는 내 심사라 // 사무친/ 망향의 한이/ 오늘도 불타오르네>>. 그래서 남는 소원의 하나는 <<죽으면/ 이 내 뼈라도/ 고향 땅에 묻고싶네. (시조 <소원>) >>이다.      일제의 36년식민지, 우리는 삶의 터전에서 뿌리채 뽑히우고 이리저리 흩어지고 말았다. <<고향>>은 이것을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망국노 타관살이/ 고향 따로 있을손가 // 있다한들 타향과/ 다를 바가 그 무에랴? // 가도 그만/ 와도 그만인/ 고향은 낯선 타향…>> 그럴진대 그것은 <<세상에 태여날 적/ 울면서 온 고향 // 타향으로 떠날 때도/ 울면서 갔더랬지 // 먼- 후일/ 오늘 또 왔다/ 흐느끼며 떠나가>>는 눈물투성이의 <<리향(離鄕)>>의 고향이다.       그러나 귀소본능(歸巢本能)은 우리를 자꾸 고향으로 끌어들인다.      제2집 <<귀향나그네>>(귀향시조편)는 우리에게 이것을 말해준다. <<산천은 의구해도 옛사람은 간곳 없고>>, <<방초만이 푸르>>른 고향을 찾은 <<귀향나그네>>는 외로움과 설음만 북받친다. 이 제2집에서는 <<눈물젖은 고향>>이 주요 모멘트가 되고있다.      시조 <<고향 타향>>, <<옛 동무>>, <<산소>>… 등에서는 고향을 찾아왔으되 옛 고향이 아닌 그 쓰라린 서글픔을 노래하고있다.      <<첫사랑>>은 잃어버린 고향에서의 아련한 첫사랑의 아픈 추억을 읊고있다.      <<지기>>, <<골물>>에서는 <<사랑할 이>>도, <<반겨줄 지기>>도 없고 <<정든 얼굴>>도, <<손잡고 울 이>>도 없는 귀향의 허전함을 토로하고있다.      <<외면>>에서는 략엽귀근(落葉歸根)이런가 늙어서 돌아오는 고향이건만 고향의 <<외면>>을 당하는 실향민신세를 읊조리고있다.       <<백발손님>>에서는 <<옛 동무도 옛 사랑도/ 가고 없는 옛 고향에 // 무엇하러 내 왔노?/ 아픈 추억만 사무치네>>로 비탄에 빠지고 만다.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6.25전쟁>>은 천만리산가족(離散家族)을 낳았다. 동서랭전이 무너지고 남북의 화해무드가 무르익음에 따라 남북의 리산가족도 상봉의 장을 가지게 되였다.      제3집 <<리산의 슬픔>>(리산가족상봉시조편)은 바로 그 상봉에 바쳐진 시편들이다. <<리산의 사연>>에서는 <<리산의 기막힌 사연>>을 <<하늘땅도 울렸다>>고 읊조리고있다.      <<리산의 슬픔>>에서는 <<뼈와 살을 갈라보면>>이라는 좀 더 구체적인 시적이미지로 천만리산가족의 슬픔을 이야기하고있다. <<생리별 진통이/ 얼마나 큰고 하니 // 뼈와 살을 갈라보면/ 그 아픔을 알리라 // 일천만/ 리산의 슬픔/ 이와 같다 하리라…>> 그래서 오매에도 그리던 상봉은 눈물바다를 이룬다.      시조 <<상봉>>과 <<바다>>는 이 상봉의 한순간을 클로즈업하고있다. <<홍안에 헤여져서/ 백발 되여 만나니 // 흐르나니 눈물이요/ 나오나니 방성통곡…>>, <<애고 이게 아들 아냐?/ 흑흑 엄마 고생했수! // 사라질라 와락 덮쳐오고/ 쓰러질듯 덥석 안기운다 // 삽시간/ 울음폭포라/ 눈물바다 출렁출렁…>> 리산가족의 상봉은 감격적이다. 보고픈 한이 풀리는 순간들이다.      그런데 그것은 새로운 리별을 전제로 한 상봉이였다. 그만큼 그것은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상봉이기도 하다. <<헤여지면 영 마지막/ 다시 못볼 얼굴인데 // 도로 갈걸 왜 왔노?/ 몹쓸 이놈 불효로다 // 차라리/ 이 어미앞에/ 제술 붓고 가렴아! (시조 <불효>) >>.  보다싶이 <<불효>>는 로모의 절규를 통하여 그 상봉이 결국 <<제술>>로 이어지는 비극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고있다.      <<제사>>도 같은 시적경지를 구사하고있다. <<산 송장 된 이 어시께/ 곤두백배 엎드려서 // 피눈물로 해올리는/ 마지막 네 큰절을 // 제사때/ 오지 못할 너/ 고별인사로 받아주마…>>      그래도 재상봉을 기약하며 피눈물로 갈라지는 리산가족들이다. <<기약>>은 이것을 잘 말해준다. <<꿈속같이 만났다/ 인츰 도로 헤여지니 // 잠간 나눈 백년회포/ 리별고통 더해주네 // 재상봉/ 기약할 날이/ 손꼽아 언제런가…???>> 실로 <<리별고통 더해>>주는 너무나 아픈 상봉인것이다.      <<리산부부>>에서도 <<꽃나이에 갈라져서/ 백발 되여 상봉하니 // 같이 살면 얼마 더 살랴/ 앞도 멀지 않았다만 // 그래도/ 여생이라도/ 함께 살면 아니되노..???>>라고 토로하면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짧디짧은 여생이나마 서로 함께 살고싶은것이 파파늙은 그 <<리산부부>>의 애절한 소원이건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부득불 또다시 갈라질수밖에 없는 민족의 비극을 읊조리고있다.      그런데 기약하는 그 재상봉의 불확실함에 비극성이 더 한층 고조된다. <<서산에/ 해가 저무니/ 볼둥 말둥 하여라! (시조 <볼둥 말둥>) >>,  <<시국이/ 어수선하니/ 다시 오기 어려워라… (시조 <작별>) >>는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주고있다.      그리하여 리산가족의 그 눈물은 결과적으로 <<상봉해도 눈물이요/ 헤여지며 또 눈물 // 리산가족 피눈물은/ 마르는 날 없어서 // 해마다/ 림진강물은/ 불어 불어 넘쳐나>>는 억수의 눈물인것이다.      1945년 8월 15일에 맞이한 <<광복절>>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최대의 명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다른 한 비극의 시작임도 틀림없었다.      한반도가 동서의 리념분쟁과 외세개입의 장이 되면서 남북으로 나뉘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러다가 <<6.25전쟁>>의 발발은 그후 남북의 분단대립을 더욱 확실하게 고착시키고 말았다. 그래서 그 비극은 분단된지 60여년이 되는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시인은 제4집 <<분단의 한>>(분단시조편)에서 바로 이 분단의 비극을 읊고있다. 시인은 분단현실을 <<북에는 내 아버지/ 남에는 내 어머니 // 피눈물 생리별로/ 반백년도 지났구나 // 원통타/ 이 긴 비극을/ 언제야 끝장낼고… ???>>로 친부모형제가 생리별한 <<인간비극>>으로 파악하고있다.      그리고 <<사람이 한번 나서/ 죽어감은 상정이나 // 슬프도다 나라통일/ 못보고 간단말가 // 죽어도/ 한을 못푸니/ 눈을 감지 못하>>는 <<한>>, <<반백년을 타고 타서/ 재만 수북 이 한가슴 // 이제는 불도 없다/ 연기조차 나지 않네 // 하얗게/ 재가 된 마음/ 먼지만 풀썩풀썩…>>인 <<분단의 한>>으로 받아들이고있다.      <<무정세월>>에서 <<달도 차면 이즐고/ 이즐면 또 둥그는 법 // 분단 륙십년에/ 강산도 여섯번 변했으련만 // 시국은/ 변하지 않고/ 무정세월만 흐르더라…>>와 <<대동강물 한강물>>에서의 <<대동강물 한강물은/ 흘러 흘러 주야 흘러 // 서해에서 서로 만나/ 얼싸안고 환호한다 // 묻고자/ 북과 남 형제/ 안아볼 날 언제런고…?!>> 등은 자연의 유연성과 인간의 경직성을 대비시키면서 그 안타까움을 토로하고있다.      자연을 끌어들인 이런 안타까움은 새를 매개로 한 <<새>>에서 <<미물새도 남북으로/ 자유로이 오가건만 // 만물령장 이 내 몸은/ 어이 가지 못하는가 // 이 한몸/ 훨훨 새 되여/ 조국산천 날고 지고…>>나 <<기러기>>에서 <<목이 메여 기룩기룩/ 하늘 나는 저 기럭아 // 너는 울며 가더라도/ 남으로 깃을 치니 // 못가는/ 이 몸보다야/ 열배 백배 나으랴!>> 등 자유로운 새와 그렇지 못한 인간을 대조화시킨데서도 잘 나타나고있다.      <<한몸>>에서 <<륙십년전 동서독일/ 남북조선 갈리였다 // 어느 날 끝내 동서/ 한몸으로 합쳤도다 // 묻노니/ 남북조선은/ 언제가야 한몸 될고…???>>와 <<마지막 장벽>>에서 <<베를린 장벽도/ 와르르 쾅- 무너졌다 // 한심토다 사면팔방/ 오대륙 륙대주에 // 케케묵은/ 북남조선의/ 장벽만/ 남았도다…>>는 동서랭전과 외세개입의 유산이 서서히 사라진 오늘의 세계적인 판도에서 유독 우리민족만이 아직도 그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는 현실을 더없이 안타까워하고있다. 이런 안타까움은 자연히 통일에 대한 간절한 갈망과 소원으로 치닫는다.      <<기편>>에서 시인은 <<어서 통일되여서/ 님을 뵙게 해줍소사 // 두 손이 발이 되게/ 륙십년을 빌었건만>> 그래도 통일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말을 기편으로 단죄하고 만다.      <<반백년을 울었나니/ 팔천만의 맹강녀가 // 그래도 못다 울어/ 못허문 원한장벽 // 강녀야/ 한번만 더 울어/ 분단장성 무너주렴! (시조 <분단장성>) >>에서는 또 중국의 맹강녀 고사에 기탁하여 남북을 가로지른 우리 민족의 <<분단장성>>인 콩크리트장벽을 무너뜨릴 팔천만의 소원을 잘 나타내고있다.       <<기도>>에서는 <<꿈에도 너를 불러/ 목이 메여 울고 운다 // 통일아 어서 오라/ 두손 싹싹 제발 빈다>>. 그리고는 <<네 와야/ 이 몸이 산다/ 팔천만이 살리라!>>라고 부르짖으며 거창한 민족의 대의로 이어진다.       시인의 이런 간절한 념원은 통일을 위해 한몸 바칠 비장한 각오를 하게 한다. 결국 시인은 <<통일만 된다면야>>에서 <<열번인들 못 죽을가/ 백번인들 못 죽으랴 // 나 하나 죽어서/ 통일만 된다면야 // 이 몸이/ 죽고 죽어서 // 천만번 진토 될지고…>>로 통일의 제물이 되기를 맹세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통일>>을 실현함에 있어서 동족이 피를 보는 편파적인 론리는 절대로 거부하고있다. 시조 <<편>>에서 <<북에도 내 형제요/ 남에도 내 자매라 // 싸움나면 이 내더러/ 누구 편을 들가 하니 // 차라리/ 벽에 골 박아/ 그 꼴 차마 안볼지고…>>라고 설파하면서 그 어느 <<편>>에서 벗어나고있다.      새 천년 벽두에 우리 민족의 통일의 서광은 밝아왔다.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대중대통령의 북남정상회담 및 <<6.15선언>>채택은 우리 민족 성원들에게 통일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게 했다. 시인도 례외가 아니다.      제5집 <<우리 민족끼리>>(6.15선언시조편)가 이것을 말해준다. 시조 <<먼 길>>의 <<서울에서 평양까지/ 그 얼마나 멀고 먼지 // 반백년을 돌고 돌아/ 이제 겨우 닿았구나 // 엎디면/ 코가 닿을데/ 어이 그리 왔던고?>>에서는 <<엎디면 코가 닿을 곳>>을 이제나마 <<겨우 닿은>>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다행으로 생각하고있다.      그리고 <<경사>>에서는 남북정상들간의 <<억센 포옹>>에서 <<목마른/ 조국통일이/ 단박 될듯 싶>>은 기대감에 부푼다. 또<<6.15선언>>에서는 <<골육상잔 피의 교훈/ 천고의 한이여라 // 고름 철철 험한 상처/ 아물길이 없더니만 // 새천년/ 륙일오선언/ 그 상처 가셔주네>>라고 하면서 <<6.15선언>>을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보고있다.      그러니 그것은 <<북남간 공동선언>>에 <<삼천리가 환호>>하는 <<축배>>의 장임에 틀림없다. 민족동질성이 그 어느때보다도 고양되는 순간이다. <<합심>>에서 <<사람이 서로 맘을/ 하나로 모으며는 // 하늘도 이긴다/ 땅도 이긴다 // 우리도/ 이같이 합쳐/ 통일대업 이루고저…>>, <<하나>>에서 <<말도 하나 글도 하나/ 땅도 하나 피도 하나 // 어느것 한가진들/ 하나 아닌것 있으랴 // 아서라/ 우리는 하나/ 둘 되면 못살으리!>>, <<우리>>에서 <<너는 살, 그는 뼈/ 나는 피 그런 관계 // 뼈와 살을 갈라내고/ 피를 빼면 어찌 살랴 // 살려고/ 굳게 더 뭉친/ 팔천만 백의겨레!>>이다. 그래서 시조 <<형제>>에서 마침내 <<고와도 내 형제요/ 미워도 내 형제 // 싸우면은 개싸움/ 지구촌에 웃음거리 // 내 집안/ 패가망신은/ 두번 다시 말고저…>> 맹세한다.      그리고 그 <<통일행사>>는 <<정 깊은 형제끼리/ 함께 치르는 잔치마당>>으로 이어지며 <<떡 놓아라 감 놓아라/ 왈가왈부…>> 참견하는 양키들은 몽둥이로 내쫓기 전에 어서 썩- 물러가야 하는 불청객으로 전락된다. 시조 <<외로 났네>>의 <<이제 당장 이 땅에서/ 쫓겨가야 하느니 // 상가집 개 신세라/ 우거지상 되였고나 // 북남이/ 손을 잡으니/ 양놈만 외로 났네>>에서 보다싶이 우리를 간섭하는 외세를 완전히 내쫓은것이였다.      그러니 자연히 <<메새는 메새끼리/ 사슴이면 사슴끼리 // 흰옷 입은 우리도/ 백의동포 우리끼리 // 좋구나/ 한데 어울려 / 천만년 살고 지고…>>의 우리 민족의 <<끼리끼리>>의 론리이다. 이제는 <<팔천만이 떨쳐나서/ 무슨 다리 놓자 하니 // 동강난 강토 잇고/ 끊어진 혈맥 잇는 // 이 겨레/ 살리는 다리/ 통일다리 놓고저-- (시조 <다리>) >>한다.      동시에 여기에 <<해외동포>>가 가세한다. <<오른손엔 림홍기발/ 왼손엔 태극기 // 내 흐르는 눈물로/ 세차게 흔들어도 // 아서라/ 북남은 하나/ 내 고국은 하나라네.>>      제6집 <<백두산 산봉우리>>(애국시조편)는 그야말로 애국의 기상이 흘러넘친다. <<조국 기상>>에서는 조국의 기상을 <<만수천산 락락장송>>과 <<천길절벽 기암괴석>>에 비겨 노래하고있다.      시조 <<백두산봉 해돋이>>, <<백두산 산봉우리>>, <<백두산 천지물>> 이 세편은 제목에서도 알수 있다싶이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에 기탁하여 삼천리금수강산을 노래했고 조국보위의 뜻을 피력했으며 조국의 승리와 영광을 기원했다.       시조 <<조국보위>>, <<충성>>, <<청춘>>, <<영광>>에서는 조국을 지켜 나선 <<열혈아들딸>>들을 노래하고 자기도 보귀한 청춘과 생명을 서슴없이 조국을 위해 바치겠다고 맹세하며 <<내 나라/ 지키는 생에/ 영광만을 기원>>하고있다.      또 시조 <<미래>>에서는 일시적 난관에 봉착했을지언정 조국의 미래는 밝다는것을 굳게 확신하고있다. 그래서 <<신념>>에서는 <<힘들어도 래일 위해>> 견강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혁명적락관주의정신을 고창하고있다.      제7집 <<영웅전설>>(영웅송가시조편)에서는 <<창천같이 높은 뜻/ 열화같은 애국열 // 류수같은 세월은/ 천만년 흘러가도 // 영웅의/ 그 이야기는/ 길이길이 전해지리…>>를 서장으로 하고 력사상 나라를 지키고 빛낸 영웅인물들인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정몽주, 최영, 남이, 론개, 서산대사, 리순신, 안중근… 등을 노래하고 있다.     즉 그들을 련상하면서 그들을 따라배워 그들과 같은 영웅정신으로 우리도 조국보위, 조국통일 성업에 적극 떨쳐나설것을 권장하고있다.  제8집 <<력사앞에>>(력사시조편)를 살펴보면, <<동해바다>>에서 동해바다를 <<오천년 풍진사화>>가 비낀 민족력사의 메타포로 하면서 <<그네들/ 흘린 눈물이/ 동해바다 되였는가…???>>로 민족의 력사를 비극적으로 파악하고있다.      시조 <<3.1봉화>>에서는 우리 민족이 궐기했던 <<3.1운동>>을 되새기며 애국의 뜻을 장중하게 노래하고있다. <<행주산성>>에서는 행주치마의 유래를 떠올리게 하며 애국의 항전에 떨쳐나섰던 녀성들을 노래하고있다. <<감천>>에서는 삼국시기 신라군과 백제군의 대결에서 소녀, 소년 영웅들의 기개와 활약을 이야기하면서 충천한 그 애국충절을 노래하고있다. <<화랑정신>>에서는 관창을 비롯한 나어린 화랑을 곁들이면서 나라를 위해 끝까지 영용히 싸운 화랑정신을 노래하고있다.      끝없이 흘러왔고 또 계속 흘러갈 력사를 대할 때 인간은 <<만국의 흥망성쇠/ 억천년 풍진희비>>를 느끼게 되며 <<천추의/ 그 공과 죄>>(시조 <<망양대>>)를 묻게 된다.      다음 시조 <<백마강>>과 <<락화암>>에서 시적 화자가 백제패망의 상징이 된 백마강과 락화암을 배회하면서 망국의 설음을 느껴보고있는것은 그 한 보기가 되겠다.      동시에 <<리완용>>에서 매국노 리완용을 성토하며 <<만악중/ 제일로 큰 죄/ 매국>>으로 꼽은것도 다른 한 보기가 되겠다.      제9집 <<민족앞에>>(애족시조편)를 보면, 시조 <<백두산 (1)>>, <<백두산 (2)>>, <<백두산 (3)>>에서 백두산을 <<조종의 산>>, <<성산>>으로서 <<백의민족 얼>>이 고이 간직되고 <<단군님 하얀 옥안>>으로 우련히 떠오르는 이미지로 각인하며 백의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고있다.      시조 <<흰옷>>, <<귀로>>, <<백두산천지 폭포>>에서는 죽으나 사나 입으려는 흰옷, 그리고 길게 드리운 어머님의 흰 옷고름에서 애국애족의 이미지를 살리면서 강렬한 민족심을 드러내고있다.      시조 <<민족사랑>>에서는 민족을 상징하는 <<우리 님>>을 내세워 그 님에게 열렬히 사랑을 고백하는 식으로 <<누에가 한오리 실밥을 다 토하듯/ 초불이 마지막 심지를 다 태우듯>> 조국을 위해 자기의 모든 사랑을 깡그리 바치고저 하는 시인의 민족애를 고조에로 끌어올려 표현하고있다.      제10집 <<력사와 민족앞에(맺음시)>>는 <<력사와 민족앞에>>를 전제로 하고 지난 과거와 오늘의 우리 민족의 수치, 책임, 위기, 사명을 역설하고 그 앞에 <<목숨을 바칠>> 시적 자아의 맹세를 소리높이 웨치고있다.      이외에도 많은 다른 시조들, 례하면 <<고국>>, <<미련>>, <<열애>>, <<고국땅을 떠나며>>, <<그리움>>… 등에서 해외교포로서 고국에 대한 열애를 읊고있다.      이를테면 <<고국>>에서 <<북이라 남이라/ 내 고국은 깨여지고 // 동이랴 서이랴/ 이 몸역시 떠돌아도 // 꿈에도/ 찾아가는 곳 // 한시인들 잊힐소냐!>>는 그 한 보기가 되겠다.      <<안개>>에서는 생시에 밟아보지 못할것 같던 고국산천을 끝끝내 드디여 현실로 밟아보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의 순간적인 감격을 노래하고있다.      <<흔적>>, <<독아홍청>> 등에서는 누구나 공감할수 있는 인생지조를 읊어 다른 감명을 주고있다. 이를테면 <<흔적>>에서 <<누구나 가야 하니/ 남기고 가야 하니 // 이 한몸 갈적에는/ 무엇을 두고 갈고? // 세상에/ 빛나는 이름/ 남기고 떠나고저…>>, <<독아홍청>>에서는 <<나무거든 락락장송/ 꽃이거든 설중매화 // 사나이 사는 인생/ 초로풍진 아니거늘 // 꽃이든/ 나무가 되든/ 독아홍청하리라!>>      그리고 <<변>>에서는 10년이면 변하는 자연의 강산보다 더 빨리, 많이 변해버려 이젠 늙고 쇠잔해진 <<이 몸>>의 신세를 한탄하며 인생 본연의 무상 내지 허무를 읊고있어 공감을 주고있다.     인간은 력사를 대할 때도 그 헛갈리게 할 정도의 류전(流轉)때문에 우리 인간의 실존을 비춰보는 좋은 계기를 포착하게 된다. <<연산군>>에서는 연산군의 인생류전(人生流轉)을 통하여 인생무상을 읊고있다.      <<황산벌>>에서는 삼국시기의 계백장군과 소년장군 관창의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 <<억만의/ 창생 목숨이/ 저 들풀과 같다 하리>> 했으니 역시 인생무상이 묻어난다. <<락화암>>에서도 락화암을 시적 발상의 계기로 삼아 인생무상을 읊고있다.      <<묘향산 보현사>>에서는 <<대사님은 어디 가고/ 빈 절만 남았구려>>로 역시 인생무상을 읊조리며 <<옛 성현/ 찾을 길 없으니/ 뉘와 뜻을 터놓을고?>>로 시적 자아의 외로운 심사도 내비치고있다.      이런 인생무상 내지 허무, 그리고 외로움 같은것은 서뿔리 가치론적으로 부정적으로 볼것이 아니라 인생 본연의 실존적 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 철학적 높이의 의미로 받아들이는것이 보다 바람직한줄로 안다. 오직 이럴 때만이(가령 이런것들을 부정적으로 본다 하더라도) 그것을 직시하는 속에 그것을 커버할수 있는 다른 한 인간 본연의 실존적 모습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례컨대 <<인생은 짧다>>는 명제하에 되는대로 살려는 인생관과 일분일초를 아끼며 진지하게 살려는 인생관이 다 인생 본연의 실존적 모습들인데 적어도 이런것들을 직시할 때에 바람직한 후자의 인생자세가 설수 있는 도리와 같다.      예술적특징면에서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의 시조들은 같은 내용을 우에는 자유시형식으로, 아래는 단시조형식으로, 제일 마지막 <<맺음시>>는 련시조형식을 취하였다. 형식으로 나누어 구사한것이 새로운 시도의 특징이다.      시조는 고려말에 등장하여 조선조를 거쳐 현재까지 줄곧 창작되고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형시이다. 물론 <<시조>>라는 말은 조선조 후기에 나왔고 그 이전에는 <<단가>>라고 했다. 시조의 가장 대표격으로 볼수 있는 단가형식의 평시조, 후에 조선조에 들어서서 점차 련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등 파격형식들이 나왔다.      시조는 대체로 초장, 중장, 종장의 3장6구로 이루어졌다. 매장은 각기 두 시구, 여기서 시구라는것은 두 음절군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의미적 마디를 말한다. 그리고 음수률은 대개 3.4조를 기본으로 하되 초장 첫 구 3.4조, 두번째 구 3.4, 중장 첫 구 3.4조, 두번째 구 4.4조, 종장 첫 구 3.5조, 두번째 구 4.3조로 하되 약간의 증감을 보인다. 그리고 종장 첫 구의 시작에는 <<아서라>>, <<어즈버>>, <<두어라>> 등 감탄사나 영탄사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부터 글자수는 대개 44자 내지 45자좌우를 보존한다.      홍용암의 시조를 보면 3장6구의 기본틀을 잘 지키고있다. 음수률은 일부 파격이 있되 그래도 3?4조를 기본으로 하여 조직되고있다. 글자수도 44자 내지 45자좌우를 유지하고있다. 그런데 종장 첫 구의 감탄사나 영탄사는 기본상 구사하지 않고있다. 이것은 시조의 정형률에 굳이 곧이곧대로 매이기보다는 엄숙하고도 긍정적인 시상을 담는데 적합한 파격으로 볼수 있다. 워낙 그런 감탄구나 영탄구는 시조 산생초기 신흥사대부들의 유흥적 기분을 나타내기 위해 등장한것으로 볼수 있다. 그러니 민족과 조국 관련의 거창한 담론을 톺아낸 홍용암의 시조에는 애초에 적합하지 않은것으로 사료된다. 일종 내용이 형식을 결정한 바람직한 한 보기가 되겠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집의 맺음시인 <<력사와 민족앞에>>는 그 표현적 수법의 수요로 말미암아 련시조형식을 취하고있다. 전반 시집의 시조들을 여태까지 쭉- 단시조로 이끌어오다가 <<맺음시>>만은 련시조로 써야만 시적 화자가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전달하고저 하는 그 깊은 사상내용을 가장 잘 나타낼수 있기때문이다. 사실 우리 민족 시조력사에서 후날 련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등의 파격시조가 나타난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리해해야 할것이다.      시조의 창작경위를 보면 애초에 대조되는 두갈래로 흘렀는데, 하나는 사대부들의 유흥적 기분을 나타내면서 즉흥창작으로 나아갔으며 시적인 이미지, 형상성보다는 주절되기가 장끼가 되면서 많이 사설화되였다. 다른 하나는 주자성리학의 리념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많이 개념화되고 공식화되였다. 이런것들은 이미지와 형상성을 추구하고 가장 개성적인 면모를 띠여야 할 시로서의 시조에 있어서 결격사항이 된다. 홍용암의 시조에는 그래도 이런 결격사항들이 커버된 작품들이 적지 않아 돋보인다.      시조 <<가시>>, <<백발구름>>, <<계절조>>를 모델작품으로 삼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도록 하자.       <<가시>>에서 <<이 가슴에 깊이 박힌/ 고향은 아픈 가시 // 뽑으려고 모질음/ 한평생 써보건만 // 그 진통/ 더 커만 질뿐/ 뽑을 길이 없더라…>> 이 시조에서는 <<가시>>를 고향의 메타포로 사용하면서 시적 이미지화에 성공하고있다. 바로 이 <<가시>>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고향의 원초적인 이미지를 잘 환기시켜주고있다. 고향, 그것은 정한(情恨)이 엇갈린 떨쳐버릴수 없는 우리의 태지(胎志)에 다름아니다는것이다.      <<백발구름>>에서는 <<슬프다/ 실향민 신세/ 망국노 설음이여!>>라는 종장의 원관념을 <<저 하늘 오락가락/ 떠도는 백발구름>>이라는 초장과 <<세월따라 바람따라/ 검은 머리 희였다네>>라는 중장의 기승(起承)적 보조관념을 리용하여 잘 표출하고있다.      또 <<계절조>>에서는 <<철새들 깃을 치며/ 강남 가는 타향하늘>>이라는 초장의 비(比)와 <<가담가담 피 토하며 청승궂게 울어예네>>라는 중장의 흥(興)으로부터 <<고향 찾아/ 나도 한마리/ 울며 가는 계절조!>>라는 종장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감으로써 시적인 탄탄한 내재적 론리를 가지며 성공을 가져오고있다.  주지하다싶이 시조는 우리 민족 정형시에서 가장 정제된 시가형식이다. 그만큼 짓기 어렵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우리 연변에도 시조협회가 있는줄로 안다. 그런데 실은 시조들이 현재까지 창작되고있다고는 하나 많이 외면되고있는것도 사실이다. 시를 아예 외면하는 사람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시를 쓰거나 감상하는 사람들사이에서도 시조는 외목에 나있다. 시조를 좀 시시한 우스운것으로 보는것 같다. 똑마치 이 대명천지, 자유세계에서 그래도 현대자유시가 제격인것 같다. 시조는 구속스럽고 한물이 간 퇴물로 여기는듯 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시조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담아낼수 있는 고전적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은 분명 유럽중심의 현대자유시병독에 깊숙이 들어가있는것 같다.      이런 차원에서 놓고 볼 때 홍용암시인은 현대자유시는 자유시대로 멋지게 구사하면서도 전통적인 시조는 시조대로 잘 살리고있어 다양한 시적재능을 보여줌은 더 말할것도 없고 특히 우리들로 하여금 력사와 민족앞에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려는 신세대 젊은 지성인으로서의 시인의 그 투철한 민족적 의식과 정서에 더 깊은 감명을 받게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홍용암시인의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는 현대자유시와 고전적인 전통시조장르의 자유로운 넘나듬을 꾀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예술작법을 대담히 시도하였는바 대단히 성공적인 시도와 성과로 보아야 할것이다.      문학예술적으로나 사상내용적으로 이만큼 성공적인 시조집이 나오기도 정말로 조련치 않다고 생각한다.      가치있는 시조집의 탄생에 열렬한 성원의 박수를 보낸다.       ( 2006년 9월 한국에서 출판된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에 발표, 평자는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중국 연변대학 교수, 문학박사, 박사연구생 도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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