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신문사소개 | 기사제보
최종편집 2018.10.17 수 11:45
특별기획
[평론/ 한국 강성은]순수민족문학으로 바라보는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ㅡ 홍용암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를 읽고
백운 기자  |  hry7777@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10.08  04:50:1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서울=동북아신문] 아래 평론은 중국 조선말 표기법으로 씌어졌음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들어가는 말

 
글을 쓴다는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글을 쓰는 이가 자기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되묻는 이런저런 질문들에 대한 암중모색의 답변들을 기록하는것이리라.
 
물론 자기자신을 향해 되묻는 이런저런 질문들과 그에 관한 답변들의 기초를 이루는것은 일종의 지적(知的)호기심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지적호기심이 없이 그리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즐거움이 없이 지속적으로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한국에서 출판된 홍용암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 >>의 발문을 쓴 평론가 김룡운은 <<절필 13년, 어려서부터 문학을 사랑해 신문불이(身文不二)라고 일컬리던 시인이 숙명이라고 할가 너무나도 찌들대로 찌든 빈궁으로 인한 몰락가정의 생활핍박때문에 그후 문학과도 철저히 담을 쌓고 거칠은 창업의 바다에 뛰여들어 힘겹게 노를 젓더니... 오늘 다시 문학의 성당으로 회귀해 샘구멍이 틔인듯 방뚝이 터진듯 묵직한 시편들을 폭포처럼 쏟아내고있으니 과시 경하할만한 일이라고 하겠다...>>고 서술하며 즉석에서 작가의 그 장거에 바치는 즉홍시조 한편을 지어 선물하였다.
 
력사에 책임지니 샘구멍 틔였는가
민족을 사랑하니 방뚝이 터졌는가
용용히 굼실거리는 흰얼의 노래 거창하여라
 
글을 쓴다는것이 자유의지의 산물임이 분명하다면 어떤 형태의 글을 쓰든 그것은 글을 쓰는 이의 지적호기심에서 비릇될수밖에 없다.
 
지적호기심은 앎에의 욕구를 가리킨다. 앎에의 욕구는 흔히 화두(話頭)의 하나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때의 화두는 점수의 형태로 자잘한 <<깨달음>>을 낳기도 하고 돈오의 형태로 경천동지(?天?地)할 <<깨침>>을 낳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깨달음>>이나 <<깨침>>은 당연히 질서있는 언어로 구체화될 때 보편을 지닐수 있고 독자일반과 공유될수 있다.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의 저자 홍용암이 16세때에 벌써 첫시집 <<꽃무지개>>를 출판한것을 보면 그의 지적호기심이 남달리 특출하였음을 보아낼수가 있다.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부딪치는 문제가 있다. <<무엇을 쓸것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무엇을 쓸것인가?>>라는 문제는 소재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주제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소재>>에 관한 문제는 자료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대상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 문제중에서도 정작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것은 시를 이루는 대상에 관한 문제이다.
 
시에서의 대상은 외적인것으로 존재할수도 있고 내적인것으로 존재할수도 있다. 물론 그것들이 또 상호 뒤섞인채로 존재할수도 있다. 부분적으로는 외적인 대상으로, 부분적으로는 내적인 대상으로 존재할수도 있다는것이다. 이때의 외적인것은 객관적인 대상을 가리키고 내적인것은 주관적인 대상을 가리킨다. 객관적인 대상은 시나 받아들여지는 외적 사물을 가리키고, 주관적인 대상은 시에 받아들여지는 내적 심리를 가리킨다. 외적 사물은 시에 받아들여지는 자연물 등을 의미하고, 내적 심리는 시에 수용되는 의식이나 무의식 등을 의미한다.
 
홍용암의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는 127수의 시조가 도합 10집으로 나뉘여 실려있다. 시조에 자리해있는 대상이 내적 심리를 표현한것이 주를 이루는데 그 굼실거리는 밑바탕에는 민족의 혼이 깊이 뿌리내리고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남과 북이 갈라져있는 현실에서 화합의 장으로써 남과 북에서 유일하게 동시에 이 작가의 시조집이 출간되였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아주 중요한 의의를 둘수 있다.
 
남반부의 저명한 로시인 고은선생은 <<민족의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는 작가이고 작가로서 민족에 기여해야 해! 다만 남의 문학과 북의 문학이 어떻게든 하나가 되여야 하는데, 이에 대한 꿈을 버리면 안되지. 이제는 남북이 보다 적극적으로 교류해 간접체험을 직접체험으로 바꿔야 하는데 우리는 그들이 쓴 오늘의 작품도 볼수 있어야 해. 즉 작가의 교류 이전에 작품의 교류가 먼저 실현되여야 한다는거지. 저쪽도 일부의 신임을 받는 몇몇 사람들만이 이쪽의 작품을 볼수 있잖아. 조만간 평양을 열번 갔다 와도 감옥에 안가는 그런 시대가 오겠지. 물론 그것은 저절로 오는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많은 노력이 축적되여야 언젠가 올테지만...>>라고 말하였다.
 
연변문학은 <<고립된 섬>>과 같은 특별한 위치를 갖고있다. 조선족이라 칭해지는 중국소수민족의 문학으로서 한자문화권인 중국문학에서 비켜나있으며 한국문학이나 조선문학과도 먼 거리를 구축하고있다. 민족문학을 동일민족의 동일언어로 동일지역에서 창작된것을 기준으로 삼는 소위 삼속주의립장에서 볼 때 연변문학은 <<국적은 중국이지만 민족은 한민족이고, 한글로 창작을 하고있>>는, 똑마치 사면팔방 한족문학이 성행하는 망망한 태평양바다같은 중국이라는 이 거대한 지역내에 갇혀서 얼마 안되는 조선족들이 한글로 작품을 쓰고있는 고독한 <<섬>>같은 특별한 형국을 이루고있는것이다.
 
나는 먼저 작가의 가계도를 살펴보았다. 홍용암은 전형적인 중국조선족이다. 여기서 전형적이라는 말은 현재 중국의 조선족사회를 구성하고있는 구성원의 보편적특성을 구유하고있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그는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여나 자랐지만 그의 선조는 조선땅에 뿌리를 둔 유이민들이였다. 친할아버지는 함경북도가 고향이고 외할아버지는 경기도가 고향이다. 말하자면 홍용암은 유이민 3세인것이다. 아주 빈궁한 가정에서 태여나 중국의 최하층에서 너무 일찍 비극적 삶을 살면서 시달리고 허덕여야 했던 그는 그의 성장환경이나 가계보를 보았을 때 어쩌면 그의 시에서 주조를 이루는 민족의 정체성의 혼란과 자아찾기의 몸부림은 아주 당연하고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할수 있다.
 
중국 조선족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민족정체성의 혼란, 즉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고 그 뿌리는 어디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회의와 방황은 홍용암에게도 결코 례외가 아니였던것이다. 더구나 시인으로서 감수성이 누구보다 예민했던 그로서는 민족정체성의 문제가 인생의 화두(話頭), 나아가서는 시적 화제로 각인되였던것이다. 그의 작품 도처에서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뿌리찾기의 흔적이 남아있다.
 
홍용암의 필명은 <<백운(白云)>>이다. 연변의 대표적 평론가인 김룡운이 홍용암의 시문학작품세계를 <<흰구름의 상징적이미지>>로 재단할 정도로 홍용암의 시에서 <<흰구름>>은 지수(指數)적기능을 수행하고있다. 말하자면 <<흰구름>>은 홍용암의 시와 작품에서 일종의 빛을 비추이는 모티브(light mitive)인것이다. 따라서 <<흰구름>>의 의미분석은 홍용암의 자아, 한, 사랑, 순결, 민족애, 효성... 등의 다양한 주제를 표현한것임을 잘 알수 있다.
 
중국 조선족들과의 근 20여년간을 음으로 양으로 어울리며 생활한 필자가 바라보는 홍용암의 시작품은 거의 모든 시와 시조 심지어 동시에 이르기까지 민족애와 고국애로 관통되여있으며 강렬한 력사의식과 현실의식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여있다는 점이다. 이런 력사의식과 현실의식의 유기적통합이 홍용암시인의 시조작품을 통하여 나타나고있으며 연변문학의 대표적 거인으로서의 그 면모를 볼수가 있다.
 
홍용암이 추구하고있는 시의 핵심적 기제는 결국 궁극적으로 통일과 이어지게 된다. 력사적으로 볼 때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재난과 불행은 바로 남과 북의 갈라진 현실일것이다. 그 원인이 력사적으로 일제와 주변의 강대국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이 비극은 오늘까지도 계속 이어지고있기에 우리 민족의 최대의 바램 역시 통일인것이다.
 
오늘 우리 민족은 또다시 엄중한 재난과 위기에 직면하여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력사를 단절의 상태에서가 아니라 현실과의 련계된 상황에서 마땅히 통합적으로 고찰, 고민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나라를 찾아 광복 70년이 되는 해에 나는 연변에서 이런 시 한편을 써서 독립협회에 이곳 연변을 소개한적이 있다.
 
려명의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은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도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 빛은 남으로
붉은 빛은 북으로
태양의 문양처럼 갈라져
넘쳐흐르는 흐린 강물우에 떠서
더러는 북간도 황야에 버려졌다
 
(중단 생략)
 
이곳은 태양의 문양이 한데 어울려
생활하는 통일의 거리
누가 통일이 어렵다고 했는가?
작은 물 모여 모여 강 되고 바다 이룬다...
 
(하단 생략)
 
 홍용암시인뿐만이 아니라 민족적자각이 있는 적지 않은 시인들이 한반도의 통일문제와 민족의식을 쓰고있다. 민족문학이 전 국민의 보편적정서를 아직 획득하지 못하고있어 앞으로 더욱 많이 유의해야 하는게 현실이지만, 홍용암은 그의 작품 전반적으로 민족의식을 다루고있는 유일한 작가인것은 분명한 사실인것 같다. 순수 민족문학을 론한다면 남과 북의 문학을 모두 관통하는 유일한 작가가 아닌가 하는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홍용암의 시작품을 보면 그 선명한 특징은 <<흰옷>>과 <<흰구름>>을 중심단어로 표현한 짙은 민족성과 강한 민족의식이다. 민족과 함께 울고 민족과 함께 웃는 동심일체의 작품들이 주(柱)를 이루고있음을 볼수 있다.
 
홍용암은 흩어진 무리, 분단된 고국을 만나게 하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통일의 <<다리>>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독특한 특징이 끈질기게 잘 표현되고있다.
 
 
 
            홍용암의 시조에 대한 문학적 고찰
 
 
일반적 시조의 형식은 매장이 각기 두 음절군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의미적 마디로 나타나있고 음수률은 대개 3.4조를 기본으로 하되 그 구성은 대체로 초장 첫구 3.4조, 두번째구 3.4조로, 중장 첫구 3.4조, 두번째구 4.4조로, 종장 첫구 3.5조, 두번째구 4.3조로 하면서 약간의 증감을 나타내고있다. 종장을 보면 대개 첫마디를 감탄사나 영탄사로 시작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홍용암의 시조는 구조상 순수하게 전통적인 평시조로 되여있다. 형식면에서는 대체로 초장, 중장, 종장의 3장6구로 이루어져있으며 그 3장6구의 기본틀을 잘 지키고있다. 음수률은 일부 파괴가 있되 그래도 3.4조를 기본으로 하여 조직되여있으며 글자수도 44자 내지 45자좌우를 잘 유지하고있다.
 
한편 홍용암은 종장부분에 있어서는 보통 널리 사용되는 감탄사나 영탄사를 기본상 구사하지 않고있는데 이는 정형률에 얽매이기보다는 그의 남다른 시조의 특성상 신중하고도 긍정적인 시상을 담는데 적합한 파격으로 볼수 있다.
 
홍용암은 시조 10집을 단시조로 쭉 끌어오다가 맨 마지막 <<맺음시조>>만은 련시조로 썼다. 이것은 그의 깊은 사상내함을 잘 나타낼수 있도록 하려는 저자의 고민을 엿볼수가 있게 한다. 시조력사에서 초기보다 후기에 들어와 련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등의 파격시조가 나타난것은 독자에게 강렬하게 전달하고저 하는 깊은 사상과 그 흐름이 점차 표현된것이므로 홍용암의 <<맺음시조>>역시 이런 맥락에서 리해할수가 있다.
 
필자는 작품의 주제는 창작자의 세계관과 삶의 진행과정과 깊이 관련되여있다고 본다. 민족문학 혹은 최근에 많이 론의되고있는 생명사상 및 생태계운동 등 리얼리즘문학과의 차이가 있는것이 아니고 다만 그것이 작가의 사상과 존재와 직결된다고 보지를 못한거지, 그것을 우리 민족문학 혹은 리얼리즘문학의 내용으로 하는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특별히 홍용암의 시조집은 력사의식과 현실의식이 통합적으로 시종일관 청일색으로 민족의 운명을 둘러싸고 통일의지로 흐르고있다는데서이다. 나는 많은 시조집을 보았지만 이렇게 획일적으로 매수마다 몽땅 민족성으로 관통된것을 보기는 홍용암의 이 시조집이 처음인것 같다.
 
시든 시조든 소설이든 무엇을 쓰려면 쓸 내용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물론 이때의 <<내용>>은 글의 소재 혹은 주제를 가리킨다. 글을 쓰는데 소재나 주제만큼 중요한것은 없다. 소재도 중요하지만 주제는 더욱 중요하다. 창작자의 세계관이 깊이 반영되여있는것이 다름아닌 글의 주제이기때문이다.
 
시조의 주제도 작가의 세계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것은 덧붙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시조의 내용을 세계관과 민족의식과 관련시켜 리해하려고 하면 주제라는 말보다 의미, 가치, 의도, 의식이라는 말이 좀 더 적당할는지도 모른다. 시조가 지니고있는 의미, 가치, 의도, 의식이 실제로는 시조의 주제를 결정하기때문이다. 홍용암이 민족을 보는 관점 및 홍용암의 지나온 삶과 력사가 그의 작품의 세계를 구성하는 주된 사상이나 철학 등으로 되였기때문이다.
 
홍용암의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는 순수 문학적으로 봤을 때 그 가치가 매우 높은 예술적인 측면도 무시할수 없지만 더우기 그 사상내용상에서 애국심과 민족성을 고양시키는 주제들이 훨씬 더더욱 높은 가치를 가지고있다.
 
더우기 시조집의 첫 수부터 마지막 수(맺음시)까지 우리 민족의 진한 숨결이 배여있는 민중의 노래임을 통하여 깊은 애정을 느끼게 만든다.
 
 
                   제1집: 망국노 설음
                        (망향시조 편)
 
류랑가족 
 
할아버진 부산출신 아버지는 도꾜태생
이몸 역시 거북둥이 만주에 와 태줄 끊고
집 잃고 나라 잃은 몸 구름처럼 떠돌았네 
 
자장가
 
할아버지 망향가락 아버지의 장탄식
자장가로 들으면서 이 몸은 자랐나니
나라없는 망국노설음 뼈속까지 사무쳤네
 
백발구름
 
저 하늘 오락가락 떠도는 백발구름
세월따라 바람따라 검은 머리 희였다네
슬프다 실향민신세 망국노 설음이여!
 
우의 세 시조를 읽으면서 력사의 비운을 저주하면서 떠돌이신세가 된 나라 잃은 백의동포의 수난이 가슴 먹먹하게 다가온다. 일제의 침략으로 정든 고향과 조국을 빼앗긴 우리 민족의 설음들과 애환이 깊이 느껴진다. 시인이 자자가로 들어온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장탄식, 망향가락이 상기도 뇌리에 남아 그 기억을 시조로 옮긴 점이 새삼 고맙다. 시인은 <<나라없는 망국노 설음 뼈속까지 사무쳤네>>, <<집 잃고 나라 잃은 몸 정처없이 떠돌았네>>, <<슬프다 실향민신세 망국노 설음이여!>>라고 피의 절규를 한다. 우리는 절대로 그런 비운의 력사가 재연되는 아픔을 두번 다시 겪어서는 안된다.
 
필자는 시인의 삶과 이곳 중국 조선족들의 삶이 표면적으로는 중국사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부정할수 없는 현실의 문제를 잘 알기에 아마도 서정적주인공인 시인이 그 공통된 심경을 상술한 망향시조 <<류랑가족>>, <<자장가>>, <<백발구름>> 등에서처럼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너무나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홍용암시인의 한맺힌 망향시조를 읽으며 노산 리은상의 시조작품 <<가고파>>를 소개한다.
 
모두 10수로 되여있는 시조이다.
 
가고파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작품의 배경은 고향 경남 마산이 시적 배경이다. 이 시조는 작곡으로 2수를 묶어 1절 가곡으로 탄생시키면서 현대시조로 안겨준 공로는 크다. 화자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문학적 상상력은 깊은 향수에 젖게 한다.
 
그러나 홍용암의 <<망국노 설음>>은 고향을 생각할수도 없는 깊은 비애를 주고있다. 그러므로 망국의 과거를 교훈으로 삼아 오늘날의 현실을 더더욱 정시해야 할것이다. 언제나 력사의 연장선 우에서 오늘의 험준한 현실을 관조해야 할것이다.
 
수구지심(首丘之心)이라고 했다. <<여우가 죽을 때는 그 머리를 자기가 살던 언덕으로 향한다>>고 했던 말은 맞는 말일것이다.
 
 
                      제2집: 귀향나그네 
                          (귀향시조 편)
 
 
  귀향나그네
 
산천은 의구해도 옛사람은 간곳 없다
고향이라 찾아보니 방초만이 푸르러라
외로운 귀향나그네 그 설음만 더해주네.
 
옛동무 
 
그리워서 찾아오니 백골만이 묻혔고나
봄언덕에 함께 누워 피리 불던 옛동무여
그제날 청운의 꿈을 어이 버려 갔느냐…?!
 
첫 사랑
 
매달려서 떼여놓고 끝내 두고 왔던 녀인
못잊어서 다시 오니 가마 탄지 아득 옛날
내 하늘 뱅뱅 맴돌다 울며 간 새 한마리... 
 
 
홍용암의 귀향시조는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던져주는바 특히 시인은 력사와 오늘을 마주 앉혀놓고 하나의 공간에서 현실의 문제와 그 원인을 파고들면서 <<누구때문이며 무엇때문이며 어찌해야 할것인가???>>의 화두(話頭)를 세상을 향해 던져주고있다.
 
현재 중국의 조선족사회는 현실적인 삶의 문제점의 관점에서 볼 때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가족의 붕괴현상과 인정이 메마른 사회현상, 교육의 문제... 등 여러가지 엄중한 부작용문제가 많다.
 
요즘 류행되는 연변가요중에는 <<모두 다 갔다>>라는 노래가 있다. 그 가사 내용이 <<안해도 갔다/ 남편도 갔다/ 삼촌도 갔다/ 한국에 갔다/ 일본에 갔다/ 미국에 갔다/ 러씨아로 갔다/ 잘 살아보겠다고 모두 다 갔다/ 눈물로 헤여져서 모두 다 갔다/ 산다는게 뭣이길래 산산히 흩어져/ 그리움에 지쳐가며 살아야 하나?/ 오붓하게 모여살 날 언제면 올가?/ 손꼽아 기다려 본다네... >>인데 아마 이것이 이곳 사회의 신<<귀향나그네>>의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
 
홍용암도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로 인하여 필을 던지고 생활전선에 뛰여들었던 13년의 절필생활이 있었기에 그의 시조 <<옛 동무>>에서 동무에 <<옛>>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그리워서 찾아오니 백골만이 묻혔고나>>, <<못잊어서 다시 오니 가마 탄지 아득 옛날>>이란 표현을 함으로서 인연에 대한 허망함을 읊조리고있다.
 
인연이란 묘한 법이다. 흔히 <<인연법>>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게 존재하는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것인지 나약한 인간의 판단으로서는 쉽게 단정지을수는 없다. 그런데 홍용암은 이런 인연법에 무게를 싣고 시상을 일으켰다.
 
그의 시조 <<지기>>에서 보면 <<함께 놀던 옛동무들/ 모두 다 사라지고// 꽃분이도 시집간지/ 까마아득 옛날인데// 반겨줄/ 지기도 없는/ 그 고향에 나 왜 왔노?>> 그런데 홍용암의 귀향시조는 <<옛>> 이라는 단어를 적절히 사용하므로 이미 지나간 시간들의 허무함을 <<무(無 )>>의 인연법으로 나타내고있다.
 
인연법을 토대로 한 백승언의 시조 한수를 소개한다. 
 
먼 후날
 
나 그대 불쌍하여 차 한잔 권합니다
그댄 내가 딱해보여 그 한잔 받습니다
먼 후날 주님앞에서 그 사람을 만날가? 
 
 
                제3집: 리산의 슬픔 
                (리산가족상봉시조 편)
 
 
상 봉 
 
홍안에 헤여져서 백발되여 만나니
흐르나니 눈물이요 나오나니 방성통곡
이 모든 인간비극이 누구 죈가 묻노라!
 
바 다 
 
애고 이게 아들 아냐 흑흑 엄매 고생했수
사라질가 덮쳐오고 쓰러질듯 안기운다
삽시간 울음폭포라 눈물바다 출렁출렁...
 
불 효
 
헤여지면 영 마지막 다시 못볼 얼굴인데
도로 갈걸 왜 왔노 몹쓸 이놈 불효로다
차라리 이 어미앞에 제술 붇고 가렴아...
 
우의 3편의 시조 <<상봉>>, <<바다>>, <<불효>>는 문학적으로도 높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작가의 시조 <<상봉>>에 나타난것처럼 <<홍안에 헤여져서/ 백발 되여 만나니// 흐르나니 눈물이요/ 나오나니 방성통곡>>이란 말이 가슴을 후벼낸다. 그것은 리산이라는 슬픔을 절절히 표현하였을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이것이 또 새로운 리별을 약속하는 고통의 상봉이기때문이다. 상봉의 기쁨이 그만큼 불안한 현실적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얼굴을 기억할수 있는 지적나이가 10세전후라고 심리학자들이나 교육학자들은 말을 한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분단의 아픔이 시작되여 천만리산가족이 발생한지도 어언 무려 70여년의 시간이나 지났다.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수 있는 나이가 그만큼 훨씬 멀리 사라졌다는 말이고, 비록 인간의 수명이 더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고작 일부에만 해당되는 사실일뿐이며 보편적으로 보아서는 작가의 시조 <<불효>>에서 서술된 <<헤여지면 영 마지막/ 다시 못볼 얼굴인데// 도로 갈걸 왜 왔노?/ 몹쓸 이놈 불효로다// 차라리/ 이 어미앞에/ 제술 붇고 가렴아...>>의 표현대로 이제 단박 죽을 일만 남았다.
 
더우기 시조 <<제사>>에서 <<산 송장 된 이 어시께/ 곤두백배 엎드려서// 피눈물로 해올리는/ 마지막 네 큰절을// 제사때/ 오지 못할 너/ 고별인사로 받아주마!>>라고 하면서 헤여지기 직전 산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는 그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참담한 장면은 삽시간 눈물범벅이 된 우리의 가슴을 완전히 쿵- 무너지게 만든다.
 
우의 이 두수의 시조는 가히 <<리산가족상봉시조 편>>의 백미라고도 할만 하다.
 
홍용암은 시조를 통하여 묻는다. <<이 모든 인간비극이 도대체 누구의 죄인가... ???>>
 
장강의 세조(조선7대 임금)에 대한 시조 한편을 싣는다.
 
세 조
 
피비린 내 왕권강화 조국산하 울어대고
끝내는 조카까지 주살의 칼 씌운 대가
그 자신 벌을 받았나 참혹정벌 받으면서...
 
계유정란으로 왕좌에 오른 세조는 계획적이였는지 아니면 주변의 상황이 부득히 그랬었는지 잘 알수는 없지만 어쨌든 끝내 어린 조카를 극형에 처한다. 정국은 요동을 쳤고 온 장안은 쑥대밭이 되였다. 외교엔 영원한 선린도 적도 없다고 했듯이 정치도 아마 그런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홍용암의 시조 제3집은 리산가족의 생리별의 아픔을 민족의 아픔으로 승화시켜 표현한 문학적보고(??)이다.
 
 
                           제4집: 분단의 한 
                              (분단시조 편)
 
 
인간비극 
 
북에는 내 아버지 남에는 내 어머니
피눈물 생리별로 반백년도 지났구나
원통타 이 긴 비극을 언제야 끝장낼고???
 
분단의 한 
 
반백년을 타고 타서 재만 수북 이 한가슴
이제는 불도 없다 연기조차 나지 않네
하얗게 재가 된 마음 먼지만 풀썩풀썩...
 
기 도
 
꿈에도 너를 불러 목이 메여 울고 운다
통일아 어서 오라 두손 싹싹 제발 빈다
네 와야 이 몸이 산다 칠천만이 살리라!
 
홍용암은 우의 3수의 시조 <<인간비극>>, <<분단의 한>>, <<기도>> 등을 통해서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한 문제인 분단을 아주 짧디짧은 시조의 음률을 지켜가면서 서정적으로 너무 절절하게 잘 표현하여 고도로 함축된 간결한 그 시구들속에 깊은 뜻과 풍부한 정서를 담아내고있다.
 
그가 그토록 비극적 현실을 마주하여 종래로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민족적자각이 있는 깊은 뜻의 시를 잘 표현할수 있는 그 주되는 원인과 밑바탕은 작가의 소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통일에 대한 신앙적 갈망이 몸에 푹 배여있었기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홍용암은 그의 시조를 통하여 <<통일>>을 실현함에 있어서 동족이 피를 보는 편파적인<<론리>>는 절대로 거부하고있음을 볼수 있다. 시조 <<편>>을 보면 <<북에도 내 형제요/ 남에도 내 자매라// 싸움나면 이 내더러/ 누구 편을 들가 하니// 차라리/ 벽에 골 박아/ 그 꼴 차마 안볼지고...>>라고 표현하면서 그 어느 편에서 벗어나고있다.
 
통일문제에 있어서는 홍용암은 퍽 랭정한 견해를 갖고있다. 통일을 간절히 원하지만 결코 어떤 외세의 힘이나 또는 내부적인 전쟁으로 인한 무력통일을 원치 않으며, 남북이 현상황을 인식하고 평화적인 화합의 장으로서의 통일을 원하고있음이 바로 그의 <<분단의 한>>의 전체 시조를 통해 일관적으로 관통하고있는 맥이라고 볼수 있겠다.
 
또한 <<통일만 된다면야>>이란 시조를 통하여 <<열번인들 못죽을가/ 백번인들 못죽으랴// 나 하나 죽어서/ 통일만 된다면야// 이 몸이/ 죽고 죽어서/ 천만번 진토될지고...>>하는 충절의 간절한 바램을 잘 나타내고있다.
 
홍용암시인의 통일에 대한 충절과 념원을 생각하며 개성시 선죽교의 피가 흐르는 정몽주의 시조 한편을 소개한다.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홍용암의 <<님>>은 분명히 <<통일>>이였을것이다.
 
 
                       제5집: 우리 민족끼리 
                          (6.15선언시조 편)
 
끼리끼리 
 
메새는 메새끼리 사슴이면 사슴끼리
흰옷 입은 우리도 백의동포 우리끼리
좋구나 한데 어울려 천만년 살고지고... 
 
축 배 
 
북남간 공동선언 삼천리가 환호한다
에루화 어깨춤에 축배 철철 넘쳐난다
동해가 술동이라면 벌써 굽이 났으리!
 
먼 길
 
서울에서 평양까지 그 얼마나 멀고먼지
반백년을 돌고 돌아 이제 겨우 닿았구나
엎디면 코가 닿을데 어이 그리 왔던고?
 
홍용암의 <<6.15선언시조 편>>의 시조 14수는 첫수 <<경사>>부터 마지막수 <<오직 통일>>까지 작가의 흥분된 모습을 곳곳에서 찾아볼수가 있다. 특히 <<우리 민족끼리>>의 자주정신에 대한 힘있는 노래가 전체적으로 아주 명쾌하고도 거창하게 흘러나오는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앞의 4집의 평에서도 필자가 언급했듯이 홍용암은 통일은 반드시 외세의 간섭이나 작간이 없이 집안의 화해와 단합을 전제로 해결되여야 함을 설파하고있다. 시조 <<끼리끼리>>에서 <<메새는 메새끼리/ 사슴이면 사슴끼리>>, 시조 <<통일행사>>에서 <<떡 놓아라 감 놓아라/ 왈가왈부 웬 놈 참견?>> 등의 표현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돌려세우는데 있어서 과거처럼 몇몇 주변 강대국과 국제정세에 휘둘리우는 희생양이 더 이상 되여서는 안된다는 작가의 일관된 사상을 반영하였다.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은 우리 민족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간절한 바램이 <<6.15선언시조>> 전반에 선명하게 나타나고있으며 이것을 계기로 민족의 축제를 노래한 <<축배>>의 종장 <<동해가/ 술동이라면/ 벌써 굽이 났으리!>>라는 이 시구절은 6.15공동선언이 우리 민족에게 주는 큰 기쁨을 가장 잘 표현한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6.15공동선언>>(2000.6.15)이 선포된지 벌써 17년이 흘렀다. 이때의 상황을 이렇게 환희로 표현했던 시인 홍용암은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가 새삼스레 궁금해진다.
 
작금의 현실은 더 암담하게 미래가 다가온다. 오늘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은 휴전이후 가장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도 외세에 의한 각종 압박으로 인하여...
 
어서 빨리 전운이 가시고 홍용암시인이 노래했던 시조 <<하나>>에서 <<말도 하나 글도 하나/ 피도 하나 땅도 하나// 어느것 한가진들/ 하나 아닌것 있으랴// 아서라/ 우리는 하나/ 둘 되면 못살으리...>>로 표현한것처럼 변한것 하나 없는 하나로 통일된 이 강토우에서 시조 <<축배>>>의 중장에서 노래한 <<에루화 어깨춤에/ 축배 철철 넘쳐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원해본다.
 
<<6.15공동선언>>의 날, 남과 북이 어깨춤을 추며 목놓아 불렀던 리은순의 <<아리랑>> 시조를 소개한다.
 
아리랑
 
하얀 옷 품속으로 아리랑 아리랑이
아득한 그날에도 눈물겹게 부른 노래
달 뜨고 락엽지거든 그속에도 아리랑... 
 
 
                     제6집: 백두산 산봉우리
                              (애국시조 편)
 
 
백두산 산봉우리
 
동에 첩첩 서에 겹겹 열여섯 산봉우리
조국을 옹위하고 우뚝 솟은 총대런가
내 나라 금수강산을 철통같이 지킬란다!
 
조국기상 
 
만수천산 락락장송 어이 사철 푸러르며
천길 절벽 기암괴석 어이 우뚝 숭엄한고
내 조국 그 기상 서려 장엄하고 푸를시구!
 
백두산봉 해돋이
 
천지간의 조화런가 구름바다 해가 둥실
백두일출 절승경개 천하제일 장관이다
동방에 해 솟는 나라 붉게 타는 삼천리...
 
홍용암의 제6집 <<백두산 산봉우리>>는 백두산의 웅장한 기상을 바라보며 그 백두산을 조국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모티브를 형성하여 <<애국시조>>라는 특별한 장을 마련하였다.
 
백두산은 민족의 명산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있다. 해발이 2750m로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 그 정상부분에는 화산이 폭발할 때 분화구에서 용솟음쳐나온 용암이 잘게 부서져 생긴 흰색의 부석이 20m정도 쌓여있어서 <<흰머리>>처럼 보인다 하여 백두산이라 부르게 된것이다.
 
시인 홍용암은 시조 <<백두산 산봉우리>>에서 <<조국을 옹위하고/ 우뚝 솟은 총대런가// 내 나라/ 금수강산을/ 철통같이 지킬란다!>>라고 하며 민족의 자주권도 통일도 우리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숭고한 사명과 심오한 사상을 노래하였다. 또한 <<조국기상>>, <<백두산봉 해돋이>>의 각 장을 통하여 조국을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나라로 묘사하였다.
 
분명 경계로 보면 백두산도 천지를 중심으로 하여 반으로 나뉘여져 조선과 중국의 경계를 이루고있다. 그렇다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조국은 어디를 말하는것인가? <<백두산 산봉우리>>의 시구나 문맥은 명백히 한반도를 가리키고있는데 작가는 분명 중국 조선족동포이다. 여기에서 민족의 아픔과 통일의 열망이 더욱더 작가의 민족혼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가 필자는 생각한다.
 
시조작품 <<충성>>을 보면 갈수록 더 확연히 표현되는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명확함이 드러나있다. <<조국보위 위함이면/ 이 생명도 서슴없다// 운명을 함께 하리/ 생사를 같이 하리// 내 조국 너를 지키여/ 죽도록 충성하리!>> 과연 작가의 작품에 깊게 들어갈수록 정체성의 문제에서 과연 이 작가가 중국국적을 소유한 중국국적인이 옳는가 하는 반문과 혼란을 가져오게 된다.
 
작가의 조국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에 관해서는 더 이상 론하지 않고 여기서는 이 정도로 줄인다.
 
홍용암시조의 제6집 <<백두산 산봉우리>>는 단지 문학적인 시조의 형태가 각 장별로 기본적인 시조의 음률을 놓치지 않고 특별한 감탄사나 영탄사도 근본 없이 명확한 어휘구사로 각 시조의 제목이 주는 내용을 함축성있게 사실적으로 도도하게 잘 표현한것은 시조작가로서 높이 평가할만 하다.
 
삼천리금수강산에는 북으로 백두산, 남으로 한라산, 허리가 갈라진 38도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우쪽으로는 금강산, 아래쪽으로는 지리산 등을 꼽는다. 그러나 명산중의 명산은 그래로 금강산을 제일의 반렬에 놓는다. 금강산은 또 온정각지구, 구룡각지구, 일만이천봉을 련상시키는 만물상지구를 떠올린다.
 
조국의 통일과 남과 북이 마음껏 왕래하는 그날을 소원하며 리군익이 쓴 <<만물상의 기적>>이라는 시조를 소개한다.
 
만물상의 기적
 
아버지 등에 지고 어머니 품에 안고
금강산 굽이돌아 만물상 앞에 서서
감도는 눈물 감추려 먼 하늘끝 바라보네 
 
 
                               제7집: 영웅전설 
                             (영웅송가시조 편)
 
 
남이장군 
 
남아이십부평국이면 후세수칭대장부라
영웅이 남긴 글발 오늘도 빛나는데
동강난 내 조국땅은 뉘라 평정하리오?
 
리순신
 
그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팔도 왜적
임진전쟁 그 막장도 그 손으로 내렸도다
전하라 불멸의 업적 천추만대 빛발치리!
 
안중근 
 
삼천만을 대신하여 그대 이룬 장한 거사
더운 피 휘뿌리며 지사는 갔어도
천추의 애국충혼은 영생불멸하리라!
 
홍용암은 력사에 길이 빛날 애국영웅들을 칭송하는것을 통해 그들의 영웅정신을 따라배워 조국보위와 통일위업에 적극적으로 나설것을 표방하고있다. 그가 선택한 인물은 하나같이 모두 외래침략에 맞서 싸운 애국충신들이다.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정몽주>, <<최영>>, <<리순신>>, <<서산대사>>, <<론개>>, <<남이장군>>, <<안중근>>... 등의 영웅들을 렬거하여 시의 주제로 삼음으로써 그 후손들에게 이들을 통한 배움과 애국충정의 정신을 강조하고있다.
 
저자는 제7집 말미 시조 <<영웅전설>>로 상술한 작품을 쓰게 된 그 통합적인 목적을 설명하고있다. <<창천같이 높은 뜻/ 열화같은 애국열// 류수같은 세월은/ 천만년 흘러가도// 영웅의/ 그 이야기는/ 길이길이 전해지리...>>
 
홍용암은 무릇 단군의 후손인 백의동포라면 그가 조선반도의 북과 남은 물론 이 세상 어디서 살아가든 한결같이 민족자주, 조국보위, 조국통일의 위업에 적극 헌신할것을 박절히 열망, 호소, 촉구하고있다.
 
우리 조선민족은 국가가 형성된 이후로 단 한번도 타민족을 먼저 침범한 력사적 기록이 없다. 항상 외세의 침략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왕조가 바뀌고 국가가 바뀌여도 슬기롭게 영웅들이 탄생되고 나타나 그 위기를 극복했던것을 력사는 기록하고있다. 당금의 현실에서도 분명 우리 민족은 어떠한 어려움도 능히 대처해나갈것이라 작가는 확신한다. 필자도 그렇게 확신하며 이것이 작가의 <<영웅전설>>>을 평하는 결론이다.
 
최근에 우연히 발견된 리순신의 한시를 소개한다.
 
대장부 세상에 태여나서
쓰이면 죽을힘을 다하여 충성할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고 살면 족할것이니
권세있는 자에게 아첨해 뜬 영화나 탐내는건
나의 부끄러워하는 바이라... 
 
 
                                제8집: 력사앞에 
                                   (력사시조 편)
 
 
행주산성 
 
치마 두른 아녀자라 그런 말 다시 마소
행주산성 혈전에서 한몫 크게 맡았거니
아느냐 행주치마라 고쳐 부른 그 전설...
 
3.1 봉화 
 
하늘땅을 진감했던 독립만세 그 함성
피 끓는 가슴마다 세찬 불길 지폈나니
이 나라 이천만동포 구국에로 불렀더라
 
리완용
 
통째로 국토 팔아 온 국민이 치를 떠니
하늘 찌른 그 악취 후세에도 풍기도다
만악중 제일로 큰 죄 매국인가 하노라!
 
홍용암의 제8집 <<력사앞에>>를 살펴보면 저자는 력사속에서 오늘을 보고있다. 홍용암은 력사적으로 민중을 통한 항쟁의 불길이 더없이 위대함을 표현하고있다.
 
<<행주산성>>을 보면 초장에서 <<치마두른 아녀자라 그런 말 다시 마소>>라는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다. 임진왜란시기에 권률장군이 왜적들과의 싸움에서 우리 나라의 전쟁력사상 처음으로 <<재주머니 던지기>>라는 특이한 전법을 썼다. 당시 가장 치렬한 전장터의 하나였던 행주산성에서 군사가 턱없이 모자라 부득불 아낙네들까지 전부 동원되여 긴 치마를 잘라 좀 짧게 덧치마를 만들어 입고는 그 치마폭에 적을 까부시는 돌을 주어 담아 싸움을 거들었는데, <<행주치마>>라는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되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작가는 시조에서 아주 간결한 시구로 배열해냄으로서 작가의 특별한 력사를 보는 눈과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만 독자가 바로 쉽게 알아볼수 있는가를 문학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시조의 기본적 음률을 절대로 벗어나지 않는 아주 짧은 45자좌우로 이 뜻을 정확히 전달한것은 작가의 탁월한 시적 감각이고 어휘전달력의 수준이 놀라운 경지에 이르렀음을 볼수 있다. 아울러 민중을 통한 력사의 비장한 항쟁사가 쓰였음은 그것이 상당한 학술적 가치도 있다고 본다.
 
<<3.1봉화>>는 왜놈들에 맞서는 우리민족 본격적인 항쟁의 민족단결정신이며 구국의 정신적지주가 되고있다. 세월이 흐르고 흐른다 해도 그 정신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을것이다.
 
이 운동은 극소수 친일파, 친일지주, 예속자본가를 제외한 전민족적인 항일독립운동이자 계몽운동, 의병운동, 민중의 생존권수호투쟁 등 각계, 각층의 다양한 운동경험이 하나로 수렴된 력사상 최대규모의 민족운동이였다.
 
이 운동의 결과로 말미암아 일제의 무단통치가 끝나게 되여 민족해방운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될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이런 력사적배경을 시조 <<3.1봉화>>에서 당시의 이 봉화가 전국적이라는것을 <<이 나라/ 이천만동포/ 구국에로 불렀더라(3.5.4.4)>>로 종장의 음률을 잘 살려 작가가 전하려는 뜻을 정확히 전달한 그 표현기법은 학술적으로도 높이 평가할수 있다.
 
또한 <<리완용>>과 같은 력사의 죄인을 천추의 죄인으로 단죄하면서 이 시조의 중장에서 <<하늘 찌른 그 악취/ 후세에도 풍기도다>>라고 한 표현은 -- 력사상 공과 죄를 론하는데 있어서 절대로 부끄러움이 없는 깨끗한 력사를 재현하고 만들어가는것이 순수민족문학을 하는 우리 작가들의 몫이라라는것을 말해주고있다.
 
력사는 우리가 삶을 걸어오는 발자국의 흔적이다. 지울수도 없고 또 지울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보귀한 교훈과 경험으로 잘 섭취, 총화하며 오늘을 걸어가야 한다.
 
이에 성보용의 <<삶>>이란 현대시조 한편을 소개한다.
 
 
오늘도 걸어가며 삶의 길을 묻는다
묻고 또 물어가며 그렇게 걸어간다
그래도 이 길이 좋다 아쉬운듯 그냥 좋다
 
 
                                제9집: 민족앞에
                                   (애족시조 편)
 
 
귀 로 
 
알몸으로 왔어도 소복하고 가는 인생
때가 되여 천국갈땐 무슨 옷 입고 돌아갈가
이 몸은 어머님 주신 흰옷 입고 가리라... 
 
생 떼
 
저 땅에서 태여나도 이 땅에서 살고싶소
한번 와서 심취되니 도로 가기 싫어라
정붙어 못가는 사연 생떼라 나무람마소! 
 
민족사랑
 
누에가 한오리 실밥을 다 토하듯
초불이 마지막 심지를 다 태우듯
그렇게 이 내 사랑을 우리님께 바치리다! 
 
홍용암의 제9집 <<민족앞에>>를 보면 작가의 필호 <<백운(白云)>>이 말해주듯이 영원한 화두(話頭)인 정체성의 문제인 두개의 객관적 상관물로 형상화되여있는데 그것이 바로 <<흰옷>>과 <<흰구름>>의 이미지이다.
 
특히 그의 전반적인 시조작품속에 중요하게 나타나는 시어가 바로 <<흰옷>>이다. 이는 작가 자신이 언제나 백의민족의 한 성원임을 망각하지 않고 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여있기때문에 나올수 있는 표현이다. 작가가 철저히 백의민족의 본색을 지켜 순결한 애족과 애국을 위해 한평생 살고 죽기를 굳게 맹세한 그 강렬한 민족의식이 그의 가슴속 심장 깊이에 뿌리박혀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동시에 작가는 고국을 멀리 떠나 흰옷 입은 어머니를 그리면서 자기도 흰옷을 입고 마지막길을 가기를 원하지만 현실적 부조화로 인하여 몹시 갈등하는것을 작품 곳곳에서 느낄수가 있다. <<생떼>>를 보면 <<저 땅에서 태여나도 이 땅에서 살고싶소>>하는 간절한 바램은 있지만 현실은 작가를 <<외국인>>으로 취급하며 매정하게 밀어내고있다. 그리하여 작가는 자기의 불합리한 정체성을 <<흰구름>>에 비교하여 표현함으로서 끝없는 아픔과 슬픔과 허무를 나태내였다.
 
그러면서도 홍용암은 어쨌든 자신이 같은 뿌리이고 같은 민족임을 주장하면서 조국의 북과 남의 통일을 위해서라면 작가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다리>>가 되여 그 일을 감당하겠다고 선언하고있다.
 
어떻게 보면 류랑이민인 작가는 철저하게 그의 작품 <<민족사랑>>에서 이미 표현했듯이 <<누에가 한오리 실밥을 다 토하듯// 초불이 마지막 심지를 다 태우듯// 그렇게 이 내 사랑을 우리 님께 바치리다!>>고 하지만 정녕 그 대상인 <<우리 님>>을 민족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그 민족에 대한 정체성혼란의 현실은 아무래도 작가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숙제로 영원히 남는다.
 
작가가 생각하는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2006년 <<한국>>에서 출판된 그의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는 그 앞표지 웃부분에 명시, 기록된 그대로 <<6.15공동선언발표6돌기념 시조집>>이다.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의 제4집인 <<분단의 한>>의 첫 시조 <<인간비극>>에서 보면 <<북에는 내 아버지/ 남에는 내 어머니>>를 표현했고 9번째 시조 <<편>>에서도 보면 <<북에도 내 형제요/ 남에도 내 자매라// 싸움나면 이 내더러/ 누구 편을 들가 하니// 차라리/ 벽에 골 박아/ 그 꼴 차마 안볼지고...>>라고 하는 갈등의 요소가 작품 곳곳에 짙게 깔려있다.
 
또 제5집의 <<우리민족끼리>>의 한 시조인 <<해외동포>>에서 보아도 <<오른손엔 람홍기발/ 왼손에는 태극기// 내 흐르는 눈물로/ 세차게 흔들어도// 아서라/ 북남은 하나/ 내 고국은 하나라네.>>라고 분단에 대한 북받치는 그 아픈 감정을 목청껏 노래로 불렀는데, 같은 피를 나눈 우리도 같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다.
 
평론의 마무리에 들어가면서 필자의 가슴에도 점점 홍용암시인의 아픔이 아렷이 다가오는것은 ㅡ 이렇게 철저하게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설 곳이 없다는 비극적 사실이다. 어쩌면 류랑하는 이 민족의 한결같은 설음이기도 한것이 가슴에 먹먹해져온다.
 
불현듯 <<나그네 설음>>이란 옛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소
선창가 고동소리 옛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타관땅 밟아서 돈지
십년 넘어 반평생
사나이 가슴속에 한이 서린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제10집: 력사와 민족앞에
                                 (맺음시)
 
 
마지막 제10집인 <<력사와 민족앞에>>(맺음시)는 시조집 전편에 흐르던 내용을 개괄, 총화하면서 력사가 남겨준 비극과 현실위기를 련시조 형식으로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력사와 민족앞에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지난 과거와 우리 민족의 수치, 책임, 위기, 사명을 역설하고 마지막에 <<그리고ㅡ/ 력사와 민족앞에 내 목숨을 바친다!!!>>로 결론을 내리고있다.
 
 
                                        맺는 말
 
 
홍용암의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의 평론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번에 개인적으로 이 <<력사와 민족앞에>>에 관한 평론을 쓰면서 무시로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였다.
 
무엇보다 홍용암이라는 작가의 삶이 확연히 조명됨을 보면서 해결되지 않는 이 나의 생각은 ㅡㅡ
 
① 홍용암이 시조집에서 추구하고자 하였던것은 무엇인가?
 
② 홍용암의 시조집을 읽는 독자들은 구경 어떤 생각을 갖게 될가?
 
③ 홍용암에게 있어서 민족이란 무엇이며 그 주체는 무엇인가? 하는것이였다.
 
보다싶이 홍용암의 본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는 도합 127수의 시조를 다시 10집으로 나누어 저술되였다.
 
그 내용은 ㅡㅡ
 
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망향가를 통하여 망국노 설음을 표현했으며
 
② 귀향을 통하여 인생의 허무함과 무(無)의 인연법을 나타냈으며
 
③ 리산가족상봉을 통한 리별의 한과 비극의 아픔을 노래했으며
 
④ 남과 북의 분단의 고통을 통하여 통일을 희망했으며
 
⑤ 6.15공동선언을 계기로 민족의 동질성과 그 단합을 축하 및 주창했으며
 
⑥ 백두산 기상을 통한 조국찬가 및 애국정신을 노래했으며
 
⑦ 력사의 영웅인물들을 통한 조국보위전통과 그 의기의 배움을 강조했으며
 
⑧ 력사사건속의 인물들을 통하여 그 공과 죄를 구분했으며
 
⑨ 민족앞에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과 사명을 촉구했으며
 
⑩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맺음시로 자각과 헌신과 다짐을 표현하였다.
 
그 예술적 특징을 보면 ㅡㅡ
 
먼저 앞에다는 자유시의 형식으로, 그다음 단시조의 형식으로, 마지막 맺음시는 련시조의 형식을 취하였다는것이다. 매 평시조마다 3장6구의 기본틀을 보편적으로 유지하였고 3.4조를 기본으로 하여 조직하였다. 글자수도 44자 내지 45자 좌우를 잘 유지하였다.
 
홍용암의 시조의 예술적특징은 정형률에 굳이 매이지 않고 종장 첫 구의 감탄사나 영탄사를 기본상 구사하지 않았으며 주옥같은 시어를 잘 선택하여 엄숙하고 긍정적인 사상을 담는데 노력한 흔적이 력력히 전 작품을 통해 나타나있다.
 
특히 홍용암시조의 구성상 형상적특성을 깊이 연구하면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평시조의 전통작법대로 초장, 중장에서 각각 3(4).4.3(4).4로 흐르던 음률조직을 종장에서 3,5,4.3으로 변하게 하면서도 그 특이한 매력이 바로 종장의 5음절로 구성한 두번째 구에 있다는것이다.
 
홍용암은 시조를 구성하는 초장, 중장을 현대자유시 형식으로 매 장마다 그것을 다시 각각 1개 련, 2개 행으로 뜯어서 나누고, 시조의 시작, 발전을 그렇게 이끌어오다가 고조부분인 종장만은 갑자기 2행이 아닌 3행으로 모든 작품을 엮는것으로 시조형태령역에서 획기적인 구성방법을 개척하였는데 이에 대해서 필자는 박수를 친다.
 
결론적으로 홍용암의 <<력사와 민족앞에>>는 현대자유시와 고전적전통시를 작가 특유의 시작법으로 자유스럽게 구사하였음을 예술적으로 높게 평가할수 있다.
 
가장 놀라운것은 우에서도 여러번 상술하다싶이 주제에 가장 알맞는 시어를 잘 선택하여 감탄사나 영탄사가 없이도 시조작품을 훌륭히 완성해냈다는것이다. 특별히 작가는 시조의 초장, 중장, 종장의 구성상에서 적절한 시구를 배렬함으로서 기존 시조들이 보편적, 일상적으로 사용하고있는 감탄사 혹은 영탄사를 전혀 쓰지 않고서도 함축된 그 뜻을 독자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제시한것은 놀라운 문학적기법이라고 할수 있다.
 
시조는 우리 나라 고려말부터 리씨조선에 이르기까지 산생, 성행, 발전되여온, 우리 민족의 정형시에서 최고로 함축되고 정제된 시가형식이다. 이것을 한달도 안되는 아주 짧고 빠른 시간내에 책 한권에 달하는 127수를, 그것도 <<력사와 민족앞에>>라는 그 거창한 주제를 한줄에 쭉 꿰인 10집으로 나누어서 소화해냈다는것은 홍용암시인의 재능이 매우 출중함을 설명한다.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고있는 민족애, 고국애, 통일의지로 전반 시조가 구성된것은 참으로 탄복하고 존경할만한 일이지만 작품 곳곳에서 배여나오는 외로움, 고독감, 그 슬픔은 적당히 좀 극복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평자는 한국에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임.) 
 
<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백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등록외국인도 사전등록 없이 자동출입국심사대 이용 가능
2
다문화가족을 위한 "엄마와 함께하는 역사탐방"에 신청하세요
3
법무부,10월1일부터 ‘불법 체류자 특별 자진출국기간’ 시행
4
(서정시) 판문점의 봄 / 신영남
5
(서정시): 어느 별난 나무의 숙명 / 최화길
6
조선족 중의사 전태영원장, 산동 연태서 중의특강 및 환자 시술로 호평
7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옛훈장이 빛나는 영국을 가다(3)
8
“한반도 평화 정착 위한 모국 정부 노력 지지한다”
9
연변의 사과배 / 조문찬
10
[시/千愛玉]시계 외 2수
신문사소개구독문의광고후원회원/시민기자가입기사제보제안/제휴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0-824]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2동 1024-21 | 대표전화 : 02-836-1789 | FAX : 02-836-0789
등록번호 113-22-14710  |  대표이사 이동열 |  E-mail : pys048@hanmail.net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동열
Copyright © 2004 동북아신문.∥dbanews.com의 모든 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